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56회
한편, 공자 이오(夷吾)는 양나라에서 양백(梁伯)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하나 얻었는데, 그 이름을 어(圉)라고 하였다. 이오는 양나라에서 편안히 살면서 밤낮으로 본국에서 변란이 일어나기를 바라며 그 기회를 틈타 귀국하려고 하였다.
이오는 헌공이 훙거했다는 소식을 듣자, 여이생에게 명하여 굴성을 습격하여 점거하게 하였다. 그때 순식은 나라 안의 일이 많다 보니 거기에 신경 쓸 여가가 없었다.
해제와 탁자가 피살되고 여러 대부들이 중이(重耳)를 영접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여이생은 이오에게 서신을 보내 알렸다. 이오는 괵사·극예와 상의하여 나라를 빼앗을 궁리를 하였다. 그런데 홀연 양요미가 이오를 영접하러 왔다. 이오는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하늘이 중이에게서 나라를 빼앗아 나에게 주는구나!”
이오는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였다. 극예가 말했다.
“중이인들 나라를 차지하는 것을 싫어할 리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가 가지 않은 것은 뭔가 의심스런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군께서는 가벼이 믿지 마십시오. 대개 나라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라 밖에서 주군을 영접하려는 것은 모두 욕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晉나라의 정사를 주관하는 신하들 중에서 이극과 비정부가 우두머리이니, 주군께서는 그들에게 많은 뇌물을 먹이십시오.
무릇 호랑이 굴에 들어가는 사람은 반드시 날카로운 무기를 갖고 들어가는 법이니, 주군께서는 입국하실 때 강국의 조력을 빌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晉의 이웃에 있는 나라 중에 秦이 가장 강하니 즉시 사자를 보내 공손한 말로 도움을 청하십시오. 秦이 승낙하면 입국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오는 극예의 말에 따라, 이극에게 분양(汾陽) 땅 백만 전(田)을, 비정부에게는 부규(負葵) 땅 70만 전을 주겠다는 서신을 써서 도안이에게 주어 먼저 돌아가 보고하게 하였다. 그리고 양요미에게 서신을 써서 주면서 秦나라에 전하게 하고, 晉나라 대부들이 공자 이오를 받들어 군주로 옹립하려 한다는 뜻을 전하게 하였다.
진목공(秦穆公)이 건숙에게 말했다.
“晉나라에서는 과인의 힘을 빌려 변란을 평정하고자 하는데, 예전에 상제께서 과인의 꿈속에서 계시한 일입니다. 과인은 중이와 이오가 모두 현명하다고 들었습니다. 과인은 둘 중 하나를 택하여 돕고자 하는데, 누가 더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제52회에, 진목공은 꿈속에 상제에게 불려가 ‘임호는 내 뜻을 받들어 진란(晉亂)을 평정하라!’는 말을 들었었다.]
건숙이 말했다.
“중이는 적나라에 있고 이오는 양나라에 있으니, 모두 아주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사자를 보내 조문하시면서 두 공자의 사람됨을 살펴보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좋소.”
목공은 공자 칩으로 하여금 먼저 중이를 조문한 다음, 이오를 조문하게 하였다.
공자 칩은 적나라로 가서 공자 중이를 만나, 秦侯의 명으로 조문한다고 하였다. 예를 마치자, 중이는 바로 물러났다. 칩은 내시로 하여금 중이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공자께서 이 기회에 귀국하시겠다면, 과군께서 군대를 동원하여 앞장서겠다고 하십니다.”
중이가 그 말을 조쇠에게 고하자, 조쇠가 말했다.
“본국에서 영접하러 왔을 때는 물리치고 외국에서 원조를 받아 돌아간다면, 비록 돌아간다 하더라도 빛나지 못할 것입니다.”
중이가 나가서 공자 칩에게 말했다.
“진후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망명하고 있는 하찮은 사람에게 조문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망명한 몸이라 답례할 보물도 없습니다. 다만 어진 분을 사귀는 것을 보물로 삼을 뿐입니다. 부군께서 돌아가셨으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찌 감히 다른 뜻을 품겠습니까?”
중이는 땅에 엎드려 크게 통곡한 다음, 공자 칩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들어갔다. 비밀스런 말은 한 마디도 없었다. 공자 칩은, 중이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음을 보고 그의 현명함을 알았다. 공자 칩은 탄식하며 떠났다.
공자 칩은 양나라로 가서 이오를 조문하였다. 예가 끝나자, 이오가 공자 칩에게 말했다.
