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론>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결합
-한국 역사소설을 중심으로-
전영관(문학박사시인문학평론가)
1. 들어가며
한국현대사는 식민지화, 전쟁, 분단, 독재 등 고통스러운 역사로 점철되어 있고, 지금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이런 역사 속에서 역사소설은 꾸준히 우리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문제를 추구해 왔으며 그 역할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기대되고 있다.
본고에서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결합에 대하여 알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역사소설이 무엇인가를 알아본다. 역사소설이란 '실제의 역사적인 시대를 배경으로 삼아 특정한 실존인물이나 역사적 사건을 재현 또는 재창조하는 소설, 역사로부터 빌려온 사실과 소설적 진실성을 지니는 허구를 접합하여 역사적 인간의 경험에 그 의미를 부각시키는 보편적인 인간의 경험으로 전환하는 문학 양식'1)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역사소설이란 통속적 전기류나 중세의 로만스와 구분되는 근대적인 장편소설로서, 현재와 획기적으로 구분될 수 있는, 적어도 두 세대 이전의 과거사를 명백히 역사적 과거라는 의식 하에 형상화한 소설이라고 규정하고, 과거의 시대를 얼마나 역사적으로 충실히 반영했는지의 여부가 역사소설에 대한 가치평가의 중요한 준거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역사소설이란 ‘역사’와 ‘소설’이 결합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즉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요소가 합해서 이루어낸 것이라 하겠다. 통념적으로 이 ‘역사’에는 과거의 역사가 소재가 된다는 뜻이, ‘소설’에는 소설적 상상력에 의한 형상화가 이루어진다는 뜻이 들어 있다. 이렇게 볼 때, 역사소설이 현실도피적인 역사소설과 비유를 통한 교훈 추구의 역사소설이 신비적인 세계에 탐닉한다든가 이념을 강조하고자 역사적 진실성을 등한시한다는 점에서 낭만주의적 성향을 띤 역사소설이라 한다면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전사로서 진실하게 묘사하려는 역사소설은 역사적 진실성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므로 사실주의적인 역사소설이라 하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위에서 든 낭만주의적 성향을 띤 역사소설과 사실주의적 역사소설을 구분하지 않고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전개과정을 알아보고, 역사소설의 성과와 그리고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결합에 있어서의 한계 및 문제점에 대하여 논하고자 한다.
2.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전개과정
근대 역사소설의 성립은 1920년대에 이루어졌는데, 그 출발작은 『마의태자』(이광수)라 할 수 있다. 일제강점시대는 출발기이면서도 우리 근대 역사소설의 거의 대부분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시기였는데 양적으로 보면 40여 편의 장편 역사소설이 발표되었다. 일제강점시대의 역사소설은 ‘민족문학파’에 속했던 보수적 민족주의자들 중심으로, 그리고 신문연재물로서 출발, 성장했다. 이후 역사소설은 계속 신문연재소설로 발표되어 나가는 형편이었기 때문에 흥미유발 쪽에 비중을 강화시켜 나감으로써 역사를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로 몰아가고, 독자는 점점 복고주의적, 흥미 추구적 취향에 빠지기도 했다.
1930년대에 역사소설이 크게 융성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작용하였다. 그 하나는 개화기 이래의 맹목적 근대지향에 대한 반성이다. 맹목적 근대지향에 대한 반성은 전통단절의 깃발을 휘두르며 부정하고자 했던 과거를 탐구해야 할 중요한 관심 대상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구전 정리와 간행작업, 역사 연구서의 간행 작업 등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과 함께 역사소설이 주요 소설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니 이 시기 역사소설은 이 같은 과거탐구의 한 실천형식으로서 시대적 과제를 수행했다고 할 수 있다. 또 하나 주요 요인은 산문정신의 약화이다. 1930년대는 1918년의 토지조사사업 완수로 이미 정비된 식민지배체제가 더욱 확고하게 굳어짐으로써 식민지 상태를 벗어나려는 제반 움직임이 현저하게 둔화되고 위축된 시기였다. 이에 따라 객관 현실을 깊고 넓게 탐구함으로써 미래 지평을 열려는 산문정신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하니, 상상력의 자유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보장되는 과거로 퇴행했던 것이다. 역사소설을 표방하는 작품들의 대부분은 역사자료와 국가학계의 연구 성과에 근거하기 보다는 작가의 상상력에 더 크게 의존함으로써 실제와는 많이 동떨어진 내용을 담고 있었다.
