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03월31일, 호산나교회, 부활절설교, 빈 무덤, 요 20:1-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늘 주일 아침 부활하셨습니다. 오늘 전 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절을 기념하며 기쁨으로 예배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통해 영원히 죽어야만 했던 저주의 자리에서 영광의 자리로 옮기셨고, 모든 이름을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예수님 발아래 끓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하나님 이루셨습니다.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시길 축복합니다.
1, 부활은 예수님 육체를 가리킨 것입니다.
육신 중심으로 살아왔던 나를 예수님 부활을 통해 영혼 중심 즉 예배자로 살게 하시기 위해 육체의 부활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성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요2장210,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육체가 성전이 되기 위해서는
육체가 허물어져야 영혼이 사는 길이 열리며 영혼이 살아나야 진리 안에서 바로 서게 됩니다. 다시 정리를 해 드리면, 아무 쓸모 없던 육신을 그 용도를 바꾸어 쓸모 있도록 성전 삼으시고 영혼을 지성소로 삼으셔서 그래서 육신이 주인이 아니라 영혼이 주인임을 알게 하시는 것이 부활입니다.
우리의 영혼 속에 지성소로 삼으셔야 하나님 임재하시고 우리를 직접 통치 인도 충만케 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복원과 회복을 시키고 죄를 씻기시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배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도들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연합되게 하신 것이 교회의 참모습이라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골로새서1장18, 24,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예수님께서도 부활을 이루시기 위하여 죽으시고 아리마대요셉이 파놓은 새 무덤에 장례를 치루었습니다. 그러고는 마27:62-66에 보면 "죽었다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하면서 로마의 군인들이 큰 돌을 굴려다가 무덤 문 앞에 막고 인봉했고 3일간을 굳게 지키었습니다.
어리석은 빌라도는 그 청원을 받아들여 파수병을 보내어 무덤을 지키게 했습니다. 그런데 안식 후 첫날 새벽에 지진이 일어나서 무덤이 흔들리고 천사가 나타나 돌문을 굴러 내고 로마 군인들은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고 예수님은 부활하여 죽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님의 무덤은 그 문이 열린 채 빈 무덤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은 후 막달라 마리아가 이른 아침, 아직 어둑어둑할 때, (막16:1~2) '해 돋을 때' 라고 했는데 아마도 해가 돋는 이른 아침인 것 같습니다. 이때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습니다. 그 목적은 예수님의 시체에 향품을 바르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예수님 사랑하는 열정을 볼 수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지극히 사랑하는 열정이 있었기에 두려움도 없이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올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지극한 사랑은 생사를 가리지 않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행한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사랑은 참으로 본받을 만합니다.
바로 성도인 우리가 행할 사랑입니다. 막달라 마리아 못지않게 예수님 사랑을 열렬히 하고 신앙생활도 지성껏 해나가는 우리 모두 다되어지시길 축복합니다.
2, 빈 무덤은 육체의 부활을 의미합니다.(무덤이 비어있다는 말은 시신이 없는 상태),
2절, 막달라 마리아의 잘못된 보고,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와 보니 무덤 문이 열려 있었고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망한 막달라 마리아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의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이 주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시체를 누가 도둑질 해 간 줄만 알고 베드로와 예수님의 사랑하시던 제자 요한에게 있는 사실 그대로 전했습니다. 부활하신다고 말씀할 때는 귀담아 듣지 않고서는 시체가 없으니 누가 도적질해 간 것으로 짐작하고 잘못 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고전15:12~13,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3-8절, 베드로와 요한은 무덤으로 달려와 보게 되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의 긴급한 전달을 받은 베드로와 요한은 곧장 예수님의 무덤을 향하여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왜 달렸습니까? 사건을 정확히 또 신속히 파악하고 대처하기 위해서입니다. 또 예수님 사랑하는 열의가 그만큼 강하기 때문입니다.
