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반지
선산 초입에 들어서니 갓 몽우리를 터트린 아카시아향기가 분분하다. 자진 상여소리에 검정 넥타이를 길게 늘어트린 것 같은 박새 한 마리가 상주처럼 구슬피 목청을 높이는데 아버지의 표정은 비에 젖은 암석처럼 고요하기만 하다.
차에서 내릴 때부터 보따리 하나를 소중히 안고 계신 아버지. 저안에는 과연 무엇이 들어있을까. 옆으로 바짝 다가서며 가늠해본다. 아버지는 호기심 많은 내게 빙긋이 웃으며 네 엄마랑 이천 갔을 때 산 도자기라고 나직이 말씀하신다. 아버지가 엄마랑 어디 한 번이라도 놀러 가신 적이 있었던가. 아슴아슴 짚어본다.
“도자기 안에는 반지가 들어있어. 어버이날 너희들이 사준 반지 말이야.” 엄마가 살아생전 그 반지를 제일 좋아했으니까 그걸 엄마와 함께 묻으려한단다. 머잖아 무덤은 없어질 테고 평장할 때 누군가 반지와 도자기를 가져간다면 그는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거라고 아버지를 어린애 대하듯 다그치며 얼굴까지 붉혔다.
“그래서 편지도 한 줄 썼다. 만약 이 반지를 발견한 후손이 있다면, 죄책감 갖지 말고 요긴하게 쓰라고,”
내 눈빛이 불안하게 흔들리자 아버지는 바람개비모양 춤추는 이팝나무로 시선을 돌리셨다. 도자기는 애초부터 싸구려니 값을 못 받을 테고 반지는 오만원이라도 받을 수 있으려나. 반지가 진짜 다이아가 아니고 가짜라고, 아버지께 지금이라도 말씀을 드려야하나. 주저주저하고 있는 사이 아버지는 인부들 사이로 성큼성큼 걸어가 관 옆에 도자기를 놓고 흙을 한 삽 뿌리셨다. 인부들의 시선이 모두 아버지에게 쏠렸다.
“어르신, 그게 뭡니까?”
“아내에게 보내는 내 마지막 연애편지라네.”
아이고땜을 놓던 사람들이 5월 햇살아래 무리지어 핀 꽃대처럼 여기저기서 술렁였다. 평소 금실 좋은 부부여서 밤새워 연애편지를 쓸 만도 하다며 잉꼬부부의 목격담을 내놓기도 했다. 아버지는 순식간에 사랑꾼이 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아버지는 매우 무심했다. 상여금을 받는 달에 선물 한 번만 받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엄마에게 통장을 다 주었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사는 동안 구리반지 하나 사주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군에 입대했을 때 어린자식들과 생활하느라 결혼반지를 팔아야했던 엄마는 외출할 때마다 허전한 손가락을 바라보곤 하셨다.
어느 해 어버이날, 육남매는 이삼만 원씩 모아서 화이트골드에 큐빅을 박아 엄마의 소원을 풀어드렸다. 엄마는 반지를 받자마자 눈물을 글썽였지만 반지가 닳는다며 일 년에 몇 번 중요한 행사에만 끼셨다. 그 후 육남매는 형편이 조금씩 나아져서 좋은 반지를 해 드리려고 했지만 그거 하나면 되었다며 막무가내로 거절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애절한 마음에 살아생전 엄마의 가장 소중한 유품을 무덤에 넣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반지가 묻히고 봉분이 세워지며 마지막 뗏장이 올라갔다. 끝내 반지가 진짜 다이아가 아니라는 비밀은 엄마의 무덤 속으로 영원히 묻혔다.
어쩌면 그게 엄마의 유언이었을까.
어린 시절 학업문제로 속을 많이 태운 나는 아버지께 대학교졸업장을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에 육십이 다되어 만학도의 길을 걸었다. 사년의 고된 여정이 끝나고 화상으로 졸업식이 거행되던 날 친정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아버지가 봉투 하나를 주머니에 쿡 찔러 주셨다.
“잘 가지고 있다가 지금보다 힘들 때 써라.”
집으로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꾸깃꾸깃한 만 원짜리가 열 개, 휴지로 둘둘 말린 무거운 금반지가 하나 들어있었다. 금반지를 보는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위용이랄지, 위엄이랄지, 가난 때문이었을까. 아무튼 금반지는 형용하기 힘들 정도로 멋졌다. 아버지께서 퇴임하실 때 여러 단체들이 선물을 했는데 그때 본 듯도 했다. 사시는 동안 아버지도 넉넉지 않았는데 이걸 여태까지 간직하다 내게 주시다니……. 먹먹한 마음으로 반지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날부터 반지 때문에 하루하루가 불안했다. 출근을 하고도 반지를 넣어둔 화장대 서랍에 온통 신경이 쓰였다. 도둑이 많은 동네라는 소문이 있어서 잃어버릴까봐 핸드백에 넣고 다니기도 여러 번. 그렇게 몇 달을 고민하다가 묘안이 떠올랐다. 남자반지를 간직하느니 여자팔찌로 세공해서 차고 다니자는.
용기를 내어 믿음직한 동네 금은방을 찾아갔다. 예쁜 팔지가 손목 끝에서 찰랑거리는 상상을 하니 그동안의 중압감이 한 번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지가 가짜란다. 아버지가 아시면 얼마나 큰 배신감을 느끼실까. 범인을 찾도록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나. 그날부터 반지 때문에 또 고민에 빠졌다.
그런 어느 날이었다. 퇴근을 하고 오니 현관문이 열려있었다. 도둑이든 것이다. 잘 살 때 남편이 취미로 별을 관측하던 야간 망원경과 휴지로 말아 둔 아버지 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차피 이제는 별 보러 다닐 경제적인 여유도 없는데 뭐.”
늦게 온 남편은 빈 들판 허수아비처럼 허허 웃었다. 내게 반지의 후유증은 컸고 오래도록 남았다. 그렇게 멋진 가짜 금반지를 연출한 주인공은 누구일까. 남루한 내 집에 들어온 도둑은 또 누구일까를 수없이 되뇌었다.
시간이 지나니 어쩌면 값나가 보이는 반지 덕분에 노트북이나 다른 물건에 해코지를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여 아버지가 반지를 팔러 가셔서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 보다 막내딸에게 선물 했다는 뿌듯함으로 평생 사실 거니까 어쨌든 고마운 반지 아니던가. 나는 반지가 가짜였고 분실되었다는 사실을 끝내 비밀로 했다.
금빛 햇살이 머리위로 순연하게 쏟아지던 날, 나는 반지하나를 가슴에 오롯이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