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4. 21. 주일 오전 예배 설교
시 20편
영국의 국가는 God save our gracious King. 으로 시작합니다. 국가에 제목도 있는데, God save the King입니다. 엘리자벳스 여왕이 살아있을 때는 King이라고 하지 않고 Queen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이 곡에 가사를 붙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왕을 구원해 주십시오. 라는 것인데, 내용을 보면 하나님께서 왕을 보호하셔서 승리를 얻게 하시고 만수무강하면서 영원히 이 왕이 다스리도록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한 때 영국이라는 이 작은 섬나라가 온 세상을 다스린 것이 이렇듯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때 영국이라는 나라가 약소국들에게 나쁜짓도 많이 한 것도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두려워 하고, 하나님이 진정한 왕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인데, 다윗이 그 당시의 이스라엘 왕으로서 자신이 환난가운데 있을 때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인가? 마치 영국 국왕을 하나님께서 구해 달라고 간구하는 것처럼 다윗도 하나님께 구하는 내용인가? 하는 점을 먼저 지적하면서, 시편 20편의 다윗이 말하는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해 달라고 하는 그 기름부음 받은 자가 다윗 본인을 말하는 것인지도 살피면서 진정한 왕이신 그 기름부음받은 자의 승리를 소원하고 또한 그 승리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의 편에 서서 개가를 부르는 기쁨이 우리에게도 있기를 바라면서 이 본문으로 다음과 같은 제목과 내용으로 설교하고자 합니다.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이 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여호와여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소서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자인 왕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이 시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우리 모두가 알 수 있듯이 이 시는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이 지은 시라는 뜻입니다. 제목이 그것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이 시의 배경의 환난의 날인듯싶습니다. 1절이 그것을 알려줍니다. 이 시는 다윗이 환난을 당했을 때 기도하는 내용인 듯이 보입니다. 그런데 이 시의 주인공이 다윗인 것 같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네게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이 너를 높이 드신다고 한 것을 볼 때 그리고 그 이후의 절을 보더라도 다윗을 가리키는 1인칭 “나”가 아니라 2인칭 “너”나 3인칭 “그”로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2인칭으로 말한 것을 보시면,
1절 “네게 응답하시고”, “너를 높이 드시며”
2절 “너를 도와 주시고”, “너를 붙드시며”
3절 “네 모든 소제를 기억하시고”, “네 번제를 받아주기기를 원하노라”
4절 “네 마음의 소원대로”, “네 모든 계획을”
5절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네 모든 기도를”
3인칭으로 말한 것을 보시면,
6절 “그의 오른손을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
다윗이 1인칭으로 자신을 표현한 것을 보시면,
6절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이렇게 1번 표현했습니다. 오히려 1인칭보다는 복수형으로 자신이 그 복수들 안에 들어가 있음을 표현한 구절이 많습니다.
5절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깃발을 세우리니”
7절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8절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9절 “우리가 부를때에”,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그러니까 이 시편 20편은 너와 그로 상징되는 한 인물과 나와 우리로 상징되는 사람과 사람들로 구분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너와 그는 누구고? 나와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점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나는 다윗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다윗이 포함도 우리입니다. 그렇다면 너와 그에는 다윗인 나와 다윗을 포함한 우리에는 없는 사람이 너와 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먼저 그가 누군가 할 때. 6절을 보시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그의 오른손으로 구원하는 힘으로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 그에게 응답하시리로다” 했습니다. 그가 누구인가? 에 대한 아주 중요한 힌트가 있습니다. “그의 거룩한 하늘에서”입니다. 그분은 거룩한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그분은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오른손으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고 그에게 응답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6절의 주어인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그는 여호와 하나님입니다.
자 그러면, 이 시의 핵심인물 “너”는 누구인가? 만 남았습니다. 이 “너”는 환난을 당하는 사람입니다. 이 “너”는 높이 올려질 분입니다. 이 “너”는 시온성소에서 도우시고 붙드는 분, 즉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분입니다. 이 “너”는 모든 소제와 번제를 드리는 분입니다. 이 “너”는 마음의 소원대로 허락되고 모든 계획을 이루어지는 분입니다. 이분은 싸움에서 승리하시는 분입니다. 이 “너”는 모든 기도를 이루어져야 하는 분입니다.
