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죽설헌(竹雪軒), 화순 세량제를 찾아서
때: 2015년 4월 25~26일(토~일)
동행인: 원호 조운석, 운산 최종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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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는 것은 마음
귀가 있다고 다 들리는게 아니고 눈이 있다고 다 보이는게 아니다. 마음이 가야만 보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을 이번 나주(토종정원 죽설헌:竹雪軒)와 화순(석촌 수석 50주년 테마전) 테마 여행을 하면서 새삼 알았다.
원호 조운석 뜀꾼은 종종 나주 죽설헌의 소유주인 시원 박태후, 화순 수석가 석촌(오기배),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 운산 송순섭선생을 말하곤 했지만 필자와는 너무 관련이 없는 분들이라 귀담아 듣지를 않았었다.
그런데 갑자기 석촌 수석 50주년기념 테마전에 1박2일(4/25~26)로 가자며 뜀꾼을 모은다. 아무도 리플이 없다. 마지 못해 같이 가기로 했는데 토요일 아침 운동전 얘기를 했더니 가본 뜀꾼들도 있었다. 구경할만하니 시간 있으면 가도 좋단다. 보기가 안되었던지 한번 가본 적이 있다는 운산 최종헌 뜀꾼이 운동이 끝나고 나서 같이 가주겠단다. 그래서 3명.
나주, 화순 테마 여행 나서
원호가 10시 조금 못돼 아파트 단지에 와 필자를 태우고 남부순환도로 방배동 사당가는 길목에서 운산을 픽업했다. 운산은 토요일 10시 반이면 너무 늦은 시각이라 서초동에서 고속도로 진입은 복잡할 거라며 사당에서 남태령으로 넘어가잔다.
과천, 의왕, 서수원, 서오산IC를 통해 경부선으로 올라탔다. 경부선 초입을 피해 잘 들어선 것 같다. 그런데 안성에서 밀린다. 그러면서 천안-논산 고속도로 입구에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꽉 밀려있고 기존 고속도로는 헐렁헐렁하다. 갈라지는 노란사선지역에 잠깐 멈췄다. 좀 멀지만 기존 경부고속도로를 타기로 했다. 역시 잘 맞아 들어갔다.
논산에서 피해왔던 천안-논산 고속도로를 만난다. 두시가 가까워 배가 출출하다. 여산휴게소에 들어갔다. 시원한 황태국으로 점을 찍었다. 요즈음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값을 제대로 받으면서 먹을 수 있게 해 괜찮다고 원호가 한마디. 7,000원. 셋 다 맛있게 먹었다.
네비 있어도 조수가 까막눈
다시 광주까지 고속도로를 달렸다. 나주 표시판이 보여 고속도로를 내려왔다. 여기서부터는 얼마를 헤맸는지 모른다. 가본 경험으로만 핸들을 잡은 원호, 조수석에 앉아 있지만 스마트폰네비도 볼 줄 모르는 필자, 운전을 많이 해봤으나 역시 이곳 길눈이 밝지 않은 운산이고보면 당연하다 싶다. 말도 못하는 외국 사람에게 길을 묻는 촌극도 벌어졌다. 차가 좋으면 뭐하나, 차가 좀 나뻐도 운전기기사가 길을 잘 알던가 조수들의 역할 아니면 네비를 보고 잘해주어야지...
나주 혁신도시 인근 배박물관
하여튼 제자리에 다시 오기를 몇 번, U-턴도 몇 번 해가며 가까스로 원호가 이정표라고 여기는 나주 배박물관을 찾았다. 배박물관만 찾으면 된다는 그 곳이다. 서쪽에 나주시가 있고 동남쪽에 한국전력이 내려온 혁신도시가 한참 건설중이다. 한전 건물만 랜드마크로 덩그러이 서 있다. 지난해 12월1일 문을 연 31층(153m) 건물이란다. 달마종 부인도 아들이 다니는 IT관련 정부 기관이 이리 이사와 내려오곤 하는 곳이다.
죽설헌 입구
도로입구에 ‘배꽃향기 흐르는 곳 금촌면, 촌곡리 2구라고 쓴 표지판 하단에 ’죽설헌 가는길‘이라고 쓰여있다. 분명했다. 그렇게 해서 4시가 다 되어서야 배밭마을에 도착했다.
