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냐 3:17, 에베소서 5:25-27
지난 시간에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이신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심령 속에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은,
인류역사상,
십자가 죽음에서 가장 강렬하게 나타났습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 사랑의 영광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태양도 그 영광의 폭격 앞에 부끄러워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주 십자가 못 박힐 때 그 해도 빛 잃고
교회는 지극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입니다.
오늘부터 영광스러운 교회의 모습이,
성경의 본문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교회(에클레시아)는 "성도들의 집합체"를 뜻합니다.
1.
교회가 영광스럽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영광스러운," 엔독소스.
본뜻은 "영광 안에 있는, 영광을 입은,"
즉, 존귀한, 고귀한, 영광스러운, 화려한.
에베소서 5:27의 본문에서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된다는 것이,
영적으로 무슨 의미인지 알려면
다윗의 아들 압살롬의 외모에 대한 기록을 참고해도 좋습니다.
사무엘하 14:25,
"온 이스라엘 가운데 압살롬 같이 아름다움으로 크게 칭찬받는 자가 없었으니
저는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흠이 없음이라."
이스라엘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이나 다윗, 아비가일,
압살롬의 바로 아래 동생 아도니야도
대단히 아름답고 준수한 얼굴의 소유자로 묘사되어 있고,
밧세바도 미녀였으니
솔로몬왕 역시 대단한 미남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성경에서 흠이 없이 아름답다고 묘사한 인물들은,
압살롬과 다니엘 및 그의 세 친구들입니다.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이처럼 지극히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성경의 "거룩하다(초월적으로 구별된)"는 개념 속에
성적인 순결과 아울러,
초월적 아름다움의 뜻이 강렬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
"흠이 없다"는 단어도,
영적, 도덕적으로, 하나님 및 인간과의 관계에서 흠이 없다는 의미 이전에,
신체적인 아름다움의 개념을 일차적으로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이 "흠"을 "뭄"이라 하며,
헬라어로는 "모모스"라 하는데,
둘이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음이 발음의 유사성에서 드러납니다.
70인역본도 위의 삼하 14:25과 단 1:4에서,
히브리어 "뭄"을 헬라어 "모모스"로 번역했고,
신약성경의 우리본문 에베소서 5:27에서도 이 헬라어 어군(아모모스: 흠없는)이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식 사고방식에서
"흠이 없다"는 말의 일차적 의미는, 신체적으로 흠결 없이 아름답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천사가 요한에게 어린양의 신부 곧 새예루살렘성(즉, 교회)의 모습을 보여줄 때
요한은 이 성을 다음과 묘사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계 21:11
바로 이것은 "거룩하고 흠이 없다"는 말의 뜻입니다.
하나님 및 사람과의 관계에서,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도는,
그의 영혼도 천국에서 이처럼 지극히 아름다운 내면과 외모를 표출하는데,
그것은 바로 그의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광이 겉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서는 지상과 달리, 내면과 외모가 일치합니다.
교회는
주님 보시기에 존귀하고 고귀하고 영광스럽고
지극히 아름다운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은 존재입니다.
아가서의 본문에 묘사된 술람미의 여인의 모습이
또한 교회의 아름다운 영광입니다.
우리 임금 계시는 저 동산 아름답다 영광나라(교회)
석류과수 고벨화 나도초 번홍화 창포 계수 유향
몰약 침향 향품 에워있는 금빛나는 낙원에서
보아라 육계향 펄펄나는 바람 타고 자주빛 옷자락에 사랑 실어 웃음 띠고
두 팔 벌려 나오시니
만물도(모든 성도) 나도 엎드려서
봄꽃향기 진동속에 주님 얼굴 맞이 하네.
제게 주신 노래,
우리임금 계시는 저 동산, 아름다운 영광 나라는,
천국이고, 새예루살렘성이지만,
또한 교회입니다.
주님이 교회를 이토록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에
주님의 신부된 우리는 주의 사랑에 감격하여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노래]부를지어다."
습 3:14
아니 아니 놀지는 못하리라.
창문을 꼭꼭 닫아도 숨어드는 달빛이여,
가슴을 설레놓고 파고드는 사랑이여....
이 노래는, 이른 바 "창부타령"의 가락에 맞춘,
목숨까지 버리신 주님의 사랑에 기뻐하고 주의 사랑을 찬양하는 노래입니다.
2.
주님은 우리에게만 즐겁게, 기쁘게 노래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사실은, 주님이 너무 기쁘고 행복하기 때문에,
우리더러, 주님 자신의 그 기쁨에 동참하라고 부르시는것입니다.
