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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바로 행복을 가져다주는 약입니다 허창에 들어선 무영은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다. 일단 표식이 된 객잔이나 주를 찾아야 했다. 허창은 상당히 큰 도시였고 정협맹뿐 아니라 흑사맹이나 무림맹, 심지어는 혈마맹에서도 비밀리에 운영하는 사업체가 있었다. 하남에서 흑사맹의 힘과 영향력이 상당해지긴 했지만 하남 전체를 먹어치울 수는 없었다. 하남에는 유서 깊은 문파도 많았고, 나름대로 힘을 갖춘 표국도 많았다. 특히 허창은 지리적 특성상 강력한 표국이 꽤 있었다. "저기 있군." 무영은 한참이나 지난 뒤에야 간신히 표식이 있는 객잔 하나를 발견했다. 상평객잔(常平客棧). 화려하진 않지만 허름하지도 않은 이름 그대로의 평범한 객잔이다. 서하린과 모용혜는 얼굴에 면사를 써서 눈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충분히 눈에 뜨었다. 무영은 그렇게 눈에 띄는 두 여인 덕분에 거의 존재감 없이 객잔으로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쪼르르 달려온 점소이에게 주인을 찾으니 주인이 나왔고, 간단하게 주인에게 무영이 가지고 있는 패를 살짝 보여주는 걸로 모든 절차가 끝났다. 무영 일행은 주인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며 객잔에서 가장 좋은 방으로 향했다. 방에는 침상 세 개 있었다. 방을 따로 쓸 수는 없었다. 그건 처음부터 내려진 지침이었다. 나눠진 인원은 모두 같은 방을 써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만 했다. 무영은 침상에 앉아 이번 임무에 대해 생각했다. 목표는 흑사맹이 쓰는 약의 정체를 알아내는 것이다. 예상하기로는 잠력을 격발시키는 거라 하지만 정확한 것은 확인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현재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그것을 어떻게 확인하느냐 하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흑사맹에 세작을 심는 것이다. 정협맹은 물론이고 무림맹이나 혈마맹에서도 당연히 흑사맹에 간자를 심었다. 물론 흑사맹 역시 다른 세력에 세작을 두었다. 그 세작을 통해 뭔가를 얻을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했다.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고, 때로는 세작이 증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마련한 방법이 바로 지금 무영이 맡은 임무였다. 현재 스무 명의 의원은 각자 따로 허창에 흩어진 상태였다. 그들은 알아서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그들이 얻은 모든 정보는 무영에게 모인다. 무영은 스스로도 악의 존재를 찾아야 하고, 그렇게 모인 정보를 정리해 정협맹으로 다시 보내야 한다. '쉽지 않겠군.' 무영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일단 자신은 몰라도 다른 의원들은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흑사맹과 정협맹이 싸우는 곳을 찾아다니면서 정보를 모아야 할 테니까. 싸움이 끝나고 남은 시체를 조사하거나 아니면 몰래 숨어서 싸우는 광경을 지켜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어쩌면 약을 먹기 진전에 흑사맹 무사 하나를 납치해서 약을 빼앗어야 할지도 모른다. '한데 약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했지?' 실제로 그렇게 납치한 흑사맹 무사가 있었다. 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 하지만 어디에 숨겼는지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고문을 해봤지만 아무런 소득도 얻지 못했다. 강도 높은 고문의 결과는 그들 역시 어디에 약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건 말이 안 되지.' 원인 없이는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그들은 분명히 약을 가지고 다닐 것이다.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던가. '문제는 그들이 약 먹는 모습을 봤다는 거로군.' 흑사맹 무사들이 약을 먹는 광경을 목격한 자들이 있다. 흑사맹 무사들은 약을 먹음과 동시에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것이 바로 잠력을 격발시키거나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약일 것이다. 무영은 그 이후로도 끈임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하지만 현재의 사건을 정리하는 것 외에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 "후우, 난감하네." 무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모용혜와 서하린은 피곤했는지 벌써 잠든 뒤였다. 무영은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침상에 누워 잠든 두 여인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사내를 앞에 두고 긴장감이라는 게 없군." 무영은 두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유혹의 향기를 억지로 흩어 놓은 후 침상에 누웠다. 아무래도 잠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정협매의 심처, 맹주인 남궁무학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이 모여 심각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 "맹주,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머뭇거리실 생각이오? 지금의 전력이라면 흑사맹 정도는 쉽게 쓸어버릴 수 있소. 