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물소가죽가방」 해설 / 오민석 물소가죽가방
최승호
문명엔 너의 죽음이 필요하다 네 뼈가 공업용 쇠뼈로 부서지고 네 육신이 포장육으로 나눠질 때 가죽공장 노동자들은 네 가죽에 무두질과 염색을 시작한다
가죽들의 무덤, 쇼윈도에 나타나는 물소
문명엔 너의 식욕이 필요하다 숫자와 서류뭉치와 도장을 먹고 불룩해지는 가죽가방 이제 네 뱃속에 풀물 든 내장은 없다 관청과 회사들 사이에서 음험한 뱃가죽을 내밀고 숨쉬면서 너는 이제 도살의 음모에 가담한다 너의 숫자는 가방을 든 傭兵, 가방을 든 회사원만큼 불어난다
쇠뿔 달린 힘센 문명이여, 가방으로 물소들을 때려죽여라
.....................................................................................................................................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개인들의 삶엔 자본-논리의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눈먼 개인들은 그 그림자를 보지 못한다. 자본은 자신의 파사드(facade)를 보여주지 않으며 적진을 무너뜨리는 안개 같다. 자본주의 안에서 삶의 문제들은 자본과 관련된 것으로 잘 귀속되지 않는다. 자본은 안개처럼 자신을 숨기며, 그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와 사고의 원인을 개인 혹은 운명의 탓으로 돌린다. 자본은 개체들의 시야를 흐려 자신의 거대한 실체를 감추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극히 사소하며 미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그러나 시는 매우 민감한 안테나로 움직이는 자본의 꼬리를 잡아낸다.
“물소”가 “문명”의 반대편에 있는 막강한 자연력(생명력)이라면, 자본은 이것을 부수고 나누고 죽이고 “무두질과 염색”을 해서 상품으로 만드는 힘이다. 자본에게 물소는 원료에 불과하고 자본은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구매하여 그것을 상품으로 변환한다. 자본의 “쇼윈도”는 이렇게 죽은 물소 “가죽들의 무덤”으로 넘친다. 물소는 죽음으로써 상품이 되고, 물소가 상품이 되었을 때 물소의 터질 듯한 에너지는 상품, 즉 자본의 에너지로 전환된다. 상품의 힘으로 전이된 물소의 에너지는 자본주의적 “도살의 음모에 가담”한다. 물소의 힘은 그것을 닮은 무수한 상품의 막강한 생산력이 된다. 이제 넘치는 힘의 소유자는 자연이 아니라 자본이다. 시인은 이미 상품이 되어버린 “물소가죽가방”에서 사라진 물소의 기억과 자본과 자본으로 넘어간 힘의 이동을 본다. 자본은 상품으로 자연의 상징인 물소들을 때려죽인다(“가방으로 물소들을 때려죽여라”). 자본은 그것이 이윤을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때려죽이는 “쇠뿔 달린 힘센 문명”이다.
―계간 《가히》 2023년 여름호, ‘마르크스주의로 시 읽기’ 중에서 ------------------------ 오민석 / 1990년 《한길문학》 등단.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평론 등단. 시집 『굿모닝, 에브리원』 『그리운 명륜여인숙』 등과 『현대문학 이론의 길잡이』 『이 황량한 날의 글쓰기』 외. 단국대 영미인문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