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심리학이 경제학을 만나다”에서--야마모토 미토시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 하는 존재다"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 (Leon Festinger)가 한 말이다. 레온 페스팅거는 1957년 <예언이 틀렸을 때 When prophecy fails>라는 논문에서 인지부조화를 언급했다.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에 모순된 생각들이 대립을 일으킬 때, 자신의 믿음에 맞추어 적절히 행동을 바꾸기보다는 행동에 따라 믿음을 조장하는 경향이 있다"-야마모토 미토시
실패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핑계거리를 찾는 게 보편적인 인간의 습성이라는 것이다. 인지부조화, 즉 인간의 지각에 있어서 조화롭지 못하다는 말은 지각하는 것을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것, 현실과 현실을 받아들이는 인간 심리의 괴리를 말한다. 증권시장에 대입해보면 금세 이해할 수 있다. 주식을 사서 주가가 내리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손절매할 생각보다는 '좀 있으면 오를 거야, 지금 작전세력들이 트릭을 쓰는 거야' 라고 핑계를 댄다. 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것을 깨끗이 인정하기 싫은 것이다.
인지부조화 현상은 합리적 행동을 훼방 놓는다. 기존 주류 경제학 사전에는 인지부조화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인간은 매사에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호모 이코노미스들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살아서 돌아다니는 존재인 인간은 "제한적 합리성"을 가진 존재라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합리적인 행동 보다는 비합리적 행동을 하는 경향이 더 많다. 행동경제학자들은 한술 더 떠서 "인간은 일관되고 예측 가능하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한다." 라고 자신감 있게 말한다. 비합리적 행동이 일관성 있게 일어난다면 앞으로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할 것인지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어서 주류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가정 자체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시장평균 수익률을 이기기 힘든 이유?
주식시장에서 기관투자자들이 운용하는 펀드들 수익률이 발표되곤 한다. 시장 평균 수익률을 놓고 볼 때 이를 능가하는 펀드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오죽했으면 인덱스 펀드가 나왔겠는가? 시장 수익률 그대로 따라가기만 해도 성공이라는 시각이 인덱스 펀드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컴퓨터를 잘하는 몇 사람을 데려다 인덱스를 가장 잘 구현하는 종목 바스켓을 만드는 짓거리를 하면서 자산운용사라고 명패를 걸면 된다.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그런데 인덱스 펀드 역시 시장 평균 수익률을 정확히 반영하지는 못한다. 왜냐면 수수료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산운용사 펀드 매니저들이 시장 수익률 보다 낮다고 형편없는 운용자라며 욕을 해대는 것은 지나친 비난이다. 주식은 오르거나 내릴 확률이 정확히 반반이다. 다시 말해서 50% 확률이다. 시장 평균 수익률 이상을 낼 확률도 50%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50%는 평균수익률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거래비용인 수수료가 있기 때문에 시장 평균 이상 수익을 내기는 더욱 어렵다. 조사에 따르면 수수료를 감안하고 시장평균을 이기는 펀드는 전체의 15% 정도라고 한다.
마중물 효과 (PUMP EFFECT)
시골에서 펌프로 물을 길어낼 때는 항상 먼저 물을 부어서 찌걱찌걱 해야 밑에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처음 넣는 물이 마중물 이다. 그런데 마중물을 단지 한 바가지만 부었는데도 그 뒤로 엄청나게 물을 퍼 올릴 수 있다. 작은 것을 투입했는데 엄청 큰 효과를 보는 것도 마중물 효과로 볼 수 있겠다. 뉴딜정책도 마중물 정책이나 마찬가지다. 소비 진작을 위해 정부가 돈을 약간 부었더니 소비가 연쇄적으로 살아난다면 이건 마중물 효과를 노린 것이다.
행동경제학에서 마중물은 공돈(거저 생긴 돈)심리와 연관된다. 땀 흘려 일해 번 돈과 투기나 노름으로 번 돈의 쓰임새가 다르다. 같은 액수의 돈임에도 불구하고 투기나 노름으로 번 돈은 헤프게 쓰는 경향이 있다. 합리적 인간이라면 이런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실제 인간은 노름으로 딴 돈을 다시 고스란히 노름판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탈탈 털릴 때까지 노름에 빠진다.
앵커링 (ANCHORING)
앵커(ANCHOR)는 닺 이다. 배가 닺을 내리면 닻줄의 범위 내에서만 배가 움직인다. 인간의 마음속에 닺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나요? 텔레비전에서 이쁜 아나운서가 '채녈 고정'이라고 말하면 웃기시네 하고 자신 있게 말한다. 아나운서는 시청자에게 자기 채널에 닺을 내리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1 만원인 값어치밖에 없는 물건을 2만원으로 올리고 40% 할인 딱지를 붙이면 사람들은 웬 횡재, 라며 12000원에 기꺼이 구입한다. 상인이 닺을 2만원에 내렸기 때문이다. 별 희한한 닺도 있다. 압구정동에 있는 모 백화점에서 어떤 물건을 5만원에 표 딱지를 붙였는데 그곳에 사는 유한부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더란다. 대부분 제품이 그만그만한 것이어서 상인이 그렇게 붙인 건데. 팔리지 않자 그 상인은 좀 있다가 20만원으로 표찰을 다시 섰다. 쳐다보지도 않던 고객들이 물건이 동이 날 정도로 사갔단다. 그 상인은 유한부인들의 허영심에 닺을 내린 것이다. 비싸면 무조건 좋다는 심리와 '나는 과시적으로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명제를 무한한 기쁨으로 실천하는 쇼스타인 베블런의 '과시소비'를 몸소 실천하면서 삶의 존재 의의를 찾는 계급들의 욕구를 영특한 상인은 한껏 자극한 것이다.
심리학과 경제학이 학제적으로 얽히는 과정이 재미있게 진행 중이다. 주류경제학의 눈으로 볼 때 납득하기 힘든 인간현상들이 행동경제학이라는 렌즈를 들이대면 선명하게 보인다. 이 책 <심리학이 경제학을 만나다>는 쉽게 쓴 행동경제학 입문서다. 누구라도 읽을 만큼 아기자기하고 쉽다.
마지막으로 네덜란드 튤립버블에 대해서 한마디. 가장 비싼 황제튤립 한 뿌리 가격이 무려 평균연봉의 20배, 혹은 집 한 채 값이 나갔단다. 왜 그렇게 비쌌을까? 물론 투기적 광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은 튤립 구근을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시세차익을 노린데 있다. 그러니까 튤립 구근 한 뿌리가 그렇게 비싸게 매매되다니 하며 혀를 끌끌 차면 안 된다. 그 당시 구근 매매자들은 지금으로 치면 CDS 같은 리스크 높은 금융상품 투기자들인 것이다. 상품의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주식처럼 시세차익을 남기기 위한 거래만 있을 뿐이다. 만일 이러한 광기에서 벗어나려면 튤립 구근의 본질 가치를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도껏 하면서 그만둘 시점을 알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튤립 구근 투기나 마찬가지인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석유선물 시장 같은 경우 석유 한 드럼통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실려 유럽으로 가는 동안 아마도 수천 드럼통 규모의 거래가 이루어진다. 석유는 사용가치로서 거래가 아닌 금융상품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투기적 거래를 빼고 논할 수 없는 지경에 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