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강림 대 축일 강론
오소서 성령님. 주님의 빛. 그 빛살을 하늘에서 내리소서.
가장 좋은 위로자. 영혼의 기쁜 손님. 저희 생기 돋우소서.
일할 때에 휴식을. 무더위에 시원함을, 슬플 때에 위로를.
굳은 마음 풀어주고, 차디찬 맘 데우시고, 빗나간 길 바루소서.
우리가 복음 환호송 전에 부른 부속가인 성령 송가의 일부입니다. 이 송가는 성령이 누구 신지, 어떤 역할을 하시는 분이신 지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령은 바로 우리의 위로자이시며 영혼의 생기를 돋아주는 기쁜 손님이시며 한 줄기 빛으로서 우리의 맘 깊은 곳을 채우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복음 환호송에서 노래하듯 사랑의 불을 놓으시는 분이십니다.
오늘 제 1 독서 사도행전을 보면 성령께서는 불의 모습으로 각 사람 위에 내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불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랑으로 타오르게 하는 불이십니다. 어두움을 비추며 찬 마음 데우시고 굳은 마음 풀어 주시는 불꽃이며, 불길이십니다.
또한 세찬 바람이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고 했습니다.
성령은 바람이십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붑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자유이며 생명의 숨결입니다. 사랑 자체이신 주님의 숨결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숨을 내쉬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아라. 누구의 죄이든지 너희가 용서해 주면 그들의 죄는 용서받을 것이다.”
성령은 세찬 힘이었습니다. 두려워서 다락방에 숨어있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 담대하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그 힘은 바로 용서할 수 있는 힘이요 사랑할 수 있는 힘입니다. 그 힘은 바로 남에게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는 힘입니다.
한편, 성령은 불꽃 모양의 무엇으로 나타났습니까? 혀입니다.
성령은 혀이십니다. 성령이 혀의 모습으로 내려온 의미를 가만히 헤아려 봅니다. 혀는 무슨 능력을 지녔습니까? 바로 말하는 능력을 지녔지요.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부활을 증거해야 할 것입니다. 부활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말로 선포해야 할 것이고요. 저에게는 성령을 내려 주심으로써 무엇보다도 사도들에게 말로서 부활을 선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이제 성령이 일러주는 대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들은 자기의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일러주는 대로 말하게 됩니다.
이제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의 언어로 사도들이 말하는 것을 알아듣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아마 하나로 모으시고 일치시키는 이미지가 연상될 것입니다. 오래 전에 하늘까지 오르겠다는 교만한 마음을 지녔던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았었지요.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놓아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심으로써 사람들을 온 땅으로 흩으신 하느님이 이제 반대로 그들을 하나로 모으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강림하심으로써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 말하는 능력을 받았고, 그 말을 듣는 사람들이 모두 각자가 아는 자기네 말로 알아듣게 하심으로써 그분이 서로를 일치시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제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소리를 높여 말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들어보십시오. 지금은 오전 아홉시이니까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논리정연하게 말하면서 이 모든 일이 예언자 요엘을 시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베드로가 힘 있게 선포하는 말씀을 들으며 마치 막혔던 가슴이 뚫린 듯 어떤 시원함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베드로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이 놀라운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승천으로 부활하셨던 예수께서 떠나가셨지만 이제 성령강림으로 새로운 시작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당신의 영, 곧 성령이 오게 하셔서 전에 당신이 하시던 일을 이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통해 새롭게 하십니다.
이로써 교회가 탄생합니다. 이제 공생활의 예수님은 계시지 않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이 그들과 함께 계심으로써 새로운 공동체, 바로 교회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교회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유명한 로메로 주교님의 소책자가 생각납니다. 제목이 [여러분이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이 바로 교회이니까 오늘은 여러분들의 생일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생일 축하드립니다.
저는 오늘 성령강림대축일 맞으면서 수녀님들이 이틀 전에 기도하신 2코린 4, 1-15를 다시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2 코린 4, 7)
한 수녀님이 우리 안에 보물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행복감을 느낀다고 제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말을 들으며 저도 행복했습니다. 수녀님들의 나눔을 통해서 저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그것을 이제 수녀님들께 돌려드리며 여기 계시는 다른 교우 분들과도 나눕니다.
우리 안에 있는 이 보물이 무엇입니까? 사도 바오로가 들려주시는 대로 바로 예수님 생명의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생명, 당신의 얼, 당신의 기, 당신의 영, 바로 성령을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그것이 우리 안에 있는 보물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보물인 예수님의 생명, 예수님의 얼, 예수님의 영, 바로 성령을 선포해야 하는데, 어리석게도 때로 우리 자신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닌 우리 자신을 선포하면 보물을 담고 있는 질그릇인 우리는 깨어져 버립니다. 질그릇이 깨어지면 더 이상 보물을 담을 수 없으니 보물은 사라집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질그릇이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그 자체로도 아름다운데, 그 안에 보물을 담고 있으면 더욱 아름답기 마련이지요. 우리는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질그릇인 우리 안에 있는 보물을 드러내야 합니다. 등불을 켜서 함지 속이 아니라 등경 위에 놓듯이 (마태 5, 15) 보물을 감추어 둘 것이 아니라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이 아니라 그분이 드러나도록 우리는 그분을 선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빛의 역할은 있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빛이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질그릇인 우리 안에 계시는 그분, 성령께서 활동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열어드리는 것입니다.
성령강림 진심으로 축하드리며 여러분들과 함께 기쁨을 나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