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내용을 삭제하지 마세요!!
(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
우리 까페가 다른 곳에 비해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는 것은 바로 그 단골손님들 덕이라할 수 있겠다.
초등학교 학부형 반 대표들 모임을 우연히 우리 까페에서 가진 이후 커피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
계속 모임을 가지기 시작했는데 점점 사장님에게 빠지기 시작했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우리애는 초등학교 다닐 때부터 하교하고나면 동네 반아이들이 모두 책가방만 던져놓고는 바로 우리
집으로 달려왔는데 거기엔 골목대장인 우리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 그애가 특별히 힘이 세다거나 말발이 세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는데 이유가 무얼까 하고 가만
보니 그애는 심심하지않게 끊임없이 재미있는 놀이들을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그러다 하루는 우리 서재에 오래된 못쓰는 서적들을 (부모허락을 받고) 꺼내 종이를 가위로 오려 화폐
를 만들었다. 한 장을 서너개로 잘라 큰것은 10.000원, 조금 작은 것은 5,000원 더 작은 건 1,000원이라고
굵은 빨간 색연필 글씨로 써서 처음엔 한사람당 십만원정도로 나누어주었는데 그애들은 대장님에게
하사받은 그 돈에 감자덕지하며 고마워하였다. 평생 그런 거금을 소지하다니 너무 기뻐하였고 그 대장님
은 앞으로 너희들이 직접 돈을 벌라 하였으니..
그리하여 그 버는 방법이란 예를 들어 우리집 리어카에 우리애가 올라타 앉아 있으면 우리 마당 이쪽
에서 저쪽 끝으로 리어카를 밀고 왔다갔다 하는데 한번 갔다오는데 5천원 두번이면 만원.. 아이들은
줄울 서있다 지 차례가 되면 땀을 뻘뻘 흘리며 끌고 왕복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그 외에도 돈을 버는 여러 방법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학교갔다오면 배 고플거라며 엄마들이 만들어
놓은 옥수수떡을 안먹고 가져와서 돈을 받고 우리애에게 팔았다. 그건 좀 고가로 팔아 핏자모양의 삼각형
한 개에 만원씩이라 아이들이 배가 고파도 돈을 벌 욕심에 자신들은 안먹고 우리애에게 가져다 팔았다.
면面에서 가끔 동네사람들에게 미국서 나온 구호품이라며 한되씩 나누어 주는데 어쩐 일인지 유독
우리집엔 주지않고 시골장엔 그 옥수수가루를 팔지도 않아 나는 그 떡이 늘 먹고 싶어도 구할 수가
없던 차 우리애가 그 남아도는 떡을 내게도 좀 주어 공짜로 잘 얻어 먹었다.
선거철만 되면 여당측에서 동네사람들에게 고무신 등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것도 우리집만 쏙 빼놓아
의아하였지만 짐작가는 바는 있어 입을 다물었다.
돈버는 방법은 그 외에도 많치만 촌에서 겨울철 간식거리로 '빼때기'라고 가을에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려두었다가 겨울에 출출할 때 날로 씹어 먹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아이들은 (필시) 몰래 주머니
에 숨겨와 우리애게게 팔았다. 그건 별 맛이 없다 싶었던지 값은 싼 편이었다. 남아도는 것들을 내게도
많이 주었는데 앵벌이도 아니고 가만 앉아 애가 벌어오는 걸 받아먹고만 있자니 걸리는 것이 있었다.
겨울방학이면 특히 가정에서 만든 온갖 떡을 가져와 우리집엔 먹을 것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그 부모들
이 안다면 우리애를 사깃꾼이라며 고소(?)할 것 아닐까..
그것은 태환화폐가 아닌 그렇다고 불태환화폐의 범주에도 못 들어갈 '가상화폐'도 아닌 그냥
'사기화폐'인 셈인데 동네 아즘마들이 내게 몰려와 항의할 것 아닌가 하는 두려움으로..
그러나 고학년이 되가며 슬슬 그 놀이도 줄어들고 중학교에 입학하고선 아예 자취를 감췄는데
그래도 그애들은 여전히 우리집에 모여들고 있었고 어쨋든 어느 부모도 항의가 없이 지나가
다행이라 싶었다.
그런데 까페를 운영하면서 어느새 그 어렸을 적 골목대장질은 슬슬 다시 발동하여 세살버릇은
못버리는 것이라 싶다. 토요 일요는 가족들끼리 지내야한다는 명목으로 까페도 쉬는데 (실은 지자신
이 쉬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래도 종종 주말에 한번 씩 까페에서 한쪽벽을 덮는 커다란 스크린을
내리고 엄선한 공짜영화를 상영하여 가족들을 데리고와 함께 감상하도록 하고 지방의 사학자를
초대하여 우리지역의 역사적 사실을 강의하게 하여 꽤 들을만 하였다.
