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 문명의 모태로서, 서구의 문화 예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현대의 기업 브랜드에까지 그 손길이 닿아 있다. 사람들은 고대 신화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소비하는 것이다. 먼지 폴폴 날리는 고고학적 유물이 되어 역사책 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현대 사회에도 끈질기게 생존한 그 상징과 의미는 무엇일까? 오늘날 어떤 상품이나 기업, 기관 등은 소비자들이 그 존재를 쉽게 인식하고 홍보가 되도록 개성 있는 로고 logo, 혹은 엠블럼 emblem을 사용한다. 적지 않은 인기 있는 로고들이 그리스 신화와 관련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들이 스타벅스 Starbucks, 나이키 Nike, 베르사체 Versace 등이다.
스타벅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님프 세이렌 seiren을 로고로 한다. 긴 머리칼을 가진 여인의 얼굴과 양쪽으로 쳐들린 두 꼬리를 가진 초록색의 인어 형태가 그것이다. 세이렌들은 바다를 오가는 아름답고 황홀한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유혹하여 배를 난파시키는 이상한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인하는 요정들이다. 처음에는 상반신은 처녀의 모습, 하반신은 새의 모습을 가진 모습이었다가, 지금은 하반신 부분이 물고기 형태로 변형되었다. 사이렌이 그 치명적으로 매혹적인 목소리로 사람들의 넋을 빼앗았듯이, 스타벅스의 커피 향과 분위기로 우리를 안으로 이끌 수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나이키의 로고 ‘스우시 swoosh’는 미국의 스포츠 용품 회사 나이키의 로고로서, ‘휙 소리를 내며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한 캐롤린 데이비슨이라는 디자이너가 겨우 35달러를 주고 팔았던 이 로고의 가치는 현재 무려 65만 달러 이상이라고 한다. 디자이너는 사모트라케 섬에서 발견된 고대 그리스 조각상 니케의 날개에서 착안하여, 날개 형태를 눕혀 단순화한 시각 디자인으로 창조해냈다. 이 멋진 로고는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 운동화 모델이 되면서 폭발적인 시너지를 얻어, 나이키가 경쟁자인 아디다스를 물리치고 세계 최고의 스포츠 용품 브랜드로 급성장하게 만드는 일등공신이 된다. 니케가 승리의 여신이었듯이, 인류문화의 자산인 고전에서 그 영혼과 정신을 빌린 나이키는 승리를 손에 넣었던 것이다.
지아니 베르사체 Gianni Versace가 세운 화려하고 도발적이며 관능적인 패션업체 베르사체의 로고는 메두사이다. 베르사체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방 출신으로, 과거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이 지역은 고대 그리스의 건축물과 조각품이 많이 남아 있었고, 그는 자연스럽게 그리스의 문화에서 영감을 얻게 된다. 그의 회사 브랜드의 로고도 그리스 신화 속의 치명적인 팜 파탈 femme fatale인 메두사로 정한다. 보기만 해도 돌로 굳어버리는 메두사처럼, 베르사체의 의상이 과감하고 과시적인 현란한 색감과 디자인으로 보는 이의 넋을 빼앗고 그 자리에서 얼어붙을 정도로 마비시키기를 바란 베르사체의 의도가 보인다.
포드 자동차의 머큐리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지상과 지하를 발 빠르게 오고 간 전령의 신 머큐리의 이름과 모자와 신발에 달린 날개의 형태에서 모티프를 가져왔다. 미국의 고급 브랜드 차 크라이슬러의 은빛 날개 ‘프로그레시브 윙 Progressive Wing’ 로고 역시 머큐리의 날개를 디자인한 것이다. 머큐리처럼 어떤 장애도 없이 자유롭고 빠르게 어느 곳이나 달릴 수 있는 자동차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탈리아 자동차 브랜드인 마세라티는 포세이돈의 삼지창을 형상화한 것이다. 바다의 신인 동시에 말들의 수호신인 포세이돈은 말의 기능을 이어받은 자동차의 정체성과도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차용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