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밭인지 개똥밭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요. 이게 무슨 시민공원입니까.”5월의 마지막 휴일인 30일 이촌 한강시민공원을 찾은 이석현(42·마포구아현동)씨는 분개했다.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밭에서 용변을 보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를 옮겨 돗자리를 펴려던 이씨는 잔디밭 곳곳에 나뒹구는 동물의 배설물을 보고 기겁을 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개똥이 즐비한 잔디밭에서 뛰어놀다 기생충에라도 감염되면 누가 책임질 것이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본격적인 나들이철을 맞아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와 용변을 보게 하는 일부 몰지각한 시민 때문에 한강시민공원 이용객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자신을 ‘문진선’이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서울시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돗자리 앞에서 애완견이 볼일을 보고 있어서 개 주인에게 치우라고 말했다가 괜한 말싸움만 했다”며 “공원 곳곳에 동물의 배설물이 그대로 방치돼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동물이 사람에게 옮길 수 있는 질병은 모두 200여종으로 이 가운데 개가 약 21종, 고양이가 약 13종에 이른다.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가정의학과 윤종률 교수는 “애완동물의 기생충이 배설물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며 “애완동물 배설물에는 근육·인후통을 유발하는 톡소플라마스(고양이 기생충)와 파상풍균(신경독 일종), 캠필로박터균(식중독균)이 있어 이를 사람이 직접 손으로 만지거나 상처를 통해 감염될 경우 치명적일 수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강시민공원이 애완견의 용변으로 더럽혀지고 있는 것은 서울시가 서울대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과 달리 애완동물을 제한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공원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애완견을 끌고 나온 몰지각한 일부 시민들이 배설물을 처리할 수 있는 용변봉투와 집게를 가져오지 않고 잔디밭에 함부로 용변을 보게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강시민공원사업소는 인력 부족과 관련법 미비 탓으로 돌리고만 있다.
사업소측은 애완동물관리 관련 게시판만 공원입구에 세워뒀을 뿐 사실상 아무런 관리 감독을 하지 않고 있다.
설사 적발하더라도 이를 처벌할 마땅한 관련법이 없어 계도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건설교통부가 지난해 9월 모든 공원에서 애완동물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거나 지자체가 지정한 공원에서 애완동물에게 목줄을 채우지 않을 경우 1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의 ‘도시공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해 오는 10월쯤 시행될 예정이다.
서울시의 한 관계자는 “공원 관리원이 안전에만 신경쓰다보니 애완동물 관리가 소홀할 수밖에 없다”며 “애완동물을 데리고 나온 시민이 앞장서지 않으면 애완동물 배설물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