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던포엠포커스 19-3>
따뜻한 정신지리지의 조성과 감동의 파상(波狀)
엄창섭(김동명학회회장, 본지 주간)
1. 서정적 개아(個我)와 시적 구조(構造)
우리네 삶의 일상에서 서정적 개아의 소중함을 항변하는 필자에게 미국의 W. 스티븐스의 “시인은 번데기로 비단옷을 만든다.”라는 지론은 순수서정성의 본질을 다시금 일깨워준 소중한 교시이기에 비정한 후기산업사회에서 진정성을 지닌 한 사람 언어의 연금술사로 깊은 영혼의 상처로 고통 받는 대다수 독자들에게 감동을 회복시켜 세대고(世代苦)를 함께 감응하며 노래하는 정신작업은 그 의미가 지대하다. 앞서 칼릴 지브란이 그 자신의 『예언자』에서 “시는 마음속의 불꽃이고 수사학은 눈송이다. 불길과 눈이 어떻게 하나가 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였듯, 격랑의 세월에 부딪기며 뼈저리게 체득한 일상의 서정성과 미감을 알맞은 정신기후로 조성하는 감동의 파상은 아득한 정신풍경화로 치환(置換)될 일이다.
모름지기 ‘푸른 시와 맑은 영혼을 소유한 시인’의 동공은, 생명의 본체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까닭에, 오랜 날 그 자신이 추구한 시적 내용물과 기본 골격을 ’삶의 구조와 생명외경’이라는 관점에 접목시켜 시작에 주입시키며 ‘따뜻한 감성과 자기 특유의 음성, 색깔, 느낌으로 채색되어 일순의 격정을 평정시켜준 특정한 시인의 정신적 결과물이 우리의 관심사(關心事)임은 타당성을 지닌다. 그 나름으로 격변의 시간대를 만보(漫步)하면서 생명의 존엄성을 신앙처럼 떠받들고 세세한 바람의 선율을 영혼의 울림으로 형상화하여 깊은 상처 치유를 위하여 다이돌핀(Dynorphin)을 쏟아내는 그의 시적 행위는 명백한 경이로움에 빗대어진다.
모처럼 『모던포엠』통권 186호의 「모던포엠 포커스」에서 <배경이어도 배경이 아닌–거제 외도 선착장 등대> 외 9편의 시편으로 비중 있게 논의될 대상인물은 다소 현대적 기법에 선시적(禪詩的) 색채가 접합된 「시와세계」출신인 김진수 시인이다. 글머리에서 필히 짚고 넘어가야할 점이라면 「시와세계」창간에 직접 관여했고, 또 평자의 동향(同鄕)으로서 시집『설핏』을 묶어냈으며, ‘세계문학의 구름다리’를 자처한『모던포엠』지에 1년 남짓 연재시를 발표한 시의식이 날(刃) 푸른 시편에 관해 이렇게 평할 수 있는 사실을 결코 우연일 수 없다. 앞서 김부회 평론가는 문제의 시집인 『설핏』에 관해 그의 시편에서 ‘어머니는 삶의 총체임’을 전제한 뒤에 시집 전면에 흐르는 기조를 ‘서정(抒情)’으로 결론짓고 「무량(無量)한 변주(變奏)의 어느 지점에서 문득」으로 모성에 관한 정조(情調)를 지적한 바 있다.
일단 평정심을 유지하되 시형식의 자유로움을 모색하며 강한 허무감 속에서도 반어적 수사(rhetoric)를 즐겨 역설적 반증의 시적 기교로 변형시킨 그 자신이 이 땅의 독자로부터 관심사의 대상임은, 생명기표에 관한 감별력과 사상이 빈약한 시적 토양에 자신의 사유(思惟)를 경비(輕肥)하게 쏟아내지 아니하고 논리적으로 작동시키는 지적 소유자인 까닭이다. 이 점은 오웬의 지적처럼 “시인의 소임은 시대적 상황에 경고하는 것이라.”는 언어인식의 깨어 있음과 마침표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주의력이 그 자신의 시적 의미성을 일깨워주기에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미적 주권의 확립을 위해 시의 자주성, 독자성을 회복시키는 시의 틀 짜기와 그 자신의 열정은 한 시대의 비공인 된 입법자로서 현대와 전통의 틀을 쌓고 허물며 알맞은 정신기후조성에 구도적 향방을 설정한 뒤 낯설게 하기라는 수사적 기법에 의해 아우르기를 반복하는 그의 시적 작위(作爲)는 새삼 엄숙한 편이다.
