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by 느티신부님>
+찬미예수님
오늘 참회예절에 성수를 뿌리며 준비한 강론과는 별개로 성수에 대한 옛날 일이 떠올랐어요.
유아실에 가니 할머니가 손주얼굴에 부어달라고 합디다. 왜?
뒤에서 성사 기다리시는 분은 혹시라도 자기에게 안 튈까봐 고개 쭉 내미시더군요.
축성된 물은 크게 두 가지, 세례 때 쓰는 성세수와 지금처럼 쓰는 성수입니다.
먼저 성세수에 얽힌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군종신부를 하면서 생긴 전설 중의 하나로 일개 대대병력을 한 번에 세례를 준 적이 있었어요.
그 병력이 교리를 받게 되기에는 사격장에서 기적같은 사건이 있었었지요.
어쨌든 단체로 세례를 주는데, 본당처럼 한 사람씩 이마에 물을 뿌릴 수가 없어서
성세수를 성수채로 뿌리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명은 각자 말해, 베푸나이다.”
그 날 너무나 기분이 좋았지요. 돼지 잡아 아이들 먹이고, 막걸리도 한 잔 걸치고.
끝나고 위병소를 지나가는데, 어떤 아이가 죽기 기를 쓰고 제 차를 따라오는 거예요.
차 세우라고 하고 “왜? 무슨 일이야? 오늘 세례명이 뭐야?” 하고 물으니,
“신부님, 암만 생각해도 저한테는 한 방울도 안 튀겼어요.”
세례 받은 것 같지 않고 찝찝해서 천주교 신자로 못 살겠다고 다시 달래요.
그래서 위병소에 있는 큰 주전자에 물 떠오라고 해서 축성하여 한 통을 다 부어주었습니다.
그렇게 야물딱지게 세례를 받더니 그 아이가 신학교에 들어가 지금 서울교구 신부로 살아요.
또 하나는 보좌신부 때, 무당은 칼을 들고 난 성수와 십자가를 들고 맞짱을 뜬 적이 있었어요.
사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성수에 대한 믿음이 적었지만, 성수를 뿌리며 “사탄아 물러가라!”
그 순간 무당이 뒤로 휙 나가떨어졌어요.
성수 맞은 얼굴은 덴 것처럼 물집이 생기기 시작하고, 옷은 담뱃불에 탄 것처럼 구멍이 나고.
결론만 이야기하면 그 박수무당은 지금 전주교구에서 사무장해요.
또 한 가지 성수에 얽힌 이야기는 감곡에서의 일이예요.
감곡성지 밑 동네는 거의가 교우집인데, 한번은 교우집이 이사 가고 집이 비게 되었어요.
신자가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하루는 교우들이 오더니 무당이 들어왔다는 거예요.
성당위에서 내려다보니 대나무 쫙 나온 곳에 빨간 깃발, 파란 깃발이 막 흔들려.
세상에, 한국에서 사제 수녀가 제일 많이 나온 성모님 성지 바로 앞에 무당이 들어오다니!
그 집을 지날 때마다 구마기도 하며, 성수의 맛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했어요.
늦은 밤 아무도 없을 때, 성당언덕에서 그 집 지붕을 향해 성수를 큰 주사기에 넣어 뿌렸어요.
이렇게 3개월 후, 신자들이 또 올라와서 “신부님, 무당 짐 싸요!”
동네 신자할머니들이 가보니, 무당이 이런 동네인줄 모르고 왔다고 하며 몸을 보여주는데,
부스럼이 덕지덕지! 밤에 잠을 자면 하늘에서 몸에 불덩이가 떨어지는 꿈을 꾸는데,
그 맞은 자리가 아침에 일어나면 부스럼이 생겼다는 거예요.
오늘 축성하여 참회예절대신 성수를 뿌린 거지요..
성수는 준성사입니다.
뿌리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모두 영과 육을 구원하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행해야 되요.
여러분들 집에도 성수를 믿음을 가지고 뿌리세요. 찝찝하니 뿌린다가 아니라요.
4일전에 여러분은 이마에 재를 바르셨어요. 즉, 4일 전에 사순이 시작되었다는 거지요.
40일에 4일은 1/10이죠. 빨라요. 나중에 부활할 것도 없는데 부활을 맞을 수 있어요.
사순 초입이니 사순절을 어떻게 지내야하는지 그 개념을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사순절은 말 그대로 40일이죠. 40주야를 뜻하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40일은 우리에게 의미를 주는 단어로 등장하는가?
창세기를 보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것이 노아의 방주 이야기입니다.
타락한 인류를 보시고 의로운 노아를 불러서 방주를 만들고 생물 한 쌍씩을 그 안에 넣으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들어 오라해도 콧방귀도 안 뀌며 미친놈이라 했어요.
역청으로 배의 문을 봉인한 후 40주야로 주먹만한 비가 내렸지요.