더 이상 시간을 끌 이유가 없지 않겠소?" 서문공복이 시뻘겋게 충혈된 눈으로 맹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맹주는 그의 눈을 똑바로 보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이대로는 절대 안 되오. 그건 서문당주께서도 잘 알지 않소." 서문공복은 탁자를 내리쳤다. 탕! 공력을 싣지는 않았지만 탁자가 부서질 듯 요동쳤다.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호영이가 죽었소. 게다가 우리 서문세가의 정예무사가 백 명도 넘게 죽었소. 아직 그 시체도 찾지 못했소. 한데 내가 더 참아야만 하오?" 서문공복의 말에 담긴 분노는 대단했다. 어느 누구도 그의 심정을 모르지 않았다. "후우, 진정하시오. 자식이 죽은 것은 서문 당주만이 아니오." 맹주는 그렇게 말하며 주변을 둘러봤다.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의 안색은 하나같이 침중했다. 서문공복도 그제야 탁자에서 손을 치우며 고개를 돌렸다. 맹주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입을 열었다. "흑사맹의 분위기가 심상치 찮소. 현재 하남 지역에서 맹의 무사들이 얼마나 심각한 피해를 입었는지 아시오?" 맹주의 말에 서문공보이 고개를 돌린 채로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외당 당주가 그런 것도 모르리라 생각하셨소?" "아시는 분이 그렇게 성급하게 나서신단 말이오? 그들이 무슨 수를 쓰고 있는지 파악하지 않고서 섣불리 도발에 응할 수는 없소." 맹주의 단호한 태도에, 서문공복은 여전히 고개를 돌린 채로 어금니를 꽉 물었다. 이번에 유가장에서 죽은 서문호영은 서문공복의 아들이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아끼던 아들이 그 재능을 채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누구라도 분노할 만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의원 나부랭이들이 뭔가를 주워 올 때까지 참고 기다리라는 말이오?" 서문공복이 다시 고개를 돌려 맹주의 눈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맹주는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 않소.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서문세가에서 자체적으로 인원을 구성해서 움직여 보시오. 난 더 이상 말리지 않겠소." 맹주의 말에 서문공복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맹주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하지만 그의 그런 눈길에도 맹주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표정으로 서문공복의 눈을 무심히 쳐다봤을 뿐이었다. 결국 서문공복은 슬며시 고개를 돌리며 못마땅하다는 듯 침음을 흘렸다. "끄응......" 서문공복이 슬쩍 뒤로 물러나자 이번에는 모용강이 나섰다. 모용강은 정협맹 내당의 당주였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은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맹주님." 모용강의 눈빛에 어린 걱정을 읽은 맹주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고 있소." "하면, 그저 의원들에게만 맡겨 놓고 기다려선 안 된다는 것도 아시겠군요." 맹주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모용강은 그 눈빛을 보고서야 약간 안도할 수 있었다. 이번 임무를 맡은 사람들 중에는 모용강의 질녀인 모용혜도 포함되어 있다. 모용강에게 있어 모용혜는 그저 철부지 조카일 뿐이다. 그런 조카가 위험한 곳에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래서 이렇게 다들 모여 달라 한 것 아니겠소. 사실...... 사천에 연락을 넣었소." 사천이라는 말에 방 안에 있던 모두의 눈이 빛났다. 사천을 거론했다면 당연히 사천에 있는 당씨세가를 말함이 분명했다. 사천당가는 예로부터 독과 암기로 유명한 곳이다. 강력한 무가이긴 하지만 오대세가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독자적인 길을 걷는다. 현 오대세가는 남궁세가, 서문세가, 모용세가, 제갈세가, 하북의 팽씨세가를 일컫는다. 꽤 오래전부터 당가를 정협맹에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해왔지만 쉽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사천에 머물기를 원할 뿐이었다. 자신들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당가를 움직였다면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하면 당가가 도와주기로 했단 말씀이시오?" 서문공복의 눈에는 경악이 가득했다. 도저히 믿기 어려웠다. "아아, 앞서가지 마시오. 그저 연락만 넣었을 뿐이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맹주의 얼굴에 비친 자신감은 분명 일이 성사될 거라 확신하는 듯했다. 모용강은 그것을 읽고 놀란 눈으로 물었다. "하면 사천당가가 입맹한다는 말입니까?" "얘기가 잘 풀리면 그리 될 것이오." 맹주의 말에 장내가 어수선해졌다. 그만큼 이번 일은 굉장한 사안이었다. "그들의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흑사맹이 무슨 수작을 부리건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겠군요. 정말 대단합니다." 모용강은 감탄했다. 맹주의 능력은 정말 그의 상상을 뛰어넘었다. 그제야 질녀에 대한 염려가 조금이나마 희석되었다. '후우, 다행이야.' 모용강은 그렇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다시 맹주에게 물었다. "하면 그들은 언제쯤 합류하게 되는 것입니까?" 맹주가 그 질문에 슬쩍 웃었다. "아마 지금쯤 하남에 도착했을지도 모르오." 맹주의 말에 모용강은 물론이고 서문공복마저도 해연히 놀랐다. 아니, 맹주의 집무실에 모인 모든 사람이 놀랐다. 