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블로그/ 안테나 - 송진권
- 나와?
- 안 나와
- 이제는?
- 아직 안 나와
- 지금은?
- 소리만 나와
- 이제는?
- 희미해
- 그럼 이제는?
- 이젠 소리도 안 나와
- 그럼 이제는?
- 지직거리기만 해
- 지금은?
- 아니 이젠 아예 안 나와
- 더 더 올라가봐
- 이제는?
―송진권, 「안테나」
“- 지금도?”, “- 아주 잘 나와 됐어”. “그만 내려와”라고 이어 쓰고 싶었을 겁니다. 왜 거기까지 마저 쓰지 못했을까요? 그 짐작은 독자들의 몫!
시간 참 빠릅니다. 20여 년 저편만 해도 지붕마다 옥상마다 안테나라는 ‘문명’을 세워놓고 살았습니다. 전파가 잘 잡히지 않는 산밑 시골집에서는 바람 불거나 하면 곧잘 텔레비전 화면에 비가 왔죠. 그러면 저, 시의 장면이 연출됩니다. 가난한 추억만 같아 애잔한 웃음이 절로 납니다.
이 시는 커다란 이별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시대와의 이별, 청춘과의 이별, 사람과의 이별, 가족과의 이별을 배경으로 두고 있습니다. 잘 나오다가 희미해지다가 지직거리기만 하다가 아예 안 나오게 되는 것이 범부들 삶의 오후이지요. 마지막 두 물음에 답이 없는 걸로 봐서 어쩐지 저 두 사람의 대화는 영영 저렇게 그쳤을 것만 같아 아픕니다. ‘더 더 올라’갔거든요. 그래서 서로의 말소리들이 들리지 않거든요.
쉽고 깊고 단출합니다. 박수칩니다. < ‘사랑이 너에게 해답을 가져다줄 것이다(장석남, 마음의숲, 2019.)’에서 옮겨 적음. (2023.12.21. 화룡이) >
첫댓글 저도 학창시절
가정교사 하면서
기사도 겸해야 하니
지붕에 많이도 올라갔습니다
이렇게 해도 멋진 시가 되는군요..
'그 때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