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피리투스>1권이 나온지 정확하게 두달만에 나온 2권. 꽤 빠른 페이스다. 너무 늦으면 전권에서의 궁금증이 반감되는 만큼, 독자의 입장에서는 이와 같은 발빠른 후속편의 출시는 고맙기 그지없다. 물론 나중에 한꺼번에 읽을 사람들이야 상관없겠지만.
완결편은 대략 내년 1월쯤에 나오려나? 2권을 다읽고 난 지금은 두달이라는 시간도 꽤 길게 느껴진다.
<폭풍의 탑>의 작가 민소영의 판타지 소설. 해양판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표지의 분위기에서 보듯이 바다와 모험이 주가 되는 이야기이다. 제목이기도 한 "스피리투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난파선의 이름. 정령이 머무는 곳, 영혼이 머무는 곳이라는 그 의미처럼, 스스로의 의지로 움직이는 배들의 존재가 바로 이 소설에서 특별한 향이 나게 하는 향신료다.
나라를 빼앗기고 방황하는 나단의 곁에 이 배들이 계속해서 머무르게 된 사연이 공개된다. 수수께끼의 철갑선 일곱난쟁이의 위용과, 사라진 마인 그룬자드도 모습을 드러낸다. 2권은 1권에 비해 확실히 이야기에 속도가 붙었다. 함선들 뿐만 아니라, 1권에서 주구장창 쌓아놓았던 의문들이 2권에서는 상당부분 해소된다. 마인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르고, 마인 나단과 주인공 카힐의 비밀, 사라졌던 카힐의 배다른 형 쟝의 귀환(?), 공포의 상징인 제국 황제의 새로운 면모, 그리고 보너스로 카힐의 가슴아픈 첫사랑의 에피소드까지.
현실세계가 아닌만큼 수수께끼의 재료는 넘치고 넘친다. 교묘하게 얽힌 인간관계와 스토리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반전들은 어지간한 미스터리 소설 이상. 꼬일데로 꼬여 있으면서도 감탄스러울 만큼 자연스러운 전후사정과 인과관계는, <스피리투스>의 스토리가 집필해 가면서 떠오르는 대로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플롯으로 저자의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던 것임을 짐작케 한다. 이만큼까지 치밀하게 끌어와놓고 용두사미격의 결말로 끝맺음 할 거라고는 도저히 예상이 안된다. 이야기 내내 많은 의문점들이 해소가 되기는 하지만, 그 의문들은 또다른 의문을 낳아놓고 사라진다. 2권의 끝에서는 결국 다시 새로운 수수께끼를 싣고 재출항한다. 2권은, 3권을 정리가 아닌 새로운 모험의 시작으로 만드는 그러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수수께끼만 있느냐? 판타지 소설인만큼 등장인물들의 매력도 빼놓을 수 없다. 악의 제왕으로만 생각하던 황제의 의외의 매력이라던가, 기존 인물들의 인물상이 보다 확실해지는 것을 포함해서 인간 드라마로서도 상당히 흥미진진하다. 카힐과 비앙카의 미래의 커플(이 아닐수가 없다고 생각한다)의 입씨름도 여전하고, 무엇보다도 역시 새로운 등장인물, 그룬자드에 대한 기대감을 지울수가 없다. 다시 생각해보면 2권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분량 안에서 상당히 밀도있는 세계를 구현 해 놓았다.
주옥같은 대사들이 많이 있지만 마지막으로 특별히 마음에 남는 대사 하나.
"그 누구라도 다른 사람 몫의 슬픔은 감당할 수 없는 법이야.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그많은 고통과 희생이, 자기 것이 되는 순간 얼마나 무겁고 참혹한 것인지 깨닫게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그 순간에 상대방이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초라한지를, 그리고 자신이 그걸 진심으로 하지도 바라지도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고 말아." (308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