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46분 수서역 6번 출구(궁마을)
일기예보가 흐림 한 때 비. 많이 오지는 않을 듯. 집안에서 권태로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기보다는 가고싶은 곳으로 떠나는 편이 백번 낫다. 오늘은 서울둘레길코스에서 좀 벗어나서 소위 강남 삼산 이라는 대모삼-구룡산-우면산 정상을 경유하기로 마음 정했다.
6번출구 나오자마자 우편에 들머리가 보이다.
09;46; 대부분의 들머리처럼 시작부터 급오르막이 겁난다
그러나 늘 그러듯 시작할 때라 씩씩하게 오른다. 나보다 위로 보이는 동네 형님들을 보니 괜찮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서울둘레길과 대모산정상 표시가 한 방향을 가리킨다.
오르막. 역시 작아도 산은 산이다. 낮아도 등고선이 짧으면 오르막 각도가 더 클 수도 있으니 무시하지 못한다.
대모산정상길을 외면하고 서울둘레길로 걷다
대모산 정상 방향의 오르막이 심상치 않게 느겨지다. 그래서 정상 길의 유혹을 물리치고 둘레길을 여우럽게 걷자고 스스로 다짐하다.그리고 완만한 산길을 걸으며 잘했다고 스스로 칭찬하다. 어린애 같다.
돌탑을 파괴하지 맙시다
형님벌 되시는 분이 돌을 쌓으신다. 잠간 쉬면서 대화하다. 산행하는 분들을 위해 길의 돌들을 주어서 한곳에 쌓아두는 것인데 가끔 누군 가가 허문다고 속상해하신다.종교인의 행위 같다고 하신다. 그래서 나도 종교인지만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변호했다. 그래도 찜찜하다.
좀더 올라가서 또 돌탑. 허물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상수리 잎새와 열매. 밤새 비바람에 떨어졌나보다.
281고지에 오르니 대모산 정상 길이 평평해보이다. 그래서 마음이 바뀌다.
언제 또 와보겠나. 얼마 남지 않았는데. 기도와 사색은 정상에서 해야 제 격이지하는 마음이 발동
얼마 남지는 않지만 역시 계속 오르막. 정상오르는 길은 쉽지않다. 잠시 후회.
앞산이 성남누비길 7코스인 인릉산인듯
대모산(大母山)정상 293m. 강남구 개포동
산의 모양이 늙은 할머니를 닮았다고 해서 할미산으로 불리다가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그의 비인 원경왕후 민씨 묘인 헌릉(獻陵)이 대모산 남쪽에 조성되면서 왕명에 의해 대모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뒤돌아 본 정상. 틈틈히 바위들이 있다. 역시 바위도 있어야 산 기분이 든다.
대한민국의 자연공원. 생태공원 공화국이 되었다고 할까. 아무튼 복 받았다.
군부대 철망길. 두세번 더 서울둘레길로 내려가는 표식이 나왔으나 결국은 구룡산정상길을 택하다
맨발의 실버님들. 포즈를 취해주다
한번 실험해 보리라. 느낌을 알고 싶다. 발가락도 덜 아픈지.
산행에서 흔히 보는 각종 나무 뿌리들의 서로 엉킴과 공존 모습
구룡산(九龍山)정상 306m
우편에 남산서울타워. 뒷쪽 큰산이 북한산이리라
구룡산 우수전망대. 오늘은 우수하지 못하다
10여분 가족과 지인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다. 모두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있다
이 또한 지나가게 하소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
조금만 더 참아라
국수봉(國守峰)(284.1)에서의 전망
조선시대 전부터 정상에 봉수대가 있어 국가를 지킨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바위굴 국수방(國守房)이 있어 봉수군(烽燧軍)이 기거했 다고 한다. 편했을까. 힘들었을까.
개포동과 황금색탑 건물이 능인선원인 듯
능인선원으로 가는 표시가 두세번 나왔다. 서울둘레길로 가기 위해 머믓거렸다.,그러나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기에 산길을 계속하다.
기상관측시설
그래도 일기를 예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해해 주어야 하리라.기상 오보에 대해서 심한 평가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다는 생각이 다., 설비와 기계에 대한 광신의 부작용일 것이다. 애쓰는 종사자들과 그 가족 들을 생각해서라도 모욕적인 말은 삼가하면 좋겠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산행에 귀한 존재. 잠시 앉아 쉴수도 있어서 고마운 존재다
버섯 같은데.
결국 서울둘레길로 돌아왔다
모든 길은 통한다. 막히면 돌면 되고.
죽었니 살았니.
염곡동치안센타 육교를 건너야한다
육교에서 본 구룡산
성남시로 가는 헌인로는 수없이 다녔던 길이다.
여의천길.양재대로 교각 아래. 오늘따라 바람이 없다
aT센터(한국농수산유통센타).당신이 함께 있으면 내가 좋아지던 시절이 있었네요
지금은 아니라는 뜻인가? 듣기 무서운 말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저런 말을 듣게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양재동화훼공판장. 큐빅같은 디자인이 시선을 강탈(?)하다. 가서 확인하고 픈 호기심이 난다. 허참
1987년 대한항공858편 폭파 희생자 위령탑
이곳과 무슨 관련이 있나? 그나저나 김현희씨는 어디 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생각해보면 가련한 여인 이다.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을까.
