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列國志 제69회
공자 중이(重耳)는 호언(狐偃)의 계책으로 제나라를 떠나오게 된 것을 괘씸하게 여겨, 위주(魏犨)의 창을 빼앗아 호언을 찌르려고 하였다. 호언은 황급히 수레에서 내려 달아났다. 중이 역시 수레에서 뛰어 내려 창을 들고 뒤를 쫓아갔다.
조쇠(趙衰)·선진(先軫)·호사고(狐射姑),개자추(介子推) 등이 일제히 달려들어 말리자, 중이는 창을 땅바닥에 집어던졌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다. 호언이 머리를 숙이고 죄를 청하였다.
“저를 죽여야만 공자의 뜻이 이루어지신다면, 저는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낫겠습니다.”
중이가 말했다.
“이렇게 떠나서 성공한다면 모르지만, 만약 성공하지 못한다면 내 반드시 외삼촌의 살점을 씹어 먹을 것입니다!”
호언이 웃으며 말했다.
“일이 성공하지 못하면 저는 어디서 죽을는지도 모르는데, 어디서 신의 살점을 얻어서 씹어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일이 성공한다면 공자께서는 진수성찬(珍羞盛饌)을 차려놓고 드실 것인데, 비린내 나는 저의 고기를 어찌 드실 수 있겠습니까?”
조쇠 등이 모두 나서서 말했다.
“저희들이 공자를 따르는 것은 큰일을 이루고자 하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도 버리고 고향을 떠나서 타국을 방랑하면서도 서로 버리지 않는 것도 모두 공명(功名)을 죽백(竹帛)에 드리우기 위함입니다. 지금 晉侯가 무도하여 晉나라 사람들은 모두 공자를 군위에 추대하고자 갈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께서 스스로 귀국하지 않는다면, 누가 제나라까지 와서 공자를 영접하려 하겠습니까? 오늘의 일은 실은 저희들 모두가 의논해서 한 일입니다. 결코 자범(子犯) 혼자서 꾸민 일이 아닙니다. 공자께서는 너무 나무라지 마십시오.”
위주가 언성을 높여 말했다.
“대장부는 마땅히 노력하여 명성을 이루어 후세에 전해야 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아녀자와 눈앞의 안락함에만 연연하여 평생의 계획을 생각지 않으십니까?”
중이는 안색을 바꾸며 말했다.
“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으니, 여러분의 말에 따르겠습니다.”
호모(狐毛)가 마른 양식을 내놓자 개자추가 물을 바쳤다. 중이와 일행은 모두 배부르게 먹었다. 호숙(壺叔) 등이 풀을 베어 말을 먹이고, 다시 재갈을 물려 수레를 준비하였다. 중이 일행은 다시 길을 재촉하였다.
鳳脫雞群翔萬仞 봉황은 닭장을 벗어나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虎離豹穴奔千山 범은 표범굴을 벗어나 천산(千山)을 달린다.
要知重耳能成伯 중이가 패업을 성취한 것은
只在周遊列國間 오로지 열국을 주유하였기 때문일세.
며칠 후, 중이 일행은 조나라에 도착했다. 조공공(曹共公)은 놀기만 좋아하고 정사는 돌보지 않는 위인으로서, 소인만 가까이하고 군자는 멀리하고 있었다. 아첨 잘하는 자들을 심복으로 삼아 그들에게 작위 내리기를 마치 썩은 흙을 버리듯 하였다. 조정에는 대부의 예복을 입고 수레를 타는 자가 3백 명이나 되었는데, 모두 시정잡배(市井雜輩)로서 거들먹거리며 아첨하는 무리들이었다.
晉나라 공자가 호걸들을 거느리고 도착하자, 그야말로 ‘훈유부동기(薰蕕不同器)’였다. 그들은 중이 일행이 조나라에 오래 머물까 염려하여, 조공공이 중이 일행을 맞아들이지 못하게 가로막았다.
[‘훈유부동기’는 향내 나는 풀과 나쁜 냄새가 나는 풀은 같은 그릇에 담겨 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善人과 惡人은 같은 자리에 있을 수 없음을 말한다.]
대부 희부기(僖負羈)가 간했다.
[제65회에, 송양공이 증자를 수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을 보고, 희부기는 조공공에게 청하여 도성으로 돌아갔다. 제66회에, 희부기는 도성을 잘 지켜 송군의 침략을 막아냈다.]
