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행 인터넷 언론 ・ 1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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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장섭 기자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12 (필동2가)번지는 대한극장이 지난 66년동안 사용하던 주소다.
한국 영화의 메카로 통했던 충무로의 '간판 영화관' 대한극장이 66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1958년 20세기 폭스 필름의 설계로 개관된 대한극장은 스카라, 명보, 서울, 국도극장과 함께 한국 영화의 메카이자 한국영화 산업을 대표하는 명소로 꼽혀왔다.
영화인들의 고향과 같은 그곳이 2002년 말 11개 상영관을 품은 멀티플렉스로 탈바꿈했음에도 결국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극장산업의 파워게임에 밀려 문을 닫게 됐다.
1958년 단관 극장으로 문을 연 대한극장은 당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며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아라비아의 로렌스' 등 할리우드 대작을 상영해 이름값을 높였다. 아직도 한국영화에서 회자되고 있는 '벤허'(1962년 2월 개봉)는 이미 60여년 전에 연일 만원사례를 이어가며 무려 6개월 동안 상영하는 진기록을 보였다.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생각 한다면 '벤허'는 지금의 1000만 관객이 들었다는 영화보다 더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기업들이 주도하는 영화산업의 자본앞에 대한극장도 무룹을 꿇게됐다. 20세기 중반 이후 단관극장으로 관객과 만났던 대한, 스카라, 명보, 서울, 국도극장 등 한국의 전통 영화관들 모두가 역사적 보존없이 사라지게 되면서 6~70년대의 그 흔적들은 올드보이들에겐 가설극장을 기억하는 마지막 세대가 되겠지만 미래의 세대들에게는 "그때를 아십니까?" 정도로 잠깐 스처지나가는 기록물로 과거의 극장들을 기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해방과 6.25를 겪으면서도 한국 영화산업은 할리우드Hollywood 뿐만 아니라 세계 영화시장에서 거부하지 못하는 대형파이로 성장했다. K가 들어간 문화산업들이 세계시장을 KOREA열풍으로 뜨겁게 만들자 'K-MOVIE'도 예외없이 KOREA열풍의 관심 컨텐츠가 되었다.
영화는 대규모 자본을 투입하여 대중을 상대로 한다는 점에서 문학 작품이나 예술품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산업적 개념이 강한 미디어산업으로 인식할 수 밖에 없다.
영화산업의 역사는 불과 120여 년 밖에 되지 않는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미디어산업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영화는 곧 종합 예술'이라는 공식으로 우리곁에 존재한다. 그래서 순수함 보다는 이익창출이 우선일 수 밖에 없다.
영화산업이 ‘21세기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고 있는 것도 인간의 꿈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한 점,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하다는 점, 접근성 확보와 뛰어난 오락성, 교육성이 고수익의 창출 가능성이 어느 산업보다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부가가치를 갖고 있는 산업에 대기업들이 군침을 흘릴 수 밖에 없다.
한국영화의 성지라 불리우는 곳에서 영화관 하나로 대기업과 맞서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와 맞서는 격이다. 그럼에도 대한극장은 2001년 12월 1층부터 7층까지 11개의 상영관에 총 2,754석의 좌석을 갖춘 영화관으로 재개관하였다. 선명하고 풍부한 디지털 음향과 영화의 소리가 그대로 느껴지는 스피커 시스템에 매머드 규격의 초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좌석 앞뒤 간격이 넓고 스타디움식 좌석 배치에 등받이가 탄력적인 락킹 체어를 설치하여 어느 좌석에 앉아도 시야의 가림 없이 편안하게 스크린 전체를 볼 수 있어서 개관 당시에는 언론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영화관 산업 주도권이 CGV·롯데 등 대기업 계열 멀티플렉스로 넘어가면서 계속되는 적자와 코로나 여파, 넷플릭스의 등장으로 경영 환경이 더 나빠지자 결국 10월 문을 닫는다. 대한극장의 백기 투항은 시간과의 싸움이었지 이미 승패가 갈린 결과다.