주인 시원 박태후 화백의 영접
관목잎이 넘실대는 조그만 바위에 ‘죽설헌’이라고 부드럽게 흐려 판 글씨가 보인다. 그 언저리에 있는 허름한 목판에는 “그냥 들어오면 작업에 방해가 될 수도 있으니 사전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010- 3657-7979”
전화를 해 놓은 터라 주차장에 이르니 말총머리의 시원(枾園) 박태후 화백이 반갑게 맞는다. 시(枾)는 감시(柿)자와 같은 뜻의 다른 한자. 호가 감나무정원이란다. 우리 세 명을 안내한다. 원호는 최근에 한 신문에도 보도되었다고 얘기해준다. 그런데 시원선생은 사진을 찍지 말라고 경고한다. 친구 체면 때문에 삼갈 수 밖에 없다.
좌탱탱 우꽝꽝
왼쪽에 탱자나무가 울타리로 되어있다. 누워도 찔리지 않을 것 같이 성긴곳이 없이 잘 전지되어있다. 오른쪽에는 고등학교 때 심은 꽝꽝나무가 울타리로 되어 있다. 얼핏보아 회양목을 닮아 개회양목이라고 불린단다. 꽝꽝나무는 남쪽지방에 사는 상록 관목이라고 알려준다. 잎이 두툼해 불 속에 던져 넣으면 잎 속의 공기가 갑자기 팽창하여 터지면서 ‘꽝꽝’ 소리가 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란다.
탱자나무는 하얀꽃을 피웠고 꽝꽝나무는 5월이 되면 노란 꽃을 피울 것이란다. 이 울타리를 보고 좌탱탱 우꽝꽝이라는 운을 만들어놓았다. 양쪽에 같은 것으로 했더라면 보고 느끼는 맛이 반감되었을지도 모른다.
탱자나무 담
호랑가시나무가 나온다. 가시 때문에 금방 알 수 있다. 꽃을 피워 향이 코를 마비시킬 정도다. 남쪽지방 녀석이다보니 나무 자체도 수시로 보지 못했지만 꽃은 처음 본다. 그런데 시원 선생은 더 이상 얘기할 필요가 없는 모양이다. 부연 설명이 없다.
호랑가시나무꽃
기와장 담장
이 입구를 빼면 대부분 담장이 허물어진 집 기왓장을 가져다 만들어놓은 것이다. 암기와를 나란히 해서 2단 또는 3단으로 쌓고 위에는 수키와를 2중3중으로 올려놓았다. 양이 엄청나 그걸 다 수작업했을테니 여간한 끈기가 아니면 어려웠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이름 물어보느라 정신 없어
운산이 지나다 가중(깨중)나무같다고 하니 개호두나무란다. 정식으로는 가래나무다. 필자도 갑자기 만나다보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호랑가시나무처럼 잎에 가시가 있는 하얀꽃이 핀다는 은목서, 주황색 꽃이 피는 금목서도 있다. 집을 나설 때 시원 부인은 동목서 포함 3목서가 있다고 알려준다. 동목서 꽃은 청동색이 아닌 것 같다.
처음 들어갈 때 꽝꽝나무담 옆에 모과가 떨어져 검게 썩고 있길레 한참 걷다가 본 모과나무를 가리키며 여기서 따다 가져다 놓은거냐고 물으니 탱자나무있는 곳에 키가 큰 모과나무가 있어 떨어진 거란다. 쓸 것만 따서 쓰고 나머지 떨어지는 것은 그대로 둔단다. 다시 돌아가며 보니 정말 키가 하도 커 알아채지 못했다.
벚나무도 꽃을 지우고 불그스레한 버찌를 달고 있다. 파리똥나무라고 하는 보리수도 서 있다. 동백, 엄나무, 기와담장을 따라 줄지어서 있는 옥잠화군락. 운산은 성심여고 교화라고 고향의 여고를 들춰낸다. 여성에게 좋다고 해서 요즈음 즐겨 찾는 질경이, 남국을 연상시키는 파초도 군락을 이루고 있다. 시원선생은 파초를f 바나나나무와 구별이 힘들다고 한마디 한다.
