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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인그때그시절]
2 을지무도장
아사모가 몇년씩 모임을주관하던 을지무도장 자리는 역사와 정통이있는
80년중반까지 유명한 [남남 카바레]자리였입니다
후로링 중간에
10평남직한 무대가 좌우로 이동을하며 일류가수들이 나와 노래를 부르고
1층과 2층을 겸하는 넓은 주석과 무대가 이동되는 특별한카바레이기고 했읍니다
[남남카바레]는 일류 춤꾼들이 모였던곳은 아니고 파트너와같이 춤과 분위기를
즐기는 카바레로 깨끗한 분위기와 이미지로 당시에 춤선생이 교습생을 데리고
실습장소로 많이 왔던 곳이였입니다
로타리에 [계림극장]이있었는데 개봉관을 아니고 2류관이였는데
낮에 파트너와 만나 계림극장에서 영화한편보고 저녁에 남남카바레로 들어오는
쌍쌍들이 종종있었읍니다
두정거장위로 왕십리 중앙시장에 위치한 [동화카바레]가 당시에는 내노라하는
춤꾼들이 모였던곳으로 서울동북부에서 [미아리카바레]와 쌍벽을 이루는
카바레가 있었고 을지로2가에는 [판코리아]와 국일관 그리고 동대문종합상가에
위치한 [동대문관관회관]이 당시에는 극장식카바레로 일류카바레가 [남남카바레]
주위에 있었읍니다
지금짝난을 즐기는 [동대문무도장]은 당시에는 없었고 이후에
[동대문로타리]카바레로 생겼던 곳입니다
70년에서80년까지만해도 춤을 추는장소는 카바레밖에 없어 소위춤꾼들은 카바레
특성을 잘 알고있었읍니다
혼자놀려갈때와 파트너와 갈때를 구분해 찾아 다니곤했읍니다
그중 [남남카바레]는 좀 저렴한 가격으로 주석을 할수있는 깨끗한장소였읍니다
80년 중반을 넘기며 [아리랑카바레]개명해 몇년을 유지해오다 90년이후
무도장 허가가 정식으로 생기면서부터 우후죽순처럼 무도장이 늘어나 하나둘
카바레가 문을 닫기 시작했읍니다
카바레에는 뺀드마스터를 비롯 적게는 7~8명 많게는 20여명이씩 오케스트라식
음악으로 지금에 무도장과는 그 격이나 음악... 분위가 전혀 달랐읍니다
전자올겐와 번가라 가며 울려나오는 음악은 추억의댄스인들은 잊지못할것입니다
당시 일류카바레는 춤꾼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멋진곳이었읍니다
음악도 음악이지만 깨끗한분위기와 격조있는주위환경이 흥을돋구곤 했읍니다
댄스인으로멋지게 어울릴수있는 격이있는 장소였읍니다
90년 이후 무도장이 난립하고 카바레 경영이 어려워지며 하나둘 사라져가는
카바레를 보며 그져 찹찹한 생각이 듭니다
80년당시 130여개가 넘는 서울에 카바레가 이제는 손에꼽을정도로
줄어들었읍니다
[남남카바레] - [아리랑카바레] - 을지무도장 - 이제는 리모델링을 할정도로
낡고 볼품없는 건물로 세월에 무상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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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제 캬바레는 천연기념물이고 멸종되어가는 중인것 같습니다.
그때의 운치와 멋이 세월의 무상함과 더불어 어디론가...
을지로에 있었던 그캬바레-움직이는 무대로 유명했던- 그때 같이춤추었던 그여인은 잘있는지?......
아하 그렇군요..
캬바레는 이제 거의 안보이고 대부분 그자리는 무도장이 되었더군요..
캬바레 는 그대로이고 입장료만 2,000원 으로 조정 성업중인 곳도 부산에는 있는것 같아요
조방앞 뉴서울카바레 제가 부산가면 꼭 들리는 곳입니다. 오직 정통일자만 추는곳
새삼 지나가버린 엤생각이 문뜩... 그리워 지네요 감사합니다
직장 다니면서 사교춤 한달 배운뒤 무식이 용감하다고
겁도없이 매일 캬바레로 가서 자리잡고 웨타가
여님을 잡아주면 바로 퇴짜맞고 애꿎은 웨타만 골탕 먹였지요
지금 생각 하면 웨타들 한테 팁은 줬지만 못할짓을 한것 같아 미안 하죠
종로캬바레..도 멋과 낭만을 찾아 멋쟁이들이 드나들곤 하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