“대부께서 군명을 받들어 이처럼 망명객을 조문해 주시니, 또 무엇을 가르쳐 주시렵니까?”
공자 칩은 이 기회를 틈타 본국으로 들어가라고 권했다. 이오가 머리 숙여 감사한 다음, 안으로 들어가 극예에게 말했다.
“秦나라에서 내가 귀국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하오.”
극예가 말했다.
“秦나라 사람들이 우리를 돕겠다는 것은 뭔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군께서는 크게 땅을 떼어 그들에게 뇌물로 주십시오.”
“크게 땅을 떼어 준다면, 우리 晉나라의 손해가 아니오?”
“주군께서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시면, 한갓 양산(梁山)의 한 필부일 뿐입니다. 晉나라 땅을 한 치라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 다른 사람의 것이 되고 말 것이니, 주군께서는 애석하지 않겠습니까?”
이오는 다시 나가 공자 칩의 손을 잡고 말했다.
“본국의 이극과 비정부가 나를 맞아들이겠다고 하여, 망명객으로서 그들에게도 적지 않은 보답을 했습니다. 秦侯의 도움을 얻어 사직을 맡게 된다면, 하서(河西)의 다섯 성을 바치겠습니다. 진후께서 동쪽으로는 괵(虢) 땅을 모두 차지하고, 남쪽으로는 화산(華山)에 이르고, 안으로는 해량(解梁)을 경계로 하도록, 그 땅을 모두 秦나라에 편입시켜 秦侯의 덕을 만분지일이라도 갚겠습니다.”
[‘하서’는 황하 서쪽을 가리킨다. 제20회에, 정나라 공자 돌(여공)이 송장공에게, 군위에 오르면 세 성을 바치겠다고 약속했지만, 후에 성을 바치지 않아 정나라와 송나라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이오는 과연 다섯 성을 진목공에게 바칠까?]
이오는 소매 속에서 문서를 내놓으며 후덕한 미소를 지었다. 공자 칩이 사양하자, 이오는 또 말했다.
“따로 황금 40일과 백옥 노리개 여섯 쌍을 드릴 터이니, 공자께서는 좌우에 나누어주십시오. 공자께서 秦侯께 잘 말씀드려 주신다면, 그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공자 칩은 주는 것을 모두 받았다.
사관이 시를 읊었다.
重耳憂親為喪親 중이는 부친을 여의고 나라를 염려하는데
夷吾利國喜津津 이오는 나라를 차지하고자 희희낙락하는구나.
但看受弔相懸處 조문객을 맞이하는 태도가 현격하게 다르니
成敗分明定兩人 두 사람 사이의 성패(成敗)가 분명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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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칩이 돌아가 진목공에게 복명하면서, 두 공자와 상견한 일을 자세히 얘기하자, 목공이 말했다.
“중이가 이오보다 훨씬 현명하군! 반드시 중이를 도와야겠다.”
공자 칩이 말했다.
“주군께서 晉侯를 돕는 뜻이, 진정 晉나라를 염려하시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천하에 명성을 드날리려 하시는 겁니까?”
“晉나라가 나와 무슨 상관있겠소? 과인은 천하에 명성을 드날리고자 하오.”
“주군께서 참으로 晉나라를 염려하신다면 현명한 자를 군위에 세우시고, 주군께서 천하에 명성을 드날리고자 하신다면 현명하지 못한 자를 세우십시오. 한 나라의 군후를 세웠다는 명성은 마찬가지이지만, 현명한 자를 세우면 우리보다 나을 것이며, 현명하지 못한 자를 세우면 우리보다 못할 것이니, 어느 쪽이 우리에게 이롭겠습니까?”
“그대의 말이 바로 과인의 폐부(肺腑)를 찔렀소.”
목공은 공손 지로 하여금 병거 3백승을 거느리고 가서 이오를 돕게 하였다.
한편, 진목공의 부인 목희(穆姬)는 晉나라 세자 신생의 여동생으로서, 어릴 때 진헌공의 차비(次妃)인 가군(賈君)의 궁에서 자랐는데, 현명하고 덕이 있었다.
[제39회에, 진헌공의 첫째 부인은 가희인데,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었다. 견융주의 질녀 호희를 아내로 맞이하여 중이를 낳았고, 소융 윤씨의 딸을 맞이하여 이오를 낳았다. 부친인 헌공의 첩인 제강을 취하여 신생을 낳았다. 가희의 여동생을 맞이하여 가군이라 하였는데 자식이 없었다. 제강은 딸을 하나 낳고 죽었고, 그 딸을 가군이 길렀다. 후에 여융의 두 딸 여희와 소희를 맞이하여, 여희는 해제를 낳고 소희는 탁자를 낳았다. 목희는 바로 제강의 딸이다.
