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장일이 시작된 후부터 거제도를 오가는 일이 주말마다 이어지고
때로는 일요일 밤늦게, 때로는 월요일 새벽에 부산으로 오는 날들이 잦아지면서
왕복 여섯시간의 운전길에 누적된 피로가 월요일의 일과에 지장을 주게되었다.
그래서 운전하는 시간을 좀 줄이자고 택한 방법이 진해에서 거제도행 카페리를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부산 - 진해 - 거제도 간곡 - 해금강까지의 거리나, 걸리는 시간, 경비등을 종합해보면
승용차로 육로를 이용하는것이나 카페리를 이용하는 것이나 별반 차이는 없지만
진해에서 거제도 까지 뱃길로 가는 50여분의 시간을 운전대를 놓고 편히 간다는
잇점을 노려 카페리를 이용하게 되었다.
토요일 오후에 주로 막배를 타고 도착하게 되는 간곡에서 고향까지의 중간 지점에
거제 시청과 포로수용소 유적지가 있는 신현읍이 있는데 거제도에선 제일 번화한 곳이다.
그곳에서 저녁을 먹고 밤길을 달려서 도장포에 도착한다
지금은 폐교된 해금강 초등학교에서 좌회전해서 마을로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해양 경찰서 관할 어선 통제소가 있고, 어통소에서 십여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우리집은
지대가 높아서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일부러 가꾼 정원수처럼 동백나무가 둘러서서 바다와 어우러져
거실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거실창을 통해서도, 방의 창문을 통해서도, 어장은 보이지 않지만, 물봐서 들어오는 배는
훤히 보인다.
기상 시간이 조금 늦었던가...마침 창을 통해서 밖을 보았을때
아침 물을 봐오는 어장배 위로 갈매기떼가 울음소리도 요란하게 따라오고 있다.
"갈매기가 저리 따라오는걸 보니 오늘은 고기를 좀 잡았나 보네..." 내 혼자 말에
"배뒤에 갈매기 따른다고 다 많이 잡는거는 아니거마는..." 시큰둥한 남편의 말이다.
어쨋거나 내려가 보기나 하자고 뱃머리로 나갔는데, 퍼득거리는 청어를 담은 노란
플라스틱 상자가 꽤 많아 보였다.
며칠전에 어로장으로부터 청어가 비친다는 말을 들었고, 지난해에 인근 어장에서
청어잡이로 엄청난 수확을 올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던터라 내심 청어떼의 방문을 기다렸는데
내 눈으로 펄펄뛰는 청어를 보니 이제까지의 형편없는 어획고에 조바심치던 마음이
슬슬 사라져가고 있었다.
청어가 맛은 있지만 값비싼 어종은 아니다. 정어리처럼 기름진 생선인 까닭에
따뜻한 계절에는 부패가 빠르고 떼로 몰려다니다 대량으로 잡히는지라 한 상자당의
가격으로 치면 별볼일 없는 생선이지만, 떼로 다닌다는 특성상 한번 잡히면 많은 양으로
잡히기에 한 배, 두배, 수백, 수천 상자를 놓고 볼때는 수확고의 가능성이 어마어마한
생선일수도 있는 것이다.
"얼마나 돼요? "
"청어가 제법되고 고시가 한상자 정도.. 멸치가 좀 있네요."
시동생의 대답이다.
오늘 잡힌 고기가 몇상자라고 정확히 대답할수 없는 것이,
요즘 흔히 컨테이너 박스로 불리는 플라스틱 상자는 많은 양이 담기는데
어판장에서 경매를 하기 위해서는 깊이가 얇고 크기도 작은 상자에다 일일이
다시 담아서 놓아야 하기 때문에, 어판장에서의 상자 담기 작업이 끝이 나야만 정확한
어획고(상자수)를 알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소비량이 많고 따라서 가격도 약간 높이 매겨지는 통영 어판장으로 못가고
청어 실은 화물차를 장승포 어판장으로 보내고 멸치 삶기가 시작이 된다.
어장막 넓은 공터의 한쪽 귀퉁이에는 멸치 삶는데 사용되는 크고 작은 네모난 스텐리스
솥이 두 개가 있는데 삶아야할 멸치의 양에 따라서 두 개중 한 개를 선택하여 사용한다.
오늘은 작은 솥에 물을 채우고 소금 한부대를 쏟아 붙는다.
버너의 불길이 기세좋게 물을 뎁히고, 한쪽에서는 역시 네모난 대 발에다 삶아낼 멸치를
펴 얹고 있다.
멸치 삶기와 건조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용도의 대 발은 가로 1미터 정도. 세로 90센티 정
도의 크기인데 굵지 않은 각목으로 사개를 짜고, 지름 일센티 정도의 자잘한 대쪽을 붙혀
물은 잘 빠지되 아무리 자잘한 멸치라도 대 살사이로 빠지지 않게 만들어진 것이다.
