(단편) 안양에서
신외숙
1호선 안양 전철역에 내렸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니 광장 같은 공간이 빼곡히 들어찬 상가와 함께 나타났다. 여성 의류를 파는 상가와 롯데 백화점이 마주하고 양편으로 음식점과 잡화상이 늘어서 있었다. 역사(驛舍) 밖은 짓다 만 흉물스런 건물과 상가가 일렬종대로 하늘을 떠받치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 중간에 종말을 알리는 전도대가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 팻말을 들고서 안타깝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피식 웃고 지나갔다.
지구의 온난화 현상과 함께 빙산이 무너져 내리고 처처에 기근과 강도 높은 지진이 발생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겠는가.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말세 증상은 이미 지구 곳곳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인명 경시 현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신의 존재마저 의문을 품게 했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무신론 따위는 거론하지 않는다.
인과응보에 대한 심판의 증거가 가끔씩 나타났기 때문이다. 세상은 날로 악의 기운이 승해 자살을 독려하고 어린 아이를 방패막이로 이용하는 종교 집단에도 사람들은 일언반구 이의를 제의하지 않았다.
악이 선을 지배하고 후안무치 인면수심이 활개치는 세상이다. 종교 지도자들, 성직자들의 죄악이 관영한 세상 앞에 사람들은 아예 외면하고 침묵을 지켰다. 도박과 원정 성매매와 처첩을 거느린 승려들의 일탈이 동영상을 통해 보도 되었을 때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았다. 소설이나 영화의 한 장면쯤으로 생각한 모양이었다.
맞은편 2차선 도로 입구에 대학 입구 표지판이 보였다. 도림동 근처에 있던 신학교 건물이 몇 번 이사를 하더니 증개축을 통해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것이다. 2년제 과학대학도 종합대학으로 개명해 전광판에서 계속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건물을 바라보니 서울과 경기도의 차이가 저절로 느껴졌다. 건물의 외양부터가 그렇고 어딘지 모르게 칙칙한 느낌이 들었다. 거리는 수많은 발걸음이 광풍 같은 음악과 함께 어딘가를 향해 일제히 몰려가고 있었다. 좁다란 상가가 시작되는 곳에서 귀에 익은 팝송이 흘러나왔다. 유명한 팝 가수 엔머레이가 부르는 ‘you neede me' 였다.
분위기가 종말론에서 당장 옛 향수로 바뀌었다. 엔 머레이, 비지스, 케니 로저스, 폴 앙카, 패티 패이지, 아트 가펑클 등은 대표적인 7080 팝송 가수들이다. 7080이라 함은 50대 중반을 뜻하는 단어로 이미 대중화 상업화 된 지 오래다. 음악 따라 발걸음이 저절로 움직였다. 오토바이 한 대가 매연을 길게 내뿜으며 지나갔다.
점차 발걸음이 끊기면서 안양천이 나타났다. 거기서 굴다리를 지나자 녹색 바람이 가슴을 덮쳐왔다. 계곡에서 물살이 흘러내리면서 예술공원이 시작되고 있었다. 한 중년 남자가 상가 앞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그 역시 한물 지나간 7080 노래였다. 이용이 부른 시월의 마지막 밤이었다. 악사는 온몸으로 음률을 나타내며 스스로 심취한 듯 보였다.
10월의 마지막 밤은 공기를 타고 관악산과 온 동리를 휘감더니 마침내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녹색바람과 물결치는 소리는 코스모스 백일홍과 함께 가을 분위기를 고조시키면서 한껏 정취에 젖게 했다. 가을은 인생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인가 보다.
“어린 시절엔 참 꿈도 많았는데…….”
누군가 내 곁을 지나며 말한다.
“꿈과 현실은 정반대라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아요, 왜냐하면 난 그 꿈을 이루었으니까.”
그렇게 말하는 남자는 표정이 꼭 전쟁을 앞둔 용사 같다.
“믿지 않으시겠지만 전 어릴 적 별명이 빙충이었어요, 얼마나 어리석고 바보 같았는지 저희 부모님은 제가 커서 제대로 사람 구실이나 할까 여간 걱정이 아니셨대요.”
“그렇다면 성장하면서 머리가 좋아진 셈인가요? 아님 노력의 결과인가요?”
“둘 다 아니에요, 제 맘속에 있는 꿈의 결과에요. 전 야무지지도 똑똑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꿈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그리고 그 꿈을 향한 의지가 강했어요.”
“그거 참 대단하군, 그러기가 쉽지 않은데.”
“제가 말하는 꿈과 야망은 그 동기부터가 확연히 달라요. 야망은 개인적인 출세나 욕망을 근거로 하지만 제가 꾸는 꿈은 공동의 이익에 근거해요.”
