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동 부르스
87년 만리동의 여름은 뜨거웠다. 아니 어느 촌놈에겐 아리도록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닌답시고 만리동 재래시장 앞 골목 안 3평 남짓한 퀴퀴한 자취방은 숨통을 조여 오는 답답한 공간이지만 촌놈에게는 유일한 휴식처이자 놀이터였다.
그런 자취방 주인 놈은 소싯적 시골에서 제법 공부를 했던 놈이었다.
고향에서는 누구누구 자식 놈이 공부를 잘해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닌다하는 자랑거리였겠지만 속사정은 그런 것이 아닌 밥 세끼를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부모님께 감사해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인문계를 진학할 경제적인 여유가 없었기에 혈혈단신 서울로 상경해 1년을 재수하고 재봉공장에서 알바를 하며 고등학교에 입학, 주독야경을 벗 삼아 대학진학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생활이 전부였던 놈이다.
그런 촌놈은 서울이란 눈 뜨고 코 베어간다는 큰 동네에서 자기 삶의 나침반 방향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곳으로 간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흘러가는 시간들 속에 뒤엉켜 아등바등 살았다.
‘응답하라 1988’이란 드라마 이야기 속에서 발버둥을 치며 청춘이란 노랫말의 뜻을 읊조리는 꿈 많은 애어른이기도 했다.
그런 촌놈의 이름은 아형이다.
아형은 고등학교에 입학해 나이 어린 서울 샌님들과 친구를 먹고 침 뱉는 학교 밖 골칫거리 놈들에겐 두려움의 대상이었고 노안이 무기가 되어 길가 버스정류장에서 팔던 까치담배를 주저 없이 사 달라 부탁하는 형과 같은 존재였다.
어느날 촌놈이 당시 유행하던 말대가리 형의 노래가사에 미쳐 주절대고 있는 어느 주말 오후였다.
아형은 항상 해 왔던 것처럼 자율학습을 땡땡이 치고 자취방에서 알바 출근 전 재충전을 위해 뒹굴뒹굴 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났을 때 어디선가 후다닥 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아형아~ 아형아~ 집에 있어???” 무언가 다급한 목소리인 듯 했지만 야간 알바를 위해 주린 배를 채우고 슬슬 찾아오는 잠을 못 이겨 비몽사몽하며 아형이 말한다.
“누구냐~”
“응 나 건식인데 대건이 놈에게 급한 일이 생겨서...”
여기서 아형을 찾아온 건식이는 남대문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외아들인 자기 자식 잘되어라 날이면 날마다 학교 담임에게 촌지를 상납하고 치맛바람의 진수를 보여주시던 어머니가 계셨다.
그때까지 건식이로 인해 아형의 인생 나침반이 뒤바뀌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뭔 일인데?”
“응 대건이가 술 한 잔 먹고 여자 친구가 만나주지 않는다고 천호동에 찾아갔다가 독서실 총무 놈에게 잔뜩 맞고 붙잡혀 있데”
“왜 붙잡혀 있는데?”
“독서실 집기를 부셨나봐 부모님한테 연락하라고 했는데 연락되면 뒈지니까 석필이 집으로 전화가 왔어”
듣는 순간 친구 놈들이 아형이 나서서 사태수습을 해달라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나 오늘 알바 하는 곳 물량이 많아 오늘까지 끝내야 돼서 어디 못가”
“그래서 저번 날 너 일하던 곳 놀러갔던 애들 보고 대신 도와 달라 부탁해놨는데 그 애들 보내고 같이 가면 안 될까? 지금 애들 공원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문제를 가지고 왜 나한테 그러는데?”
“대건이 놈이 은서 불러 달라 하니까 총무 놈이 어떤 놈들을 떼거리로 데려와서 대건이 놈이 털리고 그놈들이 부셔놓은 기물 값도 덤터기 써서 보상할 때까지 붙잡아 놓고 있다네..”
