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선인장을 보며
임병식 rbs1144@daum.net
얼마 전까지 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렸다. 한낮의 더위도 사위어 가고 조석으로 소슬한 기운이 느껴질 때도 좀 더 기다려 보자고 인내심을 발휘했다. 그런데 시월도 막바지에 이르자 나무들이 단풍이 들고 이내 이파리를 떨구는 것을 보고서 기대를 접기에 이르렀다.
무엇을 보고 말하느냐면 집에서 기르는 손바닥선인장을 이름이다. 이것은 집에 들어온 후 해마다 꽃을 피워왔다. 꽃이 피면 오래가지는 않지만 노란 것이 볼만 했다. 한데 이것이 금년에는 해거리를 하여 건너뛰고 말았다. 원인은 짐작이 간다.
지난겨울은 추위가 생각보다 심했던 것이다. 느지막이 찾아온 한파가 거의 한 달 가까이 이어졌다. 그렇지만 나는 선인장을 실내로 들어놓지 않았다. 매년 그리 해 놓아도 별 탈이 없었음으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녀석은 별안간 급습한 한파를 이겨내지 못하고 골병이든 모양이다.
맥을 못 추고 축 늘어진 것을 나중에 발견했으나 그때는 이미 늦은 때였다. 그런데도 녀석은 봄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기력을 차리고 빳빳하게 곤두섰다. 그래서 예전처럼 꽃을 피우리라고 확신했다. 그런데 계절이 늦은 봄을 지나 초여름이 되고, 한낮의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를 지나 늦가을로 접어드는 데도 꽃을 피울 기척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때문에 많이 섭섭하고 허전하다. 이것을 보면 선인장도 주위환경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어디서나 한곳을 고수하며 묵묵히 잘 자라나는 것 같아도 환경이 바뀌면 근근이 살아내기도 힘겨워하는 것 같다.
식물이 이러한데 주위환경에 몇 배나 민감한 사람은 어떨 것인가.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고향 옆 마을에는 초등학교 한해 선배인 벗이 살고 있었다. 그는 머리가 좋아 공부를 잘했는데 이상하게도 무슨 영문인지 취업도 하지 않고 고향에 눌러 살았다.
그는 나와 한 살 차이지만 교류는 거의 없었다. 마을이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성격이 맞지 않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흔히 벗을 하는 나이로, 상팔(上八) 하팔(下八)이라고 한다. 위로 여덟 살, 이래로 여덟 살은 벗을 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더 하여 우스갯말로 객지 벗은 스무 살, 노름 벗은 서른 살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튼 사회 관습이 그런데, 그는 나와 자치동갑에 지나지 않았지만 데면데면하고 살았다. 그렇게 지낸 어느 날이다. 그때가 스무 살 남짓이던 때로 하루는 뜻밖의 불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마을 인근에서 외지인과 시비가 붙어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가 연루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다 무엇보다 먼저 떠오른 것은 머리가 좋은 사람이 아깝게 됐다는 생각이 스쳤다.
나중 들으니 평소에 행실이 불량한 친구와 어울려 다니다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이었다. 오래 징역은 살지 않았지만 호적에 전과가 오른 것은 물론, 붉은 줄이 쳐졌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좋지 않는 환경에다 친구를 잘못 만난 탓이다.
이에 비하면 반대로 귀감이 되는 분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던 때, 한음(漢陰) 이덕형(李德馨 1561-1613)과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좋은 벗으로서 서로 힘이 되어 주었다. 전에 오는 말에 의하면 백사는 젊어서 학문연마에 다소 등한했다고 한다, 그런데 매사에 모범생인 한음을 만난 것이다.
두 분은 나이가 다섯 살 차이가 났으나 망년지우(忘年之友)로 지냈다고 한다. 그리고 선조임금이 피난 시에는 함께 호종을 했으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병조판서와 영의정을 두루 지냈다. 두 분의 끈끈한 우정이 시끄러운 조정에서 국사를 처리하는데 크게 힘이 되어 주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역학(易學)을 하는 분의 말을 들으면 이런 주위 환경 말고도 운명적으로 어쩌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그런 사람을 일러 우물 정(井)에 돌멩이가 빠지는( .)는 퐁당퐁자(조어) 운명인데 흔히 말하여 날벼락을 맞은 운수이다.
그런 것은 화물차 뒤를 따르다 떨어진 낙하물체에 즉사를 하거나, 외진 산길에서 낙엽에 미끄러져 손을 짚었는데 독사에 물려 죽는 경우라 할 것이다.
실제로도 몇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성실한 공무원이 늦게 까지 일하고 집에 들어오다가 현관에 이르렀을 때 옥상에서 누군가가 던지는 돌에 맞아 죽은 일이 있었다. 그런 날벼락은 역사 속에서도 나타난다. 우의정 강순이 예종이 친국하는 국문장에 있다가 남이장군이,
“저이(강순)가 바로 신과 반역을 모의한 한패입니다.”
아뢰는 바람에 날벼락을 맞은 것이다. 남이 장군이 생각하기를 마땅히 나서서 무고함을 말해주어야 할 사람이 입을 다물고 모른 척 하니 괘씸한 생각에 그런 말을 해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날벼락이 아닌가. 그는 순조 때에 와서야 신원이 복원되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그런 일은 살다가 벼락을 맞을 경우나 상정할 수 있지만, 그러나 환경문제는 늘 가까이 있는 문제로 부단히 신경 써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변화하는 날씨, 주위에서 마주하는 대인관계, 기피할 인물과 가까이 할 사람 구분, 이런 것은 자기 의지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려가며 지켜갈 충분한 역량의 문제가 아닌가 한다. 문득, 꽃을 피우지 못하고 그만 둔 손바닥선인장을 보면서 이러저러한 일을 생각해 본다. (2023)
첫댓글 환경이 불리하여 꽃을 피우지 못한 손바닥선인장과 불우한 운을 겪게 된 친구의 처지가 미묘한 감상을 일으킵니다 오성과 한음처럼 서로 좋은 벗을 만난다는 건 인생의 큰 복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모든 것은 자기자신의 업장이 지어낸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문득 해마다 피던 손바닥선인장이 지난 겨울 혹독한 추위로 고사직전에 이르고 꽃을 피우지 못한 것을 보고, 이런 저런 환경의 영향으로 사람의 인생이 바뀌는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을 한번 써봤습니다.
2023년 수필세계 겨울호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