맹주는 그들의 놀란 눈을 마치 즐기기라도 하듯 하나하나 천천히 둘러봤다. 맹주의 눈빛이 승리감에 젖어들었다. "할아버지,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와야 하는 거죠? 아무리 정협맹이 도움을 요청했다고 해도요." 당백형은 연방 툴툴거리는 손녀의 모습에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손녀가 무슨 말을 하든 그저 예쁘게만 보였다. "독왕곡의 흔적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더냐. 독왕곡은 우리 당문의 찌꺼기 같은 곳이다. 반드시 지워야 한단다." "그러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느냐고요. 전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거든요. 독왕곡이 갑자기 나타날 이유가 없잖아요." 당백형은 손녀의 말에 여전히 미소를 지우지 않은채 말을 이었다. "독왕곡이 무서운 이유가 딲 하나 있는데 그게 뭔지 아느냐?" "그야 흑혈단(黑血丹)이죠." 당백형이 대견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흑혈단이지. 인간의 잠력을 폭발시키는 것도 모자라 진원지기까지 모조리 끌어 쓰게 만드는 무서운 독 아니겠느냐." 당백형은 손녀 당비연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호기심 가득한 표정을 짓는 것을 확인하고 말을 이었다. "하남에 잠력을 격발하는 놈들이 떼거지로 나타난 모양이다." 당비연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서둘러 여기까지 달려오신 거로군요?" 당백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네가 날 몰래 쫓아오고 있다는 것도 알았지만 그걸 말릴 시간도 없었단다. 자칫 그놈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가버리면 헛수고만 한 셈이 될 테니까 말이야." "그런데 만일 정말로 그들이 독왕곡이라면....... 위험하지 않을까요?" 당비연의 표정에는 걱정이 가득했다. 당백형이 그것을 보고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자신 있게 말했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게냐? 천수독왕(千手毒王) 당백형이 바로 나다. 독왕곡쯤은 나 혼자서도 가볍게 박살낼 수 있다." 천수독왕 당백형은 무림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강자였다. 즉, 무림십대고수 중 하나라는 뜻이다. 십대고수라는 것은 인간의 수준을 초월한 존재들이다. 혼자서 작은 문파 하나쯤은 우습게 박살낼 수 있다. 당백형은 그런 십대고수 중에서도 꽤 강하다고 평가받는 사람이었다. "맞아요. 무림에 독왕이 둘이나 있을 수는 없지요." 당비연도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 독왕곡의 곡주를 독왕이라 부른다. 즉, 지금은 독왕이 둘이나 된다는 뜻이다. 물론 독왕곡이 진짜 존재한다면 말이다. "그나저나 네가 걱정이구나." "제가 왜요? 저 이래 봬도 꽤 강하다고요." 당비연이 허리에 양손을 척 올리고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당백형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허허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불안한 것은 불안한 것이다. "독왕곡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이 지금은 흑사맹과 손을 잡은 듯하니 더 위험하지. 너를 지키면서 그놈들을 상대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단다." 당백형의 말에 당비연이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자신도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데 그렇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니 왠지 기운이 빠졌다. "어쨌든 이번 일은 겉으로 보기에는 정협맹에서 요청한 일을 해주는 거니 그들에게 손을 좀 벌려야겠구나." "정협맹이요?" 정협맹이라는 말에 당비연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아직 한 번도 사천을 벗어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정협맹처럼 거대한 무림단체에 관심이 가는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어느새 시무룩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었다. 당백형은 그 모습에 또 허허 웃고 말았다. 무영은 허창에 온 이후로 신경을 곤두세우며 매일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어딘가에서 쌍무이라도 벌어지면 가볼 텐데 사흘이나 지나도록 허창은 물론이고 하남 전체가 조용했다. "후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무영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허창 한복판에서 주변을 둘러봤다. 사방에 사람들이 보였다. 그들에게서는 활기가 느껴졌다. 아마 평소 같았으면 신선단을 잔뜩 가져와 이곳에서 좌판을 벌이고 한바탕 약을 팔았을 것이다. 무영 뒤에는 서하린과 모용혜가 면사를 쓴 채로 조용히 서 있었다. 그녀들 역시 며칠째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아 긴장감이 많이 풀렸다. 무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뭔가 일이 벌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의미 없는 시간의 낭비였다. 아직 가야 할 길도 엄청나게 먼데 이렇게 시간을 버릴 수는 없었다. '일단 신선단을 만들어야겠군.' 무영은 그것이 우선이라 생각했다. 신선단을 만들기만 하고 팔지는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단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새로 얻은 깨달음을 신선단으로 확인해 보고 싶기도 했다. 