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190
1부 황하의 영웅 (190)
제 3권 춤추는 천하
제 25장 음모의 소용돌이 (10)
"우공(虞公)이 수극(垂棘)의 옥(玉)과 굴읍(屈邑)의 말을 받고 길을 빌려 주기로 승낙했습니다."
우(虞)나라를 다녀온 순식(筍息)으로부터 이같은 보고를 받은 진헌공은 얼굴에 기쁜 빛을 가득 띠었다.
"이제 군대를 일으켜 괵(虢)나라를 치면 되겠소?"
순식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可)합니다."
"아무래도 과인이 직접 나서는 것이 좋겠지요?"
"번거롭게 주공께서 친히 나서실 것까지 없습니다."
"그대 혼자서 괵나라를 치겠다는 뜻이오?"
"아닙니다. 신은 전쟁에 능하지 못합니다. 군대를 지휘할 장수 한 사람을 천거할까 합니다."
"누구인지 말해보시오."
"대부 이극(里棘)이라면 능히 괵(虢)나라를 멸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이극?"
진헌공(晉獻公)의 얼굴에 뜻밖이라는 기색이 떠올랐다.
이극은 세자의 스승을 지낸 바 있는 신생(申生)의 당원 중 한 사람이다.
이극(里棘)이 장수가 되어 공을 세우면 그것은 곧 신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일이 된다.
그것을 방지하고자 해제의 스승인 순식(筍息)에게 공을 세우게 하기 위해 이번 일을 추진한 것이 아니던가.
"이극(里棘)이라면...?"
진헌공이 탐탁치 않은 듯 머뭇거리자 순식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물론 이극은 세자의 스승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더욱이 이극(里극)은 남보다는 자신의 안전과 출세를 먼저 생각하는 성격입니다.
만일 조정 내에 이극의 지위와 벼슬이 높아지면 그는 그것을 잃지 않으려고 신생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니까 이극(里棘)에게 공을 세우게 함으로써 오히려 그의 지위를 높이자는 말이오?"
"그렇습니다. 이극이 대신의 반열에 오르게 되면 그는 해제(奚齊)공자를 위해 일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최소한 신생(申生)을 위해서도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진헌공(晉獻公)은 비로소 순식이 노리는 바를 알아들었다. 그는 무릎을 치며 감탄했다.
"태공망이 살아 돌아온들 어찌 그대의 지혜에 미칠 것인가."
그러고는 곧 대부 이극(里구갸ㅒㅒ6)을 불러 대장으로 삼고 순식(筍息)을 부장으로 삼아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라는 명을 내렸다.
이러한 진헌공(晉獻公)의 분부에 이극은 어리둥절했다. 전혀 예상 밖의 임명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내심 또 세자 신생(申生)을 대장으로 삼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세자를 보내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극(里棘)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기꺼이 괵(虢)나라 정벌군의 대장직을 받아들였다.
이윽고 이극(里棘)을 총사령관으로 하는 괵나라 정벌군이 도성인 강성(絳城)을 출발했다.
총병력은 병차 4백 승, 진(晉)나라 상.하군의 병차를 모두 동원한 대군이었다.
그들이 우(虞)나라 도성을 지날 무렵이었다.
우공(虞公)이 친히 나와 이극과 순식을 맞이했다.
"과인이 진나라로부터 귀한 보물을 받고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들은 나를 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비웃을 것이외다.
우리도 군대를 내어 진(晉)나라를 돕겠소이다."
그러나 지략가인 순식(筍息)은 이미 생각해 놓은 바가 있었다. 그는 빙그레 웃으며 우공을 향해 말했다.
"군후께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돕는다 하시니 고맙기는 합니다만 사양하겠습니다.
그보다는 차라리 하양관(下陽關)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하양관은 곧 괵(虢)나라 부도(副都)인 하양(下陽)을 말함이다.
우공(虞公)은 순식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어리둥절했다.
"하양관은 괵(虢)나라 땅이오. 과인이 아무리 주고 싶어도 남의 나라 땅을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이오?"
순식(筍息)은 껄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외신(外臣)이 듣건대, 지금 괵공은 견융과 상전에서 싸우고 있으나 좀처럼 승부를 내지 못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니 군후께서는 괵공에게 원군을 보내겠다고 하시되, 대신 우리 진나라 군사들을 비밀리에 보내시면 하양관은 저절로 우리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이 어찌 군후께서 하양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虞)와 괵(虢)나라가 동맹국인 점을 철저히 이용하는, 실로 섬득한 계책이었으나 우공(虞公)은 오히려 순식의 지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기막힌 계책이오. 그대는 아무 걱정 마시오. 과인이 곧 우나라 병사들의 갑옷과 투구를 내어 드리겠소."
진군(晉軍)이 우나라 병사의 복장으로 갈아 입는 동안 우공(虞公)은 하양관을 지키고 있는 주지교에게 사람을 보내 원군을 보낼 뜻을 밝혔다.
우(虞)나라 군사로 가장한 이극(里棘)과 순식(筍息)은 우나라를 출발하여 괵의 하양(下陽)땅으로 접어들었다.
아무런 방해가 없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오히려 괵군의 안내를 받았다.
하양관의 수장(守將) 주지교(舟之僑) 역시 우(虞)나라 병사들이 원조 왔다는 말에 관문을 활짝 열고 그들을 맞아들였다.
성문 위에서 내려다보며 크게 외쳤다.
"어서 오시오. 이렇게 우리 나라를 도와주러 오시니 감격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관문 안으로 들어선 무장병사들이 별안간 병차에서 뛰어내리더니 하양관을 지키고 있던 수비병들을 모조리 체포해버렸다.
그제야 주지교(舟之僑)는 속은 것을 알고 관문을 닫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맨 먼저 관문 안으로 들어온 이극(里棘)은 재빨리 성안을 장악했다.
주지교는 맞서 싸우려 했으나 도저히 진군의 기세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는 이내 진군에 포위당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되었다. 이극과 순식 앞으로 끌려갔다.
그러한 주지교의 모습을 본 순식(筍息)이 얼른 일어나 밧줄을 풀어주며 말했다.
"그대같은 충신을 변방으로 내친 괵공(虢公)은 어리석은 사람이오. 차라리 이번 기회에 우리 주공을 섬기는 것이 어떠하오?"
주지교는 순식(筍息)의 너그러움에 감격했다. 또한 그는 하양성을 잃은 죄로 괵공에게 처벌당할 것이 두려웠다.
머리를 땅에 조아리며 대답했다.
"살려주신 것만도 큰 은혜입니다. 기회만 주신다면 진(晉)나라로 귀화하여 진헌공을 섬기고자 합니다."
"잘 생각하시었소. 이제부터 우리는 한 식구요."
순식(筍息)은 친히 주지교(舟之僑)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 다음에 계속........
출처 - 평설열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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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형중 열국지 190
김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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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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