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수학여행
윤 영 애
설레이는 마음을 가득안고 여고시절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다. 우리 때부터 제주도로 간다고 해서 가기 전부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친한 친구 7명이 Lucky Seven이라는 이름으로 똘똘 뭉쳤다. 너희들이 제일 잘 놀 것 같다면서 친구들이 부러워했다.
목포행 완행열차를 조치원역에서 타고 목포에 도착했는데, 폭풍주의보 때문에 여객선 대합실에서 발이 묶였다. 4명은 대합실을 빠져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목포공고로 갔다. 펜팔하던 친구 만나러 갔다가 못 만나고 왔다. 대합실에 오니 오늘은 목포에서 하룻밤 묵고 내일 떠난다고 해서 여관에 짐을 풀고 영화보러 갔다. 친구들은 남진 고모네 집에 갔다왔다고 자랑했다. “영애야 넌 왜 안갔어?" 하면서.....그때 학교에서 난 남진언니로 불려지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가끔 남진 노래를 불렀고, 그 가수를 무척 좋아했으니까 별명처럼 후배들이 불러줬다. 밤이되자 선생님들을 골탕 먹이려고 바지 가운데를 꿰매 놓기도하고 운동부 애들은 숙소마당 향나무 꼭대기에 선생님 신발을 걸쳐 놓았다. 짖궂은 밤이 지나고 아침엔 숙소가 발칵 뒤집어졌다. 아무일 없다는 듯이 유달산에 올라가서 목포시내를 돌아보고 점심을 먹었다. 가야호 유람선에 몸을 싣고 목포항을 출발했다. 육지에만 살던 우리들은 청량한 바다에 혼을 뺐겼다. 환호성을 지르면서 갈매기들의 노래를 듣다보니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갔다. 배멀미가 나려고 해서 객실에 누워 잤더니 어느새 제주항에 도착했다.
야경이 참으로 아름다워서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철썩이는 파도소리는 밤하늘의 별들과 속삭이는 것 같았다. 곤한 몸을 맡기고 즐거운 수다와 함께 제주에서의 첫날밤이 깊어갔다. 이튿날부터 관광버스로 본격적인 제주여행이 시작되었다. 마치 다른나라에 온 듯이 색다른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가이드처럼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마구마구 멘트를 날렸다. 서귀포로 가는길은 일렁일렁해서 더 신이났다. 창밖의 경치에 모두들 혼이 빠져 있었고 어찌나 신이 났던지 포크송으로 떼창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수학여행처럼 신난적은 없었다. 밤이 새도록 제주 밤하늘에 대고 우리들은 수많은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외국으로 여행온 듯이 모든게 신기하고 아름다워 보는 것마다 감탄의 연발이었다. 가로수 길엔 여기선 한번도 보지 못한 야자수 나무인지 무슨 나무인지 몰라도 멋지고 신기하기도 했다. 돌들은 어찌나 까만지 이상할 정도였다. 어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있었는데,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이 찾아왔다. 아쉬운 마음에 쉬 잠이 오질 않아서 밖으로 나와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보며 속삭였다. ‘내 인생의 봄날은 지금부터다!’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수학여행 못 간 학생들이 좀 안쓰럽기도 했다. 좋은 추억도 코로나속으로 사라져 버렸으니까, 그런 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아무리 여행을 다녀도 학창시절의 여행처럼 신나고 즐거운 여행은 없을 테니까 말이다. 그리운 나의 여고시절이여 영원하라!!!
제주에서의 모든 일정 (만장굴,천지연폭포,천제연폭포,정방폭포,성산일출봉,용두암 등)을 마치고 돌아올때는 추자도로 지나왔는데, 폭풍우가 심해서 갑판에 있던 친구들은 파도에 옷이 흠뻑젖어 생쥐꼴이 되었다. 그래도 깔깔거리며 좋아했다. 뭐가 그리도 신이 났는지...
지금도 수학여행은 마음속의 예쁜 그림엽서로 남아있다. 7명의 친구들중 셋이서 가끔 안부 전하며 황혼의 멋진 친구로 마음을 나누고 있다. 여고시절 만난 50년지기 찐친이 둘이나 있으니까 내 인생은 행복하다!!! 수학여행의 멋진 추억과 함께 내 나이도 어느새 칠순이 가까워졌다. 노년의 멋진 여행을 그리면서 옛 추억에 잠겨본다.
*충청북도 청주 출생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 수강
*2023년 효동문학상 수상
*푸른솔 문인협회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