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식물 박 해 경 여름 아침이다. 제일 먼저 베란다에 있는 화분에 물을 준다. 베란다 물청소도 하고 나면 마음까지 깨끗해진다. 어린 시절 앞마당 정원에 매일 물을 주던 추억이 강하게 남아있다. 우리 집 정원은 이끼가 있는 정원석으로 만들어졌다. 물을 주면 이끼가 파릇파릇 솟아 나와 싱그러웠다. 수돗물은 약품을 사용해서 식물에 좋지 않다고 하여 펌프 물을 주었다. 펌프질을 하면 올라온 차가운 물을 커다란 물 조리에 담아 정원에 물을 주었다. 정원과 펌프를 오가며 물을 주다 보면 한 시간 가까이 지나갔다. 힘은 들었지만 상쾌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집 베란다에는 십여 개의 화분이 있는데, 크고 작은 것들이 늘어 서 있다. 베란다에는 화분뿐만 아니라 빨래를 말리는 공간도 있어, 화분이 차지하는 공간은 그리 넓지 않다. 그래도 나는 이곳을 우리 집 정원으로 여기고 있다. 아침마다 식물들에게 말을 건다. 장미야, 너는 화분 중에 키가 제일 작구나. 여행 중에 휴게소 농협마트에서 너를 만났어. 두 번의 겨울도 잘 지내고 올봄에는 푸른 잎이 나오고 키는 크게 자라지 않으면서 빨간 장미꽃을 피웠어. 화려한 장미꽃이지만, 낮은 자세로 다소곳이 있는 네 모습이 겸손해 보여. 호랑가시나무, 너는 윤기를 반짝반짝 내면서 정말 씩씩하게 잘도 자라는구나. 천리포 수목원에서 사십 년 만에 만난 친구가 우리의 만남을 기념하여 너를 선물로 주었어. 기념식수를 한 셈이지. 처음에는 작은 화분이었는데 힘차게 자라나서 큰 화분으로 옮겨져 키도 커지고 몸집도 많이 늘렸어. 너는 씩씩한 그 친구를 닮아서 잎이 단단하고 힘이 넘쳐 보여. 매화야, 너는 광양 매화 축제에서 만났어.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분재였어. 넌 화분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좀 앙증맞았지. 나무를 축소한 것 같아 왠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분재를 다듬지 않고 그냥 두었더니 잎이 무성해지고 가지도 길게 자라가기에 큰 화분으로 옮겼어. 몇 년이 지난 이제는 새 가지가 나와 키가 엄청나게 자랐구나. 이제 다시 매화나무가 되고 있나 봐. 아보카도야, 너는 인터넷마트에서 클릭하였더니 네가 우리집에 배달되어 나와 만났어. 아보카도를 먹고 난 후에 그 씨를 심었더니, 흙을 내밀고 나온 새싹이 아보카도 나무가 되었지. 너는 잎사귀가 길면서도 넓구나. 열대 나라 필립핀에서 온 너는 매일 물을 흠뻑 먹고 살았을 텐데, 아파트 베란다에서 고생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물을 흠뻑 주고 있어. 또 햇볕이 잘 들고 통풍도 잘되는 창가에 두었어. 이제는 줄기도 꽤 많이 굵어지고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랐구나. 이제 베란다에서 작은 열대 숲(?)이 되었지.