이 “너”가 누군가를 밝히기 전에, 함께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이 있는데 바로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 와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 할 때 이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입니다. 이 기름부음 받음자와 왕이 다른 사람인가? 같은 사람인가하는 것을 두 영어성경을 대조해 보면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먼저 ESV 성경입니다.
Now I know that the LORD saves his anointed; he will answer him from his holy heaven.(6절) O LORD, save the king! May he answer us when we call.(9절)
다음으로 NIV 성경입니다.
Now this I know: The Lord gives victory to his anointed.(6절)
Lord, give victory to the king! Answer us when we call! (9절)
먼저 ESV성경에서 save 다음에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이 나온 것을 보면 왕과 기름부름 받은 자는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NIV성경에서도 give victory 다음에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이 나오는 것을 보면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이 동일한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은 먼저 다윗을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왕을 구원해 달라고 하는 그 우리안에 다윗이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6절에 기름부음 받은 자라면 이렇게 표현해야 명확하고 맞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이 기름부음 받은 자인 나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내가 아노니 이런 식으로 표현했어야 합니다. 또한 주격을 자신에게 맟춰야지 2인칭 너라고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로 기름부음받은 자와 왕은 다윗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름부름 받은 자와 왕은 다윗이 표현한 너와 동일인입니다. 바로 환난날에 구원해주셔서 승리를 얻을 분이 바로 그 “너”이고 그 환난에서 구원받아 승리한 분이 그 기름부음 받은 자이며 왕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은 시편 2편에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은 받은 자를 대적” 하는 그 기름부음받은 자인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이 시편 20편의 주인공인 바로 너와 하나님이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와 왕은 바로 시편 2편의 기름부음 받은 자인 그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를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시편 20편의 주인공은 다윗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여호와여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소서
다윗은 기름부음 받은 자이신 왕이신 예수님이 환난을 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왜 기름부음 받은 자인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환난을 당합니까? 그것은 이전 시편에도 계속 언급되지만 특별히 시편 2편이 더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이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1-3절) 세상의 군왕들이 헛된 일을 꾸면 예수님의 결박을 끊고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주인이 되어서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인 예수님을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기름부음 받은 자임에도 환난을 당할 것입니다. 세상의 군왕들, 헛된 일을 꾸며서 하나님과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과 전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기도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수님께 응답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의 이름 즉 야곱을 구원하시고 야곱에게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구원의 하나님이 예수님을 높이 드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소제와 번제를 드리실 것입니다. 이 소제와 번제를 드린다는 것은 구약의 제사를 예수님이 다 드리신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번제는 자신을 다 태워 자신을 다 드리는 제사입니다. 예수님이 제사를 다 드릴 것입니다. 소제와 번제등의 모든 제사는 다 죄와 관련되고 또 죽음과 관련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죄로 인해 대신 죽으시는 희생제물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소제나 번제등의 모든 제사에 재물이 있어야 하듯이 예수님이 친히 제물인 어린 양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화목 제물이 되실 것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소원과 모든 계획은 다 그를 보내신 자, 자기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늘의 하나님의 뜻 그 자체입니다. 다윗은 예수님이 그 모든 소원과 계획을 다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바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한 고난받으시는 모든 소원과 계획을 이뤄주시길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고난받으시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소원이고 계획이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로서 왕이신 예수님이 승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승리는 자신을 제물로 드려서 하나님의 소원과 계획인 죄에 대한 심판을 받으심으로 우리를 속죄하는 것입니다. 이 죄에 대한 승리야말로 옛뱀과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이 치러야 할 전쟁입니다. 다윗은 이 기름부음 받은 왕이신 예수님이 사탄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셔서 개가를 부를 것을 기도합니다. 이 승리는 바로 하나님이 하늘에서 그 오른손으로 구원하는 힘으로 이루실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이 사심으로 이뤄질 완벽한 승리입니다. 사탄이 쏘는 죄의 결국인 죽음을 하나님의 오른손으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으로 죽음을 죽이는 것으로 승리하실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은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인 왕을 포기하거나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그것을 소원했습니다. 그것을 간구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왕을 구원하소서”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시는 줄 이제 알았습니다.” 이것은 서두에 영국국가의 하나님이여 왕을 구원하소서 할 때 그 왕이 아닙니다. 영국의 여왕이나 왕이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이 그 왕을 구원해 달라고 다윗은 성령에 감동되어 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환난을 당하지만 그 때 하나님 자신이 직접 기름부으신 왕이시니 그 왕이시 예수님을 구원해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3. 우리는 기름부음 받은 자인 왕만을 의지하게 하소서