“하지만 꿈을 꾼다고 해서 모두 이루는 건 아니죠, 거기엔 개인의 노력과 신의 은총이 개입하지요, 물론 주위의 도움도 절대 필요하고, 또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는 강한 의지도 필요해요.”
“이전엔 참 세상이 불공평하다 생각했어요, 사람들에게 흔히 주어지는 기회란 게 저에겐주어지지가 않았거든요, 나중에 세월이 많이 흐른 뒤 알았어요, 기회란 준비된 자에게만 오는 거라는 걸.”
“성경에도 나와 있잖아요, 사람이 노력만 한다고 다 부해지는 건 아니다. 거기엔 신적 은총이 가세해야만 가능하다는 뜻이지요.”
“사실 저는 어릴 때부터 고민이 늘 한가지였어요, 나는 이 다음에 무엇을 해서 먹고살 것인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날 친구가 저에게 그러는 거예요, 하느님은 사람들 각자에게 한가지 재주를 주셔서 그걸로 먹고살게 해주셨대요, 참 재미있는 말이죠, 하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제 친척 동생은 어릴 때 뇌를 다쳐서 지능이 아주 낮았어요, 사리분별을 못해서 늘 가족들 애간장을 태우고…… 나이 삼십이 다 돼 겨우 한글을 깨우칠 정도였대요, 그런 동생을 두고 이모는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 동생에게 특출 난 재주가 있었대요, 손재주가 좋았대요, 집안에 고장 난 물건이 보이면 끝까지 붙들고 늘어져서 완전하게 고쳐 놓더래요, 어느날 가족들 몰래 중장비 학원에 등록하더니 마침내 기술을 배워 합격했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죠, 실기 시험은 붙었는데 필기 시험이 문제인 거예요, 겨우 한글 깨쳤는데 어떻게 시험을 치를까.”
남자는 호기심 찬 표정으로 여자의 입을 주시했다.
“그런데 서너 번의 낙방 끝에 끝내 합격한 거 있죠, 참 하느님은 공평하신 분예요.”
“그래서 취직해서 직장은 잘 다니나요?”
남자는 전혀 믿지 못하겠다는 말투였다.
“네에 그럼요, 다른 건 몰라도 제 월급 계산은 칼같이 하는데 얼마나 신기한지 몰라요, 잔업 수당이라든가 시간 외 근무수당 등은 어찌나 따지는지.”
여자의 입에서 연신 미소가 묻어났다.
“사람들과 관계는 어떻게 하는 데요?”
“속이 비좁아 탈이지 그런대로 잘하는 모양이에요, 이 실업난 시대에 직장에 꼬박꼬박 잘 다녀요, 지난달에는 신형 자동차를 사서 이모와 함께 교회도 다니는 걸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안심하는 표정이었다.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뭐였나요?”
“전 불행히도 꿈이 없었어요.”
“네? 방금 전엔 꿈이 있었다면서요.”
여자는 놀란 듯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좀 전엔 꿈을 이루었다고 하더니…….
“집안이 날마다 전쟁터였어요, 할아버지는 매일같이 아버지를 때리고 그때마다 아버지는 자식들을 불구대천지처럼 때렸어요, 자식들이 머리가 커서 출가할 때가 되었는데도 툭하면 주먹질을 예사로 하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저희 할아버지도 증조 할아버지로부터 엄청나게 맞고 성장했다고 하더군요. 대물림은 참 무서워요, 제 큰형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맞은 상처로 인해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어요, 날마다 울고 난리 치는 통에 동네 시끄럽다고 쫒겨 날 지경이었어요. 그때 쯤 아버지는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죠.”
“……….”
“정신병원에서 퇴원한 형은 잠시 나아지는 듯싶더니 또다시 재발하고 말았죠, 착란증세가 심해지면서 아버지와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이번에는 아버지를 폭행하는 거예요, 존속상해죄로 고소하려다 해코지가 두려워 못했죠, 매일 매일이 지옥 같은 나날이었어요, 위의 두 누나는 결혼했는데 일 년도 못 살고 모두 이혼했어요, 남자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으로 하루도 싸우지 않는 날이 없었대요, 나이 육십을 바라보는 누나들은 지금 어머니께 날마다 하소연해요, 왜 그런 아버지를 만나게 했느냐며.”
“아무리 노력하고 거부해도 어쩔 수 없는 게 대물림이래요, 상담학에서 그런 현상은 7대를 간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어르신들이 결혼할 때 집안 따지고 그러는 것 같아요.”