행운목, 너는 미트에 갔다가 식물 코너에서 너를 만났어. 스킨탑티스, 너는 화원에서 만났지. 나리꽃, 넌 서양란이 있는 커다란 화분에서 생겨났지. 수국, 너는 여름 내내 꽃을 피워 나의 눈을 시원하게 해 주었어. 백량금, 너는 콩알같이 생긴 빨간 열매로 늘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풍기고 있어…. 농촌진흥청 김광진 연구관은 “연구진이 작은 식물의 잎을 따서 잘게 부수는 행동(괴롭힘)을 한 뒤, 그 연구진의 입김을 비닐봉지에 담아 다른 식물이 있는 공간에 넣으면, 이 식물에서 특정물질의 배출이 눈에 띄게 느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는 식물의 화학 언어 물질이 23% 증가한 건데, 자신의 위험한 상황을 다른 식물에 알리는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즉 사람이 식물을 이뻐하거나 미워한다든지 괴롭히면 그 식물도 거기에 맞춰 실제 반응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윤혜린 교수는 “반려 동물에게는 대개 이름이 있는데, 이름은 호칭 이상의 기능이 있으며, 나와 다른 생명체를 연결해주는 소중한 그 무엇”이라고 한다. 그래서 반려 식물에도 이름 붙여주기를 제안하고 있다. 딸은 강아지 두 마리를 키우면서 아주 즐거워한다. 가끔 강아지들 사진을 찍어 카톡으로 보낸다. 딸의 말로는 “코코야, 모모야”하고 이름을 부르면 강아지들이 무언가 소리를 내며 말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공감을 못 하는 것 같으니까 딸이 동영상을 찍어 보내기도 하는데, 동영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강아지들이 뭔지 모를 소리를 내면서 눈이나 얼굴 표정이 무슨 말을 하는 것 같이 느껴진다. 딸은 강아지들이 하는 말을 알아듣는 듯, 말을 주고받는다. 강아지와 교감하며 지내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딸네 집에 갔을 때, 강아지들이 처음에는 나를 보고 엄청나게 짖어댔다. 그런데 그다음부터는 이름을 크게 부르면서 들어갔더니, 이제는 강아지들이 다소곳이 내 옆에 앉는다. 오늘도 나는 베란다 정원에 있는 식물들에게 물을 주며 말을 건다. 하지만 아직 식물들과 교감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는 나도 식물들에게 각각 이름을 지어 주기로 했다. 장미의 다소곳한 모습을 보면서 ‘소녀’라고 부르자. 아보카도, 네 이름은 ‘열대 숲’이고, 호랑가시나무는 나에게 선물한 친구 이름 중에 한 글자를 따서 ‘경이’, 행운목은 ‘럭키’로 스킨탑티스는 ‘초록나라’. 수국은 ‘여름이’로, 백랑금 너는 ‘크리스마스’로 부를 거야. 매화는 분재였다가 나무가 되어가니 이름을 뭐라고 해야 하나. 한꺼번에 이름을 다 짓자니 쉽지 않다. 식물마다 특징을 살려서 시간을 두고 이름을 지어야겠다. 이제 내가 먼저 식물의 이름을 부르면서 내 마음을 전하면 그들도 나에게 다가와 고백하겠지. 사랑한다고. 박해경 약력 수필과 비평 신인등단 (2010년 1월) 숙란 문인회, 원석 문학회, 수필 비평 작가회의 회원 수필집 《베드로사도에게 살며시 하는 말》 발간 (2015년), 《오늘이 무슨 날이게?》 발간 (201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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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박해경 선생님 ~
오랜만에 작품(수필)을 보내오셨네요.
요즘엔 소설을 쓰느라고 소설 창작에 푹 빠져서 . . .
곧 소설로 등단도 하신다지요?
축하드립니다.
수필 '반려식물'을 읽으면서 박선생님의 생활이 눈앞에 보이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베란다에서 식물들의 이름을 불려주며 시작하는 아침은
행복으로 하루를 열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소설가가 되더라도 수필을 아주 떠나지는 마세요.^^
가끔 이렇게 재미있는 수필도 쓰세요.
작품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원석 문우님들!
이 글은 <수필과비평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지난 6월호에 이어 10월에도 만나뵙게 되어 기쁩니다.
송화님, 저는 수필 떠나지 않았어요. ㅎㅎ
친정같은 원석에 들러 갑니다.
모두들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박해경 선생님,
꾸준히 글 쓰시는 모습
너무 좋아요!
'반려식물'도 사랑으로
커 가는 거죠?
모든 게 관심과 사랑인 것
같아요! 맘껏 가을을 즐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