생각을 결정한 무영은 발걸음을 돌렸다. 무영이 갑자기 움직이자 서하린과 모용혜가 흠칫 놀라며 서둘러 그 뒤를 따랐다. "오라버니, 어디로 가시는 거예요?" "산." 무영의 대답에 서하린과 모용혜가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약초 캐러 가시는 건가요?" 이번에는 모용혜가 물었다. 무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용혜와 서하린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면 무영이 약을 만들지 않은 지도 꽤 오래 되었다. 두 여인은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무영의 등을 바라봤다. "자아! 신선단이 왔습니다! 신선단이 무엇이냐! 바로 세상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약입니다!" 모용혜와 서하린은 무영이 신나게 떠느는 모습을 보며 빙긋 웃었다. 비록 면사를 쓰고 있어 얼굴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이 그녀들이 웃고 있다는 것을 말해줬다. 모용혜와 서하린은 그저 무영 뒤에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관심을 잔뜩 끌어 모을 수 있었다. 보통 때라면 무영이 간단한 차력 시범이라도 보여야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저 신나게 떠들기만 해도 제법 팔려나가는 약이 많았다. 무영이 신선단을 만드는 데 쓴 시간은 딱 사흘이었다. 그동안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을 떠날 수는 없었다. 철수 명령이 떨어지기 전에는 말이다. 모용혜는 은밀히 정협맹에 있는 숙부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돌아온 답은 계속 허창에 대기하라는 것뿐이었다. 모용혜는 정협맹에서 뭔가 다른 움직임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모용혜는 무영이 약 파는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모습은 활기가 넘쳐났다. 이제까지와는 전혀 다른 사람 같았다. '이게 공자님의 진짜 모습일 거야.' 지금 무영의 모습은 그저 약장수에 불과했다. 이것을 보고 누가 무영을 그 대단한 약을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여길 것이며, 뇌룡이라고 생각할 것인가. 하지만 모용혜는 무영이 무공을 쓰는 모습보다 지금 이 모습이 훨씬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이 모습이 더 마음에 들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모용혜는 옆에서 들려오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서하린이 아찔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면사로도 다 가릴 수가 없구나. 저 미모는.' 모용혜는 내심 그것이 부러웠다. "아무것도 아니야." 모용혜는 그렇게 대답하고 다시 무영을 바라봤다. 무영은 정말로 신들린 듯 약을 팔아치우고 있었다. 모용혜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그려졌다. "어머, 할아버지. 저기 약 파는 사람이 있어요." 당비연이 신기한 눈으로 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당백형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내 싸늘한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흥, 여기가 사천이었다면 버릇을 고쳐 놓을 텐데." 사천에는 떠돌리 약장수가 거의 없다. 당가에는 그런 것을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천의 약재나 약의 흐름을 오로지 당가에서 조절한다. 그 막대한 이득이 고스란히 당가로 스며들고 당가는 그렇게 벌어들인 돈으로 독이나 약, 그리고 암기에 대해 연구를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사천 내에 거대한 돈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당가는 그 흐름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당가가 가진 또 다른 힘이었다. 돈의 흐름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대단해서 당가는 사천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도 마음만 먹으면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참, 말도 잘 하네요. 저 약을 먹으면 정말로 무병장수 할 것 같아요. 호호호." 당비연의 말에 당백형이 눈살을 찌푸렸다. "쯧쯧, 언제 철이 들려고 그러느냐." "호호, 농담이에요. 할아버지도 차암." 당비연이 눈웃음치자 당백형도 허허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리고 약장수를 쳐다봤다. "보통 약장수들은 차력이나 힘자랑을 하지 않나요? 그러면 가서 재미있게 놀 수 있을 텐데." 당비연이 눈을 빛내며 중얼거렸다. 성도에서 허창까지 오는 길은 너무나 지루했다. 잘 하면 그 지루함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할아버지, 우리 좀 더 가까이 가봐요." 당비연은 당백형의 팔을 잡아끌다시피 해서 약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당백형은 못 이기는 척 손녀에게 끌려가며 약장수와 그 뒤에 서 있는 두 명의 면사녀를 확인하고는 눈을 빛냈다. '호오? 이것 봐라?' 은은한 기파의 흐름이 느껴졌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느끼지도 못하겠지만 십대고수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천수독왕 당백형의 눈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보통 일정 경지를 벗어나면 그 기파의 흐름이 거의 사라지기 때문에 무공을 익혔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아보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격차가 너무 심하면 어쩔 수 없는 법이다. '무공을 익혔군. 