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를 가족의 끈으로 단단히 묶어주는 또 한 사람은 시어머니이다. 100세에 돌아가신 어머님이 요양병원에 누워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자신의 생일인 이월 열사흘을 기억하더라고 하였다. ’이월 열사흘‘은 작가에게도 강한 의미를 가진다. ’허분이‘라는 이름을 갖는 어머님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뒤에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겠지만 김 아가다의 수필세계에서 큰 몫으로 차지하고 있는 것은 가족이다. 그 중에도 친정 엄마와 시어머님은 음으로, 양으로 그의 삶에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사업에 실패하고 유명을 달리한 남편의 과거사를 안고 살아가는 작가에게 돈도 그의 수필세계에서 한 몫을 차지한다. 돈에 대한 욕심이 아니고, 돈에 대한 이것저것의 사유를 펼치므로, 우리의 삶을 반성적으로 바라보게 한다.
그의 가족사는 카톨릭과 뗄 수 없다. 4대 째 이어오는 카톨릭 신앙은 노후를 보내는 지금의 그의 삶을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필집의 마지막에는 자기의 종교를 이야기한다. 성당 앞에서 만났던 사람의 이야기에는 따뜻하고 가슴 아픈 이야기도 있고(그날은 언제쯤), ’오지랖‘에서처럼 자기를 속이는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그런 것이 세상사이지만 작가는 자기가 오지랖이 넓어서라고 뚱치고 넘어간다. 넓은 오지랖은 자기가 살아온 삶의 태도에서 만들어진 것이지 한 순간의 생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카톨릭이라는 종교적인 삶이 만들어 낸 것이리라. 그만큼 카톨릭은 그의 생활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
2023년에 두 번 째 수필집 ’분이‘를 출판하였다.
최근에 발간한 책인 만큼, 작가의 최근의 모습을 읽을 수 있으리라. 첫 번째 수필집에서는 그의 말마따나 인생에서 슬픈 시기를 보내며 쓴 글이어서 내용에서는 인생살이의 신맛이 나는 이야기이다. 이번 수필집의 발간에 대하여 그가 쓴 글을 가져와 보자.
요즘은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소중한 것이 아닌 것이 없고, 귀하고 값진 것이 많습니다. 사물뿐 아니라 사람은 더더욱 아름답습니다. 늙은이나 젊은이나 어린아이나 살아있는 생명들이 이렇게 소중하게 느껴질까요? 저는 행복해서 늘 웃습니다. 이번 수필집 ’분이‘로 인해서 행복지수가 높아졌으니까요.”
- 두 번 째 수필집 ’분이‘의 머리말에서 -
수필집 ‘분이’에 실린 글은 첫 번째 수필집에 실린 글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둡고 긴 터널을 벗어났을 때 눈부신 햇살을 느끼듯이, 글의 분위기가 많이 맑아졌다.
남편의 죽음이 드리웠던 무거운 그림자를 걷어내기라도 하듯이 수필 ‘자리이동’은 죽음을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다루었다. 지난날의 아픔이 걷힌다는 의미도 있지만, 죽음이 아득하게만 보였는데, 어느 사이에 이웃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작가 자신이 노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심정을 털어낸 것이 아닌가도 싶다.
“친구가 이 동네에 둥지를 마련한 지 칠 년이다. 하필이면 무덤 옆에 집을 짓고 살까? 교수촌이 만들어 지기 전부터 있던 무덤들이라 개의치 않는다고 한다.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곳이라 죽음은 항상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는 모양이다. 어두운 밤에 낯선 사람이 동네에 어슬렁거리면 덜컥 겁이 나지만 죽은 사람은 무섭지 않다고 했다.”
“무덤 때문에 매일의 삶이 묵상거리라는 친구에게 교수촌이 아니고 도인촌이라 부르면 하고 너스레를 떤다. 앞집에 사는 이교수도 유방암을 앓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삼 개월이라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무덤 속 주인과 이웃사촌 하면서 다섯 해를 더 살다가 자리이동을 했다. 친구는 그리도 살갑게 지냈던 선배를 떠나보낸 슬픔을 새로운 세상에 먼저 가서 기다린다고 예사롭게 말한다.”
-분이. 김아가다. 수필세계사. 2023. ‘자리이동’의 부분-
죽음까지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작가의 마음을 담아냈다. 죽음을 ‘자리이동’이라고 하였다. 작가가 지난날의 아픈 기억들을 종교나 또는 다른 어떤 방법으로 씻어낸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작가가 나이 들어감을 이겨내기 위하여 성찰이라는 방법을 통하여 찾아낸 결과가 아닐까, 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이가 들었다고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 작가는 죽음의 두려움을 벗어나려 자기가 스스로 성찰하여 터득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는 누가 무어래도 현실을 사는 인간이란 사실도 틀림없다.
그에게 감성적인 또 한 면이 있음도 보여준다. 그의 글에는 첫사랑 이야기도 하면서 감성적인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황혼 블루스’도 그런 마음이 미련이 되어서 쓴 글이 아닐까 싶다. 경상감영 주위에 황혼의 남, 녀 노인들이 모여들어 콜라도 마시고 담소도 나누고 ---, 나쁘게 보지 않고 노인들의 감성놀이로 생각한다.
“이성과 감성의 교차점이지만 노을빛이 아름다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황혼을 배경으로 내 마음이 블루스를 춘다. 붉은 태양이 어느새 수평선 너머로 사라지면 잿빛 커튼이 창공에 장막을 드리운다.”
분이. 김아가다. 수필세계사. 2023. ‘황혼 블루스’의 부분.
아름다운 노을빛으로 읽어야 할지, 잿빛 커튼으로 읽어야 할지, 솔직히 헷갈린다. 그러나 작가가 조금은 아름답게 바라본 것은 사실이다. 이 글을 읽기에 따라서는 작가의 생활이 어둠에서 밝음으로 이동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첫댓글 늘 젋게 사시는 김 아가다 수필가님의 생기가 '긍정'에서 오는 것이었군요^^ 잘 읽었습니다^^
'분이'를 읽다보면 세상에서 맺는 온갖 형태의 인연을 돌아보게 됩니다
나를 만들어 나가는 일은 수많은 인연과도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문학과 인생은 서로를 연민하는 일에서부터 인연이 시작되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