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08.09] 갈맷길 걷기 1 : 이기대에서 해운대까지
내게 있어 부산에 산다는 것은
해운대에서 해수욕 해본 기억 없는 것을 말한다.
이방인 보다 만배는 더 철저한 이방인.
그렇지만 나는 여전히 부산에 살고 있고 부산이 좋다고 말한다.
무엇일까? 나를 그리 익숙하게 만든 것은.
역시 바다요 그 바람일텐가.
생각이 그에 닿자 늘 높고 깊은 산으로만 찾아들던 내 마음에도
이미 부산인 부산의 길을 걷고 싶다는 욕심이 차온다.
책을 통해 산티아고길 걷고 혼자서 올레길 몇 코스 걷더니
내가 걸어본 부산의 길도 못지 않은 근사함임을 자랑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달려서는 이미 웬만치 지난 길들.
그러나 머문 시간이 짧은 만치 깊은 울림은 얻지 못했다.
이제 그 길, 걷기로 한다.
혼자가 아니라 가족과 함께.
아무 걱정도 없다.
가는 만큼 가면 되는 것.
가다 힘들면 쉬고 그만가고 싶으면 그만가면 되는 길.
그래서 내 마음에는 갈맷길이 곧 카미노 데 산티아고요 올레다.
■ 일시 : 2009년 8월 9일(일)
■ 코스 : 오륙도 선착장 - 이기대 - 광안리 - 해운대(총 16km / 8시간 30분)
<오륙도에서 이기대>
부산은 최근 수년간 해안의 재발견 중이다.
지자체 마다의 관심과 지원으로 조금씩 길을 잇더니
근자 제주 올레의 영향으로 아예 전체를 이어보자 나선 것이다.
300km가 넘는단다.
이미 유명세인 해안길도 여럿이니 그에 문화와 역사
그리고 토착의 스토리가 더해지면 부산의 또 하나의 자원이 될 것이다.
일전 5월에 그리 작정하여 길 이름이 '갈맷길'로 정해졌다 하니
부지런떨어 어여 그 코스며 지원시설이며 구비되었으면 한다.
그럼 간혹 나서서 걸어 걸어 비워내는 행복을 구해야지.
아직 공식의 갈맷길 오픈은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이미 나 있는 길이며 수차 걸은 길이니
가족과의 소중한 추억도 쌓을 겸 작정하여 길 나선다.
오늘 여정은 부산의 상징이기도 한 오륙도에서 시작하여
절경의 이기대 해안을 두루 거닐고 피서의 인파 넘칠
광안리와 해운대를 이어 60리 길 걸을 참이다.
출발!
오륙도.
갈맷길 그 기한없는 여정의 시작은 오륙도다.
이유는 없다. 그냥 그러고 싶었거나 그래야만 한다거나...
오륙도 소개(펌)
시 기념물 제22호로 선착장이 있는
승두말에서 남동쪽으로 약 600m 지점에 위치하며
승두말에서부터 우삭도(방패섬:높이 32m)·수리섬(32m)·송곳섬(37m)·
굴섬(68m)·등대섬(밭섬:28m) 등 5개의 해식 이암(離岩)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륙도라는 이름은 우삭도가 간조시에는 1개의 섬이었다가
만조시에 바닷물에 의해 2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보이는 것에서 유래된 것이며,
〈동래부지 東萊府誌〉에도 섬에 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래 전부터 불려온 것인가 보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으로 난 길을 따라
이기대를 품고 있는 장자산(252m)으로 접어든다.
흡사 거제의 바람의 언덕과 같은 구릉이 앞서 펼쳐져 있고
개간된 기슭엔 해바라기와 루드베키아 꽃밭이 곱게도 피었다.
스트레칭도 하고 십호흡도 한번 하고
아이들과 완주의 결의도 하고 출발한다.
내내 우측의 고즈넉하고도 고운 숲길을 따라 걷는다.
대체로의 내리막에 오르락 내리락이 간혹 이어진다.
