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 산업의 위기? '강한섭의 쟁점'을 반론한다 | ||
[필름 2.0 2005-01-31 20:20] | ||
지난 FILM2.0에 실린 '강한섭의 한국영화 쟁점'에 대한 반론이 제기됐다. 한국 영화 산업의 신화와 영화 정책의 실책을 지적한 강한섭의 주장을 논박하는 한국영화 연구자 조준형의 반론을 싣는다. 지난 FILM 2.0에 실린 강한섭의 한국영화 쟁점 시리즈를 흥미롭게 읽었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해박함으로 남들과 다른 관점에서 선정적인 예언을 자신 있게 내놓는 그의 글쓰기는 언제나 독자를 매료시킨다. 하지만 재미와는 별개로 '한국영화 붐은 착시현상'과 '글로벌 충무로'를 만들어라'는 논지 자체만 놓고 본다면 상당 부분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실'에 있어서 심각하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 많이 눈에 띄었다. 이 글은 강한섭 선생이 주장한 한국 영화 산업 시스템과 정책 비판에 대해 다소 이의를 제기하고자 쓰여졌다. 강한섭 선생이 제시하는 주요 논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한국 영화 산업 규모는 비디오 시장의 축소를 감안할 때, 알려진 바와 달리 축소됐다.
2. 비디오 시장의 축소는 김대중 정권의 카드 남발 정책으로 인한 극장 덤핑 관행의 결과다.
3. 1999년부터 이루어진 영화진흥금고를 통한 공적 자금 투입은 한국 영화 산업의 거품을 일으켰다. 즉 한국 영화 산업의 붐은 인위적인 정책의 결과이다.
4. 한국 영화 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묘하게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러한 주장들은 필자가 보기에 사실과 다르거나, 비현실적으로 과장되었거나, 시간적 순서에 있어 오류가 있는 해석 위에 기반한 것으로 판단된다. 반론1 : 비디오 시장의 축소로 한국 영화 산업 전체 규모는 축소됐다? 강한섭 선생은 현재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가 커졌다고 인식하는 것은 비디오 시장의 축소를 감안하지 않은 '신화'라고 보고 있다. 즉 90년대 중반 한국영화 시장 규모는 박스오피스 2천5백억 원, 비디오시장 1조 2천억 원(도매 2천억 원, 소매 1조 원), 합쳐 1조 4천5백억 원이었는데, 현재는 박스오피스 8천억 원과 비디오시장 5천억 원(도매 2천억 원, 소매 3천억 원)을 합쳐서 1조 3천억 원에 그치고 있으니, 실제 규모는 축소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단 이 통계가 정확한지 의문이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간한 <영화연감>에 따르면 1996년 비디오 시장의 전체 규모는 9천4백억 원이다. 강한섭 선생의 통계로 치자면 도매 2천5백억 원 소매 7천억 원 정도로 보인다(필자가 96년 통계를 인용한 것은 신빙성 있는 최초 자료가 96년이기 때문일 뿐 어떤 의도는 없다). 2003년의 경우에는 6천3백90억 원으로 대략 도매 1천1백억 원, 소매 5천3백억 원 수준이 됐다. 여기에 DVD 도매가 1천억 원이 추가될 수 있다. 그 경우 도매 2천1백억 원에 소매 5천3백억 원을 합해 총 7천4백억 원 수준이다. 두 번째는 비디오 시장에 소매 시장을 포함시키는 것이 정당한가이다. 사실 소매 시장은 거의 대여점 매출로 구성돼 있는데 이는 영화 산업 주체에게는 큰 의미가 없다. 영업망과 점포를 운영하고, 비디오 점주의 이익으로 돌아가는 돈이기 때문이다. 비디오 대여점들이 테이프를 구매하는 비용은 도매 매출로 반영된다. 요컨대 비디오 소매 매출은 한국 영화 산업의 붐을 논할 때 별 상관이 없으며 규모에서 빠지는 것이 옳다고 본다. 따라서 비디오 매출 축소를 근거로 영화 산업 전체의 규모 축소를 논하는 강한섭 선생의 주장에는 빈틈이 있어 보인다. 세 번째가 핵심인데, 필자는 강한섭 선생이 한국 영화 산업 붐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묻고 싶다. 산업이나 정책 관계자들, 혹은 강한섭 선생 자신조차도 한국 영화 산업 붐이라는 표현을 한국영화 제작과 흥행을 염두에 두고 쓴다. 예컨대 한국 영화 산업 전체 규모가 10조 원이라 하더라도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1%라면 그것은 붐이 아닌 것이다. 따라서 시장 규모에 대한 논의는 외화를 포함한 전체 시장이 아니라 한국 영화 시장으로 한정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산업 시스템과 이에 대한 정책을 비판하는 강한섭 선생의 논지에도 맞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한섭 선생은 여기서 한국영화, 외국영화, 자체 비디오용 영화, 대여 시장까지 모두 합친 전체 규모를 놓고 계산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제 한국 영화 산업에 의미 있는 수치는 무엇일까? 1996년까지 한국영화 관객은 1천만 명을 넘지 못했다(97년도에야 1천만 명을 넘어선다). 현재 입장료로 계산하더라도 7백억 원이 못되는 시장이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현재는? 2003년에 총 관객 수 6천3백만 명을 넘어섰다. 입장료 상승을 감안하지 않더라도 시장 규모가 4천4백10억 원으로 6.3배는 커진 셈이다. 