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혁을 이겼다!’
여가와 행복을 연구하는 박세혁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스포츠과학과 교수
“'박세혁을 이겨라!' 이벤트를 소개합니다. 제가 은퇴하기 전까지 저에게 단식을 도전하여 이기면 금 한 돈을 수상하는 이벤트 입니다. 순금 한 돈짜리 총 5개를 준비했습니다. 저를 이기는 선수는 명예의 전당에 오르게 되며 차후 명예대결을 다시 펼치게 됩니다. 단 도전할 때는 도전료로 1000원을 내야 합니다. 실력이 낮은 선수는 저와 협상하여 핸디를 받고 도전할 수 있습니다. 도전하는 당신에게 행운과 건강이 함께하길 빕니다. 이벤트가 있는 삶은 행복한 삶!!!!"
위의 글은 서울과학기술대학교(이하 과기대)에 재직중인 스포츠과학과 박세혁 교수가 5년 전에 페이스북에 홍보한 이벤트 내용이다.이형택 감독이 진행하는 '이형택을 이겨라'를 페러디한 이벤트라고 한다.
박세혁 교수가 이러한 이벤트를 시작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였을까? 7월 4일, 안양시에 있는 CS테니스 코트에서 박교수를 만났다. 마침 그 날도 동기 동창인 CS 스포츠 윤이진 사장이 단식을 도전하는 날이라서 더욱 그 내용이 궁금했다.
테니스 대회에 출전할 날이 잡히면 몇 일 전부터 설레어 어렸을 때 소풍 가기 전부터 느꼈던 기대와 흥분을 경험하게 된다고 한다. 결승까지 갈 준비로 티셔츠를 10벌 준비해서 대회에 가면 겨우 3-4벌 밖에 갈아입지 못하고 돌아 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래도 테니스만 생각하면 늘 행복하다는 박세혁 교수. 은퇴 전까지 금 한 돈짜리를 총 5개 준비하여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2개가 남아 단식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다. 전국대회 우승 경력자를 제외하고 누구나 도전이 가능하다고 한다.
박교수는 여가DNA를 갖고 태어나 지금까지 여가를 즐기며 행복하게 살고 있단다. 여가를 아주 부담 없이 즐기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진지하게 몰입하여 성취감과 자신감을 만끽하는데, 특히 테니스를 좋아한다는 박교수님을 인터뷰 해 본다.
단식 도전 이벤트를 준비한 이유가 있나요?
이벤트가 있는 삶! 생각만 해도 기분 좋아지지 않나요? 승부의 쫄깃쫄깃한 맛을 즐기고 싶어하는 테니스인들에게 기쁨도 주고 저의 삶도 역동적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벤트가 걸려 있는 게임을 할 때는 사람들이 도전자를 주로 응원하는데, 저는 그런 분위기를 즐깁니다. 또한, 제가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중앙동아리 테니스 지도교수를 맡고 있는데, 학생 중 단식을 도전하여 저를 이기면 동아리에 치킨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의 실력 수준에 따라 핸디를 주고 게임을 하는데, 4학년이 되면 거의 핸디 없이 도전하는 수준에 이르게 됩니다.
금값이 요즘 비싼데요
5년 전에 금을 살 때는 금값 한 돈에 29만원에 '박세혁을 이겼다'를 새겨 만드는데 총 35만원 정도가 들었습니다. 그런데 우크라이나 전쟁 후 금값이 고공행진이라 조금 더 비싸졌지만 부담은 없습니다(ㅎㅎ).
금은 누가 타갔나요?
과기대 교수, 과기대 동문, 그리고 길음동의 동부테니스코트 동호인이 탔습니다. 신일훈 과기대 교수는 여러 번 도전한 끝에 이겼는데, 신일훈 교수는 이긴 기념으로 과기대 교수테니스 회원들께 점심을 샀으며 동네 이웃들에게 한 턱을 냈다고 합니다. 단식을 20회 이상 도전하고 있는 과기대의 교수도 있는데, 그의 패기와 젊음으로 1-2년 안에 저를 이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ㅎㅎ).
테니스는 언제 시작했고 왜 좋은가요?
시작한 지는 오래 되었으나 본격적으로 운동하게 된 것은 26년 전 과기대에 와서 부터입니다. 라켓을 드는 순간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테니스에 몰입하게 됩니다. 테니스공을 감아칠 때 나는 ‘탱’ 소리가 좋고, 헉헉대며 어려운 볼을 잡아 넘길 때 좋고, 땀을 흘리고 시원한 물을 마실 때 좋고, 게임 끝나고 깔깔대고 웃으며 복기할 때 좋고… 이 모든 것이 다 좋습니다. 제 나이 60이 넘어 아직 흰 머리카락 3-5개 정도밖에 없는 이유도 테니스 덕분인 것 같습니다(ㅎㅎ).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건강하게 테니스 경기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테니스 쪽으로 좋은 추억이 있나요?
2008 University of Florida Intramural Sports 남자복식테니스대회 우승을 했습니다. 매 년 전국교수테니스대회에 출전하고 있는데, 2017년 장년부 3위가 최고의 성적입니다. 내년에는 베테랑부에 에이스 파트너와 출전하여 입상하려는 야심찬 계획도 짜고 있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테니스수업은 영어로 이루어지는데, ‘Park’s Cup Tennis Championship’이라는 이벤트도 수업 중에 진행하여 학생들에게 추억을 남겨주는 노력하고 있습니다.
테니스 경기하는데 특기라면?