“晉나라와 曹나라는 동성(同姓)입니다. 晉나라 공자가 곤궁하여 우리나라를 지나간다 하니, 마땅히 후한 예로써 대접해야 합니다.”
조공공이 말했다.
“우리 조나라는 소국이오. 게다가 열국 사이에 끼어 있어 여러 나라 자제들의 왕래가 빈번한데, 그들을 일일이 예로써 대접한다면 그 많은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겠소?”
희부기가 다시 간했다.
“晉나라 공자의 현명한 덕은 천하에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중동(重瞳)과 변협(騈脅)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아주 귀해질 상(相)입니다. 보통 자제들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제54회에, 호돌이 중이가 변협과 중동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했었다.]
조공공은 치기(稚氣)가 있어, 현명한 덕이 있다는 말은 귓등으로 흘려들었지만 중동과 변협이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중동이란 한 눈에 눈동자가 두 개 있음을 말한다는 것은 알고 있으나, 변협이란 무엇이오?”
“변협이란 갈비뼈가 서로 붙어 있어 마치 한 개의 뼈처럼 되어 있는, 기이한 상입니다.”
“과인은 그걸 믿을 수가 없으니, 그를 잠시 공관에 유숙하게 하여 그가 목욕할 때 한번 봐야겠소.”
[그런 무례한 짓을 저지르고서 무사할 수 있을까?]
그리하여 조공공은 관리를 보내 중이를 공관으로 맞이하게 하고 물과 밥만 대접하게 하고 다른 음식은 대접하지 않았다. 연회도 열지 않았고, 손님을 맞는 주인의 예도 지키지 않았다.
중이는 노하여 밥도 먹지 않았다. 공관의 하인이 목욕통에 물을 받아 놓고 목욕하라고 청하자, 마침 중이는 오는 도중에 땀과 먼지로 더러워진 몸을 씻기 위해 옷을 벗고 목욕을 하였다.
이때 조공공은 총신(寵臣) 몇 명과 함께 미복(微服)으로 공관으로 가서, 갑자기 목욕탕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 그리고는 중이에게 가까이 가서 변협을 보고서 자기들끼리 뭐라고 한참 떠들어대다가 가버렸다.
호언 등은 누가 와서 떠드는 소리가 들리자 급히 달려와 보니, 몇몇 사람이 떠들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호언이 하인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조나라 군주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중이 일행은 모두 화가 났다.
한편, 희부기는 조공공에게 두 번이나 간하였으나, 조공공은 듣지 않았다. 희부기가 집으로 돌아가자, 그 아내 여씨(呂氏)는 그의 얼굴에 근심이 어려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조정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조공공이 晉나라 공자에게 무례한 짓을 한 일을 얘기하자, 여씨가 말했다.
“첩이 교외에 뽕잎을 따러 나갔다가, 마침 수레를 타고 지나가는 晉나라 공자 일행을 보았습니다. 공자는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영걸(英傑)이었습니다. 제가 듣건대, ‘그 군주에 그 신하, 그 신하에 그 군주’라고 했습니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보니, 晉나라 공자는 반드시 나라를 되찾을 것입니다. 그때 그가 군사를 일으켜 조나라를 정벌한다면 옥석구분(玉石俱焚)할 것이니, 후회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당신의 충언을 듣지 않는다면, 당신이 개인적으로라도 그들과 친분을 맺어 두는 것이 좋겠습니다. 제가 음식을 준비해 드릴 테니, 그 속에 백벽(白璧)을 감추고 가서 상견의 예물로 삼으십시오. 그들과 마주치기 전에 먼저 친분을 맺어야 하니, 빨리 가 보세요.”
[‘옥석구분’은 옥과 돌이 함께 불에 탄다는 뜻으로,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같이 재액을 당한다는 말이다.]
희부기는 아내의 말에 따라 밤중에 공관의 문을 두드렸다. 중이는 밥도 굶은 채 노기를 품고 앉아 있던 참이었다. 그때 조나라 대부 희부기가 음식을 가지고 와서 만나기를 청한다고 하여, 중이는 그를 불러들였다. 희부기는 중이에게 재배하고서 먼저 曹侯를 대신하여 사죄하고, 평소부터 공자를 존경하여 찾아왔노라고 말했다. 중이는 크게 기뻐하며 탄식하여 말했다.