한국영화 비디오 시장은 어떠한가? 90년대 중반 당시의 도매 시장 규모를 대략 2천5백억 원 수준으로 본다 하더라도 그 기간 동안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했던 외화와 교육, 건강, 에로 비디오 등 자체 비디오 제작물을 빼면 순수 한국영화의 비디오 매출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안타깝게도 한국영화 비디오 매출 통계는 어디서도 구할 수 없었다). 따라서 강한섭 선생의 한국 영화 시장 축소론은 초점이 어긋나 있다. 그리고 그가 놓친 것은 한국영화 제작 주체에게 환입되는 실제 이익, 즉 편당 비디오 판권료 규모가 절대 금액으로서 과거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다소 높다는 사실이다. 물론 당시 제작비 대비 비디오 판권료의 비중은 오늘날과 비교할 바가 못 되고, 비디오 시장의 비중이 축소된 점에 대해서는 필자 역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당시 한국영화의 비디오 시장 규모가 오늘날보다 더 컸다는(그것도 몇 배나 컸다는) 주장은 적어도 한국 영화 산업 주체들에게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주장일 것이다. 게다가 비디오 시장에서 차지하는 한국영화 점유율이 이전보다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포함한다면 더욱 그러하다. 반론 2 : 비디오 시장 축소는 김대중 정권의 카드 남발 정책으로 인한 극장 덤핑 관행의 결과다?
극장 할인 관행 주범으로 김대중 정부의 신용 카드 남발 정책을 드는 것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실제 극장 할인의 주 동력은 신용 카드가 아닌 통신사 할인 카드였으며, 신용 카드는 부수적인 역할만을 했기 때문이다. 신용 카드는 애초 현장 할인이 아닌 예매 할인으로 시작을 했고, 이와 같은 정책은 예매에 익숙하지 않은 한국영화 관객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현매가 가능해진 이후라 할지라도, 할인을 선호하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고등학생, 대학생 그룹은 (아무리 카드가 남발되는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신용 카드를 익숙하게 사용하는 계층이 아니었다. 실제 필자가 2003년경 극장 관계자들과 면담을 하였을 때 그들은 통신사 카드의 할인 폐지에 대해서는 걱정했지만, 신용 카드의 할인 폐지에 대해선 크게 우려하지 않았다. 2003년 신용 카드가 극장에서 대거 철시했음에도 극장 관객이 오히려 큰 폭으로 증가한 걸 기억해 보라. 따라서 이 주장은 현실을 오해하고 있거나, 김대중 정부의 실정을 공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현실을 오도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반론 3 : 한국영화 붐이 인위적인 정책의 소산인가?
두 번째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공약 사항에 따라 영화진흥금고 1천7백억 원이 확충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한섭 선생의 주장과 달리 이 돈은 1999년 한꺼번에 뿌려진 것이 아니며, 2003년까지 순차적으로 금고에 들어왔다. 예컨대 1999년 유입된 금고액은 1백억 원에 불과했으며, 이 해에는 아예 집행되지도 않았다. 2000년에 3백27억 원 수준(물권/판권 담보 융자 1백80억 원, 투자 조합 1백억 원, 기타 제작비 지원 47억 원)이 산업에 융자 혹은 투자(지원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됐고, 2001년에는 그나마 1백40억 원(투자 57억 원, 융자 53억 원, 제작비 지원 33.5억 원??) 정도만이 산업에 융자 혹은 투자됐다. 2002년엔 투자조합 출자 50억 원, 물권담보 융자 1백억 원, 예술영화 개발비 지원으로 10억 원이 지출됐다. 그나마 지출액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물권 담보 융자액은 부동산 등을 담보로 자금을 대여하는 것으로, 이자만 조금 더 지불하면 은행에서도 융통 가능한 자금이다. 즉 물권 담보 융자를 시장에 대한 전면적인 개입이라 보기는 힘들다. 다음으로 영진위가 출범해 영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발표했던 당시의 정책적 개입이 온당하지 않았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강한섭 선생은 그때가 마치 한국 영화 산업이 대단한 가능성을 보여 주었던 시기처럼 설명하며, 정책적 개입이 필요 없었던 때라고 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주장은 사후적인 주장에 불과하며, 그 해석에 있어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사실 영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이 발표됐던 1999년 초는(고안되었던 1998년은 더욱) 1997년 IMF를 전후로 1990년대 초 이후 한국 영화 산업의 든든한 자본주였던 대기업이 모두 퇴조한 직후이며, 따라서 한국 영화 산업 자본이 일시적인 공백을 맞았던 시기다. 이 공백을 메운 것이 일신창투, 국민기술금융, 산은캐피탈, 미래창투 등과 같은 금융 자본이었다. 여기에 토종 투자 배급사인 시네마서비스가 있었다(CJ 엔터테인먼트는 1999년초까지는 한국영화 투자에 있어서 주요한 주체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 몇 개 회사로선 영화 산업에 소요되는 자본을 감당하기 역부족이었다. 