30년대에 융성했던 역사소설은 이후 일제 말기의 암흑기, 해방공간과 6․25의 혼란기, 단편이 주류를 이룬 50~60년대를 거치며 눈에 띄는 발전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박종화, 방인근 등 30년대 역사소설의 작가들과 유주현, 김성한 등 해방 이후 등장한 작가들에 의해 통속적인 신문연재소설로서 겨우 그 명맥을 이어오는 정도에 그쳤는데, 1970년대 들어 민중의식의 성장과 함께 현재를 이해하기 위한 전제로서 과거를 탐구하려는 열기가 각 부문에서 고조, 확산되는 분위기에 힘입어, 또는 그런 분위기를 선도하며, 종래의 역사소설을 훨씬 뛰어넘어서는 작품들이 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0년대 초에 이르면 박경리의 『토지』, 황석영의 『장길산』, 김주영의 『객주』, 조정래의 『아리랑』, 최명희의 『혼불』등 역사대하소설을 비롯한 역사소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최근에는 김훈의 『남한산성』, 『칼의 노래』, 김경욱의 『천녀의 왕국』, 신경숙의 『리진』, 김탁환의 『리심』, 김별아의 『미실』, 전경린의 『황진이』등 20세기 이후 21세기 우리 문학사를 풍성하게 채우며 우리 소설의 질적 성장을 앞서 이끌어 가는 것이다.
3. 우리나라 역사소설의 성과와 한계
요즘 역사소설에 대한 독자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한동안 한국 소설을 주도해 온 이미지에 치중한 단편들이 물러가고 그 자리를 장편이 차지하면서 장편 규모에 걸맞은 이야기성을 갖춘 소재로 ‘역사’가 선택되고 있다. 역사소설이 문학과 멀어진 독자들의 눈길을 잡아끌면서 한국문학의 자존심을 지켜주고 있다. 요즘 역사소설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역사적 사실과 영웅담에 중점을 둔 거대 서사로서의 역사소설 대신 개인의 내면과 일상에 초점을 맞춰 참신한 관점과 서사를 제공하고 있다.
반면 한국 소설의 소재 고갈을 방증한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새로운 소재 찾기에 지친 작가들이 이미 나와 있는 역사적 인물이나 사건에서 소재를 찾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작가들이 현실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에서 손쉽게 과거에 의존하는 측면과 독자들 또한 이야기 자체의 흥미를 느낄 수 있는 역사 소재 소설로 쏠리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오늘날이 같은 역사소설의 붐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우리 현실에서 소재를 찾지 않는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학적 도피라고 보는 게 문학계의 전통적 시각이었다. 그러나 대중과의 접점을 넓힌다는 점에서 역사를 현실의 거울로 적절히 사용하는 데다 무엇보다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는 점에서 이런 폄하는 구시대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현재의 역사소설은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사회 변화의 징후로 읽히고 있다.
그러면 역사적 사실과 소설의 결합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한국 역사소설이 지금까지 이루어낸 성과와 역사와 소설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그 한계 및 문제점을 알아본다.
가. 허구적 상상력을 동원한 대중화와 흥미성과 역사적 사실의 私事化
한국 근대문학사상 본격적인 의미에서의 역사소설을 쓴 최초의 작가로 알려진 이광수의『마의태자』를 예로 들어보면 『마의태자』는 근대 역사소설의 출발작이면서 뒤에 이어지는 일정 유형의 역사소설의 모델이 된다. 과거사를 소재로 해서 허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대중 속에 쉽게 뛰어 들어갈 수 있는 소설형태를 충분히 갖추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이 최초의 역사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그 성취를 높이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많은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것들이 뒤의 작품에서 오랫동안 거의 극복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의태자』의 한계는 여러 면에서 드러난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역사에 접근하는 기본적 태도의 문제이다. 신라 멸망의 원인을 신라 왕실 구성원들의 치정, 부패, 무능 그리고 주변 지배자들의 야심이나 원한관계에서만 찾는다. 이러한 접근 태도는 극히 비역사적이다.