처음 밑에 있던 사람들은 ‘오늘 비가 꽤 오네, 내일이면 그치겠지?’ 하고 생각했어요.
그런 사이 점점 물은 차올라 산꼭대기까지 잠겼지요.
이렇게 창세기에 등장하는 40일의 첫 번째의 의미는 “심판과 정화”입니다.
우리를 정화사키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를 심판해야합니다.
한평생 남을 심판하려했던 그 마음과 손가락을 돌려 자기 자신을 처절하게 비판해야 합니다.
늘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변론하고 합리화하였다면 이젠 준엄한 검사의 역할을 하는 시기입니다.
남편을 심판하는 시기도, 레지오 단원을 심판하는 시기도, 본당신부 심판하는 시기도 아닙니다.
자기 꼬라지를 확실히 알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래야 우리는 정화가 되요.
40일 동안 누가 나를 욕해도 상대하지 말고, 심판은 하느님께 맡기고 자신만을 보려고 애쓰세요.
내 어둠과 인성 속에 박힌 악습을 찾아서, 타협하지 말고 준엄하게 심판하고 합리화하지 마세요.
노아의 방주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사순메시지는 “철저하게 본인을 심판하여 정화시켜라”
두 번째는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40주야 단식과 기도 후 하느님께 십계명이라는 큰 은총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서에 나오는 40일의 두 번째 의미는 “은총을 받기위한 준비기간”입니다.
은총은 받을만한 사람에게 내리지 엉망진창으로 사는 사람에게 내리지 않아요.
40일 동안 우리는 은총을 받기위한 준비를 해야 해요.
예전 구교신자들은 사순이면 술 담배 끊고 금욕생활 했어요.
늘 입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은 사순동안 침묵을 지키려 노력하고요.
은총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부활을 뜻합니다,
내 자신의 새로운 부활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희생도 하지 않고 무슨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까?
시나이산꼭대기는 대낮에는 35도가 넘고 해가 지면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곳이에요.
그늘하나 없는 그 곳에서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 지나다니는 뱀이라도 잡아먹고 싶었을 거예요.
그 희생 끝에 십계명이라는 그 어마어마한 선물을 받은 거예요.
마지막 세 번째 의미는 오늘 복음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광야에서 악마의 유혹을 받으시면서 그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십니다.
그래서 40일의 세 번째 의미는 “40일에는 반드시 시련과 유혹이 따라온다. 그러니 경계해라.”
40일은 은총이 폭포수처럼 내리는 시기이게 마귀들은 들고 날뜁니다.
평화롭던 마음을 한순간에 뒤집어놓는 사람이 나타나요.
그것도 대부분 가까운 사람에 의해 마음의 평화가 깨지고 분노가 생기고,
생각하지도 않던 사건에 휘말려 지금이 사순절인지 잊고 지내게 하고
누구에 대한 미움 때문에 미움의 날수만 셀뿐이지 은총의 날수는 기억이 안 날겁니다.
이 사순의 시기는 유혹이 생각하지 못했던 시간과 방법으로 올 것이니 경계해야한다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의 세 가지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친 부분은 내일 교중 미사에 나눌 것입니다.
우리는 사십일 동안 희생을 봉헌해야한다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모세, 또 2000년간 수많은 성인성녀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기위해 특별한 시기에 특별히 했던 방법이 단식입니다.
어느 종교건 절대자에게 나갈 수 있는 첫 번째 방법은 단식입니다.
스님들도 동안거 하안거에 들어갑니다.
세상에서 제일 큰 슬픔은 못 먹은 슬픔이라는 말이 있듯이 단식은 어렵습니다,
40일 굶은 예수님께 빵처럼 생긴 돌을 주고 빵으로 만들어보라 하지요?
예수님은 마음만 먹으면 빵이 아니라 케이크 등 뭐라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시지요.
그래서 그 유혹이 견디기 어려웠던 거예요.
아예 꿈도 못 꿀 것으로는 유혹이 생기지 않습니다.
눈 한 번 질끈 감고 손 만 뻗치면 내 것이 될 것 같은 것으로 유혹하지요.
그런데 놀랍게도 이 제일 어려운 유혹이 하느님께 나아가는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이 아이러니!
단식에는 육의 단식과 영의 단식이 있어요.
육의 단식은 말 그래도 외부의 음식이 내 몸으로 못 들어가게 하는 겁니다.
사람의 몸이 얼마나 간사합니까?
서있으면 앉고 싶고 앉아도 푹신한대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프란치스코 사베리오 성인이 이런 말을 했어요.
“마음은 행위의 원천이고, 행위는 마음의 반영이다”
미사 때 무릎을 꿇으면 마음이 꿇어지는 거지요.
미사 때 주먹을 쥐고 하는 것과 손을 모으고 하는 것은 다르다는 거지요.