어디까지나 자의적 은폐를 서정적 미의식으로 회복시켜 지식·정보화시대에 몸담은 대다수 독자에게 순수서정성을 충족시켜 한 순간 치솟던 마음의 분노를 평정시키는 시적 치유의 가능성은 지극히 합리적인 연유로, 전통적인 맥락에서 “이어폰을 끼고 마리아 칼라스를 듣는다/천상의 목소리 그 청아한,/소리를 잃은 오른쪽 귀에서 파도가 인다/잔잔히 입술을 밀어내다 순간 까닭 모를 격류가 윽박지르고 흰 이빨 드러내는,/남기고 간 발자국 그 이상은 범하지 않는 밤이면 두 눈은/팽팽해진 미간을 당겨도 안드로메다에서는 답신이 오지 않았다(배경이어도 배경이 아닌–거제 외도 선착장등대)”에서 이처럼 입증되듯이 적절한 소통의 도구로 수용하는 서정시를 감성이 빛나는 건강한 현대시와 결속시켜 다양한 실험과 해체 시의 공존양상을 일관되게 모색하여 포스트모더니즘에 대응하는 팽팽한 긴장감과 치열한 시 정신의 지속적 행위는 결코 외면할 수 없는 현재성일 따름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그 자신이 정신적 부산물로 형상화시켜 비교적 우리에게 낯익은 시편들은 한층 엄격하게 유의미한 것으로 구체적, 복합적이다. 그 점에 있어 시적 정조(情調)와 형태를 갖춰 강렬하게 시의미를 확증하려고 노력한 그의 지난한 체험적 시학은 철학적 미학연구가인 아서 단토가『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우리는 예술이라고 하는 핵심적인 개념에 속하는 것으로 여겨졌던 거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과 한 때 예술에게 본질적으로 보였던 속성들이 아예 없더라도 어떤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역설을 고려할 때, 김철교가 월간『詩文學』의 「새로운 시론-예술 융․복합을 활용한 시창작 사례」는 그 의미가 지대하고 선한 감동을 안겨주는 정직성은 보다 역동적이고 매혹적(魅惑的)이다. 한편 생생한 일탈의 정신은 예술적인 질감과 터치로 충만한 생명감에 잇닿아 “그냥 놓아 보내세요. 손을 흔들어//그는 넘겨야 할 페이지입니다. 여백으로 남을 약속일랑은 하지 마세요. 그때, 걸었던 손가락 오려 기념사진을 찍으세요. 그리고 페이지, 페이지 사이에 끼워 넣으세요.//한 발자국 비켜선 포옹은 아쉽고,(오늘)”에서처럼 그의 치밀한 직관에 의한 정감과 매개적 정신능력의 범주에 위치한 그물망의 확장은 더없이 유의미하다.