이는 IMF가 발생한 1997년에 60편이었던 제작 편수가 98년 43편, 99년 42편으로 급감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금융 자본의 문제는 언제든지 영화 산업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불안정성에 있었다. 사실 일신창투를 제외한 금융 자본은 영화 산업에 일시적인 관심을 가지고 투자했을 뿐이다(실제로 이들 회사들은 2~3년을 넘기지 못하고 철수했다). 하드웨어의 최고치인 극장 사업에까지 진출했다가 일시에 발을 뺀 대기업의 행태를 경험한 영화계로서는 페이퍼와 현금 유동성만으로 존재하는 금융 자본에 대해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고안된 것이 투자 조합이라는 형식이다. 5년 동안 유지하도록 규정된 투자조합은 한국 영화 산업 자본을 안정화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강한섭 선생이 말하는 “1999~2004 시스템”의 근간이 되었다. 그리고 중소기업진흥청(중기청) 자금과 영화진흥금고 자금은 돈비를 뿌린 것이 아니라 투자 조합을 위한 일종의 지렛대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오히려 영화진흥위원회는 처음부터 투자 조합에 출자하는 데 있어 우선 손실 충당을 거부하는 등 대단히 보수적으로 접근하였을 뿐 아니라, 출자액 역시 2000년 100억 원, 2001년 57억 원, 2002년 50억 원 등으로 산업 성장에 따라 탄력적으로 줄여나갔으며, 그나마 중기청은 2002년 이후 신규 투자를 중단했다. 뿐만 아니라 2002년 하반기에 출범한 제2기 영진위는 산업이 이미 어느 정도 안정됐다고 보고, 시장 실패 지점인 인프라 구축이나 R&D, 문화 다양성 확보 쪽으로 정책의 방향타를 돌린 상태이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대단한 거품을 만들어냈다는 정책적 개입은 애초부터 존재 근거가 박약했으며, ‘국고가 바닥날 때까지 한국영화의 붐은 지속될 것이’라는 강한섭 선생의 비아냥은 현실에 기초해 있지 않은 주장이다. 반론 4 : 한국 영화 산업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있으며, 이는 위기를 불러올 것이다?
무엇이 할리우드 못지않다는 말일까? 조명, 색채, 편집, 공간, 사운드 등 기술적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 소위 ‘때깔’이다. <쉬리>의 성공은 때깔의 성공이었고, 때깔로 화려해진 주인공들의 라이프스타일의 성공이었다. 여기에 민족주의(한국적 현실을 소재로 했다는 점과 한국에서도 이런 영화가 나왔으니 밀어주자는 양쪽 의미 모두에서)가 가세한 것이다. <쉬리> 이후 영화들의 기술적 완성도는 <쉬리>를 능가하거나 적어도 <쉬리> 수준은 돼야 했다. 따라서 최소한의 기술적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는 비용은 필수적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향후 흥행작(평균작이 아니라 흥행 성공작이다!) 평균이 몇 년 안에 30~50만 명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강한섭 선생의 주장에 대하여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솔직히 믿지는 않는다). 30-50만 명 수준이면 극장에서 벌어들이는 투자사 매출을 아무리 높게 잡아도 9억 원에서 15억 원 사이다. 결국 나머지 매출을 감안하더라도 제작비가 12억 원에서 20억 원이 넘으면 무조건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하게 된다는 주장이 된다(현재 극장 매출에 대한 부가 판권 매출의 비중은 높게 잡아야 7:3이다). 결국 현재 흥행작 비용의 3분의 1 수준으로 제작비를 다운시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 비용으로는최소한의 기술적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스타나 흥행 감독, CG를 쓰거나 30회차 이상의 촬영은 아예 생각하지도 말라는 주문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 영화 산업을 포기하라고 충고하는 것이 낫다. 모두가 김기덕, 홍상수 감독이 되지 않는 이상,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제작비의 모든 요소들을 일괄적으로 2분의 1 내지 3분의 1로 줄이면 되지 않겠냐고? 예산을 아무리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회차를 줄여도 고정 비용은 나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스탭 인건비와 같은 부분은 오히려 훨씬 상승시켜야 하는 상황이다. 차라리 전체 영화 산업 종사자들이 단합해 최대한 제작비 상승(특히 마케팅비 상승)을 억제하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일 것이다. 이상, 강한섭 선생의 주장에 대하여 필자가 알고 있는 사실과 다른 사실들을 지적했다. 혹여 무지의 소치로 글을 쓰는 가운데 오류를 범한 부분이 있다면 미리 사과드린다. 그리고 이를 지적해 주신다면 겸허히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다만 ‘통계를 맹신하는’, ‘혹은 통계에 속아넘어간 연구자’ 라는 식의 비판은 미리 사양하겠다. 필자의 통계 인용은 강한섭 선생이 사용한 통계를 지적하는 차원에서 최소한만 반영한 것일 뿐, 통계를 맹신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