발에다 멸치를 얹는 방법은
1) 일곱 개의 대 발을 포개놓고 멸치를 너무 두텁지 않게 펴 담고, 그 위에 다시 한줌의 소
금을 훌훌 뿌려 내려놓고 다시담고 뿌려서 포개고.
2) 그렇게 일곱 개의 발이 다 채워지면 빈발 한 개로 맨위의 내용물이 뜨지 않도록 덮는다.
3)발 양쪽으로 끝이 묶여진 줄을 걸고 쇠 고리가 달린 도르래로 달아올려 솥 안으로 집어넣
고 다시 발이 떠오르지 않도록 스텐으로 만들어진 막대기로 솥안에 고정을 시킨다.
4) 23년간을 이곳 어장에 종사해 왔다는 어로장의, 순전히 감각으로만 가늠되는 시간이
지나면 고정용 쇠막대가 치워지고 다시 도르래로 발을 들어올려서
사다리처럼 생긴 올림 장치에 얹어 물을 빼고, 그대로 발을 들어 한 개씩 붙여 널면
일단 삶기와 널기는 끝나는 것이다.
절반쯤 말랐을 때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 갈고리로 일일이 뒤집어 줘야 하는 과정이
남아있긴 하지만..
멸치 삶는 모든 과정이 수작업으로 이뤄지는걸,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면서
몇가지 개선했으면 좋겠다는 점들을 발견했는데, 먼저 생멸치 위에 뿌려지는 소금의 양을
자동으로 정확한 양을 뿌릴수 있었으면 하는 것 이었고,
(일단 솥안에 소금을 넣고 물을 끓이지만 멸치위에 뿌려지는 소금의 양에 따라 멸치맛이
짜기도 싱겁기도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덮개까지 여덟개의 발을 도르래로 들어 올리는 일을 사람의 힘으로
하는걸 보면서 그 역시 기계의 힘으로 들어올리고 내릴수 있게 자동화 시켰으면
하는 것이었고
세 번째, 멸치를 삶아내는 시간을 어림 짐작으로만 잴것이 아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꺼낼때를 알려주는 타임벨 같은걸 장치하는 방법등등..을 생각해 보았다.
결코 쉽지않고, 아무나 할 수 없는 멸치삶기 과정이 오랜 세월을 수작업으로만 이뤄져
내려 오는데는 무슨 이유들이 있는것일까.
요즘처럼 온갖 복잡한 기계들이 인간의 편리에 의해서 만들어져 나오는 세상인데,
별로 어렵지 않을거라 생각되는 장치들이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은까닭은 무엇일까...
대량으로 멸치를 잡아내는 대규모 권현망 선단에서는 멸치를 건져올리는 즉시 바다위의
배위에서 자숙 작업이 이뤄지는데, 들은 바에 의하면 역시 거의 모든 과정이 수 작업으로
이루어지고, 건조 과정만 냉풍 또는 온풍으로 기계 건조를 시킨다고 한다.
생각만 할뿐 아무것도 못하는 몽상가 답게 또 혼자 생각만으로 기계도 만들고
시계도 만들었던 시간이다.
나는 발에 널린 김이 풀풀 나는 뜨거운 멸치를 살을 발라서 먹는걸 좋아하는데
굵은 멸치라서 먹기도 좋고 맛이 기가 막힌다.
굵은 멸치는 절반쯤 말랐을때 고추장에 찍어먹는 맛, 또한 기막히는 맛이다.
그 맛에 빠져서 손에 멸치 기름을 묻혀가며 먹다가, 별안간 마시지도 못하는
소주 생각이난다.
' 거..참... 고추장에 찍어서 소주 안주 했으면 딱이겠는데...'
혼자 웃는 이유를 저들은 모를거다....
마지막 발을 건져올리는걸 보고 손도 씻을겸 사무실로 올라왔는데
맞은편 학동 재너머 가라산 위로 허옇게 묻어 오는게 분명 눈이렷다.
거제도에 눈이 오다니...
아침에 맑고 조용하던 날씨가 열시쯤을 시작으로 돌변하여 강풍이 몰아치고
기온이 급속히 내려가서 춥기가 이를데 없다.
창으로 내다보는 바다는 허옇게 몸을 뒤집고 거칠은 파도로 몸부림 친다.
보잘 것 없이 흩날리던 진눈깨비가 점점 짙어지자 어부들은 어느새 식어버렸을 멸치발을
창고로 옮기고 있다.
눈이 바다에 미치는 영향을 알지도 못하고 어획고에 미치는 영향 또한 알지못한다.
다만 바람이 불면 고기떼의 이동로에 무슨 변화가 있는지..어획고에 변화는 있었다,
번번히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눈 내리는 날씨를 반기는 것은, 그저 소녀적 감상으로 흰 눈을 쓰고 빨갛게 피어있을
동백꽃을 사진 찍으리란 생각으로 마음만 바쁜데..
야속히도 눈은, 넓은 어장막의 마당에도, 길목들에도, 응달진 고샅에 조차
한치도 쌓이지 못하고 진눈깨비로 흩날리다 멈춰지고 말았다.