우리는 시편의 말씀을 들으면서 꼭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복이 무엇인가? 가 우선이 아니라 그 복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고 그 복이 누군지를 알았으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가하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시편 16편 2절에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시편 2편 12절에는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바로 주 밖에 복이 없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다 복이 되는 그 복은 바로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입니다.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자들과 입맞추고 그들에게 피난처를 삼는 자들이 복된 것이 아니라, 복 자체이신 예수님과 그 예수님과 피하고 그에게 입맞추는 사람이 복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비롯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할 때, 5절은 그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우리가 너의 승리로 말미암아 개가를 부르며 우리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의 깃발을
세우리니 여호와께서 네 모든 기도를 이루어 주시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인 그의 아드님이시고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이 사탄에게 승리하신 것으로 말미암아 개가 즉 승리의 찬가를 부릅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이며 이스라엘 즉 교회의 승리입니다. 우리의 승리는 나의 잘됨, 나의 성공, 나의 출세, 나의 명성이 아닙니다. 나 개인의 승리가 아닙니다. 우리의 승리 곧 교회의 승리입니다. 바로 교회의 승리는 사람많고 돈이 많고 건물이 큰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승리는 바로 예수님의 승리요 예수님의 높아지심이고 자신의 친히 재물이 되셔서 죄에 대해 승리하신 그 승리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 교회의 승리입니다. 교회의 찬송은 바로 예수님의 승리를 찬송하는 승리의 찬송이며 영광의 찬송입니다. 교회의 깃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써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입니다 라고 깃발에 써 있습니다. 전쟁할 때 깃발은 피아와 적군과 아군을 알려주는 표식입니다. 우리의 깃발, 교회의 깃발은 승리하신 예수님의 깃발, 바로 기름부음 받은 자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깃발, 하나님의 이름이 새겨진 깃발을 높이 세웁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승리, 예수님의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하신 일을 증거하는 깃발을 높이 세우는 곳입니다.
7-8절을 읽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한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그들은 비틀거리며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얼마나 감격적인 말씀입니다. 얼마나 환상적이고 은혜로운 말씀입니까?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한다는 이 말씀, 이 깃발에 세겨진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감격적 입니까? 이 하나님의 이름만이 최후에 남아 결국 최후 승리를 얻을 것인데, 우리가 그 깃발을 가지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세상이 평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들 즉 병거와 말을 의지해서 싸움에 참전할 것입니다. 세상은 그것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그것을 많이 가진자가 승리하는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최후 승리는 하나님의 이름에 있습니다. 그들이 의지했던 모든 것들은 다 비틀거리고, 다 엎드러질 것입니다. 오직 승리는 하나님입니다. 최후 승리는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설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심으로 일어나 바로 서셨듯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는 자는 일어나 바로 설 것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감격적으로 위로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는 의지할 병거도, 말도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졌구나해서는 안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이름이 있습니다. 그것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승리에 있는 것이지, 나의 승리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승리가 나의 승리이고 예수님의 승리의 찬가가 나의 승리의 찬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깃발을 세웠습니다.
진정 다윗이 “여호와여 왕을 구원하소서”라고 부른 그 구함을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응답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왕을 구원해 주셨다면, 그 왕이 부른 왕같은 제사장인 우리를 구원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만 섬기는 제사장이 될 때 우리의 승리는 성령님께서 예수 안에서 보증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기름 부음 받은 자인 왕이신 예수님만을 의지하고 자랑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승리를 찬송하고 찬송하겠습니다.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