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전례
성주간의 첫째 날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오늘 성지(聖枝) 축복과 행렬을 거행하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영광스럽게 기념하는 한편, ‘주님의 수난기’를 통하여 그분의 수난과 죽음을 장엄하게 선포한다. 성지를 들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것은 4세기 무렵부터 거행되어 10세기 이후에 널리 전파되었다.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구세주께서 스스로 자신을 낮추시어 사람이 되시고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주님의 수난에 참여하여 부활의 영광을 함께 누리게 하소서.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0,4-7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제2독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필리피서 말씀입니다.2,6-11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6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11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
복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 해설자 + 예수님 ● 다른 한 사람 ▣ 다른 몇몇 사람 ◎ 군중
○ 마태오가 전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입니다.26,14─27.66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물었다.
15 ● “내가 예수님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 수석 사제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18 ○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 그러자 제자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묻기 시작하였다.
●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23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물었다.
●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26 ○ 제자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받아 먹어라. 이는 내 몸이다.”
27 ○ 또 잔을 들어 감사를 드리신 다음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 “모두 이 잔을 마셔라.
28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2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포도주를 마실 그날까지,
이제부터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다시는 마시지 않겠다.”
30 ○ 그들은 찬미가를 부르고 나서 올리브 산으로 갔다.
31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오늘 밤에 너희는 모두 나에게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성경에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 떼가 흩어지리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32 그러나 나는 되살아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갈 것이다.”
33 ○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 “모두 스승님에게서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결코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입니다.”
34 ○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오늘 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35 ○ 베드로가 다시 예수님께 말하였다.
●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 다른 제자들도 모두 그렇게 말하였다.
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니라는 곳으로 가셨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하는 동안 여기에 앉아 있어라.”
37 ○ 그런 다음, 37 베드로와 제베대오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분께서는 근심과 번민에 휩싸이기 시작하셨다.
38 그때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내 마음이 너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다.
너희는 여기에 남아서 나와 함께 깨어 있어라.”
39 ○ 예수님께서는 앞으로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40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와 보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그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 “이렇게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
41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따르지 못한다.”
42 ○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가서 기도하셨다.
+ “아버지, 이 잔이 비켜 갈 수 없는 것이라서 제가 마셔야 한다면,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
43 ○ 그리고 다시 와 보시니 그들은 여전히 눈이 무겁게 감겨 자고 있었다.
44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그대로 두시고 다시 가시어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셨다. 45 그리고 제자들에게 돌아와 말씀하셨다.
+ “아직도 자고 있느냐? 아직도 쉬고 있느냐?
이제 때가 가까웠다. 사람의 아들은 죄인들의 손에 넘어간다.
46 일어나 가자.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가까이 왔다.”
47 ○ 예수님께서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바로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왔다.
그와 함께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보낸 큰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48 그분을 팔아넘길 자는,
“내가 입 맞추는 이가 바로 그 사람이니 그를 붙잡으시오.” 하고
그들에게 미리 신호를 일러두었다. 49 그는 곧바로 예수님께 다가가 말하였다.
● “스승님, 안녕하십니까?”
○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입을 맞추었다. 50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 “친구야, 네가 하러 온 일을 하여라.”
○ 그때에 무리가 다가와 예수님께 손을 대어 그분을 붙잡았다.
51 그러자 예수님과 함께 있던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들고,
대사제의 종을 쳐서 그의 귀를 잘라 버렸다.
52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
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청할 수 없다고 생각하느냐?
청하기만 하면 당장에 열두 군단이 넘는 천사들을 내 곁에 세워 주실 것이다.
54 그러면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는 성경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55 ○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그 무리에게도 이렇게 이르셨다.
+ “너희는 강도라도 잡을 듯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나를 잡으러 나왔단 말이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지만 너희는 나를 붙잡지 않았다.
56 예언자들이 기록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 그때에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57 무리는 예수님을 붙잡아 카야파 대사제에게 끌고 갔다.
그곳에는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이 모여 있었다.
58 베드로는 멀찍이 떨어져 예수님을 뒤따라 대사제의 저택까지 가서,
결말을 보려고 안뜰로 들어가 시종들과 함께 앉았다.
