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리산 동북부 자락 칠암자터 와 김종직 선생의 유두류록 遊頭流錄 코스 일부분 답사
산행일시:2012년 7월15일(전국적 장맛비 지리산 전면 통제되는날)
산행지:경남 함양군 휴천면 운서리 동부칠암자터~함양독바위~공개바위
산행코스 : 적조암~박쥐굴~칠암자터탐방~독녀암~군계능선~공개바위~환쟁이골
운서리~적조암~지장사~금낭굴~선열암~유슬이굴~선녀굴~의론대~고열암 ~신열암~독바위~배틀재~공개바위~운서리(원점회귀)
도상거리 : 약 17.19km
산행시간 : 약 8시간 28분(쉬엄쉬엄 보물찾기 코스)
조선시대 도학의 정맥을 이은 영남학파의 종조(宗祖) 점필제 김종직 선생께서 지금으로부터 539년 전(1472년), 습하고 흐릿한 기운이 걷힌 중추 계절인 8.14(음)에 유호인, 조위, 임대동, 한인효, 승려 해공․법종 등과 함께 5일간 두류산을 유람하고 <유두류록 遊頭流錄>을 지었다.
개 요 지리산 중북부능선에 현존하는 칠암자가 있다면 지리산 동북부자락에는 현존하지 않는 칠암자터가 있습니다.
건물은 없고 단지 터만 남아 무상한 세월을 지켜온 신비의 절터!
험난한 지리산 속 인적을 허용치 않은 절묘한 자리가그곳에 있습니다.
지리애호가모임 ‘지리99팀’이 끈질긴 탐구 끝에 찾아낸 쾌거이기도 한곳, 흩어진 이 암자 터를 연결하는 산행을 합니다
함양군 휴천면 엄천강에 자락을 뻗힌 산등성이에 기이하게 생긴 바위하나가 눈길을 끄는데 바로 ‘함양독바위’
전설에 의하면 한 부인이 바위사이에 돌을 쌓아놓고 그 안에서 홀로 기거, 도를 연마하여 하늘로 올랐다하여
‘독녀암(獨女岩)’이라 부르기도 한다는 곳, 함양 휴천에서는 독아지의 ‘장독바위’, 마천에서는 붓끝의 ‘필봉(筆峰)’, 산청
화개에서는 상투머리의 ‘상투바위’로 각각 달리 부른다는 바위입니다
마치 함양 독바위를 우두머리로 한 듯, 감춰진 칠암자 터를 차례로 찾아보고 하산길
보너스로 한국판 피사의 탑이라 일컫는 신비의 공개바위를 구경하고
바위굴에 호랑이가 살았다는 천상바위 능선으로 하산하는 산행코스 산행지도
산행사진
1967년 우리나라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된 지리산은 예로부터 문인들이 즐겨 찾았고 또 기행문을 남기고 있다. 이륙(李陸)의 <지리산기(智異山記)>, 김종직(金宗直)의 <유두류산록(遊頭游山錄)>이후 남효온(南孝溫)이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를, 김일손(金馹孫)이 <두류기행록(頭流紀行錄)>을, 남명 조식(南冥 曺植)이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박여량(朴汝樑)이 두류산일록(遊頭山日錄)> 등을 남겼다.<선인들의 지리산 유람록, 최석기 외 옮김>
장맛비가 세차게 내리더니 잠시 소강 상태일때 운서마을 입구를 들머리로 합니다
현재 지리산 둘레길에 포함된 운서마을 길로 적조암을 행해 진행합니다.
입구에 들어서니 원추리 꽃이 반갑게 맞이 합니다.
적조암을 향하는 길에 환쟁이골 입구에는 온세상이 모두 폭포로 변했습니다
유두류록 발췌-> 엄천을 지나 화암에서 쉬고, 지장사에 이르니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금대사는 건너편에 있는 금대사이며 금대사 주변에 홍련사 백련사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됨
이무기나 용이 승천하는 것도 아니고 산중에 구름이 땅에서 위로 오르기에 가까이 가봤더니 복덕사 가마솥에서 올라오는 연기였네요.