“물론 돌연변이도 있을 수 있겠으나 보고 들은 대로 행동하는 건 너무 당연지사에요, 저희 형은 존속상해 혐의로 여러번 투옥될 지경까지 갔지만 풀려나오고 말았지요, 아버지가 원하지 않아서였어요, 그러다가 그러다가 결국 지난달에 아버진 천국에 가셨어요.”
남자는 울먹거리더니 결국 대성통곡하고 말았다. 사람들이 흘끔거리며 지나갔다. 말투로 보아 자살인 듯싶었다. 차마 물어볼 수 없었다.
“누나들은 툭하면 자신이 이혼녀가 된 건 순전히 부모님 탓이라며 어머니께 날마다 하소연해요, 그때마다 전 누나들의 비난의 대상이 돼요.”
“왜요 무엇 때문이죠?”
“가족 중 저만 유일하게 사랑받고 자랐기 때문이죠, 부모님은 제 위로 형 둘과 누나들을 몹시 때리며 키운 것을 후회해 온갖 정성 다해 저를 키우셨어요, 성경에 나오는 요셉처럼 저에게만 온갖 좋은 것 다 먹이시고 입히시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주셨어요, 사실 집안에 저 혼자만 대학 출신이에요. 작은 형이 살아 있었다면 누구보다 기뻐했을 텐데.”
“형이 또 있었나요?”
“제 바로 위에 다섯 살 많은 형이 있었는데 중학교 다닐 때 물에 빠져서 그만…… 그땐 부모님이 쉬쉬해서 잘 몰랐는데 아마 자살인 듯해요.”
“세상에 충격이 크셨겠네요.”
남자는 곁에 있는 나를 의식했는지 여자와 함께 교각 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짧은 순간의 대화였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도록 슬펐다. 중학교 동창인 남주가 생각났다. 안양은 그녀와의 추억이 묻어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녀가 석수역 근처에 살고 있을 때 나는 뻔질나게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절세미인으로 남편과 함께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었다. 빼어난 미모와 음식 솜씨로 손님을 많이 끌었지만 지병인 간암이 악화돼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러기 전까지 그녀는 수없이 많은 낙태수술을 해야 했다. 남편의 바람기를 잠재울 방법이 도저히 없었던 그녀는 속을 끓이다 끓이다 못해 결국 화병에다 암까지 겹쳐 37세라는 꽃다운 나이에 죽음의 신을 따라 나서고 만 것이다.
남주는 모친상을 치르자마자 새엄마를 맞아 들여야 했다. 아버지보다 서너 살 많은 그 과수댁은 얼굴이 흉하고 성격도 억세 보였다. 6 개월가량 살다 나갔는데 이유가 걸작이었다. 남주 아빠가 자기를 꼬드길 때 상처한 홀아비라고 속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여자에 미쳤어도 그렇지 어떻게 살아 있는 제 아내를 죽었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그 말도 얼마 안 가 거짓말로 들통 나고 말았다. 그 새엄마라는 여자가 술김에 한 말이 화근이었다.
“그때 저 인간이 그랬단 말이여, 내 마누라가 지금 간암 말기인데 곧 장례 치를 거구먼, 그때 우리 집으로 들어와 같이 살자, 내 끔찍이 아껴줄 거구먼.”
결국 여자는 가출했고 남주 아빠는 그 후에도 여러번 새여자를 집안에 들이고 내보내기를 반복했다. 남주는 엄마 미모를 닮아 얼굴과 몸매가 뛰어났다. 그래서 여고 때부터 남자 친구를 수없이 갈아 치웠고 20대 중반에는 재벌의 첩노릇까지 한 적도 있었다. 그녀는 한번도 자신의 손으로 노력해서 돈을 번 적이 없었다.
그녀가 쓰는 용돈의 대부분은 남자의 주머니에서 나왔고 때로는 목돈까지도 그녀의 통장으로 입금되는 때도 있었다. 대학 다닐 때는 고급 요정에서 몰래바이트 한 적도 많았다. 그때 술집에서 알바하는 여대생을 몰래바이트생이라고 한창 유행어가 떠돌 무렵이었다. 남주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돈 많은 홀아비를 사귀다가 거금을 우려내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얼마 안 가 선배였던 강남의 땅 부자 아버지를 둔 선배를 유혹해 드디어 웨딩 마치를 울렸다. 그녀는 남편을 따라 미국 뉴욕으로 건너가 5년간 살다 귀국했는데 몸이 만신창이로 변해 있었다. 신경정신과 약을 먹는데 몸이 자꾸 왼쪽으로 쓰러지는 것 같다며 내게 여러번 고통을 호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꾸며댄 새빨간 거짓말이라는 걸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말하는 본새로 보아 이혼한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을 친가로 보낸 뒤 스스로 종적을 감추었다. 정신병동으로 들어갔는지 아님 새로운 인생을 찾아 떠났는지 알 수 없었다. 관악산 산자락을 바라보며 걷다가 우연히 눈길을 왼쪽으로 향했다. 낯익은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납골당이었다. 한 줌의 재로 변한 영혼들이 마지막 안식처로 삼은 그곳에 남편도 있었다. 도자기 항아리에 몸과 영혼을 숨겨둔 채. 그제서야 나는 내가 안양에 왔는지 생각났다. 발길을 돌려 납골당으로 향하려는데 문자 메시지가 왔다.
