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2024.4.19
“삶이란 결국 그런 거죠, 보내는 것…
하지만 가장 슬픈 건 작별 인사조차 못했다는 거죠”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는 2012년 미국에서 개봉한 판타지 영화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얀 마텔의 소설 ‘파이 이야기’가 원작이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이 노미네이트되어 감독상, 촬영상, 시각효과상, 음악상 4관왕을 수상한 대작이다.
내가 시각적으로 영상미에 압도됐던 첫 번째 영화는 2009년에 개봉한 ‘아바타’였다. 그때의 감동이란 신세계를 만난 것 같았다. 이어 두 번째로 꼽는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아바타가 동적인 생동감을 준다면 라이프 오브 파이는 내게 정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이다.
신과 기적을 쫓던 어떤 작가가 엄청난 일을 겪은 파이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듣는 장면에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 파이는 학창시절 오줌과 발음이 같은 ‘피신’이라는 이름 때문에 아이들에게 항상 놀림을 받는다. 그는 새롭게 전학 간 학교에서 자신의 이름을 줄여 파이, 즉 수학에서는 3.14라고 소개하는데 결국 아이들은 또 오줌싸개라는 별명을 알아버리고 만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그날이 끝나기 전에 3.14 소수점 20자리까지 몽땅 외워서 말한다. 아이들은 함께 파이를 응원했고 파이는 그야말로 전설의 파이가 되었다. 파이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장면 하나만 보고도 그가 앞으로 어떻게 고난을 헤쳐 나갈지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파이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만 엄격한 아버지와 현실보다는 신을 숭배하고 믿음이 강한 관대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다. 인도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그의 가족은 경영난을 겪게 되고 캐나다로 이민을 떠나게 된다. 커다란 배는 그의 가족과 동물원에서 키우던 동물들을 태우고 태평양을 횡단하다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쳐 침몰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미미한 존재일 뿐이다.
파이는 가족을 잃고 홀로 구명보트에 살아남는다. 하얀색 보트는 반은 덮개가 없었고 반은 흰 천으로 덮개가 덮여 있었다. 그곳에 다친 얼룩말과 굶주린 하이에나 그리고 바다 위에서 바나나 덩이를 타고 온 오렌지주스라는 별명을 가진 오랑우탄이 함께 타고 있었다. 포악한 하이에나는 상처 입은 얼룩말을 죽이고 파이가 귀여워하는 오랑우탄마저 죽인다. 오랑우탄의 죽음으로 파이가 하이에나에게 분노할 때 갑자기 배의 천막 밑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와 단숨에 하이에나를 물어 죽인다. 바로 무시무시한 벵골 호랑이 ‘리처드 파커’였다.
보트 안에 남은 한 사람, 파이와 한 마리의 호랑이 리처드 파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주인공 파이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로에게는 각자만의 영역이 필요했다. 파이는 보트 안에 있는 호랑이를 피해 자신이 만든 뗏목에 앉아서 물고기 낚시를 한다. 육식을 하는 호랑이가 먹이가 없으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질이 급한 호랑이는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스스로 바다에 풍덩 뛰어들어 헤엄을 친다. 호랑이가 물속에서 헤엄을 그렇게 잘 치다니 놀라웠다. 호랑이를 피해 보트에 오른 파이는 배 밑에서 올라오려는 호랑이를 작은 도끼로 내려쳐 죽일 수 있었지만 포기한다. 물속에서 파이를 바라보던 호랑이의 얼굴이란.
호랑이와 함께 살아 있으려면 호랑이를 길들여야 한다. 파이는 조금씩 호랑이를 훈련시키고 마침내 서로의 영역을 갖는다. 칠흑 같은 밤, 바다에서 피어나는 빛들의 향연과 하늘로 날아오르는 대왕 고래의 아름다운 영상미. 노을이 질 때의 다채로운 색감들은 이 영화의 백미가 아닐 듯싶다.
그러던 어느 날 다시 폭풍우를 만나고 온 힘을 다해 함께 버텨낸 파이와 리처드 파커. 그들은 이제 온전한 친구였다. 서서히 죽어가던 그들은 어떤 섬에 도착하는데 그곳은 다름 아닌 식인섬이었다. 식량을 챙긴 그들은 다시 항해를 시작하고 마침내 멕시코 연안에 도착한다. 기력이 쇠한 파이가 해변가에 쓰러져 의식을 잃어갈 때 배 위에서 뛰어내린 리처드 파커는 멈칫, 그러나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마지막 작별 인사도 없이…
사람들에게 구조된 파이는 리처드 파커를 생각하며 울부짖고, 보험처리 문제로 배의 침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파견된 일본 선박 회사 직원들은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호랑이나 식인섬 같은 이야기가 아닌 진실을 말해 달라는 직원들에게 그는 또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보트에 네 사람이 살아남았다. 하이에나 같은 주방장과 얼룩말처럼 순한 불교신자, 그리고 바나나 덩이를 타고 온 엄마. 야비한 주방장은 불교신자와 엄마를 차례대로 죽였고 마침내 나는 주방장을 죽였다. 나는 바로 리처드 파커였던 것이다. 그가 이렇게 얘기하자 그들은 할 말을 잃고 그를 위로해 주고 떠났다.
모든 이야기가 끝났을 때 파이는 작가에게 두 가지 이야기 중에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드느냐고 물었고 작가는 호랑이가 나오는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책으로 내고 싶다며 선생님의 스토리는 해피엔딩인가요? 라고 묻는 작가에게 파이는 이렇게 말하며 영화는 끝난다. 그건 당신한테 달렸죠. 이젠 당신의 스토리니까.
영상미가 가득한 영화를 보면 선명한 장면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쉽게 잊히지 않는 것처럼 간혹 가슴에 꽂히는 단어들이 있다.
“가장 슬픈 건 작별 인사조차 못했다는 거죠.”
내게도 그런 날이 있었다. 15년 전 그날.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 궁핍한 나는 먹고살기 위해 일하느라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평생 귀히 여긴 딸자식을 기다리다 기다리다 지쳐,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를 따라가며 잘 있으라는 발 도장을 찍으며 갔을 아버지. 나는 잘 가시라는 그 한마디 말을 못 해서 몇 날 몇 해 가슴앓이를 하며 아파했다.
삶이란 결국 그런 것이다. 언젠가는 보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미처 준비되지 않은
이별은 고통이 배가 된다. 어딘가에서 세상 끝날 인사를 하고 있다면 그 누군가는 알까.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나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큰 행복인지…
첫댓글 하루 하루 작별하는 날 같이 생활 해야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