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는 풍성한 산야초와 흐드러져 산을 불태우는 철쭉꽃, 여름에는 울울창창 원시림 사이로 구구절절 산천어와 같이 흐르는 열두당골 물, 가을이면 현란하지도 않고 잔잔하게 물들어 가는 단풍, 겨울엔 무섭도록 쏟아지는 폭설, 마을과 마을들은 눈 때문에 몇일씩 고립되기 일쑤여서 겨울동안은 아예 생필품을 넉넉히 준비해 놓고 설피 없이는 못 산다는 별천지. 강원도 삼척시 하장면 중봉리와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 경계에 솟은 중봉산(中峰山·1283.5m)이다. 바람이 분다. 살을 에는 칼바람이 분다. 탱탱 얼은 소나무도 우지끈 눈보라를 업고 바람이 친다. 백두대간상의 고적대에 바싹 붙어 있는 정연홍씨(50세) 농가 마당에 눈을 툴툴 털며 들어서니 집 주인은 없다. 눈이 오면 고립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정씨는 일찌감치 강릉으로 하산해 버렸다. 정씨는 10년전에 이곳에 들어와 움막을 짓고 농사를 지으며 신선같이 지내다 1993년 10월에 움막에서 본채 건물 완공을 하여 옮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어느 사이 땅거미가 깔렸는지 눈이 있어 그런데도 훤하다. 주인이 없는 마당 한켠에 탠트를 치려다 농가의 헛간을 정리하고 잠자리로 잡았으나, 대간에서 내려치는 황소바람 눈보라에 동지 섣달 밤은 길기도 하다. 밤새 여름 침낭으로 소금절이 한 손진학씨(41세, 태백 한얼뫼 오름회 회원)는 엉거주춤 허리를 펴지 못하는 걸음걸이가 불편해 보인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완벽한 동계용 장비 속에서 코를 골며 황소바람과 맛장구를 쳤던 정이호씨(63세)는 방금 대장간에서 풀무질하다 나온 화동같이 얼굴이 붉다. 눈보라는 그쳤으나 바람은 여전하다. 농가 뒤 터밭을 지나 소나무 빼곡한 능선을 따라 고적대를 올려다 보며 산행을 시작한다. 팔뚝만한 소나무 가지들이 잘려 나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몸통 굵기의 소나무 중등이 뭉청 부러진 것도 부지기 수다. 지난밤새 그놈의 황소바람에 애굿은 소나무들만 피해를 보았다. 나무를 치워 길을 트며 올라가는데 이건 또 뭔가? 간벌을 한답시고 서까래 굵기의 철쭉나무, 단풍나무, 물푸레나무, 진달래 나무 등 활엽수 종들만 마구 베어 동뎅이를 쳤다. 농가를 떠난 지 20분 쯤에 김해 김씨 합장묘 2기가 능선에 넓게 터를 잡았다. 흰 눈을 머리에 쓴 고적대, 청옥산, 망지봉, 중봉산이 빙둘러 아침햇살을 받아 눈을 크게 뜰 수가 없다. 고적대 쪽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지능선은 눈도 많이 쌓였지만 경사도 만만치 않다. 손을 무릎에 언고 허리를 굽혀 꼬부랑 할미 모양 헉헉거려 15분 쯤에 바위지대를 우회하여 올라간다. 길이라고는 말할 수 없고 그냥 능선을 고집하며 참나무 사이를 이리저리 빠져 나간다. 고적대 1시간 30분쯤 걸려 닿았다.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중봉산으로 이어진 능선을 따라 내려가니 진달래 나무와 철쭉나무가 길을 막아 진행을 더디게 하는 그곳에 항공모함 같이 생긴 긴 바위가 특이하다. 