「곧 김포공항 도착 예정 연락 바람」
그는 남편이 남기고 간 내 유일한 피붙이 아들이었다. 나는 납골당으로 들어가 남편 사진 한번 들여다보는 걸로 제사 의식을 치르고는 곧바로 마을버스 정류장으로 내려갔다. 남편이 떠나고 난 뒤 새롭게 몸에 밴 건 검약정신이었다. 한푼이라도 아껴야 노후대책에 보탬이 될 것 같았다. 아들은 해외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직장에 복귀할 참이었다.
결혼은 제 마음에 맞는 처자가 나타나면 언제고 시킬 작정이었다. 무릎을 세우고 마을버스에 오르니 또다시 7080 노래가 흐른다. 운전기사의 얼굴을 보니 나와 비슷한 연배다. 어두운 창밖은 코스모스와 단풍이 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또다시 인생이란 단어를 생각나게 한다. 스피커에선 김인순의 여고졸업반이란 노래가 물결처럼 흘러 나오고 있다.
아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아무도 몰라 누구도 몰라 우리들의 추억 이야기………… 뒤돌아보면 그리운 시절 돌아가고 파 돌아가고 파 아아 잊지 못할 여고 졸업반.
저 노래가 한참 유행할 무렵이었다. 국어 선생님이 노래 가사를 읊조리며 여고졸업반 영화가 나왔는데 와이프와 꼭 같이 봐야겠다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던 생각이 난다. 그때 남주는 이웃 학교 남학생들과 어울려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첫 테이프를 끊었었다. 여고졸업반 노래가 끝나자 이번에는 최백호의 입영전야가 나왔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지난날들 돌아보면
숱한 우리 얘기
넓은 너의 가슴 열리고
마주 쥔 두 손엔 사나이 정이
내 나라 위해 떠나는 몸
뜨거운 피는 가슴에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언젠가 읽었던 소설의 한 대목이 생각난다.
난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그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했던 걸까. 아님 그냥 지나가는 바람이었을까. 아님 마지막 순간에 그의 선택에서 밀린 걸까. 그러다 사랑이 아니라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사랑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서럽든지. 세월이 17년이나 흘렀네요, 그는 살아 있을까. 가끔씩 인터넷 검색을 해 보지만 그가 속한 단체에서도 그의 이름은 클릭이 안 돼요, 혹시 죽은 건 아닐까. 아님 이민이라도 떠난 걸까.
남편과 나는 처음부터 연인관계는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남주를 죽어라 따라 다니다 채인 수많은 남자 중의 하나였다. 남주는 키 작고 못생긴 그를 적당히 이용해 먹다 버릴 요량이었다. 평소엔 눈길 한번 주지 않다 용돈이 필요하면 불러내 술 한잔 마시고 쇼핑하며 바가지나 듬뿍 씌우는 어리석은 남자 중의 하나였다.
그래도 그는 어렵게 알바해서 번 돈을 그녀에게 몽땅 헌납하고도 손 한번 잡아 보지 못했다. 입영을 앞두고 몸이 단 그는 남주를 만나 어떤 다짐이라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예컨대 군대 간 동안 한눈 팔지 않고 기다려 줄 수 있겠느냐는 모종의 약속 같은 것이었다. 물론 남주 입장에선 씨도 안 먹힐 소리였다.
주변에 널리고 널린 게 남자인데 하필이면 키 작고 못생긴 그에게 마음을 준단 말인가. 그래도 남편은 그녀에게 목을 매달며 사정했다. 군대 3년 동안 꼭 기다려 달라고. 남주가 안 만나주자 그는 친구인 내게 다가와 통사정하기에 이르렀다. 남주는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까짓거 하면서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그는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뻐하며 기타를 퉁겨 노래를 불렀다. 바로 최백호의 입영전야였다.