우리가 육의 단식을 하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기 몸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사람의 몸이 가자고 하는 대로 가면 탈선을 하게 되요.
우리는 어느 정도는 자기 몸을 불편하게 해야 할 때가 있어요.
두 번째 이유는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우리는 분별력을 얻습니다.
우리는 배가 잔뜩 부른 상태에서는 지적인 일을 할 수 없어요.
우리 가톨릭은 초대교회 300년 동안은 철저히 단신을 지켰어요.
그것이 슬슬 없어지더니 일 년에 2번,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만 남았어요.
그런데 통계를 보면 그것도 지키는 신자가 30프로가 안된대요. 일 년에 단 두 끼인데..
지금은 영적분별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분별력이 없으면 본당신부도 신자들 데리고 단체로 절벽으로 가요.
지금은 능력 있는 신부, 똑똑한 수녀, 재주 많은 평신도가 필요한 시기가 아니라,
분별 있는 사제, 분별 있는 수녀, 분별 있는 평신도가 필요한 시기예요.
분별은 거룩함에서 나오고, 그 거룩함은 기도와 단식에서 나옵니다.
마귀는 이 순서를 알기에 맨 밑둥이인 기도를 끊어버린 거예요.
저녁만과를 바치는 가정이 거의 없어요. 60프로가 냉담자입니다.
자식들 결혼시킬 때 이제 종교 안 따집니다. 목사아들에게 시집보내고..
분별이 없으면 자식신앙교육 절대 못시킵니다.
지금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고 뭔가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단식 들어가세요.
엉켜있는 실타래의 처음과 끝, 매듭이 보일 거예요.
짐승들도 아프면 단식합니다.
영이 병들고 육이 병들었을 때 단식은 많은 도움을 줍니다.
올 사순절동안 여러분은 몸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사람, 지배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럼으로써 얻은 영적분별력을 갖고 여러분의 가정, 영혼, 세상 사업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분별이 없으면 엉망이 됩니다.
다음 두 번째 단식인 영의 단식은 영적순교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영적 단식을 할 순간이 옵니다.
어떤 것들이 있을까?
첫 번째, 분노할 때 참는 것.
둘째, 혀를 다스리는 것, 험담 안하는 것, 같은 말이라도 이쁘게, 남에게 기쁜, 이로움, 평화 주는 말을 하는 것
셋째, 깨어서 기도하는 것. 왠지 기도안하면 손해 볼 것 같아서 하는 것이 아니라 생애의 마지막 기도라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것,
네 번째, 봉사하되 정성을 다해서 봉사하는 것. 유세떨려고, 누가 알아주길 바라는 봉사가 아닌 그냥 정성을 다해 봉사하는 것
다섯 번째 순명하되 기쁜 마음으로 순명하는 것.
여섯 번째 온전한 마음으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시간, 몸, 물질 그 어떤 봉헌이든 하느님 것을
하느님께 되돌려 드린다는 겸손한 마음으로 청지기의 자세로 봉헌하는 것입니다.
오늘 두 개의 단어 40일과 단식을 제시했습니다.
오늘부터라도 정신 바짝 차리고 나를 심판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고
은총을 받기위한 준비기간으로 희생할 것 찾으십시오. 대충 넘어가지 말고 하나를 붙잡으십시오.
유혹이 많은 시기이니 대비하고 있으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사순절에는 성체와 말씀을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합시다.
♣ 2017년 03월 배티 은총의 밤(3/4) 배티성지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첫댓글 남은 사순기간 순명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 올려주신 자매님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강론말씀너무감사합니다, 아 멘, 신부님영육간에 건강하시고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시기를기도드립니다, 아 멘~~~
아멘♡
신부님 강론말씀 감사합니다
친타님 ( 자매님 )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의 좋은 말씀 따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마음의 뼈와 살이 되는 강론 은혜로운 글 너무나 감사합니다.ㅠ.ㅠ
아멘~♡
영적 육적 단식을 게을리 하지 않겠습니다.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사랑합니다❤❤
주 하느님 찬미와영광,칭송을 영원히 받으소서.사순시기에 절제의 영을 허락해 주소서.주님 감사합니다. 죄 많은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아멘~~
아멘
신자분들중 성수에 별 의미를 두지않는분들 많았는데..
그래서인지 이번 강론 말씀은
더 마음에 와닿습니다.
신부님께서 홍제동성당 이번 피정때 큰주사기로 성수 뿌리는 모습을 말씀하시던 대목이네요~ㅎ
마침 한컷이 있네요~ 댓글에 올립니다^^
영적 단식, 깊이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
지난 은총의 밤에 들었던 강론을 다시 글로 읽으면서 사순시기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되었어요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신부님.
아멘!
감사합니다!!!
강론 잘 읽고 나눔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아멘,ㅡ
감사합니다,
아멘,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신부님!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
아멘.신부님.글올려주시는분 주님의 사랑
축복이 늘 함께하세요.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