적조암 가는길 다리를 지나며
최근에 새롭게 지은 적조암에 도착합니다.
적조암 내부를 둘러 봅니다
능소화가 아름답게 피어있습니다
승용차가 있는 좌측으로 스며 듭니다.
마을텃밭이 끝나고 잠시후
박쥐굴 내부
양민 거주지와 환희대를 올라갔다고 했는데 몇번 답사 했던 터라 산죽비트로 해서 박쥐굴을 찾아 왔습니다. 밖에서 볼때는 입구가 작았는데 내부는 30여명 이상 들어갈정도로 내부가 넓고 높습니다. 어두워 헤드렌턴을 켜고 들어가니 박쥐들이 놀라서 날아다닙니다
박쥐들이 벽에 매달려 쉬고 있네요 몇마리는 놀라서 천정을 날아다니고 있고 찾아 보세요
지장사터 추정지(기와장 ) 박쥐굴에서 상대날등의 산사면 길 없는 곳을 치고 오르면 지장사터가 나옵니다 지리 마니아들이 오랜 시간 동안 답사해서 찾은 곳이라고 합니다.
금낭굴 상대날등의 마루금 좋은 길을 가다가 장군봉 가기전에 우측 아래로 내려서면 규모가 제법 큰 금낭굴이 나옵니다. 금낭(錦囊)은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라고 하던데 이쁜 이름이네요.
금낭굴에서 선열암을 향하는 길은 길이 없거나 희미합니다
가는길 급경사 낭떠러지에 기와장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선열암 석간수 샘터 큰 바위아래 천해의 요새같은곳에 꼭 숨어 있는곳
선열암터에서 인증샷 앞에는 좌부자 틀고 기도를 했을법한 넓은 바위가 있습니다 조망도 좋고..,
비가 많이 왔지만 마른 낙엽이 있는 선열암터 굴아래서 인증샷
유슬이 굴에 도착합니다. 황새날등의 마루금과 만나는 사거리 에서 아래로는 환희대 위로는 독바위로 직진하며 좌측으로 진행하면 나오는 곳입니다. 담에 다시오면 여기서 하루밤 비박하고 싶은 곳이네요
솔봉능선을 만나서 송대방향을 뒤로하고 주등로를 따라 진행하면 이런 이끼나무도 보입니다.
선녀굴 굴에서 시원한 석간수 한모금 합니다. 옛날 선녀들이 목욕하고 놀다 간 곳이라지만 이름에 걸맞지 않게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최후의 빨치산 정순덕이 안내원 마을에서 체포되기전 숨어있던 곳이다.
빨치산 정순덕이 지리산에서 최후의 3인부대로 떠돌던 중 3인중의 한 사람인 이북출신의 남파 공비인 이은조(45세)가 사살된 현장입니다. 1961년 12월 어느 날 선녀굴 앞에서 아침밥을 짓고 있던 중 토벌대의 총격에 이은조가 사살이 되고 나머지 잔비 정순덕과 이홍희는 이은조의 시체를 선녀굴 석간수 바로 앞에 대강 매장을 했다고 합니다. 그로부터 2년 후 1963년 11월 정순덕이 내원골에서 체포가 되어 산청경찰서에 수감 중 이은조의 주검을 확인하는 현장검증이 이루어지던 날 이었다고 합니다.
불을 피웠던 곳
의론대 의론대에서 바라본 함양 독바위 선녀굴에서 약간의 된 비알을 하고 오르다 보면 조망좋은 넓은 바위가 나옵니다.