그리고 울울창창의 숲이 잠시 쉬어, 창을 열면
이토록 근사한 전경이 걸음을 붙잡는데
태풍의 영향으로 날은 흐리지만
바람 좋고 파도 세차니 보상으로도 남는다.
지금은 한때의 유물이 된 해안진지.
승두말에서 어울마당 직전까지는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개방된지 이제 수년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길이며 숲이며 더욱 잘 보존되어 있는 것이니 아이러니인가.
여튼 애써 치우려 말고 저리 두는 것도 역사이니 좋게 보아진다.
해안의 경비를 서던 곳이라 하니 아이들은 금새 기관총으로 무장을 해내고
두두두~ 두두두~ 해안사수에 나섰다.
원형의 숲.
그 가운데 해안진지가 어색하지만
농바위에 이르는 허리로 난 길이며
촘촘한 숲이며 가슴을 뛰게 한다.
낚시꾼들의 포인트인 치마바위 가는 길,
돌아본 이기대 해안.
멀리 오륙도는 여전히 두개의 섬일 뿐이고
할매바위라던 삼층의 바위는 농바위가 되었다.
바다로 가는 아이.
저 혼자서도 갈 수 있음을, 가야함을 이젠 알아야 하는 것.
아침 6시 40분에 시작한 걸음이 거진 1시간 30분을 헤아린다.
잠시 쉬어 간다.
아이들 걸어낼까 걱정이었다. 큰 놈(초5)은 더러 걸으니 걱정 아닌데
작은 아이(초1)는 걱정이 앞선다. 이기대는 어떻든 걷고 힘들다면 할아버지댁에 데려다줄 참이다.
간혹의 가풀막.
잘 정비된 길이라지만 힘도 드는가 보다.
나름의 자세로 그냥 저냥 오른다.
해안초소.
예전엔 어울마당에서 이곳까지만 통행이 가능했는데...
그리고 초소의 족구장. 언제나의 걱정!
공이 담 넘어가면 누가 찾아올까.
이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숲길이 내내 이어진다.
물길이 있어 행여 길이 젖은 곳이면 이리 장작을 두기도 하였다.
그리 새소리 숲소리 자연의 음악을 만끽하며 걷는 사이
또한 자연의 소리라 할만한 숲의 예술가를 만난다.
흐르는 음악은 구성진 트로트의 옛가락이지만
저 숲의 어느 새소리 파도소리 바람소리 견주어 부족하지 않을 소리였다.
아이들과 한참을 서서 감상하고
박수로 답하여 재차 길 재촉하였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이.
어느새 엄마와 여자끼리의 공감도 늘어나는 아이.
모녀지간 긴 걸음에 대화도 사랑도
한 뼘은 더 깊어지길.
이기대 어울마당.
거진 4~5km 가까이 걸은 셈이다.
두어시간 천상 거닐어 이제 속세로 나서는 느낌.
저 멀리 광안대교가 위용 뽐낸다.
파도도 하늘도 거칠다.
그런만큼 걷는 내내 바람 시원하다.
이기대 어울마당의 주민.
언제부터 어떻게 거주한지는 굳이 묻지 않았으나
집도 깔끔해지는 등 살림을 사는 폼새가 예전 보다 차츰 안정이 되는 듯 하다.
귀여운 강아지 '커피'와 일상의 즐거움을 나누는 할배가 마냥 부럽다.
어울마당을 지나 동생말로 가는 길가,
이기대의 체온이 느껴지는 시(詩)비가 섯다.
흙의 살들
이 규 태
밤의 이슬 내리는 소리를
누가 듣는가
잠자고 있는 바람의
작은 귀가 듣는다
산 너머 안개 내리는 소리를
누가 듣는가
나뭇가지 끝에 움츠린
새들의 깃이 듣는다
먼 하늘 구름이 흐르는 소리는
누가 듣는가
아직 눈뜨지 않은
낮별이 듣는다
한밤에 눈 내리는 소리를
누가 듣는가
막 피어나는
나뭇잎이 듣는다
신음소리 없는 죽음의 소리를
누가 듣는가
흙의 살들이
멀리서 듣는다
만년의 세월 퇴적된 바위에 서서
백년의 세월 퇴적된 마천루를 바라보며 세월을 낚는다.
