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설날의 의미
설날은 일 년의 처음이라는 뜻으로 세수(歲首) 또는 원단(元旦), 연수(年首)라고 부르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새해 들어 첫날이며, 달에 들어 첫날이고, 날에 있어 첫날이었으니 이를 삼원지일(三元之日)이라 하여 중요시하였던 것이다.
우리말로는 설 또는 설날이라고 하며 한자로는 신일(愼日)이라 하는데, 이는 경거망동하지 말고 근신(謹愼)하라는 의미다. 그래서 설날은 삼가고, 낯설다는 뜻이 변하여 설날이 되었다는 말도 전한다.
한편 묵은해는 다사다난한 가운데 전날을 마지막으로 지나갔으며, 다가오는 새해는 새로운 마음을 가지며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벽사초복을 하려면 당연히 심신을 근신하여야 마땅한 일일 것이다.
2. 음력의 사용
▲ 익산시민뉴스 논설위원(수필가, 칼럼니스트)
음력으로 한 해가 시작되는 첫 날을 설날이라고 한다. 이때 적용된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기준하여 만든 달력을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따져보면, 지금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음력은 모두 태양태음력이다.
순수 음력이 달의 운동만을 기준한 것에 비해, 태양태음력은 달의 운동주기를 근거로 하고 있지만, 여기에 태양의 움직임을 혼합하여 만들어낸 달력이다.
이 태양태음력은 중국에서 들여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 우리의 선조(先祖)인 희자(羲子)가 만들었다고도 한다. 희자는 태양과 달의 움직임을 보고 날짜를 계산하여 연월일(歲月日)의 달력을 만들었고, 여기에 별의 움직임(星辰)을 더하여 천체(天體)를 분석한 후 기후의 변화와 계절의 순서를 나타냈던 인물이다.
3. 설날의 변천
예전의 음력은 1895년 11월16일까지 사용되다가, 11월 17일이 양력으로 1896년 1월1일이 되도록 강제로 바뀌었다.
이때는 조선 고종 32년으로, 1897년 광무 1년에 국호(國號)를 대한제국(大韓帝國)으로 바꿔 스스로 황제의 나라라는 자부심을 심어주기 2년 전이다. 당시 외세 열강들은 쇄국(鎖國)으로 안주(安住)해있던 조선을 억압하여 우리의 문화(文化) 대신 자신들과 같은 문화를 사용하도록 요구하였던 것이다.
이후 우리의 설날이 양력 1월 1일에 밀려 구정(舊正)으로 전락된 적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시대에는 고유의 설날이 되면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사하여 혹시 제사를 지내고 있지는 않는지 감시하였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고유의 명절은 1985년에 ‘민속의 날’로 부활하였고, 1999년에는 드디어 ‘설’이라는 명칭을 다시 사용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설날 대신 구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지금도 일본은 양력 1월 1일부터 3일까지를 휴무일로 정하고 축제로 즐긴다. 이때의 방식은 우리의 설날과 별반 다르지 않다.
설날에 관한 기록
설날을 명절로 삼은 것과 그에 대한 세시풍속을 기록한 것은, 우선 3세기 중국의 역사가(歷史家) 진수(陳壽)가 쓴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을 꼽을 수 있다.
동이전에는 고대 부족국가의 제천의례(祭天儀禮)에 대한 내용이 있는데 이를 세시풍속의 원류로 보는 것이다. 제천의례는 매년 같은 시기에 행해졌고, 하늘에 제사지내며 음주와 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이 행사는 국가 전체에서 이루어지는 국중대회(國中大會)라고도 하였다.
여기서 같은 시기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며 주기성(週期性)을 띄었다는 부분에서 세시의례라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신년제(新年祭)의 경우는 부여에서 ‘은(殷) 정월(正月)’에 ‘영고(迎鼓)’를 했다는 것과 관련지을 수도 있다. 이때 ‘은 정월’은 태음력의 기준으로 섣달에 해당되며, 이는 당시의 역법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이러한 내용이 중국의 ‘위서 동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아 당시 중국과 부여가 내왕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아마도 같은 역서(曆書)를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아니면 부여에서 사용하는 책력은 다르지만 이때의 ‘영고(迎鼓)’가 은(殷)나라가 사용하는 책력의 기준으로 보아 정월(正月)에 해당하는 때에 실시하였다는 해석도 할 수 있다.