여기서 문제가 된 대건이 놈은 순간모면의 달인으로 잔머리의 대가였다.
약육강식의 생리를 일찍이 터득했던 놈이라 부모님 몰래 삥땅 친 돈을 상납하며 실업계였던 상고 일진 놈들과 남영동 훅 당구장에서 터를 잡고 지가 무슨 일진이라도 되는 냥 무용담에 빠져 거드름을 피웠던 선무당 같은 놈이다.
그런 놈이 붙잡혀 있다는 건 훅 당구장 놈들에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어쩔 수 없이 동네 불알친구 놈들에게 연락을 왔다는 이야기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는 무조건 하나다’라는 구호 아래 푸른 돌맹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우정을 핑계로 청춘을 불사르며 놀거리를 찾던 그런 동네 불알친구 놈들이 위기에 처한 놈을 구한다는 의협심으로 집단행동을 하기로 했나보다.
그런 상황에서 앞장서 돌격대장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아형이 필요했던 것 같다.
“아 씨발 몰라~ 그 새낀 왜 또 사고 쳐서 사람 피곤하게 하냐! 원래 대건이 놈 훅 놈들하고 어울리느라 우리 모임 나오지 않아서 정리하려 했던 거 아냐?”
“그건 맞는데 그래도 동네 친구 놈이 타지 놈들에게 맞았다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자나~ 좀 도와주라~”
이런 말을 하는 건식이놈의 말 속엔 아형을 데려가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는 애절함이 있었다.
사실은 그랬다. 재수를 하여 친구 아닌 친구를 먹게 된 학교 친구들과 동네친구들 모임이었던 푸른 돌맹이들은 시골에서 유학 온 까무잡잡한 피부 빛에 노안인 아형을 유심히 지켜봤었다.
잘못 건드리면 일이 날 것 같은 무뚝뚝함과 다부진 체격에 재수생인 아형은 항상 점심 도시락을 싸오지 않았다.
그런 아형의 모습을 보던 시골에서 부모님과 함께 서울로 이사 온 성식이란 놈이 같이 먹자며 도시락을 덤으로 싸와 내밀던 순간부터 푸른 돌맹이 놈들과 아형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푸른 돌맹이 놈들이 여름방학 때 아형의 고향 쪽으로 놀러가 봤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아형이
허락한 이유로 웃지 못 할 사연이 그의 인생을 바꿔 버렸다.
사연인 즉, 이래저래 놀러갈 여비를 마련하려 전전긍긍하던 건식이 놈의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건식이 어머니가 주변 친구 부모님들께 수소문해서 알아낸 사실을 학교 선생에게 일러 바쳤다.
그 후 몇몇 패거리들은 영문도 모른 체 마치 조직폭력배가 경찰서에 끌려가듯 학생부 사무실로 불려갔다.
물론 그 일행 속에 아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잠시 후 푸른 돌 일행을 일렬로 세워놓은 학생부 주임이자 담임이 들어왔다.
“이 놈들이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허튼 짓만 골라서 해!! 모두 엎드려!!”
이때 몽둥이로 담금질을 하는 선생님께 이유나 알고 매를 맞고 싶다며 억울함을 표시했던 아형의 말 한마디가 상황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지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도 몰랐다.
“어라~ 이 자식 봐라”
촌지 인 마이 포켓의 진수이자 일찍 사립학교의 전형적인 치맛바람의 단 맛을 본 담임은 손목에 감고 있던 시계를 풀어 책상위에 올려놓는다.
“너 같은 놈 때문에 뼈 빠지게 고생해서 자식새끼들 잘되라 고생하는 부모님들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거야! 어디서 되 바라지도 않은 촌놈이 재수해서 우리학교에 들어와서는..”
흥분한 담임은 마치 무하마드 알리의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는 말을 흉내 내 듯 주먹을 훅 내질렀고 그 주먹에 아형의 입술은 찢어졌다.