바람과 조류가 세차 필시 조과 없을 것이지만
그 바람에 당당히 맞선 남자의 심장은 그로도 족하다 할 것.
그 남자를 두고 이 남자는 두어 보 걸음에도 엄살이다.
세상 살이가 다 이런 것이니 뭐라 하기 없기!
파도, 천년을 두고 밀려왔다 밀려간다.
그 자존심과 밀쳐내는 바위의 자존심의 공존이 멋지다.
손주 새끼와 체구도 듬직한 아들을 앞세우고
할매가 뒷짐지고 걷는다.
당당하게도 걷는다.
그런 것.
길을 내어 해안의 원형은 밟을 길 없어졌으나
그로 허리 굽고 무릎 시린 우리 할매 할배도 걸을 수 있는 것.
개발과 보존의 간극은 항시 이런 것 아닐까.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의 자조가 아니라
이것도 좋은 것이며 저것도 좋은 것이라 하고 싶다.
승두말에서 동생말까지 6km의 이기대 길을 걸어내었다.
세시간 가까운 시간이다.
아침 식사 시간도 훌쩍 지났는데
아직 아이들, 신나한다. 잘 걷는다.
길 위의 가족.
언제나의 살아가는 힘!
용호만 매립지의 아파트촌 아케이드에 들렀다.
깔끔한 식단의 '고봉김밥'
정성과 신선한 재료 등이 김밥 한줄에도 격을 느끼게 하는 집이다.
이제 동생말에서 광안리로 이어지는 최단 코스의 해안길 완전히 열리면
길위에선 찾을 길 없을테지만 그 길에서도 잠시 쉬어가자면
허기도 채울세라 휘돌아 둘러감도 좋을 것이다.
예빈이 고봉우동 두어 숫갈 뜨더니 이런다.
'아~ 행복하다~'
허기에 고작 우동 한숫가락에도 행복을 느끼는 것은
산티아고길에서의 최미선과 닮았다.
길위의 그녀도 그저 편히 자는 것, 먹는 것,
쉬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다 했다.
식사 후 옆집인 빵가게 '파파로티'의 테라스에 앉았다.
아침, 빵의 고소하고도 신선한 향이 좋다.
파파머핀 두개를 샀다.
아~ 부드러워라
오늘 아이들이 걷고 있는 이 길,
내 어릴 적엔 바다였다.
언젠가 매립이 되더니 이리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
하늘 보려면 고개를 한참이나 들어올려야 되는.
<광안리에서 해운대>
광안리와 해운대라는 이름은 '젊음'이다.
젊음의 향연이라 할까.
피서의 욕구가 분출하는 여름엔 청춘의 젊음이 빛나고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가 쓸쓸한 겨울이면 중년의 젊음이 제격이다.
그런 곳이니 가장 도회적인 길이지만 그만치 가장 외롭기도 한 길.
살아낸다는 것은 언제나의 이면에 대한 배려라 할 때,
여름, 겨울과 다르지 않고
겨울, 여름과 다르지 않음을
진즉 그 길 위에선 알아야 한다.
그때에서야 그 길위의 걸음, 축제가 될 것이다.
포구에선 바깥 세상의 세찬 바람과 파도가 낯선 법.
있는 듯 없는 듯 어선이 한가롭다.
내 삶의 한페이지도 그랬으면.
이기대서 광안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도 모두 매립지다.
원형의 바다는 내 기억속에도 아련하기만 할 뿐.
그리 바다를 딛고 선 아이들,
꽤나의 걸음에 지치지도 않나 보다.
