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유가족들을 만난 것은 작년 12월이었습니다. 159개의 우주를 잃고 무너진 가슴으로 이리저리 헤매던 가족들이 광주시민사회에 손을 내밀었던 것입니다.
별보다 찬란햇던 159명의 꽃다운 생명이 스러진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왜 이런 사고가 벌어졌는지 묻고 또 물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실도, 행정안전부도, 경찰도, 검찰도 궝도 아무도 책임있는 답변을 해주지 않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커녕 가족들이 허망하게 떠나버린 자식들을 마음껏 애도할 수조차 없게 했습니다.
헛헛하고 지친 가슴으로 찾아온 유가족들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가족들은 슬픔과 분노는 큰 비를 품은 먹구름처럼 무거웠고 힘겨워보였지요.
제가 활동하고 있는 진보연대와 광주의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몇 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았습니다.
참사 49일을 기해 광주시민추모문화제를 열었고 광주전남 유가족들의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참사 희생자의 가족들, 친구들에게는 분명 낯설고 힘든 자리였을 눈물의 기자회견에 이어 광주의 여러 시민단체, 광주 여성회를 포함한 여성단체, 종교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회 등 광주시민사회와의 간담회, 서울 분향소 방문, 참사 이후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거리선전, 진상규명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를 담은 서명운동 등 유가족들이 목소리를 내기 위한 노력들이 이어졌습니다.
진상규명을 위한 진실버스를 가족들과 함께 맞이했고 특히 천주교 광주대교구 옥현진 대주교님, 오월어머니들과의 만남에 가족들은 큰 위로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후 5.18전야제, 시민난장 참여, 전남대 민주동우회 등 때로는 길거리에서, 때로는 정부여당을 향해 국민의힘 당사 앞에서 가족들이 목소리를 낼수 있는 자리라면 늘 함께 했습니다.
특히 지난 6월 시작해 서구, 광산구, 북구, 남구, 동구까지 광주 전역을 갇고 또 걸으며 비바람, 폭염을 이기며 이어진 스무번의 광주시민릴레이걷기는 매번매번이 연대의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매주 달려와 함께 해주었던 수녀님들, 혹여 부족한 걸음이 될까 단체별로 일정을 꼼꼼하게 챙겨서 참여해준 여성단체들, 특히 지역의 상황과 걷기 코스 등 준비에 큰 도움을 줬던 진보당 각 지역의 당원들, 다른 일정이 겹치면 어떻게든 들르기라도 해서 얼굴이라도 보고 갔던 참가자 등
가족들만도 좋고 1명이라도 함께 걸어주면 좋겠다며 소소하게 시작했기에 집회신고조차 하지 않있고 심지어 앰프도 챙기지 않았는데
너무나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시면서
준비해야할일은 점점 더 많아졌지만
기족들이 힘을 얻는 것이 눈에 보이니 보람도 느껴지고 땡볕이나 빗속에서 한 시간 걷는 일이 전혀 힘들지 않았습니다.
함께 걷는 걸음이 주는 힘을 저만 아니라 가족들도 느꼈을 테지요.
이 자리를 빌어 함께 발걸음 모아주셨던 광주여성회 회원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만으로도 가누기 힘들었을 가족들은 거리에서 싸워야 하는 상황에 많이 힘들어하셨습니다.
충장로 우체국 앞에서 피켓과 유인물을 들고 있다가 아무런 관심없이 지나는 시민들의 모습에 몰래 숨어서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를 뒤늦게 듣고 함께 울었던 시간, 서명을 하러 와서 유가족들에게 응원해주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에 울컥했던 순간, 떠난 동생 생각으로 일상을 이어가는 자체가 괴롭고 힘들어서 직장까지 그만두고 서울 분향소로 향했던 오빠의 마음, 집안에 혼자 있으면 슬픔과 분노를 가눌 수 없어 매일 집 주변에서 피켓을 들고 하염없이 돌아다닌다는 아버지의 사연, 혼자도 버겁지만 충격으로 몸과 마음이 다친 남은 자식을 지켜야겠다며 함께하지 못해 미안하다던 어머니의 눈물...
참사 1주기를 맞으며
다시 한번 돌아보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지난 1년, 우리는 이렇게 함께 했습니다.
가족들은 슬픔과 분노를 딛고 일어섰고 많은 시민들을 만나며 함께 싸워야 이룰 수 있다는 투쟁과 연대를 배우면서 나날이 강해졌습니다. 반드시 사랑하는 가족들의 죽음의 진실을 밝히고 명예를 회복할 것이라는 희망과 다짐을 함께 만들어가면 좋겠습니다.
글 - 하애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