일을 천천히 꼼꼼하게 해도 좋을 때도 있지만 때로는 신속히 좀 빨리해야 할 일은 빨리해야 잘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또 일은 정확히 내용을 파악하고 대처해야 실수를 하지 않습니다. 내용을 모르고 일하면 그르칠 수가 많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 사랑하는 열의가 누구보다도 강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보고대로 누가 도둑질해 갔다면 잃어버린 예수님의 시체를 속히 찾기 위해서 달음질했을 것이라 짐작을 해 봅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 일도 예수 사랑하는 열의가 강하면 강한 만큼 열심을 내어 일하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시들면 교회 봉사도 열심을 못 내고 내일로 자꾸 미루게 됩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예수님 사랑하는 열심을 가지고 있다면 교회 봉사하는 일도 열심히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두 제자가 같이 뛰기 시작했지만, 요한이 먼저 무덤에 도착하여 무덤 문밖에 잠시 서서 있었습니다. 요한은 젊어서 급하여 달려오기는 했어도,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베드로가 나중에 왔지만 오기를 기다린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 봉사의 일도 이처럼 두 사람의 성격을 조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요한같이 사려가 깊고, 신중하고 또 베드로와 같이 용감하고, 담대하고 그러면 신앙생활과 봉사 생활을 실수 없이 잘해 나가리라고 생각됩니다.
저들이 무덤에 들어와 보니 예수님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쌓던 세 마포가 그대로 놓여있고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세 마포와 함께 놓이지 않고 딴 곳에 개어져 있고 꼭 잠자다가 일어나 나간 사람의 자리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그냥 비어있는 빈 무덤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영광으로 가득 찬 빈 무덤이었습니다. 육체의 부활을 이루신 것입니다.
열심히 뛰어왔던 제자들의 발걸음은 헛된 열심의 발걸음이 아니었습니다. 승리를 확인한 발걸음이었습니다. 우리는 불쌍한 인생으로 살아가는 발걸음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부활의 승리가 저와 여러분의 승리로 승화시켜 열심히 믿음으로 나아가시길 축원합니다.
3, 부활은 승리입니다.
8절, "그때에야 무덤에 먼저 왔던 그 다른 제자도 들어가 보고 믿더라" 무덤에 먼저 왔던 제자, 즉 요한이 사려 깊은 요한이 이를 보고 믿더라 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시체가 없어진 것을 확인했다는 말이고, 둘째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해서 믿었다 하는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살아 계실 때 "내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고 제3일에 살아나리라" 고 몇 번 말씀하셨습니다(마16:21, 마20:19).
그러니까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그때 당시는 잠시 귀 넘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예수님의 무덤이 빈 무덤이 되었을 때, 그때 들었던 말씀이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9절에 "저희는 성경에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야하리라. 하신 말씀을 아직 알지 못하더라" 이 말씀의 원어의 뜻은 인류역사상 죽은 자가 살아난 일이 없었는데 믿기지는 않았다. 라는 뜻이 하나 있고요,
다음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리에 없으신 것을 보니, 아마도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나 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살아나신 주님을 만나보면 답을 알게 될 것이다. 라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성경에 ()괄로를 쳐 놓은 것을 보면 빈 무덤을 보고 예수님 생전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믿음을 가진 것 같습니다.
10절, "이에 두 제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한 말씀은 볼 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돌아간 것 같습니다. 부활 이후의 어떤 대책을 세워야 할지를 고민하며 집으로 돌아가서 주님을 기다린 것이라 저는 추측해 봅니다.
만일 예수님의 시체가 그저 타인에게 도적맞아 없어졌다면 당황해서 서두르며 예수님의 시체를 어떻게 찾을 고 하고 걱정한다든가, 분한 표정을 보인다든가 할 터인데 그저 고요히 침묵 중에 집으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볼 때 두 제자의 마음속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겠다. 한 말씀대로 부활했을 것이다. 하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과 기대를 가지고 돌아간 모습인 것 같습니다.
또 누가 예수님의 시체가 탐이 나서 훔쳐 갔다면 세 마포와 수건은 왜 벗겨놓고 가져갔겠습니까? 세 마포를 벗어놓고 수건이 개어져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누우셨던 자리에 누군가 질서 있게 정돈해 놓았다는 것입니다.(평상시) 예수님의 빈 무덤과 이 모든 정돈된 사건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덤은 지금도 그 문이 열려져 있는 빈 무덤 그대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이 빈 무덤 주님의 부활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빈 무덤! 생명의 놀라운 승리, 여기에 그리스도인은 소망을 가지고 생명의 영원한 승리를 노래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는 빈 무덤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원한 죽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부활의 종교가 바로 개혁주의 기독교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축복된 믿음을 가진 것에 대한 깊은 감사를 해야 합니다. 감사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랑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실체는 사랑입니다. 오늘 부활주일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여 함께 예배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무한하신 하늘의 축복이 영원토록 충만하시길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하며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