잠시 정적이 흐른 뒤 아형의 입술을 타고 뚝뚝 떨어지는 시뻘건 선혈에 너 나 할 것 없이 놀란 표정들이다.
이와는 상관없이 아형은 입안에서 뱉어낸 하얀 이빨 조각이 준비 없이 무참히 당한 상흔이었음을 뒤 늦게 알아 버리고 돌이키지 못 할 말을 내뱉는다.
“에이~ 씨발~”
그 말 이후 학생부 사무실은 마치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무언가에 숙연해지고 아형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학생부 사무실 문짝을 발로 걷어차고 나가 버렸다.
학생부 사건이 발생하고 난 후 아형은 일주일간 학교에 등교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건의 진실을 푸른 돌멩이 놈들의 해명으로 밝혀지고 담임은 아형의 며칠 자취방까지 찾아와 사과를 했고 아형은 다시 교실에 얼굴을 내비쳤다.
그런 아형에겐 대학 진학의 꿈을 가지고 재수를 한 것이 시골에서 유학을 왔다는 족쇄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그 사건으로 인해 아형은 SKY(서울대,연대,고대 이니셜)를 많이 보낸다는 사립명문학교에서 담임의 잘못은 뒷전이고 괜한 일거리 만들어 낸 관찰대상 중 한 문제 학생이 되어 있었다.
학생부에서 어이없게 깨져버린 한조각의 이빨이 그에겐 생각하기도 싫은 원망과 설움이 되어 청개구리의 밀알을 싹틔우는 결과를 만들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런 사건이후 푸른 돌맹이 놈들에게 아형은 젊은 날의 우상이 되어 있었다.
“누가 간다는데?”
“응 성식이하고 민수”
“그 애들 오토바이 탈 줄도 모르자나?”
남대문 새벽의류도매시장에 일명 시야기,나나인찌,큐큐(의류상점에서 주문받은 옷에 단추 구멍을 내는 일과 단추를 박는 일 그리고 다림질을 하는 일을 호칭하던 업계 용어)라는 공정을 통해 새벽시장이 열리기 전에 오토바이로 배송하는 일이 아형의 주된 알바 업무였다.
일명 빠라 빠라 빰~의 맛을 보고 싶어 했던 푸른 돌맹이 놈들 몇몇 중에 성식이놈과 민수 놈이 아형이 일하던 공장에 와서 일을 도와주고 오토바이에 탄 적이 있었다.
“아냐 민수가 자기 형 꺼 오토바이 타본 적 있데”
“참나.. 옷을 배달해 줄 상가가 어디 있는 줄도 모르자나?”
“우리가 지금 가서 12시안에 막차 타면 시간 안에 올수 있으니까 괜찮을거야 빨리가자”
곰곰이 생각하던 아형은 ‘지금이 오후 6시니까 8시쯤 도착해서 이래저래 한판 치루고 나면..’
늦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아형은 옷을 주섬주섬 입고 문밖을 나섰다.
아형과 푸른 돌맹이 놈들이 도착한 곳은 한참 개발이 진행 중인 강동구 명일동 어느 주택가 인근이다.
간간히 신축상가들이 보였지만 옛날 주택가를 재개발하는 동네인지라 만리동 높은 지대에 빽빽하게 지어진 집들을 평지위로 끌어내린 형상이나 다름이 없었다.
한참 후 버스에서 내려 뚜벅 뚜벅 걸어가는 돌맹이 무리들의 모습은 마치 전쟁을 앞두고 사즉필생의 결의로 다져진 모습들이다.
물론 그 앞에 아형이 제일 먼저 걸어가고 있다.
“어디야? 아직 멀었어?”
“응 거의 다 온 거 같은데 파란간판 명동슈퍼 지나서 오른쪽 세 번째 건물이라고 했으니까 저 앞에 슈퍼가 보이니까 거의 다 온 것 같아”라며 건식이가 말한다.