게다가 저 정도로 기파가 은밀하다면 상당한 수준이라는 뜻인데......' 당백형은 약을 파는 청년을 살폈다. 하지만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전혀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고수 두 명에 별 볼일 없는 약장수 하나라......' 게다가 여고수 두 명은 나이도 어린 듯했다. 기꺼해야 당비연 또래로 보였다. 그 정도 나이에 저 정도 수준에 올랐다면 굉장한 재능이었다. 당백형의 눈에 호기심이 어렸다. '어떻게 떠본다......' 당백형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들이 혹시 독왕곡과 관계되지 않았을까 해서였다. 우선 정협맹과 연락을 취하는 것이 순서였지만 독왕곡의 흔적을 자신이 발견해낸다면 굳이 그렇게 할 이유가 없었다. 당백형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때까지 눈을 빛내며 지켜보던 당비연이 손을 번쩍 들고 나섰다.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뭔가를 좀 보여줘요! 그게 그리고 좋은 약이라면 파는 사람이 뭔가 특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당비연의 말에 구경하던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으하하! 거 말 잘하는 소저로군!" "옳소!" 보통 약장수들은 차력 같은 볼거리를 제공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보여드리죠." 무영은 흔쾌히 나섰다. 그렇지 않아도 뭔가 허전하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처음 파는 곳에서 이렇게 말로만 떠들고 약을 판 경험은 많지 않았다. "자자...... 그럼 한 분의 도움을 받아 보겠습니다." 무영이 몽둥이 하나를 꺼내며 말하자 당백형이 기회다 싶어 앞으로 나섰다. "내가 해보지." 당백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 때문에 다른 구경꾼은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무영이나 두 여인에게는 전혀 다가가지 않았다. 그랬기에 서하린도 모용혜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들의 능력으로는 당백형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 알아볼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녀들이 주목한 것은 오히려 당백형이 아니라 당비연이었다. 서하린은 눈살을 찌푸리며 모용혜에게 말했다. "저 여자 꽤 강해 보이는데?" 모용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꼭 골탕 먹이려는 것 같잖아." 두 여인은 당비연을 살짝 노려봤다. 미약한 살기가 당비연에게 흘러갔고 당비연도 당연히 그것을 느꼈다. 세 여인의 눈이 한군데에서 부딪쳤다. 당비연의 입가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 '훗, 할아버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군.' 어느새 당백형이 무영 앞에 섰다. 무영은 그런 당백형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몽둥이로 자네를 치면 되나?" 당백형의 물음에 무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긴 합니다만......" 무영은 섣불리 몽둥이를 넘기지 않았다. 무영은 기의 흐름을 느끼는 것만큼은 천하제일이었다. 비록 감각을 크게 확장시키지는 못하지만 눈앞에 있는 생명이 가진 기의 흐름을 그 누구보다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신선단을 만들기 위해 기본적으로 가져야 할 능력이었다. '굉장하군.' 무영은 속으로 상당히 놀랐다. 이 정도라면 얼마 전에 싸웠던 구대흉마와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았다. "후우우......" 무영은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눈을 빛내며 당백형을 똑바로 쳐다봤다. "딱 한 대만 맞겠습니다. 그리고 반드시 배를 때려 주셔야 합니다." 무영은 마치 당부하듯 말했다. 당백형은 그런 무영을 보며 묘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뭔가 눈치를 챈 건 아니겠지?' 당백형은 그렇게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저었다. 눈치를 채면 어떤가. 어차피 자신을 막아낼 방법은 없었다. 무방비 상태로 서 있는 평범한 사람 하나 처리하는 것쯤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당백형은 그제야 몽둥이를 받을 수 있었다. 무영은 뒷짐을 지고 배에 힘을 주었다. 당백형은 그렇게 무영이 충분히 준비할 시간을 준 후, 몽둥이를 빙글빙글 돌렸다. "그럼 가네." 당백형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몽둥이가 움직였다. 부웅! 빠앙! 몽둥이는 정확히 무영의 배를 가격했다. 마치 가죽 북 터지는 듯한 소리가 커다랗게 울렸다. 그 소리에 구경꾼들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잠시 침묵이 지나갔다. 그리고 그 침묵 뒤에 열렬한 환호가 울렸다. "와아아!" "굉장하다!" 당백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무영과 자신의 손에 들린 몽둥이를 번갈아 쳐다봤다. 비록 온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지만 적지 않은 공력을 실어서 때렸다.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수련을 했어도 내장이 터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한데 무영은 멀쩡했다. "믿을 수가 없군. 한 대만 더 때리면 안 되겠나?"' 