“조나라에 이런 현신이 있는 줄 몰랐습니다! 이 망명객이 다행히 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마땅히 보답하겠습니다.”
중이가 음식을 받아 보니, 그 속에 백벽이 들어 있었다. 중이는 희부기에게 말했다.
“대부께서 은혜를 베풀어 이 망명객이 길바닥에서 굶어 죽지 않도록 해 준 것만도 고마운 일인데, 어찌 이런 귀한 것까지 받을 수 있겠습니까?”
희부기가 말했다.
“이것은 외신(外臣)이 오직 공자를 공경하는 마음에서 드리는 것이니 물리치지 마십시오.”
하지만 중이는 재삼 사양하며 받지 않았다. 희부기는 물러나오며 탄식했다.
“晉나라 공자는 그처럼 곤궁하면서도 백벽을 탐하지 않으니, 그 뜻을 헤아릴 수가 없도다!”
다음 날, 중이가 조나라를 떠나자, 희부기는 성 밖 20리까지 나와서 전송하고 돌아갔다.
사관이 시를 읊었다.
錯看龍虎作狉狝 용호를 너구리 새끼로 착각하였으니
盲眼曹共識見微 눈 뜬 장님 조공공의 식견이 천박하구나.
堪嘆乘軒三百輩 수레 타는 3백 소인배를 탄식하니
無人及得負羈妻 희부기 아내에 미치는 자 하나도 없네.
중이는 조나라를 떠나 송나라로 갔다. 호언은 앞서 가서, 사마 공손 고(固)를 만났다. 공손 고가 말했다.
“과군께서는 자신의 역량을 헤아리지 못하고 초나라와 승부를 다투다가, 군대는 패전하고 자신은 허벅지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지금 병석에 누워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자의 명성을 듣고 흠모한 지 오래 되었으니, 필시 공관을 청소하고 영접할 것이니,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공손 고는 궁으로 들어가 송양공(宋襄公)에게 晉나라 공자 중이가 온 것을 고하였다. 송양공은 초나라에 원한을 품고 밤낮으로 현인을 구하여 복수할 계책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晉나라 공자가 멀리서 왔다는 말을 듣고, 晉나라는 대국이며 공자 또한 현명하다는 명성이 있는 사람인지라, 기쁨을 참지 못하였다.
하지만 다리의 상처가 아직 낫지 않아 면회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공손 고에게 명하여, 공관으로 맞이하고 군주에 대한 예로써 대접하게 하고 칠뢰(七牢)를 보냈다.
[‘칠뢰’는 제61회에 나왔다. 소·양·돼지 각 한 마리씩을 1뢰라고 하는데, 7뢰를 대접한 것은 예가 두터운 것이다.]
다음 날, 중이가 송나라를 떠나려고 하자, 공손 고가 양공의 명을 받들고 와서 더 머물라고 재삼 청하면서 호언에게 은밀히 물었다.
“제환공은 공자를 어떻게 대접했습니까?”
호언은, 제환공이 공족 여인을 시집보내고 말을 준 일 등을 자세히 고하였다. 공손 고가 돌아가 복명하자, 송양공이 말했다.
“공자는 예전에 이미 송나라 여인과 혼인한 적이 있기 때문에 또 여인을 보내는 일을 나는 할 수 없지만, 말이라면 같은 수만큼 보내줄 수 있소.”
[제61회에, 중이는 적나라에 있을 때 구여의 여인 계외와 혼인하였고, 제62회에, 제나라에 있을 때 공실의 여인과 혼인했다. 송나라 여인과 혼인한 얘기는 앞에 없었다. 중이가 晉나라에 있을 때 나이가 20세가 넘었으므로, 그때 이미 혼인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송양공은 중이에게 말 20필을 보내게 하였다. 중이는 감격하여 마지않았다. 며칠 머무는 동안 음식과 문안인사가 끊이지 않았다.
호언은 송양공의 병이 호전될 기미가 없는 것을 보고, 은밀히 공손 고와 중이의 귀국 일을 상의하였다. 공손 고가 말했다.
“공자께서 풍진(風塵)의 노고가 힘드시다면, 폐읍이 비록 소국이기는 하지만 휴식을 취하시기에는 충분합니다. 하지만 만약 큰 뜻을 품고 계시다면, 폐읍은 이제 막 패전으로 인해 입은 상처가 커서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른 대국으로 가셔서 도움을 얻어야만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호언이 말했다.