이광수의 역사소설을 논한 초창기의 업적인 김동인의 『춘원연구』는 『단종애사』에 있어 고증상의 불찰저한 점과 세조의 왕위 찬탈을 부정적으로만 본 이광수의 역사 해석을 사료에 입각하여 반박하였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김동인의 역사소설인 『운현궁의 봄』은 흥선대원군의 집권과정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대원군의 집권을 당시의 정치적․사회적 변화와 연관 지어 그 역사적 필연성을 포괄적으로 형상화하지 못하고, 한 개인의 출세담에 지나치게 치중하고 있다. 역사의 변화를 국가나 사회의 근원적 문제와 관련시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특정한 개인의 행위나 운명에만 국한 시켜 이해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태도는 역사를 흥미거리화, 사사화(私事化)하는 것으로서, 과거와 오늘의 관계, 오늘에 던지는 과거의 의미는 전혀 찾아낼 수 없다. 등장인물은 모두 실존했던 왕후장상들인데 그 거의 대부분이 호색한이요, 사욕에 찬 야심가나 복수심에 미친 사람이거나 비굴하거나 무능한 인물이다. 못난 왕과 못난 지배층 때문에 망한 못난 우리 과거의 이야기는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의 역사기술에 뒷북을 쳐주는 것이 될 수 있다. 이 작품은 과거의 충실한 반영과도 거리가 크다. 그 시대의 사회, 정치상, 이익집단간의 역학관계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거의 혹은 전혀 드러나 있지 않다.
이 외에 많은 역사소설들이 왕조사에 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 시대는 다양하다. 이런 작픔들은 왕후장상들을 주인공으로 하며 대체로 봉건적 충의사상에 대한 향수를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런 소재와 시각 때문에 궁궐 밖 혹은 지배층 인물 주변 이외의 백성 일반의 생활은 처음부터 반영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왕조실록을 위시한 정사적 기록물에 충실하여 그 기록물들의 시각에 따라 사실의 선악을 판단하고, 그 기록물들이 제공하는 정보의 범위를 넘어 작가 자신의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하는데 매우 소극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역사를 엄정한 눈으로 판단하기를 포기하고 역사기록을 소설적 문장화하는 데 머물거나 사실을 자신의 기호대로 자의적으로 왜곡 해석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또 왕후장상들의 행적을 정치적, 사회적 역학관계 속에서 그려내지 않고 흥미의 대상으로, 미화의 대상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이들의 일반적인 경향이다. 이들이 당대 독자들의 역사의식, 현실인식을 『단종애사』(이광수)의 소재는 일제강점시대의 민족현실과는 어떠한 연관도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고, 독자들의 현실 인식제고와도 무관하다.『이순신』(이광수)도 역사기록의 문장화에 충실하여 소설적 형상화는 거의 이루어지지 못했고, 백성들의 고난 실상과 평범한 병사의 투쟁은 구체화되지 않았다.