유격백마부대위혼비
이곳과 무슨 관계가 있나?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문을 열었다.
김구선생님(앞줄 좌편에서 두번째) 윤봉길의사(뒷줄 가운데) 가족사진
앞줄 중앙이 부모님이시겠지.
어머님전상셔
놀라시지 마십시요.너머나 염려하시지 마습시요
식당 청계손국시의 당귀닭곰탕
양재시민의 숲에 이르기까지 식당도 매점이 없다.휴식. 충전을 위해서 찾아든 식당인데. 서울둘레길을 걷는 이들에게 추천할 만 하다.
우선 값이 좋다. 단순 깔끔한 밥상이지만 맛이 좋다
양재시민의 숲의 스템프. 램블러 이용자인 나는 지나치지만 걷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정자에 누워있는 동네분. 신산이 따로 없다. 참 좋겠다. 부럽다
숲도 울창하고.
우면지구근린공원에 우면산 들머리를 발견하다. 역시 오르 막이다. 이맘 때면 낮은 오르막에도 발길이 무거워진다. 게다가 식곤증까지.
우면산에는 오래된 나무가 많은 것 같다.
문득 이 동네에 살던 남동 생 같은 최00집사 생각이 나다. 그가 걸었을 것 같다 어쩌다가 그 임종을 혼자 지켜 보았는데.
아직까지는 서울둘레길. 역시나 정상길. 덕택에 큰 숨쉬기를 하게된다.
143m고지. 긴 오르막 끝이라 우면산정상인 줄 알았다
무명. 무연고 무덤인 것 같 다. 위치만 보면 왕릉이다.
땅에 어지럽게 떨어진 상수리 열매
지난밤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일찍 떨어진 생명은 모두 애처럽다.
우면산牛眠山(293m)의 소망탑. 소망탑이 있는 우면산
지도를 보면 실제 우면산 정상은 군사 지역에 있는듯 하다. 그래서 이곳이 정상이 된 듯하다.
강남 삼산 중에 전망의 전망의 범위가 제일 넓은 것 만큼 좋다.
40대 전후의 건장한 남자가 두손을 합장하고 십여번 절을 하며 입술을 움직여 소원을 아뢴다. 그리고 주위를 세번 돈다.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도. 얼굴 표정도 피곤해 보이다.
참 안스럽다. 무슨 어려움 때문에 저렇게 간절히 빌고 있을까?
200m 고지의 쉼터. 표식이 없어서 남태령 방향 산길로 갈뻔하다
내리막길이 긴 것을 보니 삼산 중에 우면산 범위가 제일 길고 넓은 것 같다
그리고 서울들레길을 만나다. 이제부터는 쭉 따라가면 된다.
쌍 소망탑
누가 얼마나 오랜동안 길가의 돌을 주워 쌓았을까. 쌓은이의 의미와 목적과 무관하게 허무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 사진찍을 꺼리를 만들 어 준 것을 감사하면 될 것을
우면산 골짜기마다 돌과 콘크리트 시설이 많다. 이곳 역사를 모르는 젊은이가 서초구가 돈이 많아서 과잉시설을 했다고 비판하는 부정적인 글을 본 적이 있다.
2011년 7월의 우면산 산사태 이후 재발 방지를 위해 조성한 것이다. 소 잃고도 외양간은 고쳐야 한다. 소를 다시 키우지 않는다면몰라도.
마지막 약수터 그러나 음용부적합
;음용부적합' 어려운 용어이다. '식수로 부적합'이 더 좋지 않을까
현재의 위치. 막판 지쳣을 무렵에 현 위치 표시가 다른 의미를 갖는다. 와 다 왔구나. 뭐야 아직도
멋있는 정자 쉼터.
우편의 긴 산이 우면산. 멀리 남태령고개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시선이 가게된 스템프 시설
이곳이 제5코스 출발지이다
처음 계획대로 소위 감남 3산의 정상을 모두 올랐다. 힘은 들었으나 그만큼 유익한 시간을 많이 기질 수 있었다. 산 정상에서 기도하면 더 좋은 느낌이다. 오늘 세 정상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니 더욱 그랬다. 나오기를 잘했다는 뿌듯함도. 정해진 둘레길이 아니어도 4코스 완주로 인정할까하는 생각이 났으나 메이꽌시다.
비록 낮지만 세 산의 정상을 모두 오르는 것은 힘들었다. 내게는 난이 도 중상(힘듦)이다. 그러나 많은 실버들이 즐겨 걷는 길이다.
이상하게 오늘 걷는 내내 떠오른 글귀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였다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는 친지들의 이름을 들어 가며 기도하며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지나가지 않는 것은 없다. 그리고 그 언젠인가는 지금의 나처럼 '그 때는 그래었지라고 추억할 때가 오리라" 고 말해주 고 싶다.
첫댓글 대단하시네요
화이팅입니다
세란님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