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동문학의 현실과 아동문학가들의 과제
함영연(동화작가,문학박사)
1.들어가면서
아동문학가들은 문학진흥법(제정:2016.02.03., 시행:2016.08.04)에 아동문학이 명시되지 않은 문제로 7월 12일 오후 3시, 국회회관에서 포럼을 가졌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아동문학단체의 대표를 비롯하여 150여명의 아동문학가들은 3시간 넘는 토론을 벌였다. 그 결과 도종환 의원으로부터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을 명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으로 포럼을 마쳤다.
아동문학가들은 문학진흥법에 명기가 되었다는 통보를 기다리고 있다.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아동문학과 출판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아동문학가들의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2.본론
가) 아동문학 살펴보기
아동문학이란, 어린이와 순수한 동심을 향유하려는 어른을 위하여 창작되는 문학(文學, literature) 양식이다. 시(詩, poetry), 소설(小說, novel), 희곡(戱曲, drama) 등과 같은 일반 문학의 양식이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아동문학은 그것을 향유하거나 수용하는 대상에 따라 생겨난 명칭이라고 할 수 있다.
아동문학의 가장 큰 특질은 동심을 바탕으로 창작되어지는 문학 양식이라는 데 있다. 동심이란 문자 그대로 어린이의 마음이다.
가식이 없고 꾸밈이 없는 진실성과 순수성을 특징으로 한다. 어린이의 삶이 어른들에 비해 순수한 것은 어린이의 심성이 인간의 원초적 심성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다.
즉 동심이란 인간의 원초적 심성인 순진무구한 심성이다. 그러므로 태어난 곳이 고향이라면 마음의 고향은 동심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진흥법 제1장 총칙에서 제2조를 살펴보면,
제2조(정의)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1 "문학"이란 사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예술작품으로서 시, 소설, 희곡, 수필, 평론 등을 말 한다. 2 "문학인"이란 문학 창작과 관련된 활동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하 생략) |
라고 명기되어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Aristotle, BC 384~BC 322)는 『시학』에서 문학의 양식을 운문류의 서정양식, 소설류의 서사양식, 희곡류의 극양식 등 세 갈래로 나누었다. 이 분류가 전통적으로 이어오고 있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문학진흥법에서 문학 정의는 아동문학가들의 정체성을 흔들 수 있는 사안이다. 운문문학인 동시는 시로, 산문문학인 동화는 소설로 넣어 분류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분류는 지금껏 사명감을 가지고 창작한 수천 명의 아동문학가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동시인이 시인이라고 말하지 않으며, 동화작가가 소설가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동문학가는 이 땅의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좋은 문학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런데 문학을 법적으로 정의할 때, 아동문학을 뺐으니 한탄하지 않을 수 없다. 아동문학이 문학의 정의에 없다면 아동문학가는 2항 문학인에도 해당되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이다.
창조 신화나 건국 신화 또는 전설, 민담 등을 고찰해보면 그 자체가 인간의 순수함을 다룬 “원시문학”이요, 서정과 서사와 극의 요소가 함께 하면서 분화 이전의 문학의 원형을 보여주고 있다. 바로 신비성과 순수성에 근거한 신화, 전설, 민담이야말로 문학 장르 분화 이전의 근원적이며 총합적인 형태의 문학이라 할 수 있고,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이들 태초 이야기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판타지에 바탕을 둔 ‘아동문학성’을 획득하게 된다. 따라서 아동문학은 문학의 본류라는 명분을 획득하게 된다. 노발리스도 모든 서사적인 것은 동화적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 출판 현황 살펴보기
망우리 방정환 선생님 묘소에는 ‘童心如仙’이라는 글귀가 있다. 동심이 신선과 같다는 의미다. 어린이는 축소되지 않은 원형적 동심을 소유하고 있으며 독립된 가치를 지닌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간혹 어른의 마음으로 어린이들을 가르치려는 마음으로 창작하는 작품을 접할 수 있다. 그런 작품은 잔소리 내용을 담고 있어, 문학의 효용 중의 하나인 읽는 즐거움을 빼앗고 결국 책을 덮게 할 것이다.