2. 바람꽃의 시혼(詩魂)과 시종자의 극대화
모름지기 김진수 시인의 시적 정감에 있어 ‘어머니의 강은 또 그렇게 흐르고 있듯이’ 인간의 영혼은 신으로부터 나와 신으로 회귀하는 반사상(反射像)은, 비교적 생티에르 굴리엘모가 “성령의 불길로/...줄임.../창조 때에 불어 넣으신/당신 형상과 모습을/우리 안에 새겨 주소서.”라고 기원처럼 보다 명백한 것은, 인간은 점진적으로 영적 상승을 통해 동물적 상태에서 이성적 상태로, 그리고 이성적 상태에서 영적인 상태로 이동이 가능한 존재이다. 한편 향수나 립스틱의 상품명도 그 자신의 시적 질료로 삼아 투시도법에 의해 이미지를 선명하게 형사(形似)시킨 시편으로 “그녀는/두 시간 째 거울 앞에 앉아 있다//화장대위, 구겨진 나비날개가 흩어져 있다/방바닥에도,/반쯤 열린 서랍 속에도,/휴지통에도 수북한/날아보지 못하고 요절한 붉은 날개들//2,3 미터 높이의 하늘, 각을 아우르는 벽 아닌 벽, 뛰어넘을 수 없는(입술에서 부화한 나비는 날지 못한다)”의 시적 발현도 실험적이나 감동을 회복하는 작업에 열중인 그 자신은 정신적으로 창조된 것이 물질보다 한결 생명적임을 입증시켜주기에 삶의 처소는 정신세계의 토양이 되고 인간층위와 자연(바람)에 관해 인식한 정신력의 내구성(耐久性)은 견고한 고독 앞에서 시인의 멋스러운 정신풍경화로 이 같이 묵언의 응시를 통한 충만한 생명감에 잇닿은 심상의 형상화와 일치는 예외 없이 주시할 점이다.
특히 그 자신의 내면의식에 점철된 순수서정과 정신풍경에는 아니마(anima)적인 평온함이 자리한 고매한 시격과 ‘불안함과 공포감’마저 안도감 있게 빚어낼 생명외경심(生命畏敬心)이 수용되어 있다. 까닭에 인용한 그의 시편에서 삶의 현상으로부터의 일탈과 인식의 전이를 시라는 매개물을 통해 정신적 자유를 모색하는 비장한 결의(決意) 또한 짐짓 파악되기에, 실리적 이해관계로 붓의 날을 세우는 비열하고 천박한 시인에 견주어 그의 선한 심성(心性)은 비록 낯설어도 모가 나지 않을뿐더러 대결구도의 양상과 거리가 먼 시어(詩語)의 정직성에 의한 정신기후를 따뜻하게 조성시켜주는 매혹과 특이성을 놀랍게도 지니고 있다.
바람이고 강물이어라 그 아래 굽이굽이 휘어드는 외줄로 뻗어 내린 산줄기, 고집불통 촛불이 탄다 우레도 꽁무니 빼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사자후, 하늘 한입 베어 문 꽉 다문 입술 비집고 ‘이게 나야’ 눈빛 그 너머 오늘을 아우르는 삼백 년 한결같아 끝을 세운 터럭마저 예사롭지 않은, 부릅뜬 눈에 옹골찬//저 눈빛, 그 뒷면에 깔린 화선지/죽순이 허공을 뚫고/어우러지는 해금과 대금이/우려내는 국화차한 잔/그윽한 난향 한 촉, 하늘을 웃게 하는//
-<초상화-윤두서의 자화상*>에서
그렇다. 무엇보다도 순수성이 결핍되고 무너져 내린 암울한 삶의 일상에서 ‘작은 신의 대언자’인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예기치 못한 즉물적 현상을 버티어내기가 비록 버거울지라도 푸른 식물성언어를 조탁하여 실상이 흐려 있는 영혼의 통로를 탐색하기 위한 본질적 고뇌는 감내할 일이다. 따라서 몰개성이라는 변명으로 21세기 상생(相生)의 원리를 거역하지 말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언어에 대한 식별력과 내면인식에 관한 끊임없는 자아의 성찰이 새삼 요청되기에, ‘헐떡거리던 러브호텔이 숨넘어가자 홀로된 달은 마포대교로 갔다 가지런히 놓인 신발’의 시적 상상력의 추이(推移)로 “어둠을 날것으로 뜯어 먹은 빨간 입술은 마술을 건다/마법에 걸린 붉은 혀는 피 맛에 중독되어/치명적이다/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고/야상곡을 연주하는 첼로의 현은 언제쯤 숨이 끊어질까요?//셔터 소리조차 매몰시키는 프레임 속 자존감은 살인을 기록하는 형식일 뿐이라(야경(夜景)은 마술이다)”를 체득한 그 자신의 이채로운 시적 탐색이 감동의 회복과 맞물려 있음은 지극히 타당성을 지닌다.
