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할머니의 인생은 한숨과 통탄이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갓 스물을 넘긴 나이에 '남편감이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친정 부모님에게 등 떠밀려 시집간 것이 시작이었다. 결혼하고 한 달 뒤 "내가 본처"라며 웬 여자가 아들을 안고 나타났다. 남편의 폭행과 외도를 못 견뎌 1년가량 친정에 가 있던 본처가 남편의 결혼 소식에 아이를 업고 돌아온 것이다.
엄연히 총각이라고 알고 결혼했건만 결혼 한 달 만에 '첩'의 신세로 추락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남편이 본처와 이혼하기까지, 약 5년 동안 정 할머니는 본처와 이웃들의 손가락질을 감내해야만 했다. 모진 수모를 당하고 혼인신고를 할 무렵, 남편이 또 다른 사내아이 한 명을 안고 들어왔다. 본처가 낳은 아들을 키우고 있는 정 할머니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느냐'라는 마음에서 아이를 정성껏 키우기 시작했다.
그 후에도 남편의 외도는 계속됐다. 수년 후 또다시 사내아이 한 명을 안고 들어오는 바람에, 결국 정 할머니는 엄마가 다른 남자아이를 세 명이나 키우게 되었다. 허구한 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리고 밖으로 도는 남편인지라 정작 자신과의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다. 정 할머니는 늘 '나는 시집온 게 아니라 저 사람이 낳아오는 아이를 키워주러 온 고아원장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정 할머니는 남편이 늙어서 힘이 빠질 때 보란 듯이 이혼해서 복수하리라는 말을 평생 넋두리처럼 되뇌며 살았다.
남편의 사업이 망해서 경제적으로 힘든 생활을 보내기도 했지만 친엄마의 얼굴도 모르고 자라는 어린아이들이 불쌍해서 지극정성으로 키워 대학 공부에 결혼도 시켰다. 남편복이 없으면 자식복도 없다는 말처럼, 그렇게 애지중지 키웠건만 정 할머니가 친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아들들은 결혼 후 연락조차 끊어버렸다.
그러던 중 일흔이 넘은 남편이 기력이 떨어지면서 중풍이 들었고,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중풍이 들어 대소변도 못 가리는 상황에도 두 명의 여성이 몰래 병원을 드나든다는 사실이었다. 재산 때문인지, 아니면 출가시킨 아들들의 생모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정 할머니로서는 기가 막힌 노릇이었다. 게다가 병실에 누운 남편은 정 할머니 몰래 자신의 재산을 아들들에게 명의 이전시키고 병원을 드나드는 여자들에게도 큰돈을 주었다. 재산을 미끼로 자식들을 병원으로 불러 효도를 받고자 하는 것 같았다. 자식 한 명 없는 정 할머니 입장에서는, 서류상 본처일 뿐 결국 상속받을 재산조차 없을 것만 같았다.
정 할머니는 병원에 발길을 끊고 남은 재산을 가압류한 뒤 이혼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평생 입버릇처럼 되뇐 "저 영감 벽에 똥칠할 때 이혼하겠다"고 한 말이 씨가 된 것이다.
정 할머니는 이혼소송 내내 병원에서 상태가 악화되어 혼수상태에 이른 남편이 행여 숨을 거두지 않을까 걱정해야만 했다. 이혼을 하면 남은 재산의 절반을 나눠 받을 수 있지만, 남편이 죽게 되면 아들 3명과 나누어 재산을 상속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1심 재판에서 이혼이 성립되고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받으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판결이 확정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2주를 못 채우고 남편이 죽게 되어 정 할머니는 끝내 이혼도 못하고 재산도 아들들과 나누어 상속받게 되었다. 남편과의 불운이 죽기 직전까지 이어진 것이다. 정 할머니는 '전생에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라고 통탄하며 장례도 손수 치르고 나서야 남편과의 악연을 끝내게 되었다.
이 변호사 법률 어드바이스
이혼소송 중 배우자가 교통사고나 병환, 자살로 사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혼소송은 살아 있는 배우자를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부부 중 한 명이 사망하면 이혼소송은 그것으로 종결되고 상속이 진행된다. 정 할머니처럼 연로하여 시댁 식구들도 없거나 살아온 공로가 인정되어 상속에 큰 이의가 없는 경우도 있지만 젊은 부부가 이혼소송 중 한 명이 사망하게 되면 그 결과에 대해 남아 있는 가족들은 엄청난 불만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은 피할 방법은 없다. 게다가 미성년 자녀라도 있다면 모든 재산은 이혼소송 중이던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사실상 이혼소송 중이던 배우자가 모두 관리하게 된다. 결국 남은 가족들에게는 한 푼도 돌아가지 않는다. 실제로 이를 둘러싼 소송이나 갈등은 무수히 많다. 이 경우 남은 가족들은 이혼소송 중이던 사위나 며느리와 원만히 합의하거나 법원에 상속재산분할조정신청을 하여 양보를 얻어내는 것이 현명하다. 이때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대화로 합의하는 것을 권한다.
※ 이명숙씨는…
23년 경력의 이혼·가사 사건 전문 변호사로 지난 1년간 다양한 이혼 소송 사례를 '이명숙 변호사의 세상만사'라는 제목으로 인기리에 연재했다. 현재 KBS <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2 > 의 자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기획:하은정 기자 | 일러스트:이신혜
첫댓글 감사
잘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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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물고갑니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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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배웁니다
허~ 참~
잘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