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경 강설 493 /14, 촉루품(囑累品)/2, 보살의 두 가지 모습 1
彌勒아 當知하라 菩薩이 有二相하니 何謂爲二오
一者는 好於雜句文飾之事요 二者는 不畏深義하고
如實能入이니 若好雜句文飾事者는 當知是爲新學菩薩이요
若於如是無染無着인 甚深經典에 無有怖畏하고 能入其中하야
聞已心淨하고 受持讀誦하야 如說修行하면 當知是爲久修道行이니라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라. 보살에게 두 가지 모습이 있으니
무엇이 두 가지인가?
하나는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 것이며,
둘은 깊은 뜻을 두려워하지 않고 진실에 능히 들어가는 것이니라.
만약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새로 배우는 보살이며,
만약 이와 같이 물듦이 없고 집착이 없는 매우 깊은 경전에 대하여
두려움이 없고 그 가운데 능히 들어가서 듣고 나서
마음이 청정하여지고 받아 가지고 독송해서
설한대로 수행하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오랫동안 도행을 닦은 사람이니라.
강설 ; 앞에서 이 유마경이 매우 깊고 훌륭한 경전임을 찬탄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경전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음을 염려하여
그들을 새로 배우는 보살이라고 지칭하였다.
경문에 “잡된 글귀와 문장을 수식하는 일을 좋아하는”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아 유마경이 편찬되었을 당시에
불교문학이 발달하여 불교를 문학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즉 불교에 있어서 초보자[新學菩薩]들은 진실한 이치에 능히 심취하는 것보다는
문장이 아름답고 화려하게 잘 꾸며진 잡문들을 좋아하였던 것이리라.
실로 이 유마경은 다른 경전과 비교할 때 그 글이 너무나 화려하다.
한 가지 주제를 들면 마치 하늘에서 폭포가 쏟아지듯이 하는 설법은
차라리 화려함을 넘어서 현란하다고 까지 말을 해야 할 정도다.
또한 이야기의 줄거리나 극적(劇的)인 인물들의 등장은 경전이라기보다
그대로 문학작품이다. 유마경이 이와 같기 때문에 이러한 점을 지적하여
문학적 작품성을 보지 말고 그 깊은 뜻을 이해하라는 점을 말하였다.
또 한 부류의 보살들은 경전의 깊은 이치에 심취하여 두려워하지도 않고
경전을 통해서 마음이 청정하여 수지독송하며 설한대로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이와 같은 보살은 “오랫동안 도행을 닦은 사람[久修道行]이라고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