나. 새로운 역사 해석과 민중적 진실 반영과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해 석 불충분
식민지시대에 발달한 한국의 역사소설은 계몽사상과 민족주위의 고취라고 하는 목적의식이 심하게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목적의식이 작용하는 역사소설에는 역사에 대한 고증과 해석뿐 아니라 사관(史觀)의 표현이라는 의식작용이 따르게 마련이어서 이것이 본격소설로 성공하는 데에는 필연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뚜렷한 목적의식 때문에 성격 또는 사건의 의미가 지나치게 과장 또는 단순화 되어 내면적 갈등과 사회 구조적 분석이 생략된다는 점이다. 한국 역사소설 중 우수한 편에 속하는 이광수․김동인․김성한의 소설도 이러한 약점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역사소설의 최상의 단계는 일반적으로 ‘문학’이라는 예술양식이 갖는 인간과 현실의 내면적․구조적 탐구와 조형(造形)이라는 보편적 속성을 ‘역사’라고 하는 소재에서 발굴해 낼 때 가능하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와 『다정불심』은 각각 연산군과 공민왕의 인간적 파탄과정을 소설화한 작품으로서, 이른바 궁중비화를 소재로 한 역사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들에서는 왕실 내 부의 정치적 음모와 애정 갈등 및 이와 연루된 사화 등 궁중생활의 이면을 들추어 내는 데에 흥미의 초점이 놓여 있어, 민중생활은 믈론 지배층의 경우에도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묘사가 극단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장길산』(황석영)과 『태백산맥』(조정래)은 우리 역사소설이 이룬 현 단계적 성취를 대표하고 있다. 즉 많은 자료 조사, 그에 바탕한 역사적 진실성의 추구, 진보적 시각의 새로운 역사 해석, 민중의 소재화와 민중적 진실 반영, 대장 편화, 사실의 심도 있는 해석과 그 구상화, 그리고 자유구현에 관한 인간의 보편성과 소설적 재미의 추구 등 ‘역사’와 ‘소설’의 측면을 아우르는 성취를 보인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점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 위에 열거한 점들도 작품 전반에서 완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작품의 일부에서는 그렇지 못한 상태로 잔존하고 있다.
분단 이후 남한에서 창작된 역사소설 중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는 앞에서 든 황석영의 『장길산』은 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전사적 의미를 지닌 조선후기의 민중운동을 소설화함으로써, 유신체제하의 암담한 현실을 타개하려는 시대적 요구에 나름대로 호응하려 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작가는 구전설화와 가요 등 민속적 자료를 작중에 도입하면서 흔히 생경한 원 소재 그대로, 그것도 지나치게 장황하게 나열하여 작품의 서사적 흐름을 방해하가 하면, 이를 다분히 현대적으로 윤색하고 미화하여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자아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볼 때 『장길산』에는 그러한 민속적 요소들이 작중세계에 진정으로 통합되어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은 자신이 이 작품을 창작한 의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분단된 나라의 과도적 시대의 작가로서 나는 70년대에 비롯되었던 민중이라 는 개념의 실체를 찾아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원류에 닿을 것을 바라면서 민중 사라는 장강(長江)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던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창작 의도에도 불구하고 작품 전체로 보아 당시의 사회 현실을 충실하고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역사적 진실성을 훼손시켜 가면서까지 그 시대의 현실을 지나치게 근대적인 것으로 미화하거나 사회변혁 운동에 있어서 과장된 전망을 제시하고 있음은,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주의적 역사소설관과 낭만주의적 역사소설관 사이에서 상호 모순된 창작의도를 동시에 관철시키고자한 결과라 생각된다.
좋은 역사소설의 조건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꾸준한 모색과 개발이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 역사소설은 아직도 더 큰 성취를 위해 나가야 한다. 역사는 항상 존재하며 또 움직이는 생물이다. 역사소설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역사소설인 만큼 ‘역사’와 ‘소설’이 한 몸뚱이로 같이 나가야 한다.
