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계를 보면, 제각기 보호기능을 가지고 있거나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호랑이나 사자를 보면, 강한 턱과 강한 앞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곰도 강한 앞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어는 강한 턱과 강한 꼬리를 지니고 있으며, 말들은 강한 뒷 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사람인 우리는 매우 연약합니다. 삼손같이 강한 팔로 사자를 물리친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럼 우리에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바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각이라는 강한 힘을 주셨습니다. 그랬기에, 우리는 생각을 통해 우리를 보호할 수 있는 기구등을 만들어서 보호하거나 우리의 편리를 위해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통해서, 우리에게 은혜와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하나님께 찬양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매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며,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성도인 우리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에 굳게 서 있어야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넋두리도 했고, 탄식도 했고, 울기도 했습니다. 본문에서도 다윗은 이러한 기도를 하며, 하나님께 절규하기를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말을 무려 네 번이나 거듭했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환난 가운데 주님께 부르짖는 내용입니다. 다윗은 일평생동안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일으키고 구원해주실 것을 굳게 믿으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믿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윗이 기록한 시를 읽을 때마다, 우리의 나약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버틀란드 러셀”은 “사람이 외부 공간은 점령하지만 자기 마음 하나 가누지 못해 고민하는 약한 존재다”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삶은 무엇을 가졌느냐보다 누구와 함께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여러분, 절망 속에 있는 본문 속의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삶의 모든 문제들이 하나님 안에서 명쾌하게 해결되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 - 2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나의 영혼이 번민하고 종일토록 마음에 근심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오며 내 원수가 나를 치며 자랑하기를 어느 때까지 하리이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킵니다.
본문 1절을 보시면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라고 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가진 근심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침묵하고 계시는 겁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으로 나가도,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하는 슬픔으로 인해 고민을 했습니다. 여러분, 성도인 우리역시, 우리가 정말 번민하고 근심해야 할 것이 이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희미해지고 느슨해지지 않았는지 이것을 근심하고 염려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도인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믿음은, 어떤 형편 속에 있든지,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또,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흔들림이 없어야 합니다. 오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뜻에 따라야 합니다. 다윗은 지금 하나님께서 펼치시는 구원의 손길이 절실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손길이 오지 않음으로 인해, 절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본문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잊으신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러기에, 본문 2절에서도 “어느 때까지”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구약에서 두 번이상 반복된다는 것은, 매우 강조하는 겁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본문에서 두 번이나 언급했다는 것은, 다윗은 지금 매우 절박한 상황에 놓였으나,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신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윗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고구마 10,000개는 먹은 듯 하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심정을 본시에서 다윗은, “어느 때까지이니이까”라는 말을 네 번이나 거듭하였던 겁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라며, 절규한 것입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역시, 본문의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고 자신의 고통을 방관하시는 것처럼 느끼거나 경험했을 때가 있을 겁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왜? 침묵하셨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셨습니까? 혹시, 눈 앞의 현상 때문에 깊게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나요? 하나님께서 종종 우리를 고통 가운데 방치하시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다른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성도된 우리의 믿음을 더욱 강건하게 단련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에게도 다윗에게와 같이 신앙의 연단을 위하여 고난을 허락하시고 침묵하시는 때가 있습니다. 정말 고통스러워 “하나님 언제까지입니까?”하고 부르짖을 때까지,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다윗을 잊은 듯이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평생을 믿어왔든, 평소 신앙이 아무리 좋더라도, 신앙적으로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이 계시는지? 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진실로 부르셨는지에 대한 신앙적 회의에 빠져,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불신앙의 길로 나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 때, 어떻게 헸습니까? 하나님께 언제까지 침묵하실 것인지에 대해, 호소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종종 우리를 향해서 침묵하심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추시는 것에, 의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시험의 기간을 적절하게 정하십니다. 그런즉, 하나님의 구원의 손이 멀리 계시지 않음을 알고, 더욱 열심으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이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시험의 기간을 잘 통과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으로 가득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3 - 4절을 보시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 두렵건대 내가 사망의 잠을 잘까 하오며, 두렵건대 나의 원수가 이르기를 내가 그를 이겼다 할까 하오며 내가 흔들릴 때에 나의 대적들이 기뻐할까 하나이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사망의 잠을 자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본문 3절에서 다윗은,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나를 생각하사 응답하시고 나의 눈을 밝히소서”라고 호소합니다. 이를 보면, 다윗이 겪는 고통은 분명, 그의 한계를 뛰어넘은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대한 다윗의 신앙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다윗은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 앞에 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자신의 한계를 기억하시어, 이제는 고통의 자리에서 자신을 구원하심으로, 사망의 잠을 자는 상황에 이르지 않게 하여주실 것을 호소한 것입니다. 다윗이 이토록 간구한 “사망의 잠”이란, “육체적 사망”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통으로 인한 믿음 상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믿음 상실”은 하나님을 떠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사실, 성도들 중에도 신앙 년수와 무관하게 고통과 어려움에 빠지면, 입으로만 하나님을 찾을 뿐,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 결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다윗이 본문에서 말하는 “사망의 잠”입니다. 이 속에서 지내다 보면, 결국,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된 우리는 이러한 사망의 잠을 자지 않도록 늘 깨어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영국의 의사 출신의 복음주의 설교자이며, 존 스토트와 함께 우리나라 교회에 많은 영향력을 주었던, “마틴 로이드 존스”는 그의 저서 “영적 침체”에서, “우리가 장기간 영적인 침체를 겪게 되는 원인 중 하나는 극심한 육체적 고통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다윗이 사망의 잠을 운운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관심과 응답만이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다면, 모든 것이 끝날 것임을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래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래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은 결국,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지 않거나 하나님에 대해 철학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 어려움이 닥쳤을 때, 해결되지 않거나 그 어려움에 지속된다면 대번,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않는다며 불평하고 원망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대해, 만약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면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느냐며 하나님을 원망하고 사망의 잠을 자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는 본문의 기록자인 다윗처럼,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도인 우리도 다윗처럼, 믿음의 눈을 떠야 합니다. 사망의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다윗이 본문에서 가장 두려워 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다윗의 대적들이 “내가 다윗을 이겼다”며, 환호하는 것과 다윗이 대적들에게 패배함으로, 다윗의 믿음이 흔들리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습니다. 결국, 다윗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단코, 하나님을 포기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을 도우실 것을 굳게 믿고, 의지하며, 탄원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도 우리의 생각대로,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사망의 잠을 자서는 안 됩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더욱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사모하며, 우리의 구원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바라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고, 영광돌리며, 믿음 안에서 깨어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5 - 6절을 보시면,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이는 주께서 내게 은덕을 베푸심이로다”라고 합니다.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5절에서, 다윗은 자신이 정말 의지하고 기뻐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나는 오직 주의 사랑을 의지하였사오니 나의 마음은 주의 구원을 기뻐하리이다”라고 합니다. 여러분, 성도된 우리가 정말 의지하고 기뻐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많은 부족함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변함없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의 환경이나 경험 그리고, 인맥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구원의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8: 35에서,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라고 했습니다. 이 또한 사도바울의 믿음 역시, 다윗의 믿음과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이러한 믿음의 확신을 우리도 소유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려움과 환난가운데 놓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신다거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원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 때, 우리는 느끼기를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고, 고통만 가중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이며,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에 대해 침묵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확신하는 가운데, 다윗과 같이, 생활 속에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심으로,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확신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