제50회에, 진목공이 진후(晉侯)의 장녀 백희를 부인으로 맞이했는데, 그때 백리해가 잉신으로 따라가다가 도망쳤다. 그 백희가 바로 목희이다. 그때 진헌공이 태복 곽언에게 거북점을 치게 했는데, ‘秦과 晉은 대대로 장인과 사위가 되며, 秦이 晉의 군주를 세 번 정해준다,’는 점괘를 얻었다.]
목희는 공손 지가 이오를 돕는다는 소식을 듣고, 서신을 써서 이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하였다. 서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자께서 귀국하여 晉侯가 되시면, 가군을 잘 보살펴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 공자들이 변란으로 인해 국외로 망명했는데, 그들은 모두 죄가 없습니다. 제가 듣건대, ‘잎이 무성하면 뿌리도 번영한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그들을 받아들여, 나라의 울타리를 튼튼하게 해주십시오.
이오는 목희의 호의를 잃을까 두려워, 모두 명한 대로 하겠다고 답서를 보냈다.
그때, 제환공은 晉나라에 변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제후들과 회합하여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친히 고량(高梁) 땅으로 갔다. 거기서 또 秦軍이 이미 출동했고, 주혜왕(周惠王) 역시 대부 왕자 당(黨)으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 晉나라로 가게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환공은 공손 습붕을 보내 그들과 함께 이오를 돕게 하였다. 여이생도 굴성에서부터 출발하여 합세하였다. 제환공은 제나라로 돌아갔다.
[제48회에, 주혜왕이 붕어하고 주양왕(周襄王)이 즉위하였고, 주양왕 원년에 제환공이 규구에서 회맹하였다. 진헌공은 규구의 회맹에 참석하러 가다가 도중에 회맹이 끝났음을 듣고 돌아와 훙거하였다. 따라서 여기서 주혜왕이 군대를 보냈다는 것은 착오이다. 혜왕이 아니라 양왕이다.]
이극과 비정부는 국구(國舅) 호돌에게 군위 계승의 의식을 주관해 달라고 부탁하고, 어가를 준비하여 대신들을 거느리고 晉나라 국경으로 가서 이오를 영접하였다. 이오는 도성인 강성(絳城)으로 들어와 즉위하였다. 그가 진혜공(晉惠公)이다. 혜공은 즉위한 그 해를 원년으로 삼았다. 진혜공 원년이 곧 주양왕 2년이다.
[호돌은, 진헌공의 둘째 부인 호희의 아버지이므로 국구라 칭했다. 호희는 중이의 생모이니, 호돌은 중이의 외할아버지이다.]
晉나라 사람들은 평소 중이의 현명함을 사모하여 그가 군위에 오르기를 바랐었는데, 중이가 아닌 이오가 군위에 오르자 크게 실망하였다.
진혜공은 즉위하자, 아들 어(圉)를 세자로 세웠다. 호돌과 괵사를 상대부로, 여이생과 극예를 중대부로, 도안이를 하대부로 삼았다. 그 나머지 나라 안에 있던 신하들은 모두 예전의 관직을 그대로 두었다.
혜공은 양요미를 왕자 당과 함께 주왕실로 보내고, 한간(韓簡)을 습붕과 함께 제나라로 보내 자신을 도와준 은덕에 감사를 표하도록 하였다. 다만 공손 지는 혜공이 약속한 하서의 다섯 성을 받아가기 위해 아직 晉나라에 머물러 있었다.
혜공은 성을 주고 싶지 않아, 신하들을 모아 의논하였다. 괵사가 여이생에게 눈짓을 하자, 여이생이 말했다.
“주군께서 秦나라에 뇌물을 주기로 한 것은 아직 입국하지 않았을 때였으므로, 그때는 晉나라가 주군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이미 입국하였으니, 晉나라는 주군의 나라입니다. 秦나라에 성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秦나라가 주군을 어찌하겠습니까?”
이극이 말했다.
“주군께서 이제 막 나라를 얻으셨는데, 이웃의 강한 나라에 신의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 성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극예가 말했다.
“다섯 성을 버리는 것은 晉나라의 절반을 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秦나라 군대가 강하다 하더라도 우리에게 다섯 성을 빼앗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군께서 백전(百戰)을 하신 끝에 비로소 우리 땅으로 만든 것인데, 포기할 수 없습니다.”
이극이 말했다.