저는 사람들이 오토바이라고 할 정도로 빠릅니다. 특히 단식에서는 숏트와 로브가 제 주특기 입니다. 최근에는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여 보니 저보다 빠르고 잘 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건강하고 즐겁게 오래 치는 사람이 진정한 챔피언임을 다시 한번 절감하였습니다.
가족들도 테니스를 하나요?
아니요! 아내와는 매일 밤 함께 산책을 하는데, 가끔 딸이 합류하기도 합니다. 우리 가족은 따로 또 같이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면서 여가를 즐깁니다. 우리나라 부부의 평균 대화시간은 하루 30분이하라고 하는데, 우리 부부는 하루 평균 1시간 30분 이상 입니다.
어떤 것을 전공하고 지도하고 계시나요?
테니스, 레크리에이션, 스포츠마케팅 수업 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주 전공은 여가 및 스포츠마케팅이며, 학문적 호기심이 이끄는 데로 의미 있는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가와 레크리에이션 영역에서도 여가경영/스포츠경영을 공부하였기 때문에 여가행동, 스포츠소비자행동, 여가사회심리 관련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SSCI에 등재되어 있는 Journal of Leisure Research, Journal of Sport Management, Leisure Studies 등의 저명 국제학술지에 2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하였고, 국내학회지에도 다수의 논문을 게재하였습니다. 연구논문뿐 아니라 현장에서 적용되는 여가프로그램을 아동, 청소년, 고령자, 교사 등을 위해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습니다. 레크리에이션 현장에서 활용되는 게임과 노래는 ‘레크리에이션대백과’, ‘119레크리에이션’ 등의 책에 담아 보급하였습니다. ‘가위바위보 싱얼롱’이란 책은 대학교 2학년 때 당시 가장 큰 음악출판사로 알려진 세광출판사에 겁 없이 혼자 찾아가 계약하고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대학 때부터 레크리에이션지도자 강습회도 열면서 활동하였습니다.
여가와 스포츠마케팅으로 전공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는 어려서부터 스포츠를 너무 좋아했습니다. 체육선생님이 되려고 체육학과에 진학하였는데, 대학의 유학 분위기와 저의 순진한 도전정신이 어우러져 유학을 꿈꾸며 준비하였습니다. 제가 1987년에 유학 갈 당시에는 국내에는 당시 스포츠마케팅이라는 과목이나 학과가 존재하지 않았고, 여가 및 레크리에이션도 학문적으로 걸음마 단계였습니다. 그냥 재미있어서 공부하다가 보니 전공으로 굳어지게 된 것입니다. 제 몸에는 여가스포츠의 피가 흘러서 그런지 스포츠와 여가를 연구하거나 교육할 때면 재미있고 행복함을 느낍니다. 저에게 최고 잘 맞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는 것입니다.
박교수님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음반을 2개나 내셨다고 하던데요?
46곡의 노래를 1,2집으로 나누어 15년 전에 출반하였습니다. 제가 작사작곡한 40곡의 동요가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되어 있어 매달 저작권료를 조금씩 받고 있습니다. 제가 만든 동요가 노래방에서 불려지고 있음에 뿌듯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음악도 복수 전공하신 건가요?
저는 음악 악보를 잘 볼 줄도 모르고 음악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창의력과 영감으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예를 들면, 보건사회복지부에서 초등과 중고 학생들에게 맞는 금연 노래를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먼저 대상에 맞는 교육적인 가사를 생각하는 동시에 리듬을 흥얼거리면서 녹음을 합니다. 몇 번을 거쳐 녹음을 한 다음 완성하면 음악전문가에게 악보로 옮겨 달라고 부탁합니다. 유튜브에 '박세혁 레크리에이션’ 혹은 ‘박세혁 동요’라고 쳐 보면 다양한 곡들이 나와 있습니다.
다양한 재능은 어디에서 얻게 된 것일까요?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교회라는 공동체에서의 다양한 경험 그리고 부모님의 기도와 사랑이 저의 재능을 더 끌어올려준 원동력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매사에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네요
네.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늘 마음이 풍요로웠습니다. 가난한 목사님 가정에서 태어나, 특히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제가 장학금을 받고 돈을 벌며 힘들게 공부하면서도 재미있는 추억을 만들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안정되어 삶의 매 순간 순간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집의 가훈이 믿음, 소망, 사랑, 감사 거든요.
은퇴가 4년 정도 남았는데 그 후에는 어떤 계획은?
앞으로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 여가 및 레크리에이션 관련 교재와 논문을 많이 썼는데 앞으로는 수필을 좀 쓰고 싶습니다. 은퇴를 하면 스튜디오를 얻어 그 곳을 아지트로 다양한 일들을 꾸밀 생각에 벌써 마음이 설레입니다. 그 아지트에서 수필뿐 아니라 레크리에이션 지도자 교육, 노인대학 및 유아움직임 교육 프로그램도 계속 개발할 생각입니다. 은퇴 후에는 북미,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등에 교환교수도 할 계획도 꿈꾸고 있습니다. 외국인과 교포들이 제가 만든 노래로 레크리에이션을 하며 재미있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프로그램 할 수 있는 길도 찾아보려고 합니다.
박 교수와 도전자 CS 스포츠 윤이진 사장이 단식을 하고 있는 중에 비가 내렸다. 두 사람은 비와 상관없이 푹 젖어 가면서도 스트록을 하고 로빙하고 달려가 숏트를 하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금을 향해 뛰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호기심과 열정으로 새로운 과제에 도전하는 젊은이들 같았다. 어쩌면 박교수가 작사 작곡한 ‘팝콘세상’처럼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단단한 껍질들이 툭툭 터지는 생동감이 오버랩 되었다.
글 사진 송선순 사진일부 박교수님으로부터 자료 얻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