5월의 노란꽃을 꿈꾸는 창포
비자나무
옥잠화와 기와담의 행렬 (476, 477, 478, 479, 480, 481, 482, 484, 485, 486)
5월이면 노랑꽃 장관 이룰 창포밭
이제는 연못으로 안내한다. 조금 있으면 노랗게 꽃을 필 창포가 물가에 도톰한 푸른 잎을 치켜올리고 있다. 음력5월5일 단오에 여성들이 창포뿌리 삶은 물로 머리를 감는 전통으로 알려진 풀이다. 머릿결이 좋아진단다. 유사한 보라색꽃을 피우는 것은 꽃창포라고 덧붙인다.
가을의 붉은 꽃무릇
가을에 오면 꽃무릇의 붉은꽃이 장관이란다. 꽃과 잎이 시간차를 두고 생겨 볼 수 없어 서로를 그리워한다해서 붙여진 상사화라고도 하는데 실질적으로 상사화는 7·8월에 피고 꽃무릇은 9~10월에 핀다. 잎이 지고 꽃이 피는 공통점이 있는 수선화과다. 지금은 꽃이 없으니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논을 사 연못 7개 만들어
시원선생은 이곳 1만2000여평의 정원에 연못이 7개가 있단다. 돈이 생기면 논을 사서 포크레인을 동원해 이처럼 연못을 만들었단다. 주위가 논이라 자연스럽게 물이 나오고 우렁, 미꾸라지, 메기 등 물고기가 살고 수련 창포 등 식물이 있어 자연적으로 정화돼 물이 썩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 죽설헌에 있는 나무는 100% 다 자신이 종자를 뿌려서 키웠다고 보면 된단다. 이곳 연못 주위 왕버들은 가지를 꺾어 심은 것으로 25년 생이라고 덧붙인다. 지금은 낙엽이 떨어져 물이 흐려보일 뿐 조금 있으면 맑아진단다.
이 왕버들은 25년 전 가지 꺾어 심은 것... 연못은 논을 사서 만든 것
죽설헌 이름은 작업실에서 밖을 본 동양화
죽설헌은 눈덮인 대밭에 있는 집인데 겨울이 아니라 이름이 풍기는 기분을 느끼기에는 부족하지만 시원선생의 작업실에 앉아 눈 내린 밖을 내다본다면 그 이름을 알 수 있을 것 같다.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것은 돌 몇 개로 쌓은 투박한 석탑과 대나무 숲으로 겨울에 보면 한편의 동양화다.
대나무로 제1회대한민국서예대전 우수상 수상받은 시원
소나무나 대나무는 늘푸른 나무이기 때문에 선비들의 지조의 상징으로 삼는다. 그런데 이 곳에는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대나무만 보인다. 그가 제1회대한민국서예대전(1989년)에서 받은 우수상(문인화부문) 수상작이 이 대나무였다면 시원의 대나무 사랑을 알 수 있다.
조선일보 2015/4/4-5 주말판
작업실에서 보이는 소박한 탑
모과나무
시골냄새 물씬 풍기는 집안
우리는 시원 선생의 안내로 20여분 휙 한바퀴 돌고 집으로 들어가는데 부인 김춘란여사께서 나와 우리를 맞는다. 늘푸른 덩굴나무인 굵은 송악 덩굴이 문앞 목받침을 타고 올라간다. 필자가 “집속으로 기어들어가겠다”고 하니까 김여사는 뱀이라도 들어오는 줄 알았다며 깔깔깔 웃는다.
가정집이자 작업실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무단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지사. 처음 우리를 맞을 때도 대전에서 왔다는 낯선 사람이 서성이는데 시원선생이 막느라고 한참 있다 왔다. 지난 4월 첫주 조선일보 주말판에 크게 보도가 되었단다.
'지도에 안나오는 죽설원' 천만 다행: 시원
시원 선생은 지도에 이집이 나와 있지 않아 사람들이 찾기가 좀 힘들거라며 참 다행이란다. 그런데 1970년 호남원예고등학교시절부터 가꿔온 이 꾸밈없이 소박한 토속정원이 매스콤에 보도되고 유명인사들이 자주 들랑거려 많이 알려져 있었는데 필자만 모르고 있었다.