“대건이 놈 부모님은 아직도 모르신데?”
“응 아직 모르시는 것 같아”
“은서 그 계집애 꼭 얼굴값 한다고 꼴값 떨 더만 대건이 놈이 훅 넘어 간걸 너희들은 알고 있었냐?”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슈퍼를 지나 골목에 들어서자 한눈에 봐도 대건이를 붙잡아 놓은 일당으로 보이는 몇몇 놈들이 어느 건물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보인다.
독서실 총무 놈은 대학교 시험을 두 번이나 떨어져 삼수를 하며 독서실 관리를 한다 했으니 얼추 21살쯤으로 예상된다.
그러면 그 친구 놈들인지 선후배 놈들인지는 몰라도 아형과 푸른 돌맹이 놈들보다 나이가 분명 위임에는 틀림없다.
그렇게 생각되는 무리가 저렇게 버젓이 길 위에서 담배를 뻐끔 거리고 있다.
“재 네들 아냐?”
“음 그런 거 같아” 하는 소리와 함께 웅성거리던 놈들이 갑자기 조용해짐을 느꼈다.
어쩌면 학교화장실이나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골목길에 숨어 뻐끔거림이 사나이의 모습이라 착각하며 지내던 놈들에겐 혹 위압감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잠시 정적이 흐른다. 뚜벅뚜벅 걸어가던 아형과 일행은 대건이 놈이 붙잡혀 있는 건물로 보이는 곳에 멈춰 걸려있는 간판을 바라본다.
“상일 독서실이라고 했지?”라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맞은편 쪽에 서 있던 한 놈이 다가온다.
“너희들 뭐야?”라는 말이 무섭게 아형이 주머니에서 담배하나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인다.
그리고는 “느그들은 뭐여?”하며 당장이라도 여차하면 전투태세 모드에 돌입 하려는 듯 굵직한 남도 사투리를 내뱉자 뒤를 따르던 영돈이 말한다.
“친구 놈이 여기 어느 사람들한테 맞아서 붙잡혀 있다고 연락이 와서 왔는데 혹시 아나요?”라며 산적같이 생긴 덩치와 맞지 않게 말을 뱉는다.
“아 씨팔 설마 이 사람들이 그 새끼들이것냐 얼른 들어가서 총무 그 놈이나 불러와”라고 하자 상대편 무리 중에 뒤에 서있던 한 놈이 앞으로 나온다.
“너희들이 대건이라는 놈 친구들이냐?” 묻자 아형이 대답한다.
“니가 보기에 내가 대건이 놈 친구같이 보이냐?”
말을 내뱉는 아형은 금방이라도 선방을 날릴 듯 물었던 담배를 내뱉고 고개를 추켜세우며 슬슬 기싸움을 시작한다.
“대건이 어디 있냐?”
“뭐야 이런 어린놈이 말하는 것 봐라” 하며 아형에게 다가온다.
일촉즉발의 상황에 영돈이가 둘 사이에 끼어든다.
“아~ 이 분은 아는 형님이세요. 얼추 나이가 비슷하실 거 같은데..”
“몇 살인데?”
묻는 상대 놈들의 질문에 어이가 없다는 듯 아형이 말한다.
“어이~ 같이 나이 쳐 먹어가는 처지에 나이 값 타령 말고 대건이 놈하고 총무 놈 좀 데려와 나이 알고 싶으면 동사무소 가서 알아보고 이 일하고 상관없으면 빠져!”
그러자 상대 무리 중에 곰같이 덩치가 큰 놈이 나서며 "이 새끼 봐라"하며 아형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 든다.
그 순간 아형 옆에 있던 영돈이가 어깨를 들이밀며 그놈의 다리를 붙잡아 넘어뜨린다.
드디어 용쟁호투 결전이 시작되었다.