“선군께서 어렵게 얻은 땅인 줄 이미 알았다면, 어찌하여 그런 약속을 하셨습니까? 약속하고서도 주지 않으면, 秦나라를 노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선군께서 곡옥에 나라를 세우셨을 때 땅은 아주 작았습니다. 다만 정사에 힘쓰고 소국들을 겸병하여 대국을 이루신 것입니다. 주군께서도 정사를 잘 다스리시고 이웃나라와 좋은 관계를 유지한다면, 다섯 성이 없는 것을 어찌 근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극예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극의 말은 秦나라 때문이 아니라, 분양 땅 백만 전을 주군께서 주지 않을까 염려하여 秦나라를 예로 든 것일 뿐입니다!”
[앞서 이오는 이극에게 분양 땅 백만 전을, 비정부에게는 부규 땅 70만 전을 주겠다고 약속했었다.]
비정부가 이극을 팔로 툭 치자, 이극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혜공이 말했다.
“주지 않으면 신의를 잃고, 주면 우리가 약해지니, 성 한두 개를 주는 것이 어떻겠소?”
여이생이 말했다.
“성 한두 개를 준다 하더라도 어차피 전적인 신의를 얻지는 못하며, 도리어 秦나라를 도발하게 될 것입니다. 아예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혜공은 여이생으로 하여금 秦나라에 보낼 국서를 쓰게 하였다.
애초에 이오는 하서의 다섯 성을 군후께 바치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이제 다행히 입국하여 사직을 지키게 되어, 이오는 군후의 은혜를 생각하고 약속을 실천하려 하였습니다. 하지만 대신들이 모두 ‘땅은 선군의 땅인데, 주군께서 망명 중에 어찌 함부로 타인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라고 말하면서 반대하고 있습니다. 과인은 대신들과 논쟁을 벌였지만,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군후께서 기한을 조금 늦춰 주시면, 과인은 그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혜공이 물었다.
“누가 과인을 위해 秦나라에 가겠소?”
비정부가 자원하자, 혜공은 허락하였다.
원래 혜공은 입국하려고 했을 때, 비정부에게도 부규 땅 70만 전을 주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지금 秦나라에 성도 주지 않겠다고 하는 마당에, 이극과 비정부에게 약속한 땅을 주겠는가? 비정부는 비록 입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원한을 품고서, 이번 기회에 秦나라에 사신을 가서 秦侯에게 호소하려고 작정했던 것이다.
비정부는 공손 지를 따라 秦나라로 가서 목공을 알현하고 국서를 바쳤다. 목공은 국서를 읽고 나서, 책상을 치면서 크게 노하여 말했다.
“과인이 본래 이오는 군주감이 아님을 알고 있었는데, 이제 과연 그 도적놈에게 속았도다!”
목공이 비정부를 참수하려 하자, 공손 지가 아뢰었다.
“이 일은 비정부의 죄가 아닙니다. 주군께서는 그를 용서하십시오!”
목공은 아직 노기가 다 식지 않은 채 물었다.
“누가 이오로 하여금 과인을 배신하게 하였는가? 과인은 그놈을 잡아와서 한칼에 베어버릴 것이다!”
비정부가 말했다.
“군후께서는 좌우를 물리쳐 주십시오. 신이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목공은 안색이 약간 부드러워지면서, 좌우 사람들은 주렴 밖으로 물러나게 하고 비정부에게 다가가 물었다. 비정부가 대답했다.
“晉나라의 대부들은 군후의 은덕에 감동하지 않은 자가 없어, 모두 군후께 성을 바치자고 하였습니다. 다만 여이생과 극예 두 사람이 가운데서 가로막았습니다. 군후께서 후한 예물과 좋은 말로 그 두 사람을 부르시고, 두 사람이 오면 죽여 버리십시오. 그리고서 군후께서 중이를 도와주시면, 신과 이극이 이오를 축출하여 군후를 위해 내응하겠습니다. 성공하면 대대로 군후를 섬길 것이니, 어떻습니까?”
목공이 말했다.
“그 계책이 묘하도다! 그것이 참으로 과인의 본심이었다.”
그리하여 대부 냉지(冷至)로 하여금 비정부를 따라 예물을 가지고 晉나라로 가서, 여이생과극예를 유인해 오게 하여 죽이려고 하였다.
첫댓글 암튼중국사람들은 특별난 사람들이 많은 나라 입니다
사람이많으니 인재도 많은듯
지금이 비시 7세기 정도일텐데, 비시403년부터 시작되는
전국시대를 거쳐 진나라 통일 비시 221년까지 아직도
많이 남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