당백형의 말에 무영이 황당한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당백형은 슬그머니 무영의 눈을 피했다. 하지만 고집을 꺾을 생각은 없었다. '외공을 익힌 것인가? 하지만 외공만으로는 내 일격을 막지 못할 텐데......' 당백형의 말을 들은 구경꾼들은 주먹을 하늘로 찌르며 소리쳤다. "한 번 더 해라!" "그래! 한 방 가지고는 모르겠다! 한 번 더 해라!" 구경꾼들의 외침에 무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어쩔 수 없지요.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무영의 말에 당백형이 눈을 빛냈다. 무영은 다시 뒷짐을 지고 서서 배에 힘을 줬다. 당백형은 그것을 보며 몽둥이를 들어올렸다. '이번에는 조금 과할 정도로 힘을 실어봐야겠군.' 당백형은 몽둥이에 내공을 밀어 넣었다. "자, 가네." 당백형은 그렇게 말하고 몽둥이를 휘둘렀다. 어찌나 빠르게 휘둘렀는지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휘두른 장면을 본 사람도 없었다. 그것은 서하린이나 모용혜도 마찬가지였다. 콰앙! 어마어마한 폭음이 울렸다. 모두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몽둥이가 산산이 부서졌다. 그 조각들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다치게 하지는 않았다. 터진 조각들이 대부분 위로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 조각들은 힘을 잃고 마치 비 오듯 쏟아졌다. 이번에는 침묵이 조금 길었다. 하지만 그 침묵 뒤에 오는 함성은 훨씬 더 거대했다. "우와아아아!" "굉장하다!" 짝짝짝짝짝! 박수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구경꾼들의 함성이 마치 허창 전체를 뒤흔드는 듯했다. "정말 멋지다!" "약을 팔려면 이 정도는 해야지!" 사람들은 당백형도 약장수와 한패라고 여겼다. 더불어 처음 약장수에게 뭔가 보여줄 것을 요구했던 당비연까지도. 당비연도 당백형도 바보가 아니고서야 사람들이 자신을 약장수와 한패라고 여기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 사람들의 박수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무영은 좌중을 향해 정중히 허리를 숙였다. "이게 바로 신선단의 힘입니다." 무영이 그렇게 말하자 구경꾼들이 기꺼이 돈주머니를 열었다. 그들이 사는 것은 약이 아니라 방금 전에 봤던 굉장한 광경이었다. 절반쯤 남아있던 신선단과 신선고가 순식간에 팔렸다. 무영은 만족스런 표정으로 좌판을 정리했다. 무영은 정리가 끝난 후, 당백형을 쳐다봤다. 당백형은 그때까지도 그저 멍하니 무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비연은 당백형보다는 조금 나았다. 그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무영을 바라봤다. "저희는 이만 가볼까 합니다만, 혹시 제게 용무가 있으셨습니까?" 무영의 질문에 당백형이 흠칫 정신을 차렸다. 하지만 여전히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대, 대체......" "예?" "대체 자네 정체가 뭔가?" 무영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약장수입니다." "약장수? 고작 약장수가 내 삼 성 공력이 담긴 몽둥이를 견뎌낸단 말인가?" 당백형의 말에 당비연이 화들짝 놀랐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는 안다. 당백형이 얼마나 강한지 말이다. 당백형의 삼성 공력이라면 자신이 젓 먹던 힘까지 모조리 짜내도 이겨낼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공력이다. "할아버지! 그게 정말이신가요?" 당비연의 놀란 음성에 당백형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믿을 수 없지만 그렇구나." 서하린과 모용혜는 의아함이 가득한 얼굴로 당백형과 당비연을 쳐다봤다. 대체 상대가 누구기에 이렇게 광오하단 말인가. 서하린이 모용혜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 "누군지 알겠어?" 모용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 역시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음에 안 드는 건 확실했다. "나도 모르겠어."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고 한 거지만 당백형의 귀에 그것이 안 들릴 리 없다. 당백형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고개를 몇 번 저은 후 입을 열었다. "난 당백형이라고 하네. 세인들이 천수독왕이라는 과분한 호칭으로 부르고 있지." 당백형의 말에 서하린과 모용혜는 크게 당황했다. 약장수의 차력에 나서서 몽둥이질을 하는 사람이 설마 십대고수 중 하나인 당백형이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당백형은 그녀들의 반응에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자, 내 정체를 말했으니 이제 자네도 정체를 말하는 게 옳지 않겠나?" 당백형의 말에 무영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정협맹 의선각의 부각주 화무영이라 합니다." 무영의 대답에 당백형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정협맹이라고?" 그간 당백형이 생각해 왔던 정협맹은 실력 모자라는 놈들이 머릿수를 늘리기 위해 만든 단체에 불과했다. 한데 오늘 무영을 보니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후우, 일단 자리를 좀 옮기도록 하지. 이렇게 대로 한복판에서 떠들 이야기는 아닌 듯하군." 당백형은 그 말을 남기고 뒤돌아 어딘가로 걸어갔다. 남은 사람들은 그 뒤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화려한 주루에 자리를 잡은 당백형은 무영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구석진 곳이었기 때문에 모용헤와 서하린은 면사를 벗었다. 