반세기를 넘게 한국 영화의 본향이라 할 수 있는 간판급 영화관들이 이제 모두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면서 반세기의 흔적들은 기록물로 남게됐다. 그러나 그 자그만 흔적조차 붙잡아 두려는 노력은 몆 몆 극장에서 계속되고 있다. 단관 개봉관의 역할과 기능이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한극장은 영화관 사업을 접는 대신 내년 봄,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단장을 위해 대대적인 내부 공사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머시브 공연 '슬립 노 모어'를 유치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머시브란 '에워싸다'란 뜻으로 관객이 공연에 직접 참여해 함께 만들어나가는 방식의 작품을 뜻한다. '슬립 노 모어'는 관객이 '원하는 인물을 찾아 자리를 이동하며 연극을 보는' 독특한 형식의 공연이다.
1957년 개관해 한 때 대한극장, 서울극장과 더불어 종로와 충무로 영화판에서 이름 날리던 명보극장도 결국 시대의 흐름을 버티지 못하고 2008년 4월에 폐관한 뒤 명보아트홀로 이름을 바꿔 뮤지컬과 연극 등 무대 공연을 올리고 있다.
서울극장은 2020년에 접어들어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로 큰 타격을 입고, 결국 2021년 8월 31일 폐관을 결정했다. 극장에 세들어 있던 인디스페이스와 서울아트시네마도 각각 2021년 12월 30일, 2021년 12월 31일까지 영업하고 2022년 3월에 이전하였고, 합동영화 측은 관수PFV에 극장 부지를 매각했으며 건물은 철거되어 주거공간으로 바뀌었다. 1958년 '세기극장'으로 출발했던 서울극장은 작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지게 됐다.
1935년 일본인에 의해 세워졌던 스카라극장(당시 약초 동보 극장)은 1,172석을 보유한 대형극장으로 한국영화사에서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며 한국영화의 중심에 있었다. 극장 이름이 약초 동보 극장에서 스카라극장으로 바뀐 것은 1962년 9월이다. 스카라극장 역시 2000년대 멀티플렉스 극장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자 경영에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2005년 12월 문을닫고 철거되었다. 철거 이후 잠깐 수도주차장으로 운영되었다가 2009년 아시아경제신문 본사 건물이 들어섰다.
한편 대한극장이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변영주 감독은 스포츠서울과의 통화에서 “대한극장이 대중의 마음 속에서 떠났다 해도 폐관은 한국영화의 추락을 알리는 경종이자 방증이다.”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영화는 이제 핫미디어를 지나 쿨미디어로 가고 있다. 적어도 쿨미디어가 되지 않기 위해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자본 권력을 가진 대기업이 이제라도 한국영화 발전을 위해 뭐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어찌되었건 대한극장이 문을 닫게되면서 서울의 단관 극장 시대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됐다. 영화계는 “한국영화계가 추락했다는 걱정어린 시선과 함께 K컬처의 위기”라고 지적했다.
우리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을 쉽게 버리거나 지워버린다. 100년 200년, 심지어 천 년의 문화유산을 가진 문화강국들에 비해 우리는 전통적 가치를 지닌 대중문화의 상징적인 공간들이 하나 둘씪 사라지는 것에 간절함이 없다. 반 만년 역사에서 1000번의 외세 침입을 받은 상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것을 지키는 것에 소홀함이 없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것에는 너와 나, 이웃과 지역, 단체와 기업, 그리고 국가가 하나가 되어야 한다. 예산도 중요하지만 먼저 그것을 지키겠다고 하는 절심함이 필요하다.
지구촌 곳곳에서는 여전히 한국문화의 우수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 내부에서는 문화적 가치를 하대하고 무관심으로 방치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한극장 폐관이라고 한다면 우리 모두는 미래 세대들에게 모두 죄인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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