다만, 여기서의 동이(東夷)는 조선조의 조선뿐 아니라, 진수(陳壽)가 삼국지(三國志)를 저술할 당시의 주변 여러 나라들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편 7세기에 편찬된 중국의 역사서(歷史書)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의 신라조(新羅條)에 보면 ‘매년 정월 초하루 아침에 서로 경하하며 왕이 연회를 베풀고 여러 손님과 관원들이 모여서 일월신(日月神)을 배례(拜禮)한다.’는 내용을 적고 있다.
4. 설날아침 차례
차례의 유래
예전에는 사당(祠堂)에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 그리고 정월 초하루, 동지, 돌아가신 날 등에 지냈다. 그러다보면 매년 30여 회나 되는 제사가 있어 복잡하고 부담이 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따라서 보름에 지내는 제사를 간소화하여 술잔대신 찻잔을 올리는 방식으로 대신하였다. 이때 차례(茶禮)가 생겨났으나, 점차 확대되어 간소한 제사의 통칭으로 변한 것이었다가, 이제는 모든 명절날 아침에 드리는 제사의 명칭으로 변한 채 굳어졌다.
정조차례(正朝茶禮)
설날 이른 아침 제물(祭物)을 사당(祀堂)에 진설(陳設)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정조차례(正朝茶禮)라 한다. 요즘은 별도의 사당에서 지내지 않고 각자의 집에서 차례를 지내기 때문에 많이 간소화되어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바쁜 일상생활과 다양한 직업군(職業群), 그리고 가족들이 멀리 떨어져서 사는 바람에 편리성에 따른 면도 많이 있다.
차례가 끝나면 집안 어른들께 인사를 드리는데, 새해의 첫날에 드리는 절이라 하여 세배(歲拜)라 부른다. 이때 아이들은 새 옷이나 신발 등을 설빔으로 준비하기도 한다. 하지만 입던 옷이라도 정성을 들여 손질하여 준비하면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세배를 할 때 답례로 내놓은 음식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은 세주(歲酒)라고 한다. 이때의 세찬과 세주는 새해를 맞이하는 제사상에 올리기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기에, 제사를 지내기 전이라 하더라도 세찬이나 세주라고 불렀다.
제사는 보통 장자(長子)가 모시고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고조부모까지의 4대조(四代祖)의 신주(神主)에게 차례대로 지낸다. 그 이상의 신주는 집에서 지내지 않고 각 성씨의 시제(時祭)에서 공동으로 지낸다.
(받은 글)입니다.
첫댓글 1월의 마지막 날 마무리 잘 하시고,
가족과 함께 행복한 설 명절 맞으소서~^^
출석
행복한 설명절 되세요.^^
설날 가족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시간되세요
무탈하게 올해를 보낼수 있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연휴 즐겁게 보내시고 행복한 설명절 되세요
벌써 봄 느낌이 듭니다.
결정이란 생각..
모든일이 결정 나기전에 괴로움이나 행복함이 많으나 결정 하고나면
마음이 편안하다
토종동백이 힘없이 피고 있네요.
설 행복한 명절들 보내세요
설날 연휴 첫날부터 장염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건강이 제일입니다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
에구~
설밑에 고생을 하시네요!
빠른 쾌유를 빕니다.
묵은 세배를 드리려 산소에 다녀왔어요..
산소옆 우거진 나무도 베고요~
까치설날에도 복많이 받으세요..^^
출석 하였습니다
모두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명절 연휴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라요😄
설날의 유래~~열공했네요^^
그제 늑장 부린 댓가를 톡톡히 치르느라 혼쭐 났네요...
늦은?? 출석합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