59 수석 사제들과 온 최고 의회는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려고
그분에 대한 거짓 증언을 찾았다.
60 거짓 증인들이 많이 나섰지만 하나도 찾아내지 못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이 나서서 말하였다.
61 ▣ “이자가 ‘나는 하느님의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세울 수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62 ○ 대사제가 일어나 예수님께 물었다.
● “당신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소?
이자들이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어찌 된 일이오?”
63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입을 다물고 계셨다. 대사제가 말하였다.
● “내가 명령하오. ‘살아 계신 하느님 앞에서 맹세를 하고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지 밝히시오.’”
64 ○ 예수님께서 대사제에게 말씀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65 ○ 그때에 대사제가 자기 겉옷을 찢고 이렇게 말하였다.
● “이자가 하느님을 모독하였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인이 더 필요합니까?
방금 여러분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66 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 그들이 대답하였다.
▣ “그자는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67 ○ 그때에 그들은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그분을 주먹으로 쳤다.
더러는 손찌검을 하면서 말하였다.
68 ▣ “메시아야,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69 ○ 베드로는 안뜰 바깥쪽에 앉아 있었는데
하녀 하나가 그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 “당신도 저 갈릴래아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
70 ○ 베드로는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였다.
●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71 ○ 베드로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말하였다.
●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72 ○ 베드로는 맹세까지 하면서 다시 부인하였다.
●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73 ○ 조금 뒤에 거기 서 있던 이들이 베드로에게 다가와 말하였다.
▣ “당신도 그들과 한패임이 틀림없소. 당신의 말씨를 들으니 분명하오.”
74 ○ 그때에 베드로는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하기 시작하며 말하였다.
●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
○ 그러자 곧 닭이 울었다.
75 베드로는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슬피 울었다.
27, 1 아침이 되자 모든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하기로 결의한 끝에,
2 그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 총독에게 넘겼다.
3 그때에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는
그분께서 사형 선고를 받으신 것을 보고 뉘우치고서는,
그 은돈 서른 닢을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에게 돌려주면서 4 말하였다.
● “죄 없는 분을 팔아넘겨 죽게 만들었으니 나는 죄를 지었소.”
○ 그들은 말하였다.
▣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 일이다.”
5 ○ 유다는 그 은돈을 성전 안에다 내던지고 물러가서 목을 매달아 죽었다.
6 수석 사제들은 그 은돈을 거두면서 말하였다.
▣ “이것은 피 값이니 성전 금고에 넣어서는 안 되겠소.”
7 ○ 그들은 의논한 끝에
그 돈으로 옹기장이 밭을 사서 이방인들의 묘지로 쓰기로 하였다.
8 그래서 그 밭은 오늘날까지 ‘피밭’이라고 불린다.
9 그리하여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 값어치가 매겨진 이의 몸값,
이스라엘 자손들이 값어치를 매긴 사람의 몸값을 받아
10 주님께서 나에게 분부하신 대로 옹기장이 밭 값으로 내놓았다.”
11 예수님께서 총독 앞에 서셨다. 총독이 물었다.
● “당신이 유다인들의 임금이오?”
○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 “네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12 ○ 그러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당신을 고소하는 말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13 그때에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다.
● “저들이 갖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
14 ○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고소의 말에도 대답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총독은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15 축제 때마다 군중이 원하는 죄수 하나를 총독이 풀어 주는 관례가 있었다.
16 마침 그때에 예수 바라빠라는 이름난 죄수가 있었다.
17 사람들이 모여들자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내가 누구를 풀어 주기를 원하오?
예수 바라빠요 아니면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요?”
18 ○ 빌라도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기하여 자기에게 넘겼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19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는데 그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말하였다.
●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
지난밤 꿈에 내가 그 사람 때문에 큰 괴로움을 당했어요.”
20 ○ 그동안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군중을 구슬려
바라빠를 풀어 주도록 요청하고 예수님은 없애 버리자고 하였다.
21 총독이 그들에게 물었다.
● “두 사람 가운데에서 누구를 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이오?”
○ 군중이 대답하였다.
◎ “바라빠요.”