의론대에서 바라본 조망 의론대는 의논대로 주변에 신열암 선열암 고열암 등 에 기거하던 스님들이 모여서 불법을 논했던 곳으로 전해짐
의론대에서 바라본 조망 2
意論臺(의론대) - 김종직(金宗直)
兩箇胡僧衲半肩(양개호승납반견) : 외국 스님 둘이 어깨에 장삼을 반쯤 걸치고 岩間指點小林禪(암간지점소림선) : 바위 사이에 서서 소림 선방을 가리킨다 斜陽獨立三盤石(사양독립삼반석) : 지는 해에 삼반석에 홀로 서니 滿袖天風我欲仙(만수천풍아욕선) : 소매 가득한 하늘 바람에 신선이 되는 듯 하다.
고열암터
이 곳은 김종직선생이 천왕봉 등정 길 첫날에 하룻밤을 묵은 암자 입니다. 선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에 어김없이 옹달샘이 있고
고열암에서 자다
병든 몸을 지탱하고자 하여 잠시 포단을 빌려깔고 자는데 소나무 파도가 달빛아래 들끊어니 구곡에 노니는 듯 착각케 하네
뜬구름은 또한 무슨 뜻인고 한밤중엔 바위 골짜기 닫혀 있구나 오직 정직한 마음을 가진다면 혹 산신령의 비록을 얻을련지
- 김종직의 "유두류록" 중에서-
고열암 샘터
고열암 아래 축대
신열암 터
고열암에서 10여분 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 입니다. 암자 터에 들어서니 참 편안합니다. 자리에서 그저 하룻밤 잠만 자도 많은 욕심을 내려놓기 참 좋은 명당 터입니다
함양독바위에서
함양독바위
바위의 명칭에 함양이라는 지명을 부치는 이유는 동부능선의 독바위(산청독바위)와의 구별을 위한 것입니다. 두 독바위가 이름은 같아도 어원은 다릅니다.
이 곳 함양독바위는 예전에 늙은 무녀가 혼자서 기도를 드리던 곳이라고 독녀암(獨女巖)이라 부른데서 독(獨)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입니다.
함양 독바위에서 독바위 오름길 로프를 새것으로 교체해 두고 옵니다
통락문 가는길
통락문은 남쪽입구는 안락문 북쪽입구는 통락문으로 들머리 날머리 이름이 서로 다르게 새겨져 있습니다.
공개바위 3번째 답사했지만 지나가는 길에 행여 무너지지 않았을까? 걱정되서 다녀갑니다.ㅎ~
경남 산청군 금서면 방곡리 해발 755m의 야산에 있는 공개바위는 원래는 흙속에 묻혀있었으나, 풍화작용으로 인하여 주변의 흙이 떨어져 나가고 현재의 모습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 모두 다섯개의 육면체 바위가 석탑 모양으로 쌓여있는데, 높이가 12.7m 둘레가 12.4m 정도. 인공적인 5층탑을 방불케하는 이 탑은 25~30도 기울어져 한국판 피사의 사탑이다. 옛날에 지리산 마고할미가 공기놀이를 하다가 그 공깃돌 5알을 쌓아둔 것이라는 전설... 공개는 공기의 경남 서북부 방언
운서 능선은 편안합니다 주변에 지리터리 풀과 이름 모를 버섯이 지천입니다
이버섯 이름을 아시는 분은 알려주시길
붓꽃은 아니것 같은데 궁금
천상굴
공개바위 보고 운서능선에 내려오다 바위를 감고 돌면 바위 산사면에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는 천상굴이 있습니다 천상굴에서 밖을 바라보며..,
조선시대 배불 정책 시대적 환경 이해(산속으로 은거한이유)
조선시대 불교는 한마디로 억압과 수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개국 초 태조 이성계는 비록 개인적으로 불교를 신봉하고 불사도 많이 하였으나 건국 초기 조준, 정도전 등 유학자들이 중심이 된"배불사상" 의 강한시대적 조류는 어쩔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조선 500 년을 통하여 불교는 핍팍을 당하고 승려는 천대를 받는 법난이 계속되었으며 철저한 배불정책으로 일관하였습니다. 