그때 눈물을 글썽이며 노래를 부르던 남편이 한 소절이 끝나기도 전에 폭풍 같은 눈물바람을 뿌렸다.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간절하고 진실한지 옆에서 지켜보는 내가 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아쉬운 밤 흐뭇한 밤
뽀얀 담배 연기
둥근 너의 얼굴 보이고
넘치는 술잔엔 너의 웃음이
정든 우리 헤어져도
다시 만날 그 날까지
자 우리의 젊음을 위하여
잔을 들어라
그가 마지막으로 기타를 퉁기며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남주는 이미 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녀에겐 그 말고도 약속이 예정된 연인이 서넛이 있었던 것이다. 남주 대신 그의 노래를 끝까지 듣고 박수를 쳐 준 건 다름 아닌 나였다. 물론 그가 군대 간 뒤에도 열심히 면회를 가 준 것도 나였다. 짐작컨대 그때 내 마음은 진정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오리무중이었다. 내가 믿는 건 그의 외기러기 사랑이었다. 그는 내가 면회를 갈 때마다 남주 소식을 물었다.
“경제학과의 선우 선배랑 결혼해서 미국 갔어, 선우 선배 집안이 워낙 짱짱하잖아, 제발 남주도 이젠 정신 차리고 잘 살아야 할 텐데. 어떻게 보면 선우 선배도 참 운도 없다 어디서 그런 걸.”
그때 그는 눈물을 한방울 떨어뜨리며 손으로 귀를 막았다. 더 이상 듣기 싫다는 뜻이었다. 그는 마음속에서 여전히 남주를 떠나보내지 못하면서 왜 나랑 결혼했던 걸까. 열 계집 싫다는 남자 없다고 모두가 자기를 외면하고 안 만나주니까 꿩 대신 닭이라고 할 수 없이 나를 택한 걸까. 그의 속마음은 진정 무엇이었을까. 또 그런 남자를 마다 않고 남편으로 받아준 내 마음은 어떤 형태의 것이었을까.
남편은 결혼하고 지방을 떠돌며 공무원 생활을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시부모와 함께 아들을 키우며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다. 직장에서 출판 업무를 담당하면서 일하다 보수가 너무 작아 집안에 들어앉았을 무렵, 남편의 부음 소식이 들려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시부모님이 연이어 쓰러졌다. 남편은 4대 독자 외아들이었다.
연이어 장례를 치르고 나는 공황상태에 들어갔다. 패닉 현상이 일자 아들마저 귀찮게 생각됐다. 세상이 온통 공동묘지로 변해버린 느낌에 심각한 무기력에 시달렸다. 남은 재산과 보험금으로 생활을 꾸려나가며 세월은 간단없이 흘러갔다.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세상과 나는 점점 멀어져 갔다.
최백호의 입영전야가 끝나자 뒤에서 중년남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쌍한 양반, 생전에 그렇게 큰소리치고 기세등등하더니만 그렇게 갈 줄 누가 알았겠어? 어쩌다가 그런…… 흉측해서 입에 올리지도 못하겠네.”
“그래, 경찰 조사 결과는 나왔대?”
“나오긴, 수사 자체를 아예 포기했다는구만.”
“아니 왜?”
“수사해서 원인을 밝혀내면 뭐하겠어? 그런다고 죽은 사람이 관 뚜껑을 열고 살아나는 것도 아닌데.”
“존속살인이라고 이유를 밝혀봤자 집안 망신밖에 더 당하겠나?”
“하긴 그 양반 성질 좀 과했었나?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그렇게 주먹을 휘두르고 걸핏하면 싸움질을 일삼았느니 어찌보면 인과응보란 생각도 드네그려.”
“그래도 그렇지 자기 자식한테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그 아비에 그 자식이지.”
“그 아들은 여적 독신이라며?”
“그렇지 아마, 자기 집안 내력을 알고 아예 혼자 살기로 한 모양이지. 어쨌든 한동안 잠자하겠네. 매일 동네 시끄럽게 싸움질이더니.”
“어차피 한번 살다 가는 인생 뭘 그리 아등바등 그러는지, 서로 좋게 좋게 살면 될 걸 가지고.”
마을버스가 거리를 지날 때마다 밤풍경은 기억의 회로를 뒤로 회전시켰다. 시골과 직거래를 한다는 중소마켓과 횟집, 철물점, 미용실, 자동차 수리점 간판이 연이어 지나갔다. 어둠이 상가에서 뿜어대는 빛줄기와 한데 엉기면서 착시현상마저 일었다. 마을버스와 차량이 엇갈려 지날 때마다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느껴졌다.
낮에 남자들이 하던 말이 떠올랐다. “선생님은 어릴 적 꿈이 뭐였나요?”
“전 불행히도 꿈이 없었어요.”
“네? 방금 전에 꿈이 있었다면서요?”