“그대의 말씀이 제 폐부(肺腑)에 있는 생각과 같습니다.”
호언은 그날로 중이에게 고하여, 행장을 꾸려 길을 떠났다. 송양공은 중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식량과 의복, 신발 등을 보내주었다. 중이를 수행하는 자들은 모두 기뻐하였다.
중이가 떠난 뒤, 송양공은 화살에 맞은 상처가 나날이 악화되어, 오래 않아 마침내 훙거하였다. 송양공은 임종 시에 세자 왕신(王臣)에게 말했다.
“과인은 자어(子魚; 목이)의 말을 듣지 않다가 이렇게 되었다. 너는 군위에 오르면 마땅히 국사를 그에게 맡기도록 해라. 초나라는 우리와 원수이니, 대대로 친교를 맺지 않도록 해라. 그리고 晉나라 공자가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면 반드시 군위에 올라 제후를 규합할 것이다. 너는 겸손하게 그를 섬기도록 해라. 그래야만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이다.”
[공자 목이(目夷)는 송양공의 이복형이므로, 세자 왕신에게는 큰아버지가 된다.]
왕신은 재배하고 명을 받았다. 송양공은 재위 14년 만에 세상을 떠나고, 세자 왕신이 군위를 계승하였으니, 그가 송성공(宋成公)이다.
염선(髯仙)은, 송양공은 역량도 없고 덕도 없으니 오패(五覇)의 반열에 올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논하면서, 시를 읊었다.
[‘춘추오패’에 대해서는 제1회에 설명했었다.]
一事無成身死傷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고서 상처만 입고 죽었는데
但將迂語自稱揚 어리석게도 자화자찬(自畵自讚)만 늘어놓았도다.
腐儒全不稽名實 썩은 선비들이 이름과 실질을 구분하지 못해
五伯猶然列宋襄 오패(五覇)의 반열에 송양공을 올렸도다.
한편, 중이는 송나라를 떠나 정나라에 당도하였다. 보고를 받은 정문공(鄭文公)이 여러 신하들에게 말했다.
“중이는 부군을 배반하고 도망쳐 열국이 그를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굶어 죽을 뻔했소. 그는 불초한 자이니, 예로써 대접할 필요가 없을 것 같소.”
상경(上卿) 숙첨(叔詹)이 간했다.
“晉나라 공자는 하늘의 도움을 세 가지 받고 있으니, 소홀히 대접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무엇이오?”
“동성끼리 혼인하면 그 자손이 번성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중이는 호씨(狐氏) 소생인데, 호씨와 희씨(姬氏)는 같은 종족입니다. 그 가운데서 중이는 태어났건만, 가는 곳마다 어진 이름을 날리고 화를 입지 않았으니, 이것이 첫 번째 하늘의 도움입니다. 중이가 망명한 후 晉나라는 안정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곧 하늘이 晉나라를 다스릴 인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두 번째 하늘의 도움입니다.
조쇠와 호언 등은 모두 당세의 영걸입니다. 그런데 중이는 그들을 얻어 신하로 데리고 다니니, 이것이 세 번째 하늘의 도움입니다. 이러한 세 가지 하늘의 도움이 있으니, 주군께서는 그를 예우하십시오. 동성을 예우하고, 곤궁한 사람을 구휼하고, 현인을 존중하며, 천명에 순종하는 것은 모두 아름다운 일입니다.”
[제39회에, 晉나라는 주왕실과 동성인 희씨라고 하였으며, 진헌공(晉獻公)이 견융주(犬戎主)의 질녀 호희(狐姬)를 아내로 맞이하여 낳은 아들이 중이이다.]
정문공이 말했다.
“중이는 이미 늙었소. 그가 이제 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숙첨이 말했다.
“주군께서 그를 예우하지 않으시려면, 차라리 그를 죽이십시오. 그를 원수로 삼아 후환을 남기지 마십시오.”
정문공은 웃으며 말했다.
“대부의 말이 너무 심하오. 처음에는 과인더러 그를 예우하라 하더니, 이제는 또 그를 죽이라고 하는구려. 그를 예우할 만큼 은혜를 입은 적도 없고, 그를 죽일 만큼 원수진 일도 없소.”
정문공은 성문을 닫고 중이를 들이지 말라고 명하였다.
