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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Life-귀향, warming-up
내 하루의 일정 가운데 맨 먼저 하는 일과가, 내 Daum메일함에 꽂혀든 메일을 확인하는 것이다.
혹 누군가 내게 소식을 전해줬을까 궁금해서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나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매일 아침에 어김없이 보내주는 메일을 열어보기 위해서이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그 메일들에 담긴 내용들은 하나같이 우리들 삶에 경구로 삼을 만한 귀한 덕담들이어서, 내 그 하루의 삶의 지표로 삼곤 했다.
내가 그 메일들을 받아보기 시작한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공안과장과 총무과장을 겸직할 때의 일로, 당시 서울 근교 명문 골프장 지배인이던 내 고등학교 동기동창 친구가, 자신에게 보내온 그 메일들을, 내게 선물의 의미를 담아 전달해주면서였다.
그 이후로, 내 삶의 모습은 그저 그날 하루의 삶에 긍긍하던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감하게 지난날의 내 잘못된 삶을 돌이켜 짚을 수 있었고, 그 바탕으로 닥쳐있는 오늘의 삶을 경계할 수 있었고, 그리고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내 가슴에 담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내 늘 행복을 말하는 하루하루의 삶에 빠져있다.
내 삶이 그렇게 변한 것은, 그 메일들에 담긴 내용들을, 긍정적 시각으로 읽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들이었기에, 내 그렇게 긍정적 시각으로 읽고 받아들이게 되었는지, 최근에 내가 받아본 메일 3통을 여기 옮겨 적는다.
먼저 2012년 4월 5일 목요일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에서 보내온 것으로, ‘불가능하다 말하지 말라.’라는 제목의 메일 내용이다.
「불가능한 이유, 못한다는 얘기를 먼저 꺼내지 마라. 일단은 스스로 어떻게 하면 좋을 지, 어떻게 하면 가능한지를 생각하고 대안을 제시하라. 할 수 없는 현실보다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불가능이란 단어 자체를 잊어버려라. 그것이 바로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스즈키 오사무 회장이 한 말이라고 했다.
「불가능하다고 입증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리고 불가능한 것도 현재 불가능한 것일 뿐이다.」
펄벅 여사가 한 말이라고 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옳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옳다. 그가 생각하는 대로 되기 때문이다.」
헨리 포드가 한 말이라고 했다.
역시 ‘조영탁의 행복한 경영이야기’에서 그 다음날인 4월 6일 금요일에 보내온 것으로, ‘이 시대 모든 부자들의 공통점’이라는 제목의 메일 내용이다.
「이 시대의 부자들은 모두 낙천주의자다. 그들이 항상 옳아서가 아니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들이 하는 일이 틀렸을 때도 그들의 태도는 여전히 긍정적이다. 그들의 긍정적 사고야말로 그들이 목적을 달성하도록 하고, 스스로를 개선시켜 결국 성공에 이르게 하는 비결이다.」
데이비드 렌즈가 한 말이라고 했다.
다음은 같은 날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보내온 것으로, ‘자기 암시’라는 제목의 메일 내용이다.
「행복이나 불행은 어떻게 상상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테면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은 '완벽한 행복'을 느끼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처절한 황폐함'을 느끼는 것처럼 말이다.」
에밀 쿠에의 ‘자기암시’ 중에서 인용한 구절이라고 했다.
모두가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려는 내용들이다.
스즈키 오사무 회장이든, 펄벅 여사든, 헨리 포드든, 데이비드 렌즈든, 에밀 쿠에든, 나는 그렇게 말한 사람들의 신분에는 굳이 관심이 없다.
오로지 그들이 한, 그 말 한마디의 의미만 곱씹어 볼 뿐이다.
풍덕천을 따라 달렸고, 이어서 탄천을 따라 달렸다.
졸 졸 흐르는 개울가로 파릇한 새싹들이 한 겨울 언 땅을 박차고 돋아나고 있었다.
둑 너머로 고층아파트 꼭대기 층들이 줄을 잇고 있었고, 그 둑에는 막 돋아난 봄 쑥 캐는 여인들이 간간이 보였다.
군데군데 놀이터에는, 어른이고 어린아이고 할 것 없이, 따뜻한 봄볕 맞으러 나온 군상들로 가득했다.
문득, 탄천을 따라 걷던 일흔 나이의 할머니 한 분이 우연히 만난 여든 나이의 할아버지와 연이 닿아 황혼 결혼을 하고, 이어서 몇 백억 원의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우스개 같은 이야깃거리 한 토막도 생각했다.
달리는 그 앞길에 간혹 얼쩡거리는 사람이 있을라치면, 따르릉 따르릉 경적도 일부러 울려보기도 했다.
단국대학교 정종용 교수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용인 수지에서 성남 분당까지 12.5km 거리를 왕복했다.
2012년 4월 7일 토요일인 바로 어제, 내 갑자기 벌인 이벤트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2시간에 걸쳐 모두 25km를 달렸다.
모처럼 자전거를 타서인지, 팔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목덜미도 아프고, 특히 엉덩이가 무척 아프기는 했지만, 너무나 보람지고 그리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지난 해 5월에 반 천리 길을 걸어서 내 고향땅 문경을 찾은데 이어, 자전거를 타고 다시 그 길을 달려보겠다고 했었던 터다.
더군다나 내 귀향의 터까지 잡아놓은 판이다.
서울에서 그 터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도, 나름의 의미 있는 행보라는 생각을 겹쳤다.
내 그렇게 새로운 꿈과 희망 하나를 더 지었다.
어제의 그 이벤트, 바로 내 그 새로운 꿈과 희망을 현실적으로 실현시키기 위한 첫 번째 ‘워밍업’(warming-up)이었다.
첫댓글 예전 같았으면
지금쯤 분당의 탄천에 벚꽃이 만발해서 자전거 타고 달릴때
코끄티에 벚꽃향이 찐하게 전해왔을텐데요.
올해는 아직 벚꽃이 피지 않았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두 분 멋지십니다.
열심히 연습해서 성공적인 문경 귀향길이 되시길~~~
친 형제 사이인들 이 보다 더 다정스러울 수 있으랴!! 우리쥔장과 정교수의 우의 오리오래 이어가시길 소망하며~~^^
이제 시작했습니다.
발동을 걸었으니 무조건 가는 것입니다.
승리의 V자에서 느끼는 아름다운 감동을 연출할 것이니 더없이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