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물러날 곳이 없는 삼성은 1회 초부터 두산 선발 박명환을 밀어붙였다. 김종훈, 마해영, 마르티네스의 안타로 맞은 2사 만루에서 박명환의 폭투로 1점을 먼저 뽑았다. 이어 김한수가 내야 안타를 쳐 점수 차는 2-0으로 벌어졌다. 두산은 유격수 김호가 가까스로 막아내 2루 주자 마르티네스를 3루에 묶었다는 점이 불행 중 다행이었다. 삼성은 2회 초에도 선두 타자 진갑용이 볼넷을 골라 나가 추가 득점 기회를 잡았다. 1사 후 박한이는 우전 안타를 터뜨렸고 1루 주자 진갑용은 2루를 돌아 3루로 내달렸다. 하지만 두산 우익수는 정확성과 강한 어깨를 겸비한 심재학. 총알 같은 송구가 진갑용을 앞질러 3루수 김동주의 글러브에 들어갔다. 1사 1, 2루가 될 상황이 2사 1루가 된 것. 이어 2번 타자 김종훈이 우전 안타를 쳤기에 삼성 벤치의 아쉬움은 더 컸다. 3번 타자 이승엽도 볼넷을 골라 출루해서 2사 만루가 됐지만 추가 점수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삼성이 한 이닝에 안타 2개, 볼넷 2개를 집중하고서도 추가 득점하지 못하자 경기 흐름은 두산으로 넘어갔다. 여기에 삼성 외야의 어이없는 실책 하나가 흐름을 더 빠르게 두산으로 흐르게 했다. 두산은 3회 말 1사 후 1루에서 장원진이 우전 안타를 쳤다. 1루 주자 정수근이 3루까지 가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타구였다. 그런데 삼성 우익수 박한이가 서두르다가 타구를 뒤로 빠뜨리는 바람에 정수근은 3루를 돌아 여유롭게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이어 우즈가 고의4구로 걸어 나가 계속된 1사 1, 2루에서 삼성 선발 노장진은 심재학과 김동주를 잇달아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박한이의 실책이 없었으면 실점하지 않았을 상황이었다.
1-2로 따라붙은 두산은 5회 말 무사 1루에서 ‘흑곰’ 우즈가 바뀐 투수 김진웅의 3구째를 끌어당겨 잠실구장 최상단을 때리는 대형 홈런을 뿜어 3-2로 경기를 뒤집었다. 추정 비거리는 145m. 맞는 순간 누구나 홈런을 직감한 ‘웅담포’였다. 역전당한 삼성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았다. 7회 초 진갑용 대신 대타로 나온 강동우가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치고 나가고 바에르가가 몸 맞은 공을 얻어 무사 1, 2루의 기회를 잡았다. 박한이의 보내기 번트로 1사 2, 3루가 됐고 김종훈의 2타점 좌전 안타에 이어 이승엽이 바뀐 투수 이혜천으로부터 1타점 우전 적시타를 뿜어내 3득점했다.
3-5로 뒤진 두산은 7회 말 심재학의 볼넷과 김동주의 2루타로 무사 2, 3루의 동점 기회를 잡았다. 김응룡 감독은 김진웅을 내리고 임창용을 올렸다. 전날 5차전에서 115개를 던진 임창용을 올린 것은 모험이었다. 임창용은 안경현을 내야 플라이로 잡아내며 삼성 벤치의 기대에 부응하는 듯 보였지만 홍성흔의 내야 땅볼로 1점을 내준 데 이어 폭투로 동점을 허용했다. 5-5 동점이 되자 김인식 감독은 진필중을 마운드에 올리는 승부수를 던졌다. 다른 투수를 올렸다가 위기 상황에 진필중을 투입하는 것보다 아예 위기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승부를 가른 8회 말. 두산은 선두 타자 정수근이 안타로 나가며 공격의 물꼬를 텄다. 이어 타석에는 장원진. 1점이 필요한 경기 종반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희생 번트가 나올 상황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은 이전 타석까지 3안타를 몰아친 장원진을 믿고 강공으로 밀어붙였다. 장원진은 믿음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깨끗한 안타를 쳐냈다. 무사 1, 2루. 타석에는 우즈. 5회 말처럼 웅담포 한 방이면 한국시리즈 우승이 결정되는 상황. 그러나 3루 땅볼. 두산으로서는 빗맞은 게 다행이었다. 병살을 피하고 우즈만 1루에서 아웃됐다. 1사 2, 3루. 타석에는 옆구리 투수에 강한 왼손 타자 심재학. 만루 작전을 쓸 수 있었지만 다음 타자가 김동주라는 게 문제였다. 이 시리즈 들어 맹타를 휘두르는 김동주(이전 타석까지 타율 0.400)보다 부진한 심재학(타율 0.238)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했다. 삼성 벤치의 희망대로 심재학은 좌익수 김종훈을 향해 날아가는 짧은 플라이를 쳤다. 보통이라면 3루 주자가 태그업하기는 어려운 타구였다. 하지만 두산 3루 주자는 ‘날쌘돌이’ 정수근. 김종훈이 뜬공을 잡는 순간 정수근은 3루를 박차고 나왔다. 김종훈의 홈 송구가 포수 김동수에게 도달했을 때는 이미 정수근의 왼손이 홈플레이트를 터치한 다음이었다.
아직 삼성은 마지막 한 번의 공격을 남겨 두고 있지만 1점을 따라가기에는 힘이 부쳤다. 진필중은 두산 팬들이 모두 일어나 자신의 이름을 연호하는 가운데 선두 타자인 대타 김승권을 유격수 땅볼로, 1번 타자 박한이를 3루 땅볼로 처리했다. 남은 아웃카운트는 단 하나. 삼성은 김종훈이 3루수 김동주의 악송구로 1루에 살아나가며 마지막 불씨를 이어갔다. 이어 이승엽의 안타로 1, 2루. 안타 하나면 다시 동점을 만들 기회를 잡았지만 삼성의 힘은 거기까지였다. 4번 타자 마해영이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나자 포수 홍성흔은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마운드로 달려갔다. 진필중을 얼싸 안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고 김인식 감독을 비롯한 두산 선수들이 벤치에서 쏟아져 나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