북쪽으로 정선땅 임계면이 내려 보이고 백두대간을 따라 이기령, 상월산쪽으로 이어진 임도가 힐긋 보인다. 저 아래 임도를 보니 98년 1월에 폭설속에서 임도에 앉아 눈을 맞으며 꼬박 밤을 새우고 다음날 허리까지 빠지는 눈의 바다를 헤엄쳐 고적대를 지나 정연홍씨 집으로 탈출 산행하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본지 1998년 2월호 소개) 약 15분쯤 능선을 따라 내려서니 중봉리 절골과 도전리 장아리 사이의 넓고 평평한 안부다. 안부의 지형은 세곳으로 나눌수 있다. 첫 번째 안부에는 산죽군락이 있고, 다음은 참나무가 빼곡히 서식하고, 세번째는 덩굴식물이 자리를 잡았다. 넝쿨을 통과하니 다시 오름길이다. 철쭉 군락이다. 오지 산행중 이놈을 만나면 제일 진땀을 뺀다. 배낭을 잡고 늘어지는 것은 예사이고 팔뚝과 얼굴을 긁어 생채기를 내던가 아니면 옷을 찢어 놓기 좋아하는 심술궂은 나무다. 이곳의 철쭉나무는 키도 2∼3미터쯤 되고, 굵기도 보통 10센티미터쯤 된다. 또한 나무가지를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무 한 그루 당 차지하고 있는 면적이 4∼5평 정도이니 이런 곳을 빠져 나갈려면 여간 힘들지 않다. 20분쯤 걸려 작은 봉을 넘어서니 의외로 아름드리 소나무 한 그루가 특출나다. 서쪽으로 가던 능선이 크게 남쪽으로 방향을 틀며 당골목 깊은 계곡 건너에 중봉산 정상이 있다. 남쪽으로 휘여지는 능선은 칼등 같은데 바람에 시달린 키 작은 잡목이 들어차 있어 길을 트기 수월치 않다. 하지만 길을 뚫고 나가니 제비집 같은 암봉의 전망은 일품이다. 절골과 장아리 사이 안부에서 50분 소요되는 거리다. 여기서 북쪽 조망은 이기령 상월산으로 가던 대간이 백봉령에서 서쪽으로 방향을 돌려 석병산으로 가는 모습이 보이고 삽달령도 어림된다. 동쪽은 동해가 살짝 보이고 고적대, 청옥산의 웅장함이 하늘과 닿아 시야를 막고 남쪽은 망지봉 뒤로 덕항산을 지나 매봉산으로 흐르는 대간이 가늠된다. 서쪽으로는 중봉산이 건너편에 있고 그 뒤로 끝없이 펼쳐지는 연봉들. 암봉에서 조망을 즐기고 유격훈련 하듯 잡목이 틈을 주지 않는 급경사를 몸으로 밀며 내려서 보지만 철쭉나무에 걸려 걷는 것도 고욕이다. 그런데로 길이 조금 편해질만 하니 쌓인 눈에 발이 빠져 옴짝 달싹 오금을 펴지 못하겠다. 당골목 안부를 지나 정상을 코 앞에 놓고 오르는 곳은 산죽밭과 오미자 덩굴이 발목을 잡고 늘어진다. 어렵사리 통과하니 암벽이다. 바위틈 사이로 올라서니 중봉산 정상이다. 눈을 헤치며 열심히 삼각점을 확인하려 하였으나 찾지 못하였다. 혹시 삼각점 표석이 없는 것은 아닌지하는 생각이 든다. 건너편 암봉에서 정상까지 1시간 30분 걸렸다. 남쪽 당골목 계곡으로 하산할 수 있겠으나 다시 정연홍씨 농가로 하산 하기로 하고 조망 좋은 건너편 암봉에 이른 후 정연홍씨 농가 방향을 정확이 측정하고 주능선을 버리고 절골쪽으로 뻗은 지맥을 타고 쏜살 같이 산죽군락을 지나 절골 계류를 건너 다시 작은 지맥을 넘어서니 정상을 떠나 하산을 서두른지 1시간 30여분에 정씨의 농가가 외롭게 저녁노을에 하산하는 객을 반기고 있다. <글 사진·김부래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