이런 긴 법난을 겪으면서도 승려들은 아무런 반항의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초기에 몇 사람들의 움직임이 없지 않았으나 극히 짧은 동안이었고 매우 미미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조선 중엽에 와서 오직 한 사람의 규탄자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현종 때의 백곡처능은 당시의 지나친 배불정책에 분개하여 장장 팔만여언의 상소문을 올리니 이것이 조선조 오백년의 불교 핍박에 맞선 단 한차례의 상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억불정책은 늦추어지지 않았고 승려들은 여전히 성 내에 발을 들이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산중으로 내쫓기고 갖은 학대를 받으면서도 도성을 지킬 산성을 쌓았고 또 산성을 수비하는 일을 도맡았으며 관가와 유생들에게 종이와 기름, 신 등을 지어 바치는 등 여러가지 잡역을 도맡아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는 용감하게 나서서 목숨을 바쳐 구국에 앞장을 섰습니다. 일제의 고승으로서 임진왜란 당시에 연로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팔도십육종선교도총섭으로 구국에 앞장섰던 "서산 청허"대사 이래 적지않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참선과 간경에 전력하는 종장들이 연이어 나와서 삭막하였던 불교계에 한때 새로운 기풍을 이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법난을 겪는 동안 교단은 태종 때에 11 종이 7 종으로 합쳐졌고 다시 선, 교 양종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이러한 종파의 폐합도 교단의 자의로 이루어진 것이었으므로 종지도 종파도 제대로 정립되지 못한 채 전승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조선불교가 그래도 한국불교의 전통을 전하여 지킨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삼국시대 이래로 면면이 내려온 호국사상과 고려시대 이후의 선교겸수의 영향이었다고 할것입니다. 또 여기서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사실은 그 기나긴 억불 가운데 그래도 백성들은 지극하게 불교를 믿어왔다는 점과 한때는 궁중내에 불당을 세우기도 했었으며 왕자, 공주, 옹주 중에 삭발 출가한 이도 적지않게 있어 삼국시대 이래로 우리 겨레의 정신적 귀의처였던 불교의 뿌리가 그만큼 깊어섰다는 사실입니다. 불교역사자료 문헌참조
보물찾기 하듯 과거속 여행을 다녀 옵니다
과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오늘에 더욱 충실해서 더욱 알찬 과거를 맨들어 놔야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언젠가 누군가가 지나갈 족적이 될수 있기 때문에 .......
감사합니다.
|
|
첫댓글 어허 이것 참 그려놓은지가 벌써 몇해나 지나것만 뭐가 그리 갈곳이 많았는지 아직인데 벌써 ㅎㅎ
축하하네 고생많았네
산행기획 이사님! 자연과 함께 친구가 되셨군요.
편안한 산정의 정서적인 하루가 고운 삶입니다.
이사님의 자세한 지리산 답사 일기가, 다시 또 정기를 느끼게 하네요.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동북부 칠암자와 유두류록 코스 답사했군요.
옛 선현들의 발자취를 따라서 가는 길이라 더 관심이 가져지네요!
삼정능선 아래 문수암에서 멀리 보이던 산줄기라서 꼭 가보고 싶고......
덕분에 같은 지리산인데도 생경스러운 풍경들 잘 보았습니다^^
바로 여가군요
나사모에서 오래전 공개바위를 통과한 기억이 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작년에 밧줄이 없어 고생한 함양 독바위였는디..밧줄 설치하느라 수고했네..오금이 절였었다네..
지리산을 온통 혼자 독차지 한 산행기 보기만 해도 지리산에 푹 빠져 듭니다,
지리산에 가면 군데군데 자일이 설치되었는데 누가 이런곳에 이렇게 설치했을까?......의구심이 사라졌습니다.
바로 산을 사랑하는 님같은 분이 계시기에 안전하게 산행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시원한 계곡 오늘같은날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