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외항에 기항한 코스타 아틀란티카호. 크루즈선이 정박하면 관광객들은 제주에 상륙해 쇼핑과 관광을 즐긴다.
“안녕하세요. 코스타 크루즈에 승선하신 것을 환영합니다.”
중국 상하이에서 출발하는 8만6000t급 크루즈선인 ‘코스타 아틀란티카호’ 승무원인 김선정씨(33)가 환한 미소로 한국인 여행객들을 맞이했다. 코스타 아틀란티카호는 길이 293m, 폭 32m로 아파트 10층 규모다. 배 안에는 대형식당, 연회장, 수영장, 게임장, 공연장, 피트니스센터, 카지노 등을 갖추고 있다.
그는 크루즈선에 첫 탑승 해 어리둥절해 하는 여행객들에게 선내를 곳곳을 안내했다. 각종 편의시설을 어떻게 이용하는 지, 유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그는 “언제든 불편한 것이 있으면 불러달라”며 자리를 떠났다. 2600명이 탑승할 수 있는 코스타 크루즈의 승무원은 700여명. 이중 한국인 승무원은 3명이다. 아시아 크루즈 시장이 급성장하면서 크루즈선에 탑승해 여행객들을 돕는 ‘바다 위의 스튜어디스’ 크루즈 승무원이 주목 받고 있다.
크루즈선이란
크루즈선이란 호화여객선을 말한다. 배 안에 대형식당, 연회장, 수영장, 게임장, 공연장, 카지노 등을 갖추고 있다. 내부에는 각종 샹들리에와 명화로 장식돼 있다. 객실은 호텔급이다. 바다 건너 주요국을 방문하는 국제적인 관광이 크루즈 관광의 전형이다. 국내에서는 크루즈선이 유람선과 혼동돼 사용되는 경향이 있다. 울산 앞바다에 나가 고래를 관찰할 수 있는 고래크루즈, 포항운하를 운행하는 포항크루즈 등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유람선이다. 또 부산과 일본, 혹은 인천과 중국을 다니는 대형 여객선은 페리다.
코스타 아틀란티카호 내부에 있는 대식당. 1000여명이 동시에 식사를 할 수 있다.
국내법상 크루즈선은 2000톤 급 이상이다. 이 규모부터 순항여객운송사업 허가가 나온다. 하지만 국제항로를 뛰어야 하기 때문에 2000톤을 가지고 크루즈여행을 하기는 어렵다. 한·중·일을 다니는 크루즈선은 7만~12만톤 사이로 탑승객은 2000~4000명 규모가 된다.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크루즈 여행 산업은 2010년 이후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크루즈선은 2009년까지 연간 100회, 여행객수 10만명에 미치지 못했다. 그러던 것이 2013년에는 443회 기항에 72만명이 방문했다. 기항횟수로는 4배, 여행객수로는 10배가 증가한 셈이다. 2014년에는 500여 회에 걸쳐 크루즈선이 입항하고 100만 명이 한국을 방문할 것으로 관측된다. 아시아 크루즈 관광 붐을 일으킨 것은 중국이다. 2010년 46만 명이던 중국의 크루즈 관광객은 올해는 100만 명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20만 명, 한국 2만~3만 명에 비하면 엄청난 숫자다.
크루즈 승무원이 하는 일
크루즈승무원이란 크루즈선에 탑승해 여행객들을 위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다. 항공기로 치자면 스튜어디스로 보면 된다. 여러 분야가 있는데 식음료 분야(레스토랑 매니저), 바 분야(바텐더, 바 웨이터), 호텔 분야(객실 관리), 엔터테인먼트 분야(마술쇼·카지노 등), 투어 분야(기항지의 관관프로그램 제작 및 안내) 등이 있다. 또 요리사나 사진사도 승무원이 될 수도 있다.
여행객들에게 저녁을 제공하기 위해 크루즈승무원들이 서빙을 하고 있다.
한국인 크루즈승무원 채용은 로얄캐리비안이 ‘레전드호’를 한중일 노선에 투입하면서 시작됐다. 대형 크루즈 한 척 당 한국인 승무원이 3~5명 정도 탑승한다. 아시아를 운항하는 크루즈선이 10척이 채 안 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해외 크루즈선 사에서 일하는 한국인 승무원은 50여명이 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김종남 대경대 관광크루즈승무원과 교수는 “크루즈선사들이 아시아에 취항한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인 승무원이 그리 많지는 않다”며 “국적선사가 생기고 한국인 크루즈여행객들이 늘어나면 승무원 채용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크루즈에 반하다
코스타 크루즈에 근무하는 김선정씨는 크루즈 승무원이 된 지 3년째다. 대학을 나와 관광회사에 취직했던 그는 어느 날 크루즈선을 탄 뒤 매력에 빠져버렸다. 회사에서 체험으로 크루즈여행을 보냈는데 하선해서도 크루즈선에서 느낀 그 두근거림이 가시질 않더란다.
그 길로 그는 3년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어를 배우러 해외로 떠났다. 2년 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인터넷을 통해 크루즈 승무원을 뽑는 선사를 찾아다녔다. 어느 날 해외취업알선회사로부터 코스타 크루즈에서 승무원을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응시했다. 서류를 통과한 뒤 면접은 한국의 집에서 화상으로 이뤄졌다.
크루즈선 내 댄스파티는 크루즈승무원들이 진행한다.