그들의 대화가 가슴속에 새록새록 살아났다. 내게도 꿈이 있었던가. 초등학교 다닐 때 장래희망란에 무어라 써 넣었던가. 그때는 꿈이 가지각색이었던 것 같다. TV를 볼 때마다 꿈은 수시로 바뀌었으니까. 어느 순간엔 가수나 배우가 되고 싶었고 길거리에 나서면 여군이나 의사, 백화점 여직원도 되고 싶었다. 심지어 고속버스 여승무원이 되어 공짜로 전국을 여행하는 게 꿈인 시절도 있었다.
철부지 어린 시절에도 나는 참 지지리도 못나고 어리석은 여자애였다. 눈치코치 없고 머리는 나쁜 주제에 눈은 다락같이 높아가지고 욕심은 한도 끝도 없이 많았다. 반면 성격은 소심하고 의지는 나약해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더구나 내 어린 시절은 끔찍한 가난에다 환란 풍파의 연속이었다.
안 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아버지의 사업실패는 집안을 나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가난 앞에 꿈은 언감생심이었다.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 악감정과 함께 분쟁의 요소가 되었다. 어찌보면 가난만큼 절망과 수치를 안겨주는 것도 없었다. 돈 없는 설움을 몸으로 체감하면서 나는 가난을 원수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 참혹한 현실 앞에서 나의 이상은 여전히 높았는데 내 성적은 죽어도 중간 이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적이 아닌 이상 나는 앞으로도 상위권 진입은 어려울 터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 지능수준은 중간 이하를 훨씬 밑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아무리 용을 쓰고 노력해 보아도 성적은 여전히 제자리 걸음 상태였으니까. 그건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일찌감치 제 수준을 알았는지 공부에는 아예 관심도 없었다. 실업고를 간신히 마친 여동생은 졸업과 동시에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각종 기술을 익히는데 성공했다.
손재주가 많아 뭐든지 만드는 걸 좋아했는데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나중에는 미용사로 자리를 굳혔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손님과 눈이 맞아 결혼했는데 조카들은 제 부모를 닮지 않았는지 하나같이 공부를 잘해 특수 돌연변이라 했다. 남동생 역시 공부완 거리가 멀어 자동차 수리공으로 취직하더니 지금은 베테랑 기술자가 되었다.
온종일 기름때 묻혀가며 일해도 늘 건강하고 웃는 얼굴로 살아간다. 올케는 자동차 수리하러 왔다가 동생과 눈이 맞았는데 근처에서 옷가게를 운영한다. 그들 부부에게는 외동딸이 있는데 외모나 성격이 나를 꼭 빼닮아 어딜 가나 내 딸로 오해할 정도다. 동생들은 일찌감치 현실 감각 앞세워 제갈길로 갔는데 나는 항상 현실보다 꿈이 먼저였다.
언젠가 초등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이 뇌리에 꽂히고 나서부터다.
“세상에는 아무리 힘써도 변하지 않는 게 있다. 그건 바로 과거의 문제다. 그러나 현실은 얼마든지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 그런데 그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그건 미래다. 미래는 꿈과 비전으로 이루어간다. 꿈은 모든 걸 변화시키는 단초가 된다. 그 꿈을 붙들어야 한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질문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 저는 꿈이 없는데요, 그 꿈은 어디서 찾나요?”
“꿈은 마음속에 숨어 있는 소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가장 잘할 수는 것도 된다. 꿈을 꾸면 꿈이 나의 일생을 지배하고 이끌어 간다.”
“선생님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해도 꿈을 꿀 수 있나요?”
“그건 상관없다. 하나님은 사람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잘하는 재주 하나씩은 다 주셨다. 그것을 찾아 꿈과 연계시키면 된다.”
그러자 아이들은 손을 번쩍 들면서 말했다.
“선생님 저는 이 다음에 대학교 교수가 될 거예요, 아빠가 그러라고 했어요.”
와! 웃음보가 터졌다.
“그건 니 꿈이 아니고 니 아빠 꿈이잖아.”
“선생님 저는 이 다음에 의사선생님이 되어서 아프리카에 있는 병든 아이들을 치료해 줄 거예요.”
박수가 터졌다.
“와! 멋지다.”
“선생님 저는 원맨쇼 잘하는 코미디언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줄 거예요.”
“와! 좋겠다 기철이는.”
“선생님 저는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버는 재벌이 되어서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들에게 쌀과 음식을 보내줄 거예요.”
“참 좋은 꿈이구나.”
“선생님 저는 선생님처럼 되어서 아이들을 가르치겠어요.”
“선생님 저는 비행기 조종사가 되어 세계일주를 할래요.”
모두의 소원이 꿈이라는 날개를 타고 교실 안을 날아다니는데 내 입은 도통 열리지 않았다.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물었다.
“정윤이는 뭐가 되고 싶니?”
