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문무의 조선사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조선사 일반 이야기 게시판 조선사[朝鮮史]의 죽령[竹嶺]과 조령[鳥嶺]은 대륙[大陸]의 남방[南方] 지역
환국고려 추천 3 조회 903 15.03.02 20:55 댓글 10
게시글 본문내용
 
다음검색
댓글
  • 15.03.03 20:01

    첫댓글 죽령과 조령의 동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곳이 "신라"였다>는 말은, <토착민들이나 그곳에 터를 잡고 살아왔던 사람들은 조선 역사의 진실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이군요. 놀라운 일입니다. 솔직히 직접 대륙을 세세히 답사해 보지 못하고, 고전에만 의존하여 조선의 역사를 해설하고 있는 것에 항상 답답함을 느켰는데, 님께서 그곳의 지형지리나 그곳 사람들의 말까지 전해주니, 답답했던 마음이 시원합니다. 수백번 고전을 가지고 논하는 것보다는 한번이라도 직접 현장을 보면서 고전과 지세와 방향등을 비교, 검토해보면 무엇이 옳고, 잘못된 것인지를 금새 파악할 수 있겠지요. 절절히, 애정어린 조선사의 진실을 찾는 글, 감사합니다.

  • 15.03.03 20:08

    조선사의 진실을 찾아보려는 많은 역사카페가 있습니다만, 대부분이 '고전'이나 '한글번역서'를 가지고 진실을 찾으려하니, 많은 시행착오가 발생됩니다. 고전(대륙+조선)과 현지답사를 병행하는 연구과정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군요. "환국고려"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이미 마쳤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조선사 연구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많은 조선사의 진실을 찾아, 조선사의 진실에 목말라하고 있는 회원님들을 위해서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댁내 평안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15.03.03 22:20

    동사일록의 저자인 김지남이 조령(지금의 강서성과 복건성 사이)을 지나갔다면 대마도는 현 대만이 유력하군요...만약 대만을 거처서 일본(?)에 갔다면 현 필리핀과 그 이하의 인도네시아가 이 역사속의 일본(?)이 확실해 질수 있겠읍니다.

  • 15.03.03 22:35

    '아침밥을 먹고 용추에 도착하여 쉬었다. 정사가 이석여를 시켜 폭포암위에 시를 썼다.'
    또 동사일기에 '공중에 달린 폭포가 어림잡아 10 여길이 넘고....' 또 '반석이 마치 체대와 같으며...'등등
    용추폭포를 상세하게 묘사했는데 ......님께서는 직접 보셨는지요...? 폭포암위에 시를썼다 했는데 그것이 남아 있다면 결정적 증거가 될수 있읍니다만 ... 누가 일부러 지우지 않았다면 바위에 새긴 글이니 남아 있겠죠....?

  • 15.03.03 22:45

    반석이 체대(砌臺)와 같았다 하니 아마도 네모 반듯한 바위일 것입니다. 또 석항(石缸)이라고 구체적으로 묘사 했으니 확인 하기는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지금의 조령 가까이)에는 이런 지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작성자 15.03.04 06:30

    중국의 남방 지역에는, 옛 선조들의 전통을 변함없이 이어가고 있는 종사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이러한 분들을 찾아서 . 그분들의 역사에 관한 말씀을 들어야 우리 역사의 진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그 지역 분들에게 왜 八道의 도자를, 都자로 쓰느냐고 물어 봤습니다. 그 분들의 말씀이, 都나 道나 같은 뜻으로 생각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데, 훗날 사서를 보면서 받는 느낌은, 고려나 조선에서 지방을 다스리는 관료들은, 侯라는 존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말 이었습니다. 문무 선생님의 노고에 항상 감사를 드립니다. 댁내에 두루 평안 하시고, 항상 강건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작성자 15.03.04 06:39

    직접 보지않고 어찌 그 내용을 알 수 있겠습니까 ? 지금 중국에서 역사에 관련된 석벽이라든가, 석비라든가, 이에 관련된 모든 역사 유적은, 중국에 맞추어 개조가 된지 이미 오래 됩니다. 그러한 것이 남아 있다면 반가운 일이겠으나,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산간오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종사들에는, 우리의 역사와 관련된 현판들이 가끔 남아 있습니다.
    맑은 영혼님의 댁내에 두루 평안 하시고, 항상 만복이 가득 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 15.03.08 15:08

    임진왜란때 왜군은 무엇때문에 그높고 험한 조령을 넘어야 했을까요? 오늘날 상해 인근이 부산이었다고보면 굳이 험준한 조령을 넘어 가야할 까닭이 없을텐데요. 부산포에 상륙해서 곧바로 평탄한 길을 타고 경성으로 빠르게 진군하면 될텐데요.

  • 작성자 15.03.09 04:51

    임진왜란사의 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새로 조명 되어야하고, 역사서의 고증을 통하여, 역사의 사실대로 밝혀져야 합니다. 상해 인근이 부산 이었다는 역사서의 자료가 있으시면, 이에 대한 사료를 올려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조선사의 기록으로 본다면, 지금의 대만이, 조선사의 대마도일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청나라 시대의 대만은, 그들이 말하는 남만 지역의 계룡산 지역 입니다. 명나라 마지막 황조에 충성을 다한 이정국의 유지를 찾았는데, 그 것을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의 광동 광서라는 것은, 옮겨온 지명 일 뿐 입니다. 임진왜란사의 진실은, 앞으로 많은 사실들이 분명히 밝혀 지리라 봅니다.

  • 16.10.25 01:5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수고많으십니다.본문의 내용상 상요시와 포성시라고 하는 도시는 현재의 상라오시와 푸청현같습니다만, 그 다음구절 준령의 넘어가는 남쪽 지역의 작은 읍은 푸청현에서 장산시로 넘어가는 길목 중간의 입팔도진을 말씀하시는지요? (강성강산시입팔도진(浙江省江山市廿八都镇))
    또 궁금한 것이 있는데 또 죽림고도 서쪽에서 포양호로 흘러가는 강은 신장(Xin Jiang,Hsin River,信江)을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죽림고도는 어디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