어떨 땐 그들의 수준에 맞는 적당한 책을 선정하여 읽게하고 그 주말에 모여 토론을 하게하는데
적당히 학구적인 욕구도 충족시켜주고 실지로 발전도 하게 하여 내가 적극 추천하고 있다.
어느 일요일엔 비빔밥 먹는 날로 정하여 한사람 한사람에게 각기 한가지씩 요리해 오도록 하였다.
어느 누구는 콩나물무침, 누구는 숙주나물, 무나물, 누구는 고추장과 참기름, 계란지단, 밥 한통,
수저와 그릇..
모두 신이나서 그날 가져온 걸 큰 다라이에 붓고 무쳤는데 다 비비고 나니 아차 시금치나물 생각을
안했네 색깔을 위해서나 맛을 위해서 그건 필수인데.. 하여 난감해 할 때 마침 내가 그 전날 시금치
나물을 많이 무쳐 두 찬합에 가득 담아둔 것이 있어 한통을 가져다 주어 큰 생색을 내었다.
그런데 그 비빔밥은 진짜 어느 음식점에서 파는 거 보다 훨씬 맛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모두 마치
소풍나온 아이들 처럼 들떠 재미있었다.
그 단골들은 우리 까페에 나온 이후 모두 기분이 좋아 행복해 했으니 주부가 한가정에서 늘 유쾌
하여 가족들에게 관대하다는 것은 얼마나 위대한 일인가. 그 남편과 아이들에겐 그보다 큰 축복이
있겠는가.
(다음에 계속)
첫댓글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면 나름 규칙이 있었지요
재미난 놀이네요 ㅎ
화폐를 만들어 물건을 파는 놀이는 제가 어릴떄도 있었어요
나중에는 문방구에서 지전을 만들어 팔기도 했지요
시장의 논리를 그때 배우는게 아닌가 생각들어요
비빔밥을 오늘은 저녁으로 만들어 먹겠습니다 군침이 도네요 ㅎㅎ
산비탈 조폐기가 한때는 잘 돌아 갓네요.......조폐기를 넘 머니 돌리면 재앙이 닥치지요......
허.,.. 어린애가 제법 똑똑하네요...
어릴때 초등 2ㅡ3년 때에
학년말 성적총화발표가 있군하였는데 당시에
매개 학생별로 수학, 국어, 음악, 체육, 도화공작, 품행(도덕품성) 평가에 따라 5,4,3, 등으로 최우등, 우등, 보통, 락제
로 등급이 나뉘여졌었는데
학과목이 5,4점으로 나왔는데 품행이 보통,으로 평가되는 바람에 총평이 그대로 보통이 되고 말았는데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온가족이 모여 저녁을 먹고있을때에 같은 학교 상급 학년에 다니고 있던 손위의 두 누나들이 그 사실을 폭로하면서
목소리를 높여서 엄마, 저 ××가 전교생중에서 혼자서
품행이 보통을 맞아서 총평이 보통이 되였다면서
마구마구 몰아붙여서 그날 맛있는 호박쌀죽을 먹고 있었는데
갑자기 목구멍에 울컥 계란같은것이 치밀고 막히는
느낌이 나면서 숱가락을 탁하고 놓아버리고 밖으로
튀여나가던, 오래고오랜 저의 어린시절의 이야기가
되살아 나네요
어머니는 그러는 누나들을
왜서 밥먹을 때에 잔소리를 하냐고 나무람하시던것이오래전의 추억으로 남았네요
그 어머님이 21년생이시였으니 계신다면 103살이
되였을건데
따님의 어린시절이야기를 들으니 저의 유년시절이
겹쳐왔네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아이는 발권력도 없는 주제에 윤전기(색연필로)를 계속 돌리며
동네똘마니들의 재산을 뺏아 접수하고 있었으나 다행히 그 사기질도
오래하진 못했지요. 싱민지 백성들의 머리도 커져 판단력이 생겨갔으니
그 사기질을 우리애가 수년간 해쳐먹었으나 그래도 사달이 나지 않은
것은 배당금으로 내가 우리집에 남아도는 흠집이 좀 있는 사과를 무제한
공급한 것이었으므로. 혹시 그 부모들은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눈감아준 것은 아니었을지
그들 대부분은 우리 과수원 제국에서 노동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