필자의 경험을 담아 보면 문예창작과에서 아동문학강의를 할 때 가장 벽에 부딪혔던 부분이 학생들에게 작품을 써오라고 하면 예쁘게, 아기자기하게, 교훈적인 글을 써오는 것이었다. 원고에 대한 의견을 나눌 때도 ‘글이 예뻐요, 아름다워요, 교훈적이에요’ 이런 의견이 나왔다. 그런 현상이 무엇에 연유한 건지 고민해본 결과 아동문학 또는 동화에서 아이동(童) 영향으로 사고의 편협성이 작용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성인인 학생들에게 어린이는 작고 귀엽고 미성숙하고 그래서 가르쳐야 하는 존재로 은연 중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먼저 아이동(童)을 (마음이) 움직일 동(動)으로 보기로 약속하고 아동문학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 동화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로 개념 정리를 다시 했다. 그리고 작품을 쓸 때 독자의 마음을 움직여 변화 또는 성장시킬 수 있는 감동 포인트를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 결과 학생들의 창작 자세뿐만 아니라 작품의 내용도 다양해졌다.
문학에서 아동문학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이들부터 읽을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필요에 의한 분류인데도, 그것 때문에 창작 사유의 한계에 갇혔던 것이다.
또 아동문학의 특징인 단순성, 명쾌성, 예술성, 교훈성 중에서 교훈성을 부각시키려는 작품이 많았다. 교훈성은 작품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있어야 하는데, 어른의 시각으로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창작 태도 때문이었다. 아동문학은 문학이기 때문에 문학성이 중요하다. 문학성이 높은 작품이 출간되어야 아동문학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품이 출간되면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기를 고대하는 건 인지상정이건만, 2016년 연간 독서량은 초등학생 70.3권, 중학생 19.4권, 고등학생 8.9권, 성인 9.1권이라고 한다. 2인 이상 가구의 1인당 월평균 서적구입비는 4899원으로, 지난해에 이어 최저치를 또 경신했다. 2015년엔 5244원이었다. 서적류 물가상승률은 전체 물가상승률 1.0%보다 낮은 0.7%여서, 2014년 11월 개정 도서정가제 실시 뒤 책값이 안정화 단계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
출판사 매출을 나타내는 ‘서적출판업 생산지수’는 지난해보다 4.3% 감소한 90.2였다. 1~2분기 생산지수는 소폭 증가했지만 3분기에 소폭 감소했고 특히 4분기엔 11.5%나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12월 정점으로 치달은 국정농단 사건 때문에 출판산업 회복세가 꺾인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71개 주요 출판사 매출액이 전년보다 1.1% 줄어든 약 4조9831억으로 집계됐다. 절반 이상의 출판사들의 매출이 감소된 데 따른 것이다. 지난해 71개 주요 출판사 중 34개 사(47.9%)는 매출액이 증가한 반면에, 37개 사(52.1%)는 감소했다. "주요 출판사의 경우만 보면 대체로 2016년에 성장성과 수익성이 2015년보다는 호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10년 새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어린이들의 인구 비율이 주는 반면 만65세 이상의 비율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전형적인 인구 고령화 시대의 징표이다. 22일 행정자치부의 2월 주민등록인구 통계에 따르면 만0세에서 14세까지 어린이들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17.2%에서 올해 2월 기준 13.3%까지 줄였다고 했다. 반면 만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의 비율은 상당하는 기간 10.2%에서 13.7%로 3.5%포인트 늘어났고 중간 연령대인 만15~64세 인구는 72.5%에서 73%로 제자리걸음을 했다.
다) 아동문학가들의 과제
아동문학가들은 아동문학을 창작하는 것에 대해 사명감이 크다. 그건 어린이들에게 미칠 영향을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동문학가들은 독자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어 한다. 이런 마음으로 창작하는 아동문학가들에게 출간된 책을 심사해서 수여하는 문학상은, 문학성 높은 작품을 창작하려는 의지를 심어주기도 한다. 한정동아동문학상, 방정환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박홍근아동문학상, 운석중문학상, 이주홍문학상, 창원아동문학상 등은 출간한 작품을 한 번 더 검증 받을 수 있는 기회이다. 갈수록 문학상들의 운영이 어렵다는 말이 들리는 요즘, 한정동아동문학상은 한정동 선생님이 살아계실 때부터 실시해서 올해 46회 수상자를 내고 있어 의미가 더욱 크다.
아동문학은 어린 독자들에게 정신적 비타민 같은 존재이다. 어릴 때 읽은 책이 삶의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있다. 그러므로 아동문학가들은 높은 사명감을 가지고 창작하고 있으며, 당연히 자긍심도 높다. 그런데 간혹 아동문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의 폄하를 겪기도 한다. 문학진흥법에 아동문학을 명기하지 않은 것도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아동문학을 왜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여러 작가들이 답을 해주었는데, 답에서도 사명감과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 처음에는 내 만족, 위로(치유)에서 출발했다. 내가 누구인가? 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 자존의 출발이기도 한 동시쓰기는 너와 우리라는 시야 확대를 통해 보편적 공감이나 감동을 지닐 수 있었다. 쓰는 재미, 함께 읽는 기쁨! 동시는 즐거움에서 출발하여 지혜로 끝나야 한다는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관을 좋아한다. 특히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고 한다.