숲길 좋더니만 이도 삶의 일부.
배척하거나 멀리해선 안된다.
정초면 저 길 열리고 가을이면 마라톤 대회 핑계로 저 길 열린다.
저 길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해안도 나쁘지 않은 기억.
밝은 색감의 해안의 아파트 아래
우레탄 길 우중충 색감이 더위를 배가시킨다.
애쓴 보람도 없이 신경만 거슬린다.
조금 단촐한 꾸밈이었으면.
광안리 백사장에선 신발을 벗기로 했다.
파도에 발목 잠길 듯 걷기로 했다.
마침 강풍 주의보라 입수도 금지.
걷는 길엔 거칠 것도 없다.
발, 비로소 원기를 찾는가?
걸음에 생기도 발발하다.
맨발의 가족.
일러 행복이라 할 것.
그 시선에 담기는 것은...
그 거친 파도 앞에
주인 잃은 신발, 외롭고
퍼질러 앉은 소년의 여름은
나아가지 못하는 만큼의 아쉬움이다.
민락수변공원으로 가는 길,
땡볕이거나 가랑비거나 걸음에 훼방이다.
아예 회센터를 걷는다.
왁자한 길이 되려 미덥다.
수변공원 공영주차장 뒤 회센터 '산바다'
5층엔 고교 단짝 친구의 '까치'횟집이 있다.
광안대교 전망이 아주 근사한 곳.
친구는 마침 친구대로 아이들과 나들이 간 터라 전화만 했다.
거친 파도의 수변공원.
광안리에 접어들어서 부터는 내내 땡볕이었다.
시원하기로 '폴라뽀'
센텀지구가 저만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있다.
좌측의 신세계는 동양최대니의 수식으로 회자되더니
앞서의 마천루는 뒤의 장산 보다 높구나.
저 다리(수영2교) 건너면 해운대구!
둘째, 유정이 지치지도 않는다.
힘들다면 할아버지 집에 혼자 있으라 할테니
힘들지 않다고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에피소드.
수변공원에서 외국인을 만났다.
이제 막 시작한 영어가 재미도 있던가.
hello, may i have your name?
l'm robert. what's your name?
park, you jung. have a nice day!
영어 잘 하는구나!
유정이 영어 보다
로버트의 한국어 실력이 월등하였다^^
신당포구.
주변을 에워싼 하늘을 가리는 빌딩 숲에 질린 것일까.
길 잃어 한쪽으로 기운 배가 애애하다.
그래도 길은 이어진다.
우리 갈 길인 해운대해수욕장이 2km 남았단다.
동백섬도 돌아야할테니 그럼 3km만 가면 되는 셈.
한시간의 남은 여정이 발걸음을 재촉한다.
앞으론 가든 뒤로 가든 가는 것.
때로 뒤로 가면 웃음도 나고 덜 힘든 법.
세상 살아내기도 그런 법.
수영만요트계류장.
미끈한 프리티 우먼들이 즐비하게 닻을 내렸다.
저 범선, 이제 곧 대해로 나가면
저만의 날개를 펼쳐 날아오르겠지.
그 갑판에 저마다의 역할로 오른 바다사람들의
까맣게 그을린 굵은 어깨가 기운차다.
아이들, 지금은 길위에 섯지만
언젠가는 대해로 나갈 꿈을 꿀 것이다.
그리 가장 작은 요트에 올라 꿈의 출발 시동을 건다.
그 가는 길 때로 거친 파도요 세찬 바람이겠지만
언제나의 높고 맑은 꿈으로 헤쳐 기운차게 나아가길.
그리 우리 사랑도 깊어지길.
길 너머, 하마 오실까 엄마 기다리는 아이의 시선이 진득하다.
아직은 잠시의 이별도 원하지 않는 아이의 순수가 좋다.
14km를 넘게 걸은 셈이다.
광안리를 벗어나면서 부터 약간 접질려 발목이 앞프다던 큰아이와
최근 운동량이 부족한 옆지기는 많이 힘든가 보다.