영돈이는 곰 같은 상대 놈을 씨름기술로 넘어뜨렸고 하늘로 치솟는 아형의 몸뚱아리는 영돈이와 약속이나 한 듯 그대로 몸의 무게를 실어 넘어진 곰 같은 놈의 명치와 인중을 정확히 겨냥해 주먹 끝과 무릎 끝에 날을 세워 그대로 내리 꽂는다.
“헉!!! 으 ~~~~” 딱 두 마디였다.
그 뒤로 곰 같던 놈은 바르르 떨며 온몸을 땅바닥에 전을 부치듯 몇 번을 뒤집으며 개 거품을 문다.
순간 상황에 어찌 손을 써보지도 못한 상대 놈들은 당황한 듯 주춤거린다.
이에 승기를 잡았다 생각한 아형은 한 놈만 죽이자 라는 마음으로 불쌍한 곰탱이의 옆구리를 몇 차례 더 가격한다.
“이런 씨부랄 놈 새끼가 디질라고 환장했나 너 씨팔 오늘 염라대왕 똥 냄새 좀 맡아봐라” 하며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 한다.
바로 그때 “아형 안돼~!!!” 하며 몸을 날려 아형의 손을 잡아채는 영돈
동네 체육관에서 아형과 함께 운동할 때 씨름을 한 탓에 워낙 힘이 좋은 놈인지라 한번 붙잡히면 빠져 나올 수 없는 영돈이다.
영돈의 힘을 아는 아형은 붙잡힌 손이 아파 적당히 잡고 놔주길 바랐는데 예상하지 못할 영돈이에 행동에 “뭐.. 뭐... 뭐...뭐여???” 당황스럽다는 멘트와 함께 피식 웃으며 몸을 일으킨다.
"어이~ 거기 너! 올라가서 대건이 하고 총무 놈 데려와 그리고 은서 계집애도 있으면 같이 데려와“ 하는 순간 건물 안에 있던 놈들 서너 놈이 나온다.
“뭐야~~ 뭐야~~”
뛰쳐나온 놈들은 상황 파악을 한 듯 구경꾼들 마냥 현장을 떠나지는 못하고 그냥 가만히 서 있다.
“어이~ 너네 들도 이 자리 벗어나면 뒈질 줄 알아”하며 쓰러진 곰탱이 놈과 뒤엉켰을 때 시멘트 바닥에 쓸렸는지 오른팔 주먹에 고여 있는 선혈을 훈장 삼아 아형은 담배를 입에 다시 문다.
“건식이 너 저기 있는 각목하나 가져오고 석환이 너는 슈퍼 가서 소주 좀 사와”
“이 씨벌 놈들이 우리 애들을 건들어! 느그들은 오늘 다 디졌응께 두고 봐”
이미 전장의 승기는 만리동 푸른돌맹이 놈들에게 넘어간 듯 했다.
잠시 후 바짝 쫄은 모습으로 내려오는 총무를 금방 알아 챈 아형은 석환이가 사온 소주 한 병을 들이킨다.
“야 !! 니가 총무여? 너 일루와”하며 멱살을 잡자 반항하는 놈이 반항한다. 그러자 아형은 다리를 걷어 차 버렸고 총무는 추풍낙엽처럼 힘없이 넘어간다.
그런 모습을 지켜 본 아형은 친구 놈이 이런 놈에게 맞았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혔다.
이어 뒤 따라 나오는 대건이 놈을 한심한 듯 바라본 후 총무 놈 멱살을 잡고 어두운 골목으로 데려간다.
“야! 너 네 중에 나잇값 하는 놈 하나 따라와 대건이 너도 일루와” 한 손엔 소주병을 거꾸로 잡으니 여차하면 병 빵 한번 날릴 기세에 주눅 든 일행 중 하나가 따라온다.
건물 모퉁이를 돌아 골목 안으로 들어선 일행들
“나 대건이 형인데 무슨 이유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냐?”
