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과 히아신스
며칠 전 아내와 장을 볼 때였다. 아내가 양파같은 구근에 손가락만큼 잎이 나오고 얼룩덜룩하니 송과처럼 꽃봉오리가 달린 히아신스를 보더니, 마더 테레사의 책을 읽다가 ‘가난한 자에게 빵과 히아신스를 주라’는 얘기를 읽었는데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빵과 히아신스’라…, 의미가 아름답게 느껴졌다. 그래 이천오백 원인가 삼천 원을 주고 히아신스 한 주를 샀다.
그리고 식탁에 올려놓았는데, 며칠 뒤 자주색 꽃이 피기 시작했다. 진한 향기가 났다. 밥을 먹을 때마다 꽃향기를 맡고 자세히 꽃도 보니 마음이 저절로 행복해졌다. 사치로 이런 사치가 없다. 도대체 얼마나 아름다운 꽃이기에 테레사 수녀님도 좋아하셨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인터넷을 찾아보았다.
아프리카와 지중해 원산인데, 자주색 히아신스의 꽃말이 비애다. 마침 거기 얽힌 그리스 신화가 있었다.
'태양의 신이자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휘아킨토스라는 청년을 유별나게 사랑했다. 고기를 잡으러 갈 때도 사냥을 나갈 때도 심지어 소풍을 갈 때도 늘 아폴론은 휘아킨토스와 함께 했으며 청년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그 잘 켜던 수금이나 잘 쏘던 활 같은 것도 돌아보지 않을 정도 였다. 어느 날 이 둘은 원반던지기를 했다. 아폴론은 원반을 들고 머리위로 한 바퀴 돌리고는 멀리 던졌다. 그러자 휘아킨토스는 자신도 빨리 원반을 던져보고 싶은 마음에 아폴론이 던진 원반을 받으려고 달려 나갔다. 그러나 땅에 떨어진 원반은 되튀어 휘아킨토스의 이마를 때리고 말았다. 아폴론은 창백해진 얼굴로 쓰러진 휘아킨토스를 끌어안고 어떻게 해서든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멎게 해보려고 애쓰는 한편, 청년의 몸을 떠나는 생명을 붙잡아 두기 위해 온갖 수단을 써 보았지만 결국 휘아킨토스는 죽고 말았다. 이에 아폴론은 울부짖으며 '내 수금으로 너를 칭송하게 하고 내 노래로 네 운명을 읊게 하리. 그리고 너로 하여금 내 탄식을 아로새긴 꽃이 되게 하리' 그러자 휘아킨토스로 부터 흘러나와 땅에 고인 피가 아름다운 꽃을 피게 하였으니 그 모양은 백합과 흡사하되 그 색이 자주색인 것이 달랐다. 이 꽃이 바로 히아신스로 해마다 봄이면 피어나 청년의 슬픈 운명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동성애의 슬픔이 얽혀 있었다. 비애란 이렇게 향기로운 것일까?
아무튼 테레사 수녀님은 ‘빵과 히아신스’를 함께 말했다. 빵이야 가난하고 병든 자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히아신스는 무엇인가? 사치라면 사치 아니겠는가? 빵에만 매달리는 사람들에게 히아신스란 그야말로 쓸모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요즘 식탁에서 누리는 감탄과 기쁨을 떠올리면 그것이 마음의 양식임을 알겠다. 사람에겐 보이지 않는 마음과 정신이 있고, 각자가 가진 존엄성이 있다. 그리고 아프고 가난한 자에게 히아신스와 같은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의 무더기를 준다면 그 생명력에 커다란 위안과 용기를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테레사 수녀님은 아마 루마니아 태생일 것이다. 봄이 오면 창턱에 히아신스의 화분을 키워 활짝 핀 꽃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맘껏 감상하며 자랐을지도 모른다.
히아신스, 그것을 사치라 말할 수 있다면, 나는 간혹 이런 사치가 그립다고 말하리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의 미로로 만들어진 도시에서 생명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눈부신가? 그것은 내게 커다란 숨구멍 역할을 한다. 그것은 차라리 또다른 세계다.
요즘 내겐 빵이 아니라 히아신스가 필요하다.
첫댓글 ..^^ 내겐 빵을 먹을 수있는 능력과.... 히아신스를 좋아하는 친구가 필요하다 ...
예쁘지 않고 향기롭지 않은 꽃은 없나 봅니다. 꽃대 올린 수선화는 어찌 되었나요? ^^*
히아신스....찾아볼게요 ^^
후이..그거 아닌거 같은데..."한 손에는 빵을 다른 한손에는 히아신스"를 이었던것 같은데...그리고, 그 히아신스의 의미는 마음의 양식, 여유 그런 의미로 읽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 일이라..기억이 가물거리는 것이.. 노화의 징조인지..
미안합니다.'한 손에는 빵을 다른 한손에는 히아신스'를 제가 혼동되어 바꿨군요. ^^ 벌써 치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