『나 황진이』(김탁환)는 역사소설의 폭과 깊이를 한 단계 발전시킨 소설이다. 역사소설은 ‘소설’이 지닌 주관성에 ‘역사’가 지닌 객관성을 모두 아울러야 하므로 집필에 앞서 많은 고증과 연구가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야사나 단편적인 사건들을 짜깁기하여 흥미 위주로 서술된 작품이 역사소설의 주류를 이루어 왔다. 게다가 개화기 이후 현대문학과 고전문학이 분리되면서 대부분의 작가가 현대문학의 영향 아래 성장하게 되었고, 그런 까닭에 제대로 된 역사소설은 점점 더 나오기 힘들어졌던 것이다.『나 황진이』는 이러한 역사소설의 한계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 복합적 작용에 의한 역사적 전개의 진전과 논리적 분석력과 종합력 부족
김훈의 『남한산성』『칼의 노래』, 김경욱의 『천년의 왕국』, 전경린의 『황진이』등 최근의 역사소설은 몇몇 개인이나 우연한 사건들을 통해 역사를 이해하던 차원에서 나아가 계층 간의 갈등을 포함한 여러 요인들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역사가 전개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 양상을 그리려는 쪽으로 나아왔다는 점이 크게 진전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가의 목적의식이 객관 현실의 규정성을 압도할 때 생겨나는 윤리적 이분법의 인식 틀과 이로 인한 인물 성격의 유형화, 한 사회를 그 역동적, 총체적 변화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파악하지 못하는 논리적 분석력과 종합력의 부족, 그리고 풍속사, 문화사, 경제사 등 과거의 소설화에 필수적인 역사학 제 분야의 연구 불충분 등이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으로 생각된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요인은 윤리적 이분법의 인식 틀과 이로 인한 인물 성격의 유형화이다.
한국 역사소설 일반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 가운데 하나는 윤리적 이분법의 인식 틀이다. 이분법적 인식 틀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무수한 중간 항들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문제이다. 중간 항을 고려하지 않은 인식 틀은 대상을 두 대립항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것으로 거칠게 양분한다. 그것은 각각의 실제를 구체적으로 살피지 않고도 가능한 파악 방식이기에 편리하지만 대상의 구체적 실제를 빠뜨리고 추상화시킴으로써 가상(假象)을 만들어 대상을 덮씌울 위험성을 동반하고 있다. 이런 방법론은 대상들의 관계망을 파악하는 것은 더욱 어려우니 전체성의 포착과는 멀리 떨어진 방법론인 것이다. 그런데 이 이분법은 대체로 윤리적인 성격의 것으로 작가가 선한 것으로 파악한 것과 악한 것으로 파악한 대립적인 두 성격이 맞서 이룬다. 이에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한국 근현대 역사소설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윤리적 이분법은 대체로 그 이분법의 두 대립적 의미 항을 실현하는 주체로 집단을 설정한다. 예컨대 청석골에 결집한 임꺽정 일당은 선의 의미 항을 실현하는 주체이고, 봉건적 양반 관료들과 지주들은 악의 의미 항을 실현하는 주체로 설정되어 있으며, 조정래의 대하 장편 『아리랑』은 중심 서사를 이끄는 실천적인 민족주의자들은 선의, 그 반대쪽에 대비되어 있는 현실 순응적 반민족주의자들은 악의 표상으로 설정되어 있다.
라. 집필 당시의 시대적 현실의 반영과 그 한계
동시대 현실을 다루는 현대소설의 경우에 비해 역사소설에서는 이른바 리얼리즘이 성취되기가 힘들다. 역사소설의 소재로는 역사상 중요하고도 현대적인 의미를 지니는 과거사가 선택되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역사적으로 진실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묘사되어야만 현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 기여할 수 있게 된다. 당대 현실의 반영에 대한 작가들의 의식이 어떻게 작품 중에 반영이 되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작가의 작품 서문을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역사소설은 역사이야기만이 아니다. 현실과 직접 대화할 수 없는 작품이라면 문학, 곧 역사소설의 가치를 구성시킬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물론 광해시대의 선과 악을 배경으로 하여 이 작품을 썼지만, 이 작품 밑에 맥맥이 흐르는 정신은 4․19의 커다란 파동을 겪고 ‘자고 가는 저 구름’이 되어 쫓겨나지 아니하고는 못 배겨내는, 저 모든 악의 그림자를 광해시대의 모든 악으로 대체시켰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문학을 떠나서 역사를 재미있게 이야기하려 한 것은 아니다. 지금 작품을 끝내고 보니 어느 만큼 처음에 의도한 대로 사상의 표현과 고발은 된 듯하다.
박종화는 『자고 가는 저 구름아』작품이 4․19의 파동을 겪고, 당시의 악의 그림자를 광해시대의 악의 그림자로 대체시켰다고 하였다.