법정스님, 이해인 수녀 다녀가
법정스님도 살아계실 때인 2007년 다녀갔고 이해인수녀님도 이집에 와서 차를 마셨단다. 유영숙씨도 환경부장관시절 이 곳에 와서 시원 부부와 함께 같은 양띠(‘55)라며 셋이서 포즈도 취했고 이낙연 전남지사도 관심을 두고 지난 2월 다녀갔다는 보도가 있다.
예지원 주연의 '초대' 영화 로케장소
2011년 김인식감독이 이곳에서 메가폰을 잡고 예지원이 주연한 영화 '초대'를 찍었는데 2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광주 유니버시아드대회 (7/3~14) 중에 광주와 전라남도 홍보용으로 쓸 계획이란다. 시원 선생이 카메오(cameo: 인기배우나 유명인사가 영화나 드라마에 단역으로 잠깐 등장하는 것)로 출연했다고 덧붙인다.
영화 '초대'에서 예지원이 죽설원에서
문화인들 사랑방
김여사는 적적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손님이 끊임없이 드나든다면 조금전에도 손님이 왔다 갔다고 한다. 많은 음악인, 문인, 화가 등 문화계 인사들의 사랑방이 된지 오래란다. 가수 장사익, 시인 김용택 등 들으며 알만한 사람은 다들 한번씩 드러갔단다.
거실에서 차를 마시며
연장자 젊은 마누라 옆에 앉혀
시원 선생은 젊은 여자(부인) 옆에 앉으라며 누가 제일 연장자냐고 묻는다. 운산이 차지했다. 대단한 배려다.
차를 끓여 연신 부어준다. 풍류피아니스트 임동창씨가 와서 쳐보기도 했다는 골동품 풍금이 귀퉁이에 놓여있다. 마루바닥은 폐교 교실의 판자를 깎아 깔은 거란다.
김여사는 겨울에는 단독이라 좀 춥다며 끝에 있는 벽난로를 가리킨다. 불을 때워 온기를 채운단다.
둘째 딸 조경 전공
시원선생은 딸만 둘이 있는데 큰 딸은 미술 석사과정에 있고 작은 딸은 조경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둘째가 대를 이어 이 집을 가꾸는데 안성맞춤인 듯하다.
죽설헌 공개 방법 고심 중
시원선생은 언젠가는 이 집을 공개해야하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 중. 완벽하게 차별화를 해서 시스템을 갖춰 오픈할 생각이란다. 한달에 몇 번, 일주일에 며칠, 한나절에 몇팀 등을 정해서 일정 숫자의 방문객들에게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는데 사람의 발길이 닿다보면 망가지기 십상이다. 융단같은 질경이 길이 남아나겠으며 사진찍는다고 이곳 저 곳 불쑥불쑥 드나들테니 여간 걱정이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매스컴에 수시로 나고 인터넷에 숱하게 소개가 돼 수소문해 찾아오는 관광객이 많은 것 같다. 유명세가 보통이 아니다.
소쇄원 양반형, 죽설원 서민형
담양에 있는 소쇄원(양산보梁山甫 정원: 1503~1557)은 조선 양반의 정원이라면 이 곳 죽설원은 야산에 걸터있는 지극히 서민적인 뜰이다. 그래서 너무 친근하다. 가능한 한 손을 적게 대는 거란다. 고등학교에서 과수, 채소, 원예를 배우고 산야를 돌아다니며 각종 약초를 채취해 심고 가꾼 것이란다. 1996년 42세 때 연금이 나오는 20년의 공직생활을 마감하고 낮에는 나무와 꽃을 가꾸고 밤에는 작업실에서 문인화를 그리고 있다고 한다.
양띠 동갑내기 부인 김춘란여사 여사의 양 눈가에 눈웃음이 덕지덕지... (487, 488, 489, 490, 491, 492, 496, 497, 500, 501)
거실을 나서는데도 나무 꽃 지천에
차를 마시고 나오는데 마디가 있는 벼과의 속새, 하얀꽃을 이쁘게 매달고 있는 멍나무(멀꿀), 호랑가시나무처럼 가시가 있는 구골나무.... 나무를 주서섬기기가 바쁘시다. 이집에 150여종의 나무와 야생초가 있단다.