이처럼 자신의 지극선과 담백한 품격으로 일상성을 엄격히 통제하고 즉물적 현상을 적확하게 풀어 보인 ‘합리성, 그 모순에 대한 사유’에 민감한 화자(persona)의 시적 의미성은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셨나요?//그만큼의 열정적이고 호기로운 세상을 품었지요 오페라 아리아는 아니라도 현악사중주 한 자락 들으며 혹은 올드 팝 한 소절 흥얼거리며 자메이카 블루마운틴에 취하기도 하고, 가끔 별 쏟아지는 테라스에 앉아 와인 묻은 입술로 입술을 탐닉하며, 사시사철은 아니라도 꽃피는 한 철 장미 정도는 바라보며 살리라 하였던(껍데기들의 인생학 개론-튜브)”에서 ‘길고 짧음’이라는 대칭구도로 응축되는 까닭에, 우리가 접하는 현재의 즉물적 현상은 놀랍게도 일정한 패턴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향한 끊임없는 변전이다. 따라서 <껍데기들의 인생학 개론-튜브>에서 ‘사시사철은 아니라도 꽃피는 한 철 장미 정도는 바라보며 살리라하였던’ 소박한 기대감은 곧, 우주적 상상력을 확대하는 통로 이미지의 유추로 ‘가슴의 눈금읽기’라는 여과과정과 자아의 내적 성숙을 위한 치열한 성찰의 눈물겨운 반복이다. 특히 그만의 독자적인 인식의 심층에 내재되어 있는 대상의 시적 추이(推移)는 새삼 ‘사랑’이 종자(불)가 되어 생명에 대한 섬세한 정감으로 지적인 세계를 뛰어넘은 주정적 감정의 세계로 마침내 전이(轉移)될 양상이다.
보편적으로 어두운 삶의 질곡에서 가시적인 모든 물상은 끝내 소멸될 대상이지만, 그는 시적 수사로 활유법과 미세한 움직임도 놓치지 않는 주의집중과 치밀한 관찰은 정직한 시인의 당당한 대립구도일 것이다. 아울러 즉물적 현상의 심부를 해체시켜주는 기법과 도식으로 오늘의 우리에게 ‘들어냄보다는 감춤’의 담론을 표출하여 사라지는 것의 소중함마저 실증하기에, “집은 한뎃잠 자던 늙은 바람이 들어앉아 부석해졌고 때때로 무료하고 적적하다 깜빡, 깜빡 점멸한다 마중물 부어도 건건하여 천둥번개 기다리는//균열은 어디에나 생겨났다/벌어진 틈새로 빛과 신음이 샌다/배불린 균열이 균열을 물고 자라나도 허물고 다시 지을 수 없는 개발제한구역이라(오래된 집)”에서 다시금 확인되듯 시격이 지극히 담백한 김진수 시인의 시적 특이성은 존재의 의미로 그 정체성(identity)이 깨달음과 영혼의 정화(精華)로 결속된 감성의 시학으로 합리성을 지닌 진지한 시적 행보(行步)는 혼성모방(pastiche)을 생리적으로 거부하는 경향이 짙으나 그 자신의 몰개아(沒個我)는 종종 ‘낯설게 하기’라는 현대시의 특성을 충동적으로 열어놓고 있다.
이 같은 특정한 시인의 추상작업(object)을 고통과 저항을 냉소적 도전의 표징으로 형상화하지 아니하며 고뇌 속에서 여백의 간극을 좁혀 시적 상상력을 애매모호하게 처리하는 점은 그 자신이 ‘언어의 정치성(精緻性)과 분별력’으로 자연의 이법을 당당한 존재감으로 거역하지 않은 탓이다. 특히 정신세계의 의미망을 확장할 때 존재의 꽃인 눈부신 시적 층위는, ‘감동의 파상과 영혼의 정화, 즉 시인의 시적 서정과 내면풍경’이라는 새로운 관심의 연계성과 결속(結束)되기에 망각한 감동의 진동을 새삼 일깨워 사고(思考)의 가능성은 내적 생명감에서 발현된 감동의 파상인 전율(戰慄)같은 가슴 떨림에 해당한다. 한편 시적 구조나 양상을 자유롭게 활용한 그의 시편에서 서정적 미감의 카타르시스는 ‘단절, 절망, 패배를 희망, 승화로 전이시키는 확고한 자리매김’은 어디까지나 인간을 포함한 만유가 우주생성의 연맥(緣脈)에 기인됨일 것이다.