주님 편에서도,
자신의 피로 사신(계 5:9, 행 20:28) 교회 때문에
노래하고 춤을 추시며
교회를 기쁨과 행복의 대상으로 삼고 계십니다.
스바냐 3:17.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곧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깁보르: 용사]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노래]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예언이며,
그리스도께서 임마누엘로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주하실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스가랴 2:10에는, 주님의 기쁨과 교회의 기쁨이 동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온의 딸아, 노래하고 기뻐하라.
이는 내가 임하여 네 가운데 거할 것임이니라."
이 두 곳의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 안에 거주하실 것을 노래한 것입니다.
스바냐 3:17에서,
"즐거이 부르며"(린나)는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신다는 뜻입니다.
"린나"는 원래 "크게 울리는 소리"를 의미하고,
구약성경에서 간구의 부르짖음, 기쁨의 찬양, 기쁨의 노래 등에 사용됩니다.
"그가 너로 인하여 크게 노래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주님은 자기 백성 때문에, 교회로 인해,
특히 그리스도를 삶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순결한 교회로 인해
즐거이 노래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깁보르[용사], 깁보르시라....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천국이고 우리의 천국이시라면,
그리스도의 천국은, 교회이고 성도입니다.
주님은 인간 창조 이전부터 형언할 수 없는 기쁨 가운데 계셨지만,
이는 주께서 그만큼 영광스러운 교회, 참된 성도들을 기뻐하신다는 뜻이니,
다른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3.
주님이 교회를 바라보시며 그토록 기뻐하시는 것은,
주님의 지극히 큰 고난과 사랑과 수고와 대가로
그들을 얻어 영광스럽게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53:11
그래서 주님은 창세전에 선택하신 교회를,
우리 성도들을 너무나도 애지중지하시는 것입니다.
교회가
주님의 한없는 기쁨과 사랑의 대상으로서,
이처럼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된 것은,
주께서 보혈을 흘리심으로써, 성령을 통해,
교회를 그렇게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변모시켰기 때문입니다.
어떻게요?
(1)
보혈을 흘려 죄를 속하시고
복음의 말씀 및 물과 성령세례로 깨끗하게 씻으셨습니다.
에베소서 5:26에서
교회를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신다"는 구절의 원문을 직역하면 이렇습니다.
"말씀[레마] 안에서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 하사."
벧전 1:25,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레마]이니라."
따라서, 우리 본문의 "말씀"은 복음을 의미하며
물로 씻는다는 것은, 물세례, 보혈의 뿌림, 성령세례 등의 총체적 개념을 단 하나의 은유로 나타낸 것입니다.
우리는
(가) 보혈의 공로와,
(나) 이 복음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다) 성령의 역사로 죄 씻음을 받습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거듭남, 성령의 세례와 성령의 내주 없이,
물세례만 받는다고 해서
심령이 깨끗해지는 게 아니죠?
성령께서 하나님의 말씀, 복음을 믿게 하심으로써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는 것은,
먼저,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에 가능합니다.
히브리서 10:22
히브리서 9:21-22,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샘물과 같은 보혈은 예수님 피로다
히브리서 10:22에 의하면,
보혈의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게 되고
성령의 생수로 씻음을 받아 그 악을 제거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피]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물세례와 성령세례],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보혈과 성령은 함께 일합니다.
요한1서 1:7, 히브리서 9:14에 의하면,
주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치르신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는
우리로 하여금 정결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 일이 우리의 심령에서 일어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 심령에 적용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이 거룩하고 깨끗한 심령으로 변화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성령과 교제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의 생수가 함께 합력해서
우리를 정결하게 합니다.
베드로전서 1:19-20.
(2)
나아가
우리 속에는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의 지극히 아름다운 영광이 내재해 있기 때문에,
교회는 주님 보시기에, 지극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들어와 거듭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형상이 있습니다.
사도들의 서신에 나타난 여러 교회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
그리고 에베소교회를 비롯한 소아시아 7교회 등등의 모습은
영광스러운 면도 있지만, 죄악의 수치도 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조국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죄악을 씻어버릴 때
교회는 명실공히 더욱 아름답고 영광스러워집니다.
우리 조국교회가 모두 이렇게 영광스러운 교회로
더 심도있게 변화되었으면 너무 좋겠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성도들, 교회]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9:7-8
바로 이 말씀이 변화된 성도들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 예수님과의 혼인 즉 하나됨 때문에 크게 기뻐하자고 노래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끝으로
"예루살렘 금성아 복 가득 하도다"라는 찬송가는
새예루살렘 성을 노래한 것인데요,
요한계시록 21-22장의 새예루살렘성은 동시에 교회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계 21:9,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예루살렘 금성아 복 가득하도다
샬롬.
2024. 6. 23.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