중이는 정나라가 받아들이지 않자, 정나라를 지나 초나라로 가서 초성왕(楚成王)을 알현했다. 초성왕이 군주에 대한 예로써 영접하자, 중이는 감당할 수 없다며 겸양하였다. 곁에 시립하고 있던 조쇠가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께서 외국으로 망명하신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소국에서도 멸시 당했는데, 하물며 대국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초나라에서 이렇게 예우하는 것은 천명입니다. 공자께서는 사양하지 마십시오.”
중이는 조쇠의 말을 듣고 초나라에서 베푸는 향응을 받아들였다. 연회가 끝날 때까지 중이를 공경하는 초성왕의 태도는 조금도 변함이 없었으며, 중이의 언사 역시 더욱 겸손해졌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친근해져, 마침내 중이는 초나라에서 편안하게 지내게 되었다.
어느 날, 초성왕은 중이와 함께 운몽(雲夢)의 못가에서 사냥을 했다. 초성왕은 무예를 자랑하려고 연이어 활을 쏘아 사슴과 토끼를 잡았다. 장수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칭하하였다. 그때 곰 한 마리가 나타나 수레를 들이받고 지나갔다.
초성왕이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는 왜 쏘지 않소?”
중이는 화살을 시위에 얹으며 마음속으로 축도(祝禱)하였다.
“내가 만약 晉나라로 돌아가 군위에 오를 수 있다면, 이 화살이 곰의 오른쪽 손바닥에 명중하게 해주소서!”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화살은 곰의 오른쪽 손바닥에 명중하였다. 군사들이 곰을 잡아와서 바치자, 초성왕은 경복(驚服)하며 말했다.
“공자는 진정 신전(神箭)이오!”
잠시 후, 사냥터 안에서 함성이 크게 일어났다. 초성왕이 좌우를 시켜 알아보게 하였더니, 돌아와 보고하였다.
“산골짜기에서 짐승이 한 마리 튀어나왔는데, 곰 같지만 곰은 아닙니다. 코는 코끼리 같고, 머리는 사자 같고, 발은 호랑이 같고, 털은 승냥이 같고, 갈기는 멧돼지 같고, 꼬리는 소 같습니다. 체격은 말보다 크고, 무늬는 검은색과 흰색의 반점이 섞여 있습니다. 창·칼·화살 등 어떤 무기로도 상처를 입힐 수 없는데, 쇠를 진흙처럼 씹어 먹어 수레바퀴 굴대를 싸고 있는 쇠붙이도 다 먹어 치웠습니다. 게다가 민첩하기 이를 데 없어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렇게 소리만 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초성왕이 중이에게 말했다.
“공자는 중원에서 나고 자라 박문다식(博聞多識)할 것이니, 필시 저 짐승의 이름을 아시겠지요?”
중이가 조쇠를 돌아보자, 조쇠가 앞으로 나와 말했다.
“신이 압니다. 저 짐승은 맥(貘)이라고 하는데, 천지의 금기(金氣)를 받고 태어났습니다. 머리는 작고 다리는 짧으며, 구리나 쇠를 먹는 것을 좋아하는데 쇠붙이들이 몸속에 들어가면 소화되어 소변을 볼 때 물이 되어 나옵니다. 그 뼈에는 골수가 없어 망치 대신 사용할 수 있으며, 그 가죽으로 요를 만들어 깔면 질병을 물리치고 습기를 제거할 수 있습니다.”
초성왕이 말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잡을 수 있소?”
조쇠가 말했다.
“가죽과 살이 모두 쇠처럼 단단한데, 오직 콧구멍에만 빈틈이 있어 강철로 만든 무기로 그곳을 찌르면 됩니다. 혹은 불로 태워도 죽일 수 있는데, 그건 쇠의 성질이 불에 녹기 때문입니다.”
조쇠가 말을 마치자, 위주가 큰소리로 말했다.
“신이 병기를 사용하지 않고 그놈을 사로잡아 바치겠습니다.”
위주는 수레에서 뛰어내려 나는 듯이 달려갔다. 초성왕이 중이에게 말했다.
“우리도 함께 가 봅시다.”
초성왕은 즉시 명을 내려 수레를 앞으로 달리게 하였다.
첫댓글 조공공은 이마가 피테쿠스처럼
뒤로 젖혀졌나. 왜 그렇게 사리분별이 부족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