향은 거의없는 집앞 멍나무 꽃
주차장 가는 밭에 민들레 홀씨의 장관
40년생 등나무로 그늘만든 주차장
차가 주차되어있는 주차장에는 시렁에 보라색 등나무꽃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해준다. 밑동을 보니 나이가 꽤 됐다. 원호는 나무줄기에 카메라를 대보라고 일러준다. 시원 선생은 40년된 나무란다. 그가 초기에 심은 거다. 요즈음 찾아와 주차하는 손님들은 눈과 코가 호사를 하게 될 것이다. 승용차는 시원함가지 맛을 보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갑작스럽게 찾아와 휙 돌아본 죽설헌... 민낯의 시골 처녀처럼 소박하고 수수하여 부담이없다. 다시 한번 찾아올 것을 기약하며 나주 배박물관을 지나 화순으로 방향을 잡았다.
주차장의 시렁에 자주색 등나무꽃의 냄새가 하늘을 덮네요
40살된 등나무 (507, 511, 515, 518, 519, 520, 526, 527, 531)
서두에서 말한대로 사전 준비도 없었고 주인장이 사진을 찍지말라는 말에 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 읽는 친구들도 별 감흥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다시 가면 멋지게 사진을 찍어 볼 생각이다. 꽃이 아직 없는 것도 사진이 허약한 이유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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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랑제 (화순군 화순읍 세량리)
사진작가들의유명 출사지
일요일 우리 셋은 6시에 일어나 세량지을 찾아나섰다. 첨단 네비시대에 이 저수지를 지도에서 찾지 못하고 무작정 도르를 따라 달렸다. 사거리에서 광주쪽을 계속 달리는데 세량리라는 팻말이 있다. 그러자 세량지라는 팻물도 나온다. 서울에서 관광버수가 한대 와 서 있다.
벚쪽이 만개한 2준 전에는 발 디딜틈이 없었단다. 그리 크지도 않은 저수지인데 산과 나무 꽃들이 투영되는 아침이면 찍사들의 혼을 쏙 빼놓는단다. 거기다 물안개가 피어오르면 선계나 다름없단다.
그래서 전날 일기 에보를 잘 듣고 언제 얼마나 안개가 피어오를지를 알고 와야 한다는 것이란다. 이날 아침은 이렇다할 호재 가 없어 찍사들이별로 없느거란다. 벚꽃도 없고 물안개도 약하고....
기온은 내려가 손도 시렵고 온몸이 춥다. 1시간 가량 서성이다 7시20분에 내려왔다. 주왕산 아래 주왕지를 생각하면 조족지형인데도 산과 저수지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주왕지 못지 않단다.
(624, 626, 627, 628, 630, 636, 640, 657, 661, 665, 668)
경력 4년차라는 여성사진작가
저기 도로에서부터 1km정도 걸어올라왔다.
사진에서 보는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윤슬이라고 한다. (673, 680, 684, 685, 687, 688, 692, 698, 707, 709)
후묵 배상
첫댓글 좋은 곳을 다녀왔군요.^.^
희묵 친구, 나도 오늘 오전 세량지 옆을 지나 도곡온천에 갔었는데... ㅎㅎㅎ
규영친구, 반가워요. 도곡온천에서 1박했네요. 그곳에 석촌 수석관이 있어서 같지요,,. 후묵친구, 글 잘봤어요. 죽설헌에 대해 사전 정보를 못주어 미안해유. 사전에 알고 방문하면 많은 것을 알수있었을텐데..죽설헌이나, 석촌을 수없이 가봤지만 갈때마다 새로움이 있더군요. 계절에 따라 꽃이 피고 분위기가 다르고,보이지 않던것이 다시보이고,,,차분히 섬세히 보고 또보면 새롭게 보이더군요... 석촌도 올려주겠지요..
내가 빠져서 감흥이 반감 되었네. 원호는 내가 동반해야 흥이 나는 친군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