● 내 안에 있는 순수함을 유지하거나 찾기 위해 하게 되었다. 동화를 쓰다보면 늘 순수를 지향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동화를 쓰면서 내면이 정화되었다. 독자들이 아이이건 어른이건 내 작품에 위로 받기를 원한다.
● 동화는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고 삶의 변화를 주는 것 같아 쓰고 있다. 써보니 동화 장르의 매력이 크다. 아이들이 꿈을 이루어가는 길에 내 작품이 좋은 영향을 주었으면 한다.
● 재미있고 감동적인 동화를 통하여 누군가가 행복해지고 나아가 세상이 평화롭게 되는 데 기여한다면 위대하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간혹 일반문학 작가들에게 아동문학은 책 판매가 잘 되어 인세 수입이 큰 것이 부럽다고 하는 것을 종종 듣는다. 판매가 잘된다는 건,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만큼 책을 사는 수요자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 부분은 일반문학보다 호응도가 좋은 건 분명하다. 하지만 책을 선택하는 대상이 대체로 어른이기 때문에, 아동문학 작품은 먼저 어른들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그런 다음 어린이들이 읽게 되는데, 어린이 독자들에게도 환영받는 작품이어야 한다. 그래서 아동문학은 이중독자를 만족시켜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아동문학 작가들은 재미, 감동,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을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부단히 갈고 닦아야 한다. 예전에 어떤 존경하는 작가 선생님이 작가들은, 작가가 된 다음은 공부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고 책망하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부단히 사유를 넓고 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깊이 있는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렇지 않으면 유치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다.(이건 일반문학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 인구는 줄어들고 노인 인구는 늘어나는 추세에 실버문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은 인생에서 동화책을 세 번 읽는다고 한다. 아기일 때 어른들 품에서 읽고, 글자를 익힌 다음에는 스스로 읽고 노인이 되어 또 읽는다고 했다. 노인들은 분량이 길고 복잡한 플롯으로 엮어진 소설보다는 동심을 향유할 수 있으며, 철학이 담긴 아동문학에서 책 읽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 나오면서
지금까지 아동문학과 출판 현황에 대해 살펴보고, 아동문학가들의 과제는 무엇인지 알아보았다. 아동문학은 작가가 어린이와 동심을 향유하려는 어른들을 위하여 창작되는 문학이다. 그 바탕에는 동심이 있는데, 동심은 어린이 마음을 넘어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동문학가들은 동심을 귀히 여기고(동심천사주의를 내세우려는 게 아님.) 어린이들의 정신적 비타민이 되는 아동문학 창작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재미, 공감, 감동 있는 창작을 한다면, 아동문학의 독자 폭은 더욱 넓어질 것이 자명하다. 그러기 위해 사유를 넓고 깊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문학성 높은 작품을 출간한다면 독서 인구를 늘리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또 고령화 사회에 관심을 갖고 실버문학 창작에도 힘써야 한다. 그리고 아동문학을 하는 동시인, 동화작가, 동극작가, 아동문학평론가들이 의욕을 가지고 창작할 수 있도록 바람직한 정책을 요구하는 것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누워 있는 권리는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어느 평론가의 말을 대신하며 글을 마친다.
“감동을 느끼기에 동화보다 더 나은 소설이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오래 이어온 장르인 것 같다.”
참고 자료
이원수, 『동시 동화작법』, 웅진출판, 1984
이재철, 『아동문학개론』,서문당, 1992
박상재, 『한국 동화문학의 탐색과 조명』, 집문당. 2002
김상옥, 『어린이 문학의 재발견』, 창비, 2006
함영연(동화작가, 문학박사)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추계예술대학교 대학원에서 문예창작 박사과정을 공부했습니다.
1998년 계몽아동문학상을 수상으로 동화를 쓰고 있으며, 환경우수도서상, 방정환문학상,
한정동아동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작품집으로 <탈출! 아무거나> <아기도깨비와 밀곡령> <로봇 선생님 아미> <가자, 고구려로!> <돌아온 독도대왕>
<함영연 동화선집> <꿈을 향해 스타오디션> <데카르트 아저씨네 마을신문> <효자효녀요양원 느바>
<채소 할아버지의 끝나지 않은 전쟁> <할머니 요강> <우렁이 엄마> <회장이면 다야?>
<엄마가 필요해!> 외 다수가 있습니다.
대학에서 아동문학을 강의했고, 현재는 동화창작스토리텔링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