고성에도 눈이 왔을까.. 배짓는 일로 고성까지 간 승용차도 걱정이되고..
어판장에 올려진 청어가 얼마나 제 값을 했을지도 걱정이고...
잠시, 눈으로 인해서 가벼워졌던 마음이 또다시 중 늙은이 노파심으로 돌아오는 시간이다.
2005. 1. 16.
비친다 ) 보인다. 조금씩 나타난다. 어장꾼들이 쓰는 비친다, 는 말은 고기떼의 선두가 나타났다
는 말로 쓰인다.
고시 ) 3. 40 센티 정도의 어린 삼치를 일컫는 말. 살고시, 라고도 하는데 고시란 말은 아무래도 일본말인듯.
호래기 ) 일반적으로 새끼 오징어를 말하는 것인데. 종류가 다양해서 더 이상 크지 않고, 손가락 한두마디 정도 크기도 있고, 경남쪽에선 잘디잔 오징어들을 통털어 호래기라고 한다.
네, 바라메님 안녕하시죠? 지난주에는 갈때는 일몰을..화요일 아침 부산으로 오는 첫배에서는 일출을 보았지요. 그 순간을 시심으로 맞이해야 하는데 ㅎㅎ~ 아무래도 연희 재주로는 안되었어요^^* 우리의 철향님께서 올 여름에 거제도를 한번 더 가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저녁배든지.. 아침배든지. 아무거나 타시고서 ~~ㅎ
영애님, 달뿌리님, 다녀가셨군요. 영애님. 카페리 아일랜드호는 배가 넓어서 멀미 안날겁니다. 오는 여름에 거제도 한번 오세요^^* 달뿌리님은 연희 고향 동백나무가 아름드리라는걸 어찌 아셨을까요?^^* 수백년이상 수령들일거라고 추측만 하지요. 오래전에 울릉도던가.. 국내 최고 수령의 동백나무가 있다고 보도가
첫댓글 연희님! 하루 빨리 다음편 또 기대하겠습니다. 어렸을때 호래기회를 좋아했었는데... 새끼오징어였군요.^^ 거제도에서 진해로 오는배안에서 맞이했던 일몰은 너무 너무 장관이었는데...
네, 바라메님 안녕하시죠? 지난주에는 갈때는 일몰을..화요일 아침 부산으로 오는 첫배에서는 일출을 보았지요. 그 순간을 시심으로 맞이해야 하는데 ㅎㅎ~ 아무래도 연희 재주로는 안되었어요^^* 우리의 철향님께서 올 여름에 거제도를 한번 더 가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저녁배든지.. 아침배든지. 아무거나 타시고서 ~~ㅎ
반가운 글 올려 주셨군요^^ 일출 보며 민들레역 회원들 생각하셨죠?^^ 배멀미를 하지만 한 번 타고 싶어집니다 늘 건강 조심하세요 다음 글 기대합니다^^
추운 지방에 살다보니 키작은 동백만 봤었는데 연희님 사는 동네 동백은 아름드리 나무지요? 그 나무를 보고 얼마나 놀랬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바닷가에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왜 그리 많나요? 바쁘신데 싱싱한 글 올리셨네요. 아껴 뒀다가 오늘 읽어 봅니다.
영애님, 달뿌리님, 다녀가셨군요. 영애님. 카페리 아일랜드호는 배가 넓어서 멀미 안날겁니다. 오는 여름에 거제도 한번 오세요^^* 달뿌리님은 연희 고향 동백나무가 아름드리라는걸 어찌 아셨을까요?^^* 수백년이상 수령들일거라고 추측만 하지요. 오래전에 울릉도던가.. 국내 최고 수령의 동백나무가 있다고 보도가
된적이 있었는데. 그보다 더 오래되었을 거라고들 ..^^* 올해 겨울은 거제도와 동백꽃때문에 행복했답니다^^* 님들 좋은 시간되시구요~긴글 읽어주셔서 무지 고맙습니다~
거제 남해 충무 참 많이도 다녔습니다. 부산 거제간은 여객선을 타면 편하고 또 빠르기도 하지요. 눈에 선히 밟힙니다. 건강하시고 또 행복하십시요.^^
목우님 어디에 사시기에 거제. 남해. 충무를 많이 다니셨는지요?^^*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지명들이지요. 거제.남해. 통영..나이 들어갈수록.. 전 거제가 너무 좋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지난 여름에는 시간상 촉박하여 구경도 다 못했는데,,,여름에도 계속 청어 잡힐려나^^늘 싱싱한 고기잡이 풍경, 청어맛 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름에 동백 열매 두 개 따왔지요, 길가에서...
와~대단하시네요..멸치에 대하여 몰랐던 정보를 얻어갑니다..푸른바다와 저리도 가까우시니 연희님 마음속에 늘 맑은 꽃이 피어나겠지요?...^^
연희님 게으름 피우지 마시고 글 빨리 올리소. 호호. 기다리는 사람도 생각해줘야지. 밤잠 자지말고 빨리 올리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