22 ○ 빌라도가 그들에게 물었다.
● “그러면 메시아라고 하는 이 예수는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
○ 군중이 모두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3 ○ 빌라도가 다시 물었다.
● “도대체 그가 무슨 나쁜 짓을 하였다는 말이오?”
○ 군중은 더욱 큰 소리로 외쳤다.
◎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24 ○ 빌라도는 더 이상 어찌할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폭동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하였다.
●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이것은 여러분의 일이오.”
25 ○ 그러자 온 백성이 대답하였다.
◎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
26 ○ 그래서 빌라도는 바라빠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채찍질하게 한 다음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넘겨주었다.
27 그때에 총독의 군사들이 예수님을 총독 관저로 데리고 가서
그분 둘레에 온 부대를 집합시킨 다음,
28 그분의 옷을 벗기고 진홍색 외투를 입혔다.
29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며 조롱하였다.
▣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30 ○ 군사들은 또 예수님께 침을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분의 머리를 때렸다.
31 그렇게 예수님을 조롱하고 나서 외투를 벗기고 그분의 겉옷을 입혔다.
그리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끌고 나갔다.
32 그들은 나가다가 시몬이라는 키레네 사람을 보고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33 이윽고 골고타 곧 ‘해골 터’라는 곳에 이르렀다.
34 그들이 쓸개즙을 섞은 포도주를 예수님께 마시라고 건넸지만,
그분께서는 맛을 보시고서는 마시려고 하지 않으셨다.
35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나서
제비를 뽑아 그분의 겉옷을 나누어 가진 다음, 36 거기에 앉아 예수님을 지켰다.
37 그들은 또 그분의 머리 위에 죄명을 붙여 놓았다.
거기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 예수다.’라고 쓰여 있었다.
38 그때에 강도 두 사람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는데,
하나는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못 박혔다.
39 지나가던 자들이 머리를 흔들어 대며 예수님을 모독하면서 40 이렇게 말하였다.
▣ “성전을 허물고 사흘 안에 다시 짓겠다는 자야, 너 자신이나 구해 보아라.
네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아라.”
41 ○ 수석 사제들도 이런 식으로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과 함께 조롱하며 말하였다.
42 ▣ “다른 이들은 구원하였으면서 자신은 구원하지 못하는군.
이스라엘의 임금님이시면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보시지.
그러면 우리가 믿을 터인데. 43 하느님을 신뢰한다고 하니,
하느님께서 저자가 마음에 드시면 지금 구해 내 보시라지.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하였으니 말이야.”
44 ○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마찬가지로 그분께 비아냥거렸다.
45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46 오후 세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부르짖으셨다.
+ “엘리 엘리 레마 사박타니?”
○ 이는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뜻이다.
47 그곳에 서 있던 자들 가운데 몇이 이 말씀을 듣고 말하였다.
▣ “이자가 엘리야를 부르네.”
48 ○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와
신 포도주에 듬뿍 적신 다음, 갈대에 꽂아 예수님께 마시게 하였다.
49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말하였다.
▣ “가만,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해 주나 봅시다.”
50 ○ 예수님께서는 다시 큰 소리로 외치시고 나서 숨을 거두셨다.
<무릎을 꿇고 잠깐 묵상한다.>
51 ○ 그러자 성전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갈래로 찢어졌다.
땅이 흔들리고 바위들이 갈라졌다.
52 무덤이 열리고 잠자던 많은 성도들의 몸이 되살아났다.
53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다음,
그들은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도성에 들어가 많은 이들에게 나타났다.
54 백인대장과 또 그와 함께 예수님을 지키던 이들이
지진과 다른 여러 가지 일들을 보고 몹시 두려워하며 말하였다.
▣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
55 ○ 거기에는 많은 여자들이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다.
56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
57 저녁때가 되자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으로서
요셉이라는 이가 왔는데, 그도 예수님의 제자였다.
58 이 사람이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님의 시신을 내 달라고 청하자,
빌라도가 내주라고 명령하였다.
59 요셉은 시신을 받아 깨끗한 아마포로 감싼 다음,
60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시고 나서,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다.
61 거기 무덤 맞은쪽에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가 앉아 있었다.