순간 어머니의 지청구가 생각났다.
“돈도 없는 년이 얼굴도 못생겨 공부까지 못하니 이 다음에 뭐가 될는지 뻔하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말했다.
“전 저는 아이들을 사랑하는 보육교사가 되겠어요, 그것도 고아원 보육교사.”
“아니 왜?”
일시에 교실 안이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의아심과 호기심 어린 시선이 내 입가를 향하고 있었다.
“그곳 아이들은 불쌍하잖아요.”
그러나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내 진짜 소원은 TV에 나오는 드라마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꿈을 발설하는 순간 쏟아질 모멸감이 두려웠다. 언젠가 그 꿈을 발설했다가 가족들로부터 엄청난 비난과 수모를 받은 적이 있었다.
“머리도 모자란 년이 어디서 헛된 꿈을, 에라 이년아 정신 바짝 차리고 니 앞가림할 생각이나 해라, 멍청한 년 같으니라구,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는 있다는데 어떻게 저년은 흔해빠진 재주 하나가 없으니 확 식모살이나 보내버릴까 보다.”
어머니는 부부싸움이 잦을 때마다 내게 하는 악담의 빈도도 높여갔다. 부부싸움이 있을 때마다 꼭 나를 끌어다 붙이고는 그 뒤풀이는 내게 해댔다. 어느날 대학을 가겠다고 선포하자 가족들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과 함께 온갖 악담을 다 퍼부었다.
“비상 사먹고 죽을래도 돈이 없어 못 죽는 마당에 대학? 대하가 좋아하시네, 너 보내줄 돈도 없지만 실력이나 되냐? 네년이 대학 들어간다면 내 손바닥에 장이라도 지지겠다. 지나던 개가 다 웃겠구먼.”
그건 백퍼센트 다 맞는 말이었다. 정직과 진실로 말해도 그건 사실이었다. 겨우 중간을 맴도는 성적으로 대학은커녕 입시원서도 못 내 보고 떨어질 판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대학에 진학했다. 의정부 끝자락에 있는 2년제 전문대학이었다. 전공을 보육학과로 했는데 그건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잘 된다는 친구의 권유가 있어서였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어린 초등학교 시절, 내가 교실에서 내뱉은 그 말이 주효하게 맞아 떨어진 건 아닐까. 보육교사 생활하면서 나는 한번도 어린아이들에게 상처주는 말이나 부정적인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받은 상처가 골수에 사무쳤기 때문이다. 남주가 다가와 남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겠다며 끈질기게 회유했을 때도 모두 거절했다. 어릴 때 가족들이 돌아가며 너같이 못난 걸 누가 데려 가느냐며 면박주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나는 남주를 목숨 걸고 좋아한 남편을 끝까지 설득해 결혼했다. 살면서 나는 내 본심이 진정 궁금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내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해서 결혼한 것일까. 혹 남주를 향한 억하심정으로다 결혼한 건 아닐까. 그런 나와 사는 남편의 진짜본심은 무엇일까.
나는 결혼 이전에도 이후에도 드라마광이 되어 살았다. 모든 일을 낮에 끝마친 뒤 저녁이면 TV드라마에 아예 파묻혀 살았다. 사극과 불륜드라마 막장드라마 가리지 않고 보았고 재방송까지 빠짐없이 보았다. 거의 중독상태였다. 특히 사극에 열광했는데 그것만큼 혀실과 과거를 뛰어넘는 것도 없었다.
드라마는 100퍼센트 허구임에도 가장 극명한 삶의 현주소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는 7080 세대를 겨냥한 베이비붐 시대의 이야기를 즐겨보곤 한다. 동병상련의 아픔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이었다. 나와 비슷한 연배의 드라마를 혼연일체가 되어 시청하다가 눈물바다를 이룬 적도 많았다.
드라마는 매회마다 궁금증을 증폭시키며 진행되다가 종국에 가서는 언제나 해피엔딩이었다. 시청자가 원하는 결말을 작가가 짜깁기 하듯 맞춰 억지로 해피엔딩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언뜻 볼 때는 막장드라마 같아도 그 속에는 심오한 뜻이 숨겨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불륜과 폭력, 권무술수와 악의 승승장구 속에서도 권선징악과 용서와 사랑을 메시지로 남기는가 하면 선악간의 경쟁을 통해 시청자의 분노 촉발과 함께 끝까지 선의 결말을 이끌어 낼 때는 작가의 의도에 한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때는 드라마 작가가 되기 위해 대사를 끼적거리고 시나리오 작가 교실에 몇 번인가 방문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끝내 돌아서고 말았다. 삶속에 가려진 상상력을 도무지 끄집어 낼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용기가 나지 않았고 드라마 작가의 현실에 대해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요즘은 영상학과라는 과가 신설되어 대학 4년 내내 배워도 힘들다는 것이었다. 나는 때론 에니메이션으로 눈을 돌린 적도 있었다.
