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막 예찬
배공순
“또르럭 뚜르럭, 또르럭 뚜르럭” 제철 만난 꼬막을 조약돌 굴리듯 씻는다. 희부연 물속을 잠시 바라본다. 개흙 속에서 벼름 벼름 두 입을 앙다물고 견뎌 낸 꼬막이 무심한 듯 거기 있었다. 꼬막은 껍질이 단단하고 골이 깊은 참꼬막, 바닷속 양식장에서 자라 성장이 빠른 새꼬막, 크고 붉은빛이 나는 피꼬막이 있다. 그중에서도 야무진 참꼬막이 내게 선택받는다. 다 같은 꼬막인데 무슨 차이가 있을까 싶지만, 어려서부터 먹던 것으로, 유난히 노란 알맹이가 탱글탱글한 데다 감칠맛이 탁월해서다. 최고라야 붙이는 ‘참’ 자를 까닭 없이 붙이진 않았을 터. 새꼬막에 비해 서너 배나 비싼데도 망설임 없이 장바구니에 넣곤 한다. 찬 바람 부는 초겨울부터 이듬해 봄, 이 무렵이 꼬막이 맛있는 때다. 개펄에 서식하는 뭇 생명과 마찬가지로 꼬막 또한, 오롯이 달의 영향을 받기에 그 주기에 따라 맛이 조금씩 달라진다. 꼬막은 보름밤이 아닌 어두운 그믐 무렵에 살이 오른다. 밀물과 썰물에 흔들리며 사각사각 어둠을 갉아먹고서야 속살이 여무는 것인가. 꼬막은 씹을수록 짭조름하고 달착지근한 바다 향내가 입안에 퍼진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에서도 ‘간간하기도 하고 쫄깃하기도 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한 그 맛’이라 묘사하지 않았던가. 원래 ‘고막’이라 쓰던 것이 ‘꼬막’으로 바뀐 것은 조정래 작가의 공이 아닌가 싶다. 출판사에서 원고에 있던 꼬막을 거듭거듭 수정했지만, 현지에서는 그리 부른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그 책이 천만 부가 팔리면서 발음도 야물딱진 꼬막이 표준어가 되었으니 말이다. 사실, 남해안에 두루 나는 것이 꼬막인데, 맛집이 즐비할 만큼 ‘벌교 꼬막’이 유명해진 것도 소설 덕이 컸으리라. 갓 삶은 꼬막을 까먹으면 육즙이 흐르는 짭조름한 속살이 담백하고 맛있다. 껍질 하나 떼어내고 남은 껍질을 접시 삼아 양념장만 얹어도 눈이 즐거운 일품요리가 뚝딱 완성된다. 알맹이만 모아 갖은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쳐 맛을 낸 꼬막 비빔밥도 입맛을 돋운다. 풋고추와 대파를 걀쭉걀쭉 썰어 버무린 꼬막 대파 무침 또한 밥반찬이자 안줏거리로 손색이 없으니, 꼬막은 안되는 게 없는 팔방미인 아닌가. 끓는 물에 꼬막을 넣는다. 때를 놓치면 누가 훔쳐 간 듯 반 토막 나는 꼬막은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잠시의 해찰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냄비에 붙어 선다. 보글보글 올라오는 거품 속에서 들릴 듯 말 듯 소리의 향연이 벌어진다. 여남은 개의 꼬막이 “톡, 토독” 입을 열어 노래할 때쯤 얼른 건져 찬물에 수르르 헹군다. 질그릇에 수북이 담아 놓으면 남은 열기에 알맹이는 스스로 익어간다. 얄랑얄랑 오른 김이 감내堪耐의 꽃을 피우듯 춤사위를 그린다. 절정의 순간에야 살포시 입술을 열어주는 꼬막, 단단한 내면에 부드러움을 품고 있는 꼬막이 나는 참 좋다. <수필과비평>2023년 11월호-촌감단상
*눈의 피로를 덜기 위해 문단마다 한 줄씩 띄웠습니다. |
첫댓글 <수필과비평> 2023년 11월호 촌감단상에 실린 작품입니다.
이 가을에 꼬막비빔밥 한 번 먹고 싶을 정도로
군침이 돕니다. 맛깔나는 '꼬막예찬' 잘 읽었습니다.
박고문님, 글 올려주심 감사합니다.
언제 꼬막비빔밥 한그릇 나눌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