“실은 밑에서 은서 비명소리가 들려서 무슨 일인가 싶어 밑으로 내려갔어요. 그런데 저 친구가 은서 팔을 붙잡고 있어서 누구냐고 물으니 다짜고짜로 니 가 뭔데 상관이냐고 하길래 화가 나서...”
“그래서 애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놨냐?”라며 아형은 금방이라도 한 대 날릴 기세로 손에 들고 있던 병을 들었다 놨다 한다.
“제가 그런 건 아니고 술을 먹은 거 같아 학생이 이게 무슨 짓이냐 했더니 다짜고짜로 주먹을 날리길래 피하고 친구들을 불렀어요”
“그러면 집단으로 애 하나를 털었단 이야기여? 이런 젖 같은 새끼 보소. 은서 그 계집애는 지금 어디 있어?”
“아까 그런 일이 있은 후 무섭다고 해서 집에 데려다 줬어요”
“캬~ 명일동에 정의의 기사하나 나셨고마잉.. 이유불문하고 껌 팔아 쳐 먹었다 치고 느그들이 애 하나 잡들이 한만큼 한번 디지게 맞아봐”
아형이 주먹을 날리려 하자 어디서 또 나타났는지 영돈이가 불쑥 아형을 붙잡고 또 말린다.
누르기 한판승에 다지기 한판으로 싸움판을 마무리 하려던 아형의 의지와 상관없이 눈치 없는 영돈이의 행동에 아형은 더 이상 액션을 취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상황이 종료되고 아형은 명일동 패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 치료비 명목으로 받아낸 후 돌맹이 일행들을 데리고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난다.
하지만 예상을 빗나간 문제의 또 다른 시작은 그때부터였다.
아형이 알바를 하고 있는 봉제공장은 저녁 일곱 시부터 시작하여 새벽 한시에 남대문시장 거래처에 납품을 끝으로 영업이 종료 된다.
빨리 서둘러 막차를 타면 납품시간까지 도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아형의 계획은 푸른돌맹이 놈들이 순진함에 여지없이 깨졌다.
상대에게 받은 돈을 아형이 총무 놈을 데리고 갔을 때 다른 일행에게 돌맹이 놈들이 다시 돌려 준거다.
물론 대건이 놈도 독서실에서 파손된 집기 값으로 주머니에 있던 돈을 모두 털렸다.
결국은 지하철이 없는 동네에서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던 버스를 탈 돈이 모두 없었다.
상황수습을 위해 다시 독서실로 가기도 뭐하고 해서 부랴부랴 푸른돌맹이 놈들 주머니를 털어보라하니 달랑 천 칠백 원이 전부다.
이게 무슨 낙동강 오리가 알 낳다 똥 싸는 상황인가?
잠시 말없이 지켜보던 아형 “내가 너희들 때문에 내가 명에 못 살거따”며 현실을 인정한 듯 건식이에게 남은 돈으로 소주 한 병 사오라 한다.
명일동에서 만리동까지는 얼추 거리로 오십리 길 그러니 약 20Km정도다.
젊은 놈들이 걸어가도 얼추 여섯 시간정도 걸리는 거리임에도 푸른 돌맹이 놈들은 서로 바라보며 히죽 거린다.
소주로 나팔 불며 밤새워 걸어간다는 것 자체를 또 추억이라 생각하는 모양새다.
그 후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국토 대장정을 한다는 마음으로 천호대교를 건너며 ‘긴~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라는 인권이 형아에 노래를 시작한다.
그들 세대의 우상이었던 말대가리 형님에 노래를 주구장창 부르며 승리를 자축 하듯 뚜벅뚜벅 만리동을 향해 일당들은 밤을 새우며 그들은 걸어간다.
푸른 돌맹이들이 걸어가는 발자국 뒤로 비춰지는 네온 불빛들은 아스라이 멀어져가는 꼴통들에 우정을 담아 다리 밑을 유유히 흐르는 강물 위에 띄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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