나이 많은 사람 앞에서 얼굴을 가려 예에 어긋하는 행동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당비연은 두 여인이 면사를 벗은 순간부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얼굴이 못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니, 그동안은 얼굴에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 자부심이 산산조각 났다. '쳇, 무림인이 얼굴만 반반하면 뭐해? 무공이 강해야지.' 당비연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애써 자존심을 세웠다. "정협맹에는 자네 같은 사람이 얼마나 더 있는가?" 한참의 침묵 끝에 당백형이 물었다. 사실 정협맹 사람들을 만났으니 이번 독왕곡의 흔적에 대해 얘기를 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럴 겨를이 없었다. 당백형이 대답을 기다렸지만 무영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정협맹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 대답은 모용혜가 했다. "공자님과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또 있을 리 없지요." 모용혜의 말에 당백형이 눈을 빛냈다. "호오, 그렇구나. 하긴 그래야지." "아마 천하를 다 뒤져도 한 명도 없을 걸요?" 이번에는 서하린이 말을 덧붙였다. 당백형은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 "흥, 천하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를 너무 우습게 보는군. 천하는 그렇게 좁지 않네." 당백형의 말에 서하린은 더 반박하려다가 말았다. 그저 모용혜와 무영을 한 번씩 쳐다봤을 뿐이다. 무영은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이 너무 대단해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모용혜는 당연하다는 얼굴로 서하린을 쳐다봤다. 모용혜와 서하린의 눈빛이 의미심장하게 부딪쳤다. "그건 그렇고 사천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으시는 분이라 들었는데 이곳 허창에는 어쩐 일로 오셨나요?" 모용혜가 궁금한 얼굴로 묻자 당백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눈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설마 당가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는가?" 모용혜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당백형의 표정이 허탈해졌다. "허어, 이거 내가 농락을 당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군." 당백형은 잠시 뜸을 들였다가 말을 이었다. "난 독왕곡의 흔적을 찾아왔네. 정협맹의 정보를 듣고 말이야." 모용혜와 서하린이 동시에 무영을 바라봤다. 이번 임무의 최종 책임자는 무영이다. 이런 일이 있다면 무영이 알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무영은 고개를 저었다. "독왕곡에 대해서는 알고 있나?" 모용혜만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독왕곡은 워낙 드러났던 시기가 짧아 그들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나마 모용혜는 정협맹의 수뇌부와 밀접한 관계였기에 들어본 적이 있는 정도였다. "독왕곡이 주목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흑혈단 때문이야. 흑혈단은 인간의 잠력을 폭발시킬 뿐 아니라 진원지기까지 몽땅 끌어 쓰도록 만들지. 잠시 동안 엄청난 위력을 낼 수는 있지만 결국 사용자를 폐인으로 만들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약이라네." 당백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일행을 둘러봤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독왕곡이 사실 당문과 관계가 있다는 게 문제라네." 무영 일행은 그제야 왜 당백형이 이곳까지 왔는지, 또 정협맹이 왜 그에게 정보를 흘렸는지 알 수 있었다. "자, 내 얘기는 이걸로 끝이고...... 이젠 나도 얘기를 좀 들어야 하지 않나?" 당백형의 말에 모용혜가 간단히 이번 임무에 대해 설명했다. 어차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으니 말해도 크게 관계없다고 판단했다. 당백형은 모용혜의 설명을 모두 들은 후, 얼굴에 슬쩍 비웃음을 깔았다. "의원들이 그걸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나?" 당백형의 말에 모용혜와 서하린이 회의적인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아직 시작조차 못했으니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서하린의 말에 당백형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당백형은 그렇게 반 각 정도 같은 상태를 유지하다가 입을 열었다. "어쨌든 그렇지 않아도 정협맹에 부탁할 것이 있었는데 잘 되었군." 당백형의 말에 무영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부탁이라시면......" "이 아이를 좀 보호해 주게." 당백형이 당비연을 슬쩍 쳐다보며 말하자 당비연이 당장 소리쳤다. "할아버지!" "조용히 해라. 앞으로는 너무 위험해서 너까지 보호해 줄 수 없다. 그러니 내 말을 들어라. 정협맹이 허창에 가지고 있는 힘도 보통이 아니라 들었는데, 맞는가?" 당백형의 물음에 모용혜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듣기 했습니다만 아직 저희는 그에 대해서 제대로 모릅니다. 그저 임무만 부여받고 나왔을 뿐이니까요." 그 말에 당백형이 인상을 찌푸렸다. 비록 무영이 강해 보이긴 하지만 저 세 명만으로 당비연을 보호하게 하느니 차라리 자신이 데리고 다니는 것이 훨씬 안전해 보였다. "정협맹에 연락을 해서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나?" 