3. 차조동시(遮照同視)와 의미론적 순환
일단 차조동시(遮照同視)의 문자적 개념은 ‘막고 되비춤이 시간과 공간을 미루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남’을 뜻한다. 까닭에 의미론적 순환에 있어 자신을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창조적 작업인 시적 상상력과의 결부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시창작의 과정에서 소재의 선택이나 표현 기법, 그리고 새로운 실험적 시도와 개성적 특이성의 서술은 미적 진실성을 심화시켜주는 까닭에, 그 자신의 시적 동기에 있어 예술을 무한(無限)으로까지 추구하는 변증법의 모색은 의미 있는 행위이다. 이처럼 존재의 뿌리인 고향은, 주제의 참신성을 위해 도전하는 시인에게 끊임없이 일깨워짐으로써 되돌아가 머물러야 할 공간이다. 우리네 일상의 삶에서 탐라국인 제주도의 수국을 꽃 색깔이 변한다하여 종종 귀신 꽃으로 일컬어진다. 인용하는 시편인 <귀신 꽃*-수국>에서 흘려버린 시간의 아쉬움에 눈물짓기도 하지만, 화자인 그 자신은 귀향(Heimkunft)하는 자로서의 소임을 스키마(Schema)로 기억 흔적에 담아내고 있다.
남십자성, 안개처럼 깔린 죽음의 냄새 눈먼 스콜이 씻기고 갑니다. 부드러운 햇살 수의를 입히고 질긴 바람으로 일곱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때 이미 숨 끊어진//꽃입니다. 새는 달빛은 어찌 그리 밝은지, 개밥바라기별은 왜 저리 슬픈 눈빛으로 잊어버린 이름 부르는지//
-<귀신 꽃*-수국>에서
또 한편 탐라수국의 꽃말은 ‘진심과 변덕’이지만, 그 자신의 시편에 있어 언어질서에 의해 통일된 체계의 유지와 전통의 재확인 차원에서 우주의 신비를 캐어내는 현상이 가늠되기에 결코 긴장감은 늦출 수 없다. 이처럼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확실한 시간대에서 참담함을 충격적으로 안겨주는 항목을 새삼 열거하지는 않더라도 기억에 남겨두어야 할 것은 질서의 무너짐과 으깨어진 도덕성의 불감증이다. 이 땅의 누구보다도 의식이 맑게 깨어 있는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삶의 일상에서 손쉽게 접하는 즉물 현상도 유의미한 시적 질료로 형상화하며 그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흘려보낸 시간에 관해 끊임없는 응시는 비교적 비장감이 묻어 있는 편이다.
특히 “빨랫줄에 매달린 저 둘, 입을 다물었다//A가 선명한,/허구한 날 시린 하늘을 물고 있는 둘은 일란성 쌍둥이다 둘은 서로의 증인이며 연적(戀敵)이기에 눈빛을 감췄다 둘은 한 하늘을 놓고 나름의 사랑을 꿈꾸었다//하늘은 둘 다 사랑했다/빨갛고 파란 마음 한 자락씩 내 주자 죽자고 그 끝을 물고 놓지 않았다/자기만이 참사랑인양 저 지독한(주홍 글씨-빨래집게)”에서 확인되듯이 간혹 ‘날 시린 하늘은’ 빛의 통로이기에, 에드워드 호퍼(Eward Hopper)의 시선이 닿은 모든 대상과 공간은 무미건조한 공간에 익숙한 현대인들의 도시 위로 사각형의 햇빛이 쏟아지는 현상과도 일맥상통한다. ‘사각형 유리창 너머에 앉은 결코 자유롭게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관해 <주홍 글씨-빨래집게>와도 연상해서 짐짓 숙고할 사항이다. 근자에 대다수 시인들의 시적 관심 대상은 점차로 심층적 경향보다 언희(pun)를 거부감 없이 시의 표층으로 전이(轉移)시키는 기법의 활용으로 본능적 지략이 육화하는 낌새다. 바로 언어의 논리 사이에 불현듯 출현하는 시적 생산물의 표층은 개아적인 역동성을 지니기에 그 같은 이채로움은 그의 시편에서 한껏 그 타당성은 자명하다.