62 이튿날 곧 준비일 다음 날에
수석 사제들과 바리사이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가서 63 말하였다.
▣ “나리,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64 그러니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하십시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 내고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이 마지막 기만이 처음 것보다 더 해로울 것입니다.”
65 ○ 빌라도가 대답하였다.
● “당신들에게 경비병들이 있지 않소. 가서 재주껏 지키시오.”
66 ○ 그들은 가서 그 돌을 봉인하고
경비병들을 세워 무덤을 지키게 하였다.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는 진정으로 “호산나!”라고 외치는가?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정말 지긋지긋하고 고통스러울 때 ‘나를 위해 사는 지옥’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누군가를 찾게 됩니다. 그분이 구원자이시고 그분을 향해 외치는 소리가 “호산나!”입니다.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란 뜻입니다. 만약 아직도 ‘나’로 살아가는 것이 견딜만하다면 어떻게 호산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영화 ‘마더’(2009)에서는 장애를 지니고 살인 누명을 쓴 아들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어머니가 나옵니다. 그 어머니는 아이에게 농약이 든 박카스를 마시게 해서 아이가 그렇게 된 데 대한 매우 큰 죄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어깨 너머로 배운 침술로 돈을 벌고 아들을 위해 그 돈을 씁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갇힌 아들의 누명을 벗기려 아들의 유일한 친구도 의심하고 여러 사람에게 좋지 못한 일을 행합니다. 마치 침을 꽂으면 아픈 것처럼 타인을 아프게 하는 모기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다 결국 자기 아들이 살인을 저지른 범인임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아이를 위해 어머니는 살인까지 불사합니다.
여기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아니면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일까요? 어머니는 사실 아들을 위해 산다는 핑계로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그때의 죄책감을 갚기 위해 사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의 값을 치를 수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자신의 노예가 되는 방식입니다.
우리 안에 ‘뱀’이 한 마리씩 있습니다. ‘자아’(ego)라고 합니다. 에덴 동산의 뱀이 하와를 자기를 위해 살게 만든 것처럼 자아는 자녀 사랑까지도 이기적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무덤 안에 우리 자신을 가둡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길은 나에게 그 죄책감을 없애줄 분 뿐입니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마치 라자로를 무덤에서 불러내시듯 그분만이 우리를 자아의 무덤에서 불러내실 수 있으십니다.
한 아이가 할머니 집에 놀러 갔습니다. 그런데 새총을 거지고 놀다가 할머니가 키우시는 오리 한 마리를 죽게 했습니다. 아이는 오리를 장작 깊숙한 곳에 숨겼습니다. 저녁에 할머니가 그 아이의 여동생을 보고 설거지를 함께 하자고 합니다. 하지만 여동생은 오빠가 할 것이라 말합니다. 오빠는 자신이 왜 해야 하느냐며 따집니다. 이때 동생은 오빠의 귀에 대고 “오리를 기억해!”라고 속삭입니다. 동생이 봤던 것입니다. 여동생은 며칠 동안 모든 심부름을 “오리를 기억해!”라는 말로 오빠에게 시킵니다. 오빠는 이제 자유롭지 못하고 여동생의 노예가 됩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할머니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기로 합니다. “지금 나를 구하소서. 호산나!” 할머니는 “나도 다 알고 있었어. 네가 언제까지 동생에게 노예 생활하는지 지켜보고 있었을 뿐이야.”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이제 아이는 여동생이 아닌 자신을 용서해 준 할머니를 위해 살게 됩니다. 이것이 여동생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죄를 없다고 하시려고 아드님을 우리에게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로움의 옷을 입고 그리스도로 살아가면 됩니다. 아버지를 위해 살면 됩니다.
하지만 오리를 죽인 값에 대한 피해는 할머니가 지는 것처럼, 우리 죄에 대한 피해는 아버지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지십니다. 우리가 그 값이 얼마인지 알지 못하면 결국 죄를 용서 받고도 자유롭지 못하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녀들이 부모의 살과 피를 양식으로 먹고 자신도 부모와 같은 인간임을 믿게 되는 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야 얻게 됩니다.