크루즈선에서 그녀의 역할은 관광객에 대한 안내다. 각종 부대시설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혹 있을 불편에 응대한다. 기항지에 도착하면 배위에서 이뤄지는 각종 출입국 절차를 도맡는다. 또 배 안에서 이뤄지는 댄스파티 등 일부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김씨라고 크루즈승무원 일이 무작정 쉽지 만은 않았다. 배 멀미가 문제였다. 처음 크루즈선을 탔을 때 배 멀미를 하지 않았던 김선정씨는 막상 자신이 승무원이 되고 나서 배 멀미가 찾아왔다. 약간의 미동만 있어도 구역질이 올라오는데 참기 어렵더란다. 배 멀미로 몇 번 고생을 한 뒤 배멀미는 자신도 모르게 사라졌다.
김씨는 “크루즈선이 한번 출항하면 돌아올 때까지 계속 배속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다 보니 마치 내 집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탑승객들이 내 집에 방문한 손님이라 생각하고 즐겁게 맞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스타 아틀란티카호 승무원인 김선정씨.
근무조건과 처우는?
크루즈선은 자금력이 큰 세계적인 선사들이 운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무여건이나 처우가 좋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번 배를 타면 모항에 되돌아오기까지 24시간 내내 배에 있어야 한다. 요즘은 크루즈관광 수요가 많아 오전 7시 모항으로 돌아온 크루즈선이 당일 오후 6시에 출항하는 경우도 흔하다. 통상 계약기간은 6개월인데, 이럴 경우는 계약기간 내내 거의 땅을 밟기 힘들 수도 있다. 비행 뒤 일정 시간 휴식을 갖는 스튜어디스에 비하면 환경이 열악하다. 주말도 별도로 없다. 크루즈선은 주말을 끼고 여행하는 경우가 많아 주말휴식을 보장받을 수 없다. ‘월화수목금토일’ 날짜 관념보다 항해 1일차, 2일차, 3일차 등으로 날을 구분한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2014년 4월 크루즈승무원을 모집한 모 크루즈선사의 취업공고를 보면 근무시간은 ‘주당 70시간(중간 휴식 포함)’으로 돼 있다. 주5일 45시간이 통상근무시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업무시간이 많다. 다만 이 회사는 ‘기항 시 휴무(일반적으로 1일~4일 간격으로 기항함)’라고 밝히고 있다. 크루즈선이 특정 도시를 방문하면 관광객 상당수가 하선을 하는데 이때는 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기항 시간이 6~9시간에 불과해 휴식시간이 넉넉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월급은 천차만별이다. 일반 승무원이라면 대략 연봉 1200만~3000만원 정도다. 매번 계약에 따라 급료가 달라진다. 근무부서에 따라 별도의 팁이나 커미션이 지급되기도 한다.
자격요건은
언어 구사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중급이상의 영어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한국인 승무원은 한·중·일 코스에서 투입될 가능성이 큰데 이 코스는 중국인과 일본인이 많이 타서 일어와 중국어를 할 줄 알면 매우 유리하다. 관광산업의 일종이다 보니 관광분야 경력자나 전공자를 우대한다. 전문대 이상의 학력 혹은 이에 준하는 기술교육을 받으면 된다. 크루즈 선사마다 요구하는 인력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그때 구직기준이 다를 수 있다.
크루즈선에서는 클래식 공연을 들으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있다. 클래식 연주들이 탑승해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
대경대학교 관광크루즈승무원 학과는 국내 유일의 4년제 과정을 갖고 있다. 커리큘럼으로는 영어(일어), 음료실습, 연회실습, 객실관리업무, 마술·레크리에이션실습, 칵테일실습, 바리스타 실습 등을 배운다. 크루즈승무원이 되지 않더라도 관광 및 호텔, 외식산업분야에 진출할 수 있다. 그밖에 승무원 양성학원 혹은 직업전문학교에서도 예비 크루즈승무원을 배출하고 있다. 크루즈승무원 정규교육을 받으면 주요 선사의 리쿠르팅 정보를 가장 먼저 얻을 수 있다는 점에서 유리하다.
앞으로의 전망은
정부는 2020년까지 연간 200만 명의 국내외 크루즈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특히 국내 크루즈선사를 육성해 10척을 운항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럴 경우 크루즈 승무원 8400여명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과 일본도 크루즈관광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 5개의 국적선사를 갖고 있는 일본은 지금까지 연안 크루즈관광에서 탈피해 한국~중국을 잇는 국제크루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5월 최초의 국적크루즈선인 헤나호를 취항시켰던 중국도 국적선사 육성에 나선 상태다. 해외선사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이탈리아 국적의 크루즈선사인 ‘코스타’사는 현재 2대의 크루즈선을 아시아에 투입하고 있지만 올해 1척을 더 투입하기로 했다. 한중일을 운항하는 크루즈선이 많아질수록 승무원에 대한 수요가 커질 수 밖에 없다.
우려도 있다. 정부 기대만큼 국내 크루즈 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 붙는다. 2012년 2월 최초의 국적 크루즈선인 하모니호가 취항했지만 2013년 1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운항을 중단한 상태다. 하모니호 취항에 맞춰 크루즈승무원 양성과정을 만들었던 교육기관들로서는 낭패였다. 장기적으로는 크루즈관광산업이 성장하겠지만 단기적으로 취업이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두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