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낳은 3대 민족반역자:
김일성, 김대중, 그리고 김영삼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민족반역자들이 많았다.
멀리 조선시대나 구한말이 아니더라도
20세기 중반 이후에도
그리고 여전히 한반도에 직간접영향을 주는
인싸('인사이더'라는 뜻으로,
각종 행사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사람들과 잘 어울려 지내는
사람을 이르는 말)들이 있다.
정치학자로서 프랑스의 정치인이었던
클레망소의 일화처럼
20세기 최악의 민족반역자는 누구일까가
항상 가슴에 남는다.
그리고 일반인들과 달리 3김씨,
즉 김일성, 김대중, 그리고 김영삼을 들고 싶다.
많은 사람들이 유일한 노벨상 수상자(김대중)과
민주정치인으로 알려진 김영삼을 거론하면
의아해 할 것이다.
그러나 논리는 악마의 친구 혹은
반역자에 이용되었기에 그렇다.
김일성(본명 김성주)이
민족의 반역자라는 것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김일성은 6.25를 통해
3백만 민족희생을 낳았고,
북한을 미개하고 반인권적
교조국가(교조주의는
특정 사상과 종교를
맹신하는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만들었으며,
1989~91 탈냉전하에서
개혁, 개방을 거부하며
핵개발로 소위 고난의 행군으로
300~350만의 동족을 아사시킨
희대의 악마였다.
더욱 나쁜 것은
그가 만든 신정국가로 3대세습에 이르며
기본적 인권과 자유가 배제된 수용소국가로
북한인민들은 21세기 호빗족(Hobbit은
존 로널드 로웰 톨킨의 소설 시리즈
가운데땅에 등장하는 종족이다)으로 전락했다.
흔히 전쟁과 학살을 자행한
20세기 대표적 악마 히틀러와 스탈린도
어느 정도 변명이 존재한다.
예컨대 히틀러의 경우
경제, 외교의 성공과
자민족우월주의를 들 수 있고,
스탈린의 경우
대독전쟁의 승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김일성의 경우
현지 소련 사령관에 발탁되어
동족상잔을 획책하고
정전후에는 우상화를 통해
세계최빈국이자
세계최악의 인권말살자인 것이다.
동구권붕괴 당시
김일성과 가까웠던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코를
유럽의 자존심 차원에서
제거했다는 여론이 있었다.
민족반역자 김일성이
천수를 누리고
그의 자손들이 계속 집권하는 것은
한민족의 수치이고 저주이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김일성과 북한을 지원하고 비호한
김대중 역시도 민족반역자인 것이다.
김대중(DJ)의 반역의 시작은
1970년초 박정희정부와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김대중 이전 전통야당이었던
해공 신익희, 유진산, 이철승 등은
자유민주주의와
애국 나아가 조국근대화에
전향적이었다.
반면 사악한 김대중은
표면적으로 장기집권을 반대하는
민주화를 내세우며
실지로는 김일성과 결탁하여
거액의 비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조국근대화에 전념해온
박정희대통령이 반대만 해온
김대중을 비롯한 야권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한 연설을
지금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초우량기업 삼성의 창업주였던
이병철 회장이
언론과 지식인들에 대한
섭섭함과 맥락을 같이 했다.
병철 회장은 단순히 자신과 가족의
복지를 위해
고된 경영자의 길과
삼성문화재단을 만들지 않았으나
한국사회는 일본처럼 존중 대신
부러워하며 질투하기만 했던 것이다.
김대중의 반역행위는
박정희대통령의 사후에 노골화된다.
10.26 이후 과도정부하
권력공백을 이용해
북한을 이용하여 집권을 노렸던 것이다.
광주사태는 김대중의 집권을 위한
시나리오와
이에 대한 군인들의 반격이었다.
민주화 이후에는
지역(호남)의 맹주로서
축재와 집권을 시도하고
결국 집권을 하게된다.
개인과 정권의 본질은
상황에 따른 선택으로 확인된다.
김대중의 반역은
IMF를 통한 비상시국을 활용하여
권력을 악용한다.
예컨대 햇볕정책으로
천문학적 대북지원으로
아사와 핵개발에 어려움을 겪던
북한을 존속케했다.
뿐만아니라
한일어업협정으로
어민들을 고사시켰다.
이외에도 정보기관전용,
언론통제,
보수인사들에 대한 사법처리 등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자행했다.
김대중의 반역은
자신 및 정권의 비리와 비위를 감추고
퇴임후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정권재창출을 위해
온갖 만행을 저지른다.
친북행위를 노벨상을 받기 위해
활용했으며,
정권재창출을 위해
언론을 동원한 여론조작
심지어 부정선거를 위한
선거제도를 전자식으로 바꾸었다.
치밀한 부정선거는 결국
정권재창출로 이어졌으나
사후 아들들의 유산문제로
엄청난 거액의 비자금(13억불)이
미국에서 발견된다.
세 번째 민족반역자는
김대중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들고 나왔던
김영삼(YS)이다.
김영삼은 부자집 아들로
평생 뒷문(부정)입학과
청강생이었으나
일찌기 정치인이 된다.
그가 민족의 대동맥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여
김대중과 함께 기자들을 대동하여
건설현장에 드러눕는 장면은
지성, 역사,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결여된 것을 상징화한다.
김영삼은 유진상, 이철승의
국가주의의 야당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은 박정희정부의 조국근대화를
현실정치로 인정하여
장단점을 인정하자는 주장에 반대했다.
김영삼은 김대중에 끌려다니며
종국에는 반유신으로
김동길, 정주영 등
현실정치파에 등을 돌렸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집권을 위해
보수정당연합에 참여했다.
하지만 집권후 3,000억 비자금이 불거지자
야당(김대중)과 언론노조에 야합하여
광주사태를 변질시켰다.
김영삼의 이러한 선택은
IMF와 함께
종북주의자 김대중에의
정권교체로 이어진 것이다.
김영삼에 대한 다른 관점이 있을 수 있으나
분명한 점은
김영삼은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인인 동시에
용공주의자이자 민족반역자인
김대중을 최후의 파트너로 선택하여
남북대치,
자유민주주의 대원칙의 실종,
국가정체성 위기 등
자유민주국가로서
영혼, 정신, 분위기를 파괴한 인물인 것이다.
김영삼이 저지른
대표적 국가(경쟁력) 파괴행위는
단연 5.18이다.
자유국가이자 남북대치상황에서
가장 위험한 게릴라사건이자
최우선적 반역인 광주폭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변질시켜
대규모 혈세의 낭비일 뿐아니라
유사한 사건으로 확대하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김영삼의 선택(반역)은
결국 김대중에의 집권과
이후의 반역정책
나아가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등
종북주사파 정권과 아바타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김영삼의 반역행위가 치명적인 것은
보수와 지역을 넘어
김대중의 반역행위를 인정한 것에 있다.
악마의 친구는 결국 악마인 것이다.
3대 민족반역자를 새삼 거론하는 것은
윤석열정부의 국가정상화가
얼마나 힘들고
국민들의 각성과 시간이 요하는
대장정임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자유는 특정한 경우 단순히 댓가 뿐 아니라
역사, 교양, 애국심이 요구되는 거대한
도전인 것이다.
2023.7.17.
하봉규 교수(부경대학교)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