한 부자가 죽을 병이 들어 아직 철이 들지 않은 아들에게 모든 유산을 물려주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 손으로 한 달 동안 일해서 돈을 벌어오면 유산을 물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아들은 친구들에게 돈을 꾸어 한 달 뒤에 자신이 번 돈이라고 거짓말하며 아버지에게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그 돈을 난롯불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리고 다시 벌어오라고 합니다. 아들은 이번에도 빌린 돈을 가져다드립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또 그것을 불에 던집니다.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반복되었습니다. 아들은 안 되겠다 싶어 정말 고생 고생하며 돈을 법니다. 처음 일을 해 본 것이라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돈을 아버지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이번에도 그 돈을 난롯불에 던졌습니다. 아들은 “아버지, 이건 제 피와 같은 돈이에요!”라며 난로에 손을 집어넣고 불타고 있는 돈을 꺼냈습니다. 이 과정에서 손에 화상까지 입습니다. 이것을 보고서야 아버지는 “이제 유산을 물려주어도 되겠다!”라고 하며 아들을 안아주었습니다. 아들은 그만큼 소중한 것을 자신에게 물려주시는 아버지를 위해 살기로 결심합니다.
우선은 그리스도께 “호산나!”라고 외쳐야 합니다. 나 자신의 노예 생활로부터 구원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엔 우리를 해방하러 우리 안에 들어오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값을 묵상해야 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고마운 사람을 위해 삽니다. 그래서 그분께 대한 감사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나를 위해서 사는 삶에서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나아감이 참다운 구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십자가의 희생으로 성체의 모양으로 우리 안에 입성하시는 그리스도께 겉옷을 벗어 깔 수 있는 감사의 마음으로 성취됩니다. 매일 미사가 진정한 구원의 예루살렘 입성이 되게 합시다.
유튜브 묵상 동영상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지난달, 서울로 강의 갔을 때 깜짝 놀랄만한 체험을 했습니다. 전철을 탔는데 마침 빈자리가 있어서 얼른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편하게 가겠구나. 오늘 정말로 운이 좋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방 안에서 읽으려고 넣어둔 책을 꺼내 읽고 있었지요. 한참을 읽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옆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깜짝 놀랐습니다.
분명히 이 자리에는 아주 젊은 긴 생머리의 여자가 앉아있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돌렸을 때 보게 된 분은 연세 지긋하신 할머니였습니다. 피곤해서 잠시 졸았던 것이 아닙니다. 책이 재미있어서 계속 깨어있었고, 또 혹시라도 내려야 할 지나칠까 봐 계속 전철역을 확인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옆자리의 사람이 바뀐 것을 몰랐습니다. 혹시 이 자매님이 변신한 것일까요?
바로 옆에 있었음에도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책에 신경 쓰고, 전철역 확인에만 신경 쓰다 보니 불과 몇 센티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은 사람의 변화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이렇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느냐에 따라, 그 무관심은 더 커지게 될 것입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무관심한 우리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 성당에 가서 미사 참석하면 자신의 의무를 다하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있는 사람이 과연 늘 우리 곁에 계신 주님의 현존을 느낄 수 있을까요? 다양한 방식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시는 주님을 볼 수 없습니다. 오로지 세상 것에만 집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바로 옆에 계신 주님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주님의 현존을 느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주님이십니다. 그렇기에 계속 주님께 집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만 우리는 기쁨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주님 수난 성지 주일’부터 ‘성토요일’까지의 한 주간을 교회는 ‘성주간’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교회의 전례 주년 중에서 가장 중요한 주간입니다. 이 주간의 시작인 오늘, 우리는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려는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합니다.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호산나’를 외치면서 열렬히 환호합니다. 그러나 이 반응이 계속되었을까요? 불과 며칠 뒤, 사람들의 반응은 180도 바뀌어서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외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예수님을 참 하느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까요? 예수님께 제대로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만 예수님을 보려고 했기 때문에, 구원자가 아닌 없애야 할 흉악범이 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과연 집중하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셨던 사랑 안에서만 제대로 주님께 집중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낙하산과 같다. 펴지 않으면 쓸 수가 없다(오스본).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