의외로 둘째는 잘 걷는다. 힘들지도 않다고 한다.
이제 1km만 더 걸으면 완주이니 이를 악물어야 한다.
때로 고통과 희열은 비례하는 법.
맨발로 터벅터벅 걷던 아이들 주저 앉는다.
말없이 지켜본다.
이제 남은 길이 채 500m임을 잘 알기에
그 길 가야만 하는 것임을 잘 알기에 그냥 둔다.
이도 세상을 살아내는 것이니
이만한 힘겨움일랑 어이 없을텐가.
이제 한 걸음만 더 떼면 그 걸음이야말로
그의 세상속으로의 출발임을 아이들도 알았으면.
저 뒤 희미한 오륙도에서 장지산 아래 이기대를 거쳐 걸었다.
우리 걸어온 길이라 하며 기념하자 하니 절뚝절뚝 걸음에도 장난이다.
아이들의 이런 순수야 말로
아이로서 행복한 이유일테지.
천도복숭아 하나씩 베어물고 쉬어간다.
저녁은 풍성하니 회를 먹고 디저트로 베스킨라빈스31을 먹을 참이다.
해운대 전경.
영화적 상상이지만 메가쓰나미의 해운대를 생각는다.
해운대의 마천루와 백만 피서인파를 덮치는 지진해일.
자연의 힘이랄까,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이랄까를 경고하는.
영화는 인물도 극적 긴장도 흔한 러브라인도 기억에 남기지 못했지만
광안대교를 덮치고 해운대의 빌딩을 삼키는 메가쓰나미의 CG는 또렸히 남겼다.
이제 오늘 내 걸을 길의 종착에 거진 닿으려는 싯점에
쓰나미의 잔상이 머무는 것은 내내 걷기 너무 편하기만 했던 '길' 때문인가.
그러지 말아야겠지만 제 편리와
다리 아픈 우리 어머니 아버지와 같은 더 많은 이들의 공감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의 모순.
빨갛고 파란 파라솔 사이 바람이 지난다.
파도가 가져다 준 바람이 지난다.
해운대.
이제 막 우리의 갈맷길이 열리는 것일 뿐.
가야할 길이 훨씬 많다.
차츰 가야지.
16km를 동행한 가족.
천천히 걸은 걸음에 8시간을 넘게 걸렸지만 대견하다.
저 부여잡고 어깨동무한 사랑으로
이 여름도 지혜롭게 보내야지.
*******
용케 걸었구나.
고사리손 유정이도 훌쩍 커버린 예빈이도 제법 한몫을 걸었내었다.
힘든 운동을 좋아하지 않는 옆지기도
내내 말없이 희미한 미소 머금은 채 잘 걸어 내었다.
앞서 걸으며 수백번 뒤돌아 본다.
잘 걸어오는가. 힘들지는 않는가.
그러다 어느 순간, 그냥 앞서간다.
누구에게나 제 몫의 삶이 있다면 스스로 헤쳐갈 이유도 있는 법일테니 그냥 두어둔다.
그리 한참을 걸어 멈추면 늦되 여전히 걷고 있는 아이들과 옆지기가 보인다.
잠시 머물러 기다리면 될 뿐, 손 내밀거나 재촉하지 않아도 되었다.
길 위에서 나와 아이들과 옆지기는 다르지 않았으며
그들에게도 세상을 바라보는 배려와 참여의 지혜가 또한 또렸함을 알게되었다.
귀가길, 이름도 근사한 '푸짐한 횟집'에 들렀다.
술 못하는 부부지만, 맥주도 한잔 시켰다.
아이들은 냉수로 우리는 맥주로
오늘의 작은 행복을 추억하며 건배를 한다.
이른 취침에 옆지기와 아이들의 포옹 인사가 한결 포근하다.
그리 또 길 나설 것을 무언중에 약속한다.
이상 행복팍팍 사랑팍팍 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