아울러 논의의 키워드는 아닐지라도 창조성과 모방은 연계성을 지니기에 인간의 내면심리에는 자연을 거부하거나 자연과 대립하는 위대한 창조의 영혼을 지닌 동시에 자연을 모방하고 순응하는 모방정신과 불가분의 관계성을 지닌다. 이 같은 대립구조는 지극히 합리적이고도 상호보완적인 공존의 양상으로 정체성을 지니기에, ‘좋은 합의를 위한 공론화’는 타자에 관한 분별력을 필요로 한다. 근자에 '블루오션(Blue Ocean)'이란 이론이 거론되지만 신사고란 것도 현실적으로 벤치마킹을 통해 얻어지는 경우가 주어지는 까닭에, 바다의 신인 포세이돈의 아들인 ‘프루크루스테스’와 관계성에 의한 존재의 현존성은 삶의 잠언으로 시사적(示唆的)이다. 무엇보다 “19금은패키지고/악어는 선택품목이라 약간의 비용을 지불하셔야 합니다/현금이 원칙이나 카드도 가능합니다/내일 아침 사공에게 지불할 뱃삯은/남기시는 신발 두 짝으로 대신하겠습니다(프루크루스테스의 침대)”에서 새삼 확인되듯이 시 쓰기의 작위는 언어유희(pun)가 아닌 위대한 창조적 영혼과 관계성을 지니기에, 항시 ‘허공 속의 꽃은 피고 짐이 없고, 산언덕에 오르면 뗏목이 필요 없기에 뱃사공에게 길을 묻는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 것과 갈등대립의 모순에서 합리적인 해법은 끊임없이 모색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그 자신이 고뇌한 끝에 이처럼 진통을 통해 얻어낸 정신적 결과물에서 발현된 견고한 성채(城砦)와 같은 역동성은 한층 충동적이나 우리의 관심사는 한 사람의 충직한 시인이 삶의 처소를 유의미한 서정의 미감으로 장식하기 위해 피멍든 손으로 영혼의 닻줄을 잡아당기는 힘겨운 행위를 통해 치열하게 인식한 시적 특이성이다. 못내 즉물적 현상을 외면하지 않는 그의 치밀하고 적확한 기호 캐내기 작업은 번개 같은 영감(靈感)을 충격적으로 시화(詩化)하는 예술행위로 간주된다. 까닭에 감사하게도 김진수 시인이 증오와 무관심이 내재된 삶의 현재성에서 낯익고 친숙한 일상어로 이미지를 형상화한 담백한 시격과 신선함, 그리고 천상(天上)의 선율을 감미롭게 탄주(彈奏)하되 아직도 철학과 사상이 결핍된 우리시문학의 토양에 차별화된 시의 지평을 열어 알맞은 정신기후를 조성한 힘겨운 작업에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차지에 『모던포엠』통권186호의「모던포엠 포커스」에서 소외된 인간관계성의 회복을 위한 경계허물기로 속도보다 좌표설정에 전력하되 시적 상상력을 보다 확장해서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변형시키는 창조적 영혼으로서 시대적 소임의 수행도 절박하거니와 그에게 거는 평자의 기대감 또한 지대하다. 모쪼록 밝은 생명의 화소(話素)로서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를 위해 견고한 고독이 자리한 삶의 공간에서 예지의 붓끝을 곧추 세우되, 존재감을 지닌 정신작업의 종사자로서 그 역할을 엄숙히 수행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