당백형의 물음에 모용혜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일단 연락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큰 기대는 마십시오." 당백형이 여전히 인상을 쓰고 있자 이번에는 서하린이 나섰다. "그런데 그렇게 걱정이 되시면 차라리 저희와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우리 오라버니가 생각보다 대단하거든요." 서하린의 말에 당백형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안 되네. 흑혈단에 관계된 일은 오로지 나 혼자서 해결해야만 하네." 당백형의 말에 무영 일행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너무나 태도가 단호해서 말을 꺼낸 것 자체가 무안할 정도였다. "끄응. 어쩔 수 없지. 일단 정협맹의 답을 기다리도록 하지. 언제쯤 찾아오면 되겠나?" "적어도 사흘은 필요해요. 아무리 전서구를 쓴다고 해도......" 연락을 하고 논의를 거쳐 답을 받으려면 그 정도 여유는 필요하다. 당백형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사흘 후 정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지." 당백형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당비연이 당황하며 그 뒤를 따랐다. 무영 일행은 그런 당백형의 행동에 그저 멍한 얼굴로 뒷모습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당백형이 허창에 들어섰습니다." 수하의 보고에 운곡은 눈살을 찌푸렸다. "천수독왕?" "그렇습니다. 손녀와 함께입니다." 운곡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후우, 이래서야 쉽게 일을 진행할 수가 없군. 설마 당가까지 나설 줄이야." "별일이야 있겠습니까? 아무리 당백형이라 해도 절대 알아차라지 못할 것입니다." 수하의 말에 운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얘기다. 당백형이 아무리 난리를 쳐도 흑혈단의 비밀을 알아낼 수는 없다. "흑혈단은 제대로 먹이고 있느냐?" "예, 몇 끼만 더 먹이면 완벽합니다." 운곡이 고개를 끄덕였다. 흑혈단이라는 것을 알면 아무도 그것을 먹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식사에 조금씩 섞어서 먹였다. 하급 중에서도 최하급 무사들에게만 흑혈단을 지급했다. 그들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소모품에 불과했다. "그들이 준비되는 대로 바로 시작한다. 일단 의워들은 좀 꺼끄러우니까 처리를 해야지. 천수독왕의 위치를 잘 파악하도록. 되도록 그가 없는 곳에서 일을 벌여야 하니까." "예." "물러가." 운곡의 손짓에 수하가 물러갔다. 운곡은 잠시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정말로 대단하고 획지적이야. 어떻게 흑혈단을 이런 식으로 바꿔 버릴 수가 있지?' 현재 운곡이 사용하는 흑혈단은 예전 독왕곡이 맹위를 떨치던 시기에 쓰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효과도 훨씬 크고 부작용도 더 크다. 하지만 유용했다. 이번 흑혈단은 혈적소(血赤簫)라는 피리를 불어주지 않으면 절대 효능을 드러내지 않는다. 일단 혈적소가 뿜어내는 소리를 들으면 즉시 효과가 발동해 잠력을 격발하고 모든 진원지기를 끌어내 엄청나게 강력한 무사로 변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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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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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감했어요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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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즐독! 항상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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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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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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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므흣 러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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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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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감하고갑니다..수고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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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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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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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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