그러다 남편상을 치르고 난 후로는 먹고사느라 지쳐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꿩 대신 닭이라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 왜 하필이면 남주가 생각났을까.
만일 남편이 살아 있었다면 남주의 이혼 사실을 알게 됐을까? 그렇다면 어떤 시나리오가 벌어졌을까. 옛 감정이 살아나 도로 남주를 찾아가지 않았을까. 그러면 남주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니 남주가 이혼했다는 건 내가 꾸며낸 거짓말인지 모른가. 정황으로 보아 그렇다는 것이지 그녀가 이혼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소문도 없지 않은가.
만일 이혼했다면 그녀는 남편의 지위를 이용, 엄청난 위자료를 뜯어 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혼사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불륜? 그녀의 과거 행각 발각? 아님 남편의 치명적인 문제 발생?
신경정신과 약을 먹느라 몸이 자꾸 왼쪽으로 쓰러진다는 말은 사실이었을까.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약까지 먹게 되었을까. 그나저나 병명은 무엇이었을까. 우울증? 정신분열증? 아님 노이로제 강박증?
상상은 할수록 증대되는 효과가 있다. 한번 상상력을 부풀리기 시작하니까 별별 시나리오가 다 펼쳐졌다.
아들이 직장에 복귀하고 나서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어느 봄날, 직장 동료라며 20대 중반의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날씬한 체격에 선명한 이목구비가 빼어난 미인이었다.
녀석 재주도 좋지 어디서 저런 미인을, 제 아빠를 닮아 여복은 있네.
속으로 감탄하며 여자애에게 넌지시 운을 떼 보았다.
“아가씨는 우리애가 마음에 드슈? 집안에 부모님은 살아 계시고.”
그러자 여자의 낯빛이 새파랗게 변했다.
못 물어볼 걸 물어봤나? 왜 저렇게 놀래? 혹시 부모와 사별했나, 아님 이혼? 그런데 인상이 어딘지 모르게 낯이 익은 것 같은데, 어디서 봤더라?
“저 집에서 엄마가 기다리셔서 이만 가 보겠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과거형을 뜻하는 말투에서 나는 잠시 아연했다. 그런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아슴하게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아! 이제 생각났다. 여자의 치켜 뜬 눈썹과 뒷 모습이 남주와 비슷했다.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다리. 그러나 나는 곧 생각을 지워버렸다. 아들과 남주를 연계해 상상하는 것조차 불쾌했다. 몇 달 후, 나는 아들과 그녀가 헤어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 말로는 그녀에게 진짜 숨겨진 애인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상심한 표정을 지으며 속상해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속으로 다행이다 싶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해가 바뀌고 봄날이 되었다.
그날도 남편이 잠들어 있는 납골당을 찾기 위해 안양역에 내렸다. 훈풍이 감도는 역광장에서 나는 느닷없이 남주를 생각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전도대가 광장 한 가운데를 버티고 앉아 종말론과 함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백화점 건물 벽을 등지고 앉아 복음성가를 부르는 찬양대의 모습이 보였다.
특이한 건 모두 중년층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들이 부른 가사 내용 한마디 한마디가 심령을 찌르듯 가슴에 와 닿았다. 새삼스레 죽음 이후의 천국이 궁금해졌다.
당신은 지금 어딜 가고 있나요, 발걸음 무겁게
이 세상 어디 쉴곳 있나요 머물 곳 있나요
예수 안에는 안식이 있어요 평안이 넘쳐요
십자가 보혈을 믿는 자마다 구원을 받아요
예수 믿으세요……
마지막 때가 가까웠습니다. 예수님 영접하시고 찬국백성 되세요.
전도지를 내미는 손길이 있어 문득 얼굴을 올려다 보는 순간 두 여자의 입에서 외마디 소리가 터졌다.
넌 넌 정윤이?
넌 넌 남주 남주 아니니?
두 여자는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표정에도 여전히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세월은 마약같다. 왜냐하면 사람을 변화시키는 놀라운 힘이 있으니까. 누군가 했던 말이 어렴풋이 따올랐다. 등 뒤에서 계속 복음성가가 들려왔다.
당신은 오늘 누굴 만났나요? 위로 받았나요
이 세상 누가 나를 대신하여 목숨 버렸나요
고통의 멍에 벗어 버리세요, 예수 이름으로
마음 문 열고 주님 맞으세요 기쁨이 넘쳐요
예수 믿으세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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