『장길산』의 작가가 ‘분단된 나라의 과도적 시대의 작가로서 나는 70년대에 비롯되었던 민중이라는 개념의 실체를 찾아서, 자생적인 근대화의 원류에 닿을 것을 바라면서 민중사라는 장강(長江)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던 셈이다’라고 앞에서도 인용한 바와 같이 『장길산』의 작가 황석영은 70년대 이후의 민주화 운동을 강력히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의 소재를 선정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시대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 역사적으로 근거지어진 낙관주의적 전망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역사소설의 창작에 있어서 과거의 역사와 현재 간의 긴밀한 관련을 찾고자 한 작가들의 의도는 마땅히 높이 평가되어야겠지만, 이는 또한 과거의 역사를 현재의 전사로서 일관되게 충실히 재현하는 가운데서만 달성될 수 있음을 알아야겠다.
4. 나오며
요즘 한국문학의 조류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팩션(Faction)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하다고들 말한다. 팩션은 ‘사실(Fact)'과 ’소설(Faction)'을 조합한 말로 역사적 사실에 작가 상상력을 결합시킨 장르를 의미한다. 이후 몇몇 국내 팩션 작품이 독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이제 팩션은 한국 소설문학의 주류로 부상했다. 여기에 탄탄한 능력을 갖춘 대표작가들이 속속 팩션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분위기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역사소설의 성과로는 요즘의 역사소설은 지난 시대의 왕조중심, 지배층 중심의 역사관을 넘어 역사담당주체의 한 부분인 민중의 존재를 새롭게 인식하고 역사 전개에서 민중의 역할이 어떠했는가를 되살려 내었다는 점, 작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에 주로 의존하여 역사적 사실의 고증이 미비했던 지난 역사소설의 문제점을 반성하고 크게 뛰어넘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지만 아직도 이에 대한 노력은 부단히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 역사소설의 한계 및 문제점으로는 역사의 변화를 국가나 사회의 근원적 문제와 관련시켜 이해하려 하지 않고 특정한 개인의 행위나 운명에만 국한 시켜 이해하려는 역사를 흥미거리화, 사사화(私事化)하는 것이며 역사에 대한 철저한 고증과 해석의 불충분, 한 사회를 그 역동적, 총체적 변화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파악하지 못하는 논리적 분석력과 종합력의 부족, 그리고 풍속사, 문화사, 경제사 등 과거의 소설화에 필수적인 역사학 제 분야의 연구 불충분 등을 들 수 있다.
지난 역사 속에는 현대인이 산다. 등장인물들은 흘러간 역사 속의 당시의 사람이 아닌 현재 우리의 삶을 바라보기 위해 작가가 내세운 현대인이다. 우리의 삶을 외부자의 시선에서 반추해 보기 위해 그 사람을 역사에서 끌어오는 것이다. 김훈의 『남한산성』은 현재 우리 사회의 어느 조직에서나 볼 수 있는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게는 지역 집단에서 그리고 기업 조직에서 나아가 정부조직에까지 남한산성에 있던 그 인물들과 아주 똑같은 행태가 아무런 변화 없이 지금까지 약 400년간을 지속되어 오고 있다. 따라서 역사는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이다. 역사소설은 과거의 이야기를 다룬다는 전제가 이젠 무의미해졌다. 과거를 과거 그대로 재현해야 하는 부담이 없어진 것이다. 이 점이 현대 역사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알아야 할 점이며 우리 독자들 또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일이다.(*)
참고문헌
강영주, 『한국역사소설의 재인식』, 창작과비평사, 1991.
김동인, 『춘원연구』, 신구문화사, 1956, p.
김영민, 『한국현대문학비평사』, 소명출판, 2002.
김윤식․ 정호웅, 『한국소설사』, 문학동네, 2005.
박종화, 『자고 가는 저 구름아』, 문예당, 2003.
송현호, 『한국근대소설론연구』, 국학자료원, 1990.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웅진출판, 1